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고래 등살에 터지는 새우가 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까 했지만.
아닌 건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꼬맹아, 조사를 왜 진행하지? 그냥 죽이면 그만인데. 너도 그 하녀가 미워서 내게 복수를 말한 것 아니더냐.”
“아니요, 할머니.”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랬으면 제 손으로 했지, 왜 남의 손으로 복수하나요?”
“…….”
“할머니, 조심스럽지만 저는 그 하녀가 저지른 일이 가주의 이름으로 공표되고 공론화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그러면 사람들은 혹은 그 하녀와 비슷한 사람들은 인지하겠죠.”
감정, 동정, 도덕에 호소하는 일은 귀에 닿지 않는다.
“아, 저건 하면 안 되는 일이구나.”
이성과 논리, 여기에 더해 네 영역에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 준 뒤에.
“할머니께서 아끼는 범고래들이 고작해야 하찮은 누군가의 손에 죽었다고 생각하면, 그건 화가 나는 일 아닌가요?”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거다.
“죄를 낱낱이 뒤져서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해요. 꿈에서도 자신의 죄로 괴로울 만큼. 피해자와 똑같이 괴로워야죠.”
“…….”
“아빠, 죽이는 건 너무 쉬운 처벌이에요.”
나는 아빠를 한 번 본 뒤에 할머니를 향했다.
이어서 방긋 예쁘게 웃었다.
“할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아빠처럼 대놓고 긁지는 못하지만, 살살 긁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아빠가 아니었다면 저 할머니는 그 하녀를 처벌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다.
‘내가 당신을 모를까.’
아니나 다를까 내 앞으로 사나운 송곳 같은 것이 날아왔다.
콰앙!
줄줄 흐르는 물의 방어막에 꽂힌 송곳이 보였다. 송곳 또한 마찬가지로 물로 만들어진 송곳이었다.
이뿐 아니라 주변으로 꿈틀대는 물줄기들이 흡사 용과도 같았다.
나는 태연하게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되바라진 것, 제법 재능이 있어 그냥 두었더니 내 머리 꼭대기에 오르려 드는구나.”
“…….”
“아주 재밌어. 네 아비도 그 나이에 이 정도로 개기진 못했거늘.”
할머니의 표정은 전혀 재밌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군가 하나 씹어먹을 듯한 표정.
하지만 반전은.
‘와, 정말 재밌어하고 있네.’
저 할망구는 저 얼굴이 재미를 느끼는 표정이라는 거다.
살벌하기도 하지.
“제가 감히 하늘 같은 할머니에게 맞서거나 대들 수 있겠어요. 그저 저는 희망 사항을 말한 거예요. 할머니.”
나는 고개를 돌려 아빠를 향했다.
“아빠, 내가 한 얘기 들었지? 그대로 해 주기야. 아빠 이름으로 공표해서.”
“그래. 그러지.”
가주의 이름으로 못하면 ‘피에르 아콰시아델’의 이름으로 하면 그만이지.
아빠가 이렇게 순순하게 들어줄 줄은 몰랐지만. 뭐 어때.
‘랍스타 대신 꽃게탕이지 뭐.’
나는 박수를 쳤다.
“다행이에요, 이렇게 되면 할머니께 피해를 주지도 않고 해결할 수 있겠네요. 마침 할머니께서 아빠에게 처벌을 맡기셨으니까요!”
할머니는 잠시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하더니 픽 웃었다.
“허, 어디서 저런 게 튀어나왔지? 피에르 넌 대체 애를 어떻게 키운 게냐?”
“키운 거 아닙니다.”
“그럼?”
“마음대로 자라서 나타났습니다.”
“너답구나. 미친놈아.”
할머니는 자세를 바로 했다.
사실 싱글싱글 웃고는 있지만 저 할망구가 어떤 변덕을 부릴지 몰라 초조한 상태였다.
순식간에 결정을 바꿀 수도 있는 인사니까 말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 말에 더는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봐, 조랭이 떡, 넌 용의 축제는 왜 가려 하는 거냐?”
어라. 별말 안 해……?
나는 눈을 끔뻑였지만 서둘러 입을 움직였다.
“궁금해서요.”
“궁금해?”
“하녀들이, 음, 거기엔 육지 동물만 초대된다고 하잖아요.”
사실이었다.
정확하게는 수중 동물들은 굳이 그 자리에 가고 싶지 않아 했다.
