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 (44)화 (44/275)

제44화

“그래. 아가.”

가주 오큘라가 손끝으로 턱을 받친 채 느긋하게 웃었다.

지금까지 보이던 것과는 달리 미묘하게 누그러진 어조였다.

“오늘도 네 혀가 매끄럽게도 돌아가는구나.”

“과찬이십니다.”

“그래. 좋아.”

오큘라가 허리를 세웠다.

“오늘 이 늙은이가 부린 변덕에 다들 궁금해하다 못해 욕을 하고 있겠구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머니.”

유들유들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칼립소의 작은아버지 비오르였다.

큰아버지이자 형인 로데센보다 더 우둔하다는 평을 받는 인간이었다.

“그래.”

오큘라가 고개를 까딱했다.

“내 듣기로 내 가문의 교육 기관에서 재미난 일이 일어났다지?”

“…….”

“당사자 모두 나오거라.”

직속 시종들이 칼같이 움직였다.

“나오십시오, 공녀님.”

그렇게 칼립소는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일어나야 했다.

‘아니, 이럴 거면 왜 여기 앉힌 건데? 뻔하지. 이제나저제나 기싸움 한번 드럽게 좋아하는 할망구 같으니라고.’

이유를 모르진 않는다.

오랜만에 얼굴을 드러낸 아빠가 못마땅했겠지.

기를 죽여 놓으려고 일부러 이 자리에 배치한 것이다.

“자리를 말하는 거라면 걱정할 것 없다.”

“없다니?”

“없어질 순간이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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