제65화
쯧 혀를 찼을 즈음엔 시간이 꽤 지난 뒤였다.
용의 축제는 축제라고는 하나 수중 동물이 빠진 축제다.
이번에 가는 자리 또한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용의 축제에 가면 용 공작도 볼 수 있는 거 맞지?”
한참을 이야기에 빠져 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아빠에게 물었다.
“반드시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뭐어?!”
“내 기억으로도 실물을 직접 본 건 몇 번 없던 것 같군.”
아빠는 그마저도 현재의 용 공작이 아닌 지금은 죽고 없는 전대 용 공작을 보았다고 얘기했다.
“현재 용 공작은 태어난 이래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걸.”
벨루스도 말을 얹었다.
‘뭐야, 그럼 지금 이 축제에 가더라도 용 공작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단 거야? 허탕을 친다고? 말도 안 돼.’
그건 안 될 일이었다.
반드시 만나야 해. 반드시.
‘아니, 황당하네. 용의 축제에 용이 없다니.’
무슨 황당한 소리냐고. 범고래 저택에 범고래가 없는 거랑 뭐가 달라?
* * *
같은 시간, 범고래 가문 아콰시아델 저택 한곳에서는 꽤 많은 이들이 원탁에 모여 앉아 있었다.
여기 모인 이들은 로데센과 바이얀을 따르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심각한 얼굴로 한곳을 향한 채였다.
이미 회의실은 부서진 의자와 부스러기, 엉망이 되어 바닥에 떨어진 서류와 깨진 도자기 조각들 등.
엉망인 모습이었다.
가장 엉망이 된 곳엔 그들을 이끄는 로데센이 앉아 있었다.
“내 자랑스러운 바이얀에게 일어난 일은 참 유감스러워.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이해조차 안 되는 일이었지요.”
방계를 비롯한 가신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빠르게 입 맞춰 동조했다.
로데센은 그제야 만족한 듯 웃음 지었다.
사실 엉망이 된 집기가 굴러다니는 바닥에는…… 쓰러져 신음하는 사람 또한 있었다.
“내 일찍이 푸릇한 싹은 잘라 버리라는 말을 한 적이 있지. 가령, 피에르의 자랑스러운 딸이 초급 기관에 들어가기 전에 은밀히 죽여 버리란 명을 여기 있는 충성스러운 가신에게 내렸단 말이야?”
로데센이 싱글싱글 웃었다.
분명 그는 그런 명을 내린 바 있었고, 명을 받은 방계 귀족은 처리를 제 아이들에게 맡겼다.
“그런데 내 조그만 조카 하나 없애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었다고, 실패를 해.”
그리고 방계 아이들은 실패했다.
도리어 얻어맞고 와서는 칼립소가 소문과 다르게 물의 힘을 썼다느니 하는 잡소리를 지껄였다.
그러나 얼마 후, 실제로 물의 힘 하나 각성 못한 꼬마 계집이었음이 밝혀졌고.
이어서 가문 회의에서 제 아들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마저 주었다.
실패한 방계 귀족을 향한 응징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는 실패하지 않길 바라. 그대들도 협조했으니 말이지.”
이 자리에 모인 가신들과 방계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래, 이번엔 실패란 없어야지.”
싹은 잘라 두어야 한다.
가문 회의에서 확인했던 그 조그만 계집의 재능은 너무나 위험했다.
고작 그 나이에 어머니를 만족시키는 능력이라니.
게다가 타고난 싸움꾼인 데다, 출중한 전투 능력이라니.
“로데센 님, 피에르 님께서 함께 계신데 괜찮을까요?”
“괜찮고말고.”
살아 있어 봐야 바이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로데센은 아비로서 기꺼이 아들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을 치워 버리기로 했다.
“작전대로라면 내 조카님 하나만 슥싹하는 덴 문제없을 테니까.”
이미 로데센 그의 안배가 칼립소의 여정을 바짝 따라잡았을 것이다.
“피에르 그놈이라면 모를까 공녀가 살아 돌아올 일은 없을 거다.”
로데센은 시원한 광소를 터트렸다.
이 모습을 고요히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로데센의 부인이자, 또한 범고래 방계이기도 한 헤일라였다.
실눈에 가까운 두 눈은 웃는 상에 가까웠다.
그녀는 광소를 터트리는 제 남편을 보며 슬쩍 손으로 입술을 가렸다.
‘저이는 마무리가 부족하니, 좀 더 손을 써 두는 게 좋겠네.’
* * *
내 황당함과 별개로 여행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가끔 벨루스와 아빠가 별거 아닌 걸로 투기를 보이긴 했지만, 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없었다.
나도 이 부분이 의아했지만 말이다.
‘싸우면 무조건 아빠가 이기니까 벨루스 저놈이 은근히 몸 사리는 건가? 흐음, 신중한 놈이긴 해도 필요할 땐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 놈인데?’