육지 동물들이 보일 태도와 황실이 보일 태도를 뻔히 알고 있기에.
“그래서 올해도 수중 동물은 갈 수 없다고 하길래…….”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금 그 영아 학대범을 처벌하는 것 가지고는 아무런 말 안 한 거지?
암묵적인 동의를 받은 거지?
뤼미. 넌 네 죗값을 치르게 될 거야.
나는 곧 바뀐 화제에 집중했다.
“이상하잖아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처럼 우수한 수인들이 못 간다고 하니까. 꼭 가야겠다 싶었죠.”
“으하하하하!”
할머니가 유쾌하게 웃었다.
언제였더라, 나는 지난 삶에서 저런 모습을 두 번 정도 봤다.
전부 다 내 첫째 오빠인 벨루스가 할머니 마음에 드는 짓을 했을 때였다.
물론 저렇게까지 크게 웃은 건 본 적이 없는 듯하지만.
할머니가 팔짱을 꼈다.
“어쩜 내 마음에 쏙 드는 말만 하는 건방지고 영악한 것이 하필 피에르 네놈 밑에서 나왔을까…….”
할머니는 툭 소파 손잡이를 두드리더니 이내 시원하게 말했다.
“좋아, 허락은 이미 했으니. 출발 시각은 언제지?”
“일주일 뒤에 출발할 예정입니다.”
“더 빨리 가.”
“…….”
뭐? 진짜?
이게 웬 떡이지? 나는 깜짝 놀란 동시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아빠를 보았다.
‘빨리 그러겠다고 해. 얼른 애비야!’
빨리 가면 빨리 용 공작을 볼 수 있다!
아빠가 나를 흘끗 보더니 이내 끄덕였다.
“예.”
좋았어.
“일찍 가서 대지의 구린내와 노린내 나는 놈들의 코를 눌러주고 오너라.”
“네, 할머니!”
다른 건 몰라도 할머니와 나는 육지 동물 놈들을 혐오하는 마음만은 같을 것이다.
특히나 난 그놈들에게 호되게 시달리다 죽기까지 한 사람이다.
저 할머니조차도 황실 앞에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을 테니 얼마나 스트레스일까.
‘황실이 육지 동물이자 걔네 편이니까.’
보아하니 용 공작의 축제에 아빠가 가는 것이 퍽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저렇게 흡족한 얼굴로 턱을 문지르고 있었으니까.
“저 엉덩이 무거운 피에르 놈이 함께 가니 충분하겠지.”
이어서 더 할 말이 없는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려 하니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적휘적 흔들었다.
“조약돌 같은 꼬맹아.”
막 아빠와 나가려 하는데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어느새 호칭은 바뀐 채로 말이다.
“내 입에서 이름이 불릴 날까지 살아남거라.”
나는 깜빡이며 할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저 눈에 어린 흥미와 관심.
잠깐이지만 오싹할 정도의 짜릿함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 할머니. 나한테 관심이 제대로 생겼구나?’
나는 속으로 웃음을 꾹 참으며, 겉으로는 예쁘게 미소했다.
“감사해요, 할머니.”
저 말의 뜻은 간단했다.
‘곧 나를 향한 암살 시도가 시작될 거라는 걸 알고 하는 말이지.’
강하면 살아남겠지 하는 마인드.
그와 동시에 나에게 관심을 표한 것이다.
‘하지만 용의 축제에 두 사람이 갔다가 한 사람만 돌아오면 어떤 얼굴이려나.’
제대로 된 후계자가 되었다가 기대를 배반하고 떠나 주리라 마음먹었지만.
할머니의 얼굴을 보아하니 지금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알겠다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아빠였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제가 지킬 겁니다.”
단단한 팔이 나를 고정했다.
“아비라서.”
할머니는 픽 비웃을 뿐이었다.
“별 희한한 꼴을 보는군. 재미없으니까 꺼져. 이만 나가라.”
* * *
뤼미는 복어 수인이다.
그녀는 자신의 태생을 저주했다.
본디 수인이란 자신의 원형 동물의 특징을 타고 나는 법이었다.
그중에서도 복어의 특징은 가시와 체내에 있는 독.
안구, 뇌, 간과 난소. 근육, 창자, 혈액…….
주요 장기에 맹독을 가진 생물답게 복어 수인들 또한 체내에서 독을 생성했고.
독을 무기로 쓰는 게 이들의 ‘특기’이기도 했다.
“헉 쟤가 그, 복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