그러나 나는 이전처럼 적극적으로 하녀들과 미사가 있는 마차로 가고 싶다고 어필하지도.
투기가 풀풀 날려도 으르릉 대며 둘 다 좀 닥치라는 시선도 던지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온통 용 공작에 대한 생각뿐이었으니까.
‘내가 알기로 현재의 용 공작에 대한 정보는 딱 하나다. 고요히 살기를 바라는 인물.’
원작에서도 여주의 조언자가 되는 인물 정도로 그쳤다.
그런데 지금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니, 허탕을 친단 생각만 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여정이 그리 길게 잡혀 있지 않았으니, 어떻게든 방법을 떠올려야…….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살기!’
깊이 생각하느라 늦었을 뿐, 이미 마차 안의 두 범고래는 한발 앞서 내가 향한 곳을 보고 있는 듯했다.
“온다.”
“응? 뭐가?”
아빠가 한 팔을 움직여 내 허리에 손을 넣고 쑥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콰앙!!
굉음이 들렸다. 머지않아 마차가 멈췄다.
이게 결코 정상적인 정차가 아니란 것쯤은 누가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미친 듯이 흔들렸으니까!
‘미친, 이 세계에서 교통사고라니.’
실없는 생각과는 다르게 상황은 다급하게 돌아갔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여기 있는 두 범고래가, 특히나 아빠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도대체 어느 미친놈이 이 마차를 습격한 건지 보기나 해야겠다.’
나는 산뜻하게 생각했다.
‘곧 뒤질 놈들이니.’
마차 주변으로 수많은 기척이 느껴졌다.
게다가 굳이 얼굴을 보고 싶지 않건만 저놈들이 억지로 보게 만들어 주었다.
마차 뚜껑이 날아가 버렸으니까.
아빠가 나를 안고서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바닥에 안착했다.
아빠의 옆으로 벨루스가 비슷하게 착지했다.
‘아이고, 많이도 왔네.’
마차 앞으로는 남색 옷을 걸친 수많은 인간이 보였다.
하나같이 얼굴을 가린 모습.
“아빠 나 좀 내려줘.”
“지키기 번거로워진다.”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을 만큼 강하잖아. 내 하녀들이랑 유모도 같이 지켜 줘.”
이미 우리 마차뿐 아니라 뒤로 달려오던 하녀들과 미사가 탄 마차는 물론, 말을 타고 호위하던 몇몇 기사도 멈춰 섰다.
기사들은 서둘러 말에서 내렸다.
“피에르 님, 저들은……!”
“암살자들이겠지.”
그래, 낯선 습격자들의 정체는 당연하게도 암살자였다.
나는 딱히 당황하지 않았다.
‘딱 봐도 날 노린 거네.’
아빠가 함께 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와, 예상하긴 했지만 벌써 나타나?’
그보단 이미 이런 일이 있을 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어지간히 초조했나 보네.’
범고래 가문 내에서 죽이는 것보다야 가문 밖에서 죽이는 게 더 쉬울 터.
뒤처리할 때도 밖에서 죽이는 쪽이 훨씬 편하다.
가문 회의에서 내 활약과 데뷔를 본 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축제가 끝나고 돌아갈 즈음을 노릴 거라 생각했는데.’
보통 여정에서 돌아올 때는 지쳐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용 공작이랑 얘기가 잘 풀리면, 돌아가는 그 마차엔 짜잔! 내가 없었습니다!
하는 재미난 상황이 연출되었을 수도 있을 텐데!
안타깝게 되었다.
게다가 누가 보냈는지도 쉬이 짐작이 가는 상태라서…….
‘하여간 큰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성격이 급하다니까.’
멍청한 것보다는 낫겠지만 큰아버지는 처세나 머리는 나쁘지 않은데 결국 이 급한 성격 때문에 일을 그르칠 인간이었다.
“공녀님!”
“으앙, 공녀님 괜찮으세요?”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지붕이 날아가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마차에서 내린 청어 하녀들과 미사가 헐레벌떡 이쪽으로 뛰어왔다.
미사는 내 어깨를 붙잡고 연신 이리저리 살펴보기 바빴다.
청어 하녀들 또한 울먹이고 공포에 질린 모습이면서도 걱정이 가득했다.
“걱정 마. 난 아무렇지 않은걸.”
“공녀님……!”
습격은 아무런 타격을 주지도 않았고, 심지어 놀래는 것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미사와 하녀들에겐 다른 이야기였으리라.
“난 괜찮아. 아빠랑 있었잖아.”
걱정과 애정이 가득한 시선이 조금 머쓱하고도 간지러운 기분이 들어 미사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오빠도 있었고.”
벨루스가 나를 흘끗 보았다.
웃어 주자, 무슨 꿍꿍이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너흰 다친 곳 없어?”
“네, 저희는 모두 괜찮아요.”
“그래. 그럼 구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