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 (41)화 (41/275)

제41화

뭐야, 이게 뭔데. 어떻게 된 건데.

회귀하고 나서 정말 오랜만에 오는 패닉 상태였다.

아니, 이번 회차에서 회귀하고 이토록 패닉이 온 건 처음 아닌가?

그러나 나는 곧 의연해졌다.

‘일단 이 상황부터 어떻게 해야 해.’

모두가 피에르와 나를 주목하는 상황이었다.

아게노르마저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듯 아니, 당연히 예상 못 했겠지만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이미 아게노르가 모든 답을 줬어. 자신도 몰랐던 상황이라고.’

그렇다면 내가 대처할 방법은.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복잡함이 먼저 들었지만 지금은 이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웃어.’

나는 할 수 있는 한 제일 활짝, 가장 예쁘게 웃었다.

“아빠!!”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폴짝 의자에서 뛰어내려 그대로 포르르 뛰어갔다.

이 회의장은 문 쪽으로 갈수록 한 계단씩 낮아지는 구조였다.

그렇기에 나는 계단 끝에서 아빠를 향해 뛰어들 수 있었다.

‘제발, 제발 받아라. 받아 줘!’

다행스럽게도 아빠는 내 몸을 가볍게 받았다.

안아 든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차라리 나아!

나는 배시시 웃으며 냅다 아빠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빠, 못 오신다고 했잖아요. 아프다고……. 지금은 괜찮은 거예요? 응?”

생글생글 웃는 한편으로 속으로는 냉탕과 열탕을 오가고 있었다.

피에르가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젠장, 이대로 뚝 떼어져서 땅으로 떨어지는 거 아니야?’

그렇게 되면 뭐라고 할지 미리 생각해 두자.

어쨌거나 소문에 맞춘, 그것도 내가 퍼트린 소문에 맞춘 행동은 보였다!

‘침묵은 안 돼. 제발 뭐라도 반응해 봐. 뭐라도…….’

이제 남은 건 뜻을 알 수 없는 아빠의 의향뿐이었다.

‘아니다, 차라리 침묵이 나은 건가?’

두근두근, 이번 생에서 가장 크게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목을 끌어안고 눈을 꾹 감는데.

머리로 툭 무언가 올려졌다 떨어졌다.

“그래. 몸은 괜찮아졌다.”

나는 아빠를 끌어안은 그대로 눈을 깜빡였다.

벽을 본 채로 안겨 있으니 내 표정은 아무도 보지 못할 테고.

“걱정을 끼쳤군.”

……내가 딱딱하게 굳은 사실은 오직 아빠만이 알 거였다.

‘당신, 이렇게 정상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모든 얼떨떨함이 스쳐 지나갔을 즈음에는, 아빠가 나를 안은 채 내가 앉았던 자리에 도착한 뒤였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얼떨떨했던 것인지, 아빠가 도착하고 난 뒤에야 사방에서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출석은 따로 확인이 필요한 건가?”

“……아닙니다. 피에르 님, 참석을 확인했습니다.”

라일라가 최대한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차야는 자신이 주장하고도 믿기지 않는 듯한 얼굴을 했다.

“오랜만이로군요. 피에르 님. 설마,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딸애가 걱정이 지나쳐 내게 제대로 시일을 말하지 않더군. 덕분에 조금 늦었다.”

음, 역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눈앞에서 나른한 듯 서늘하게 자리한 눈동자를 보면 다시 현실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돼?’

나는 남몰래 숨을 꿀꺽 삼켰다.

주먹을 꾹 쥐었다.

아니, 일단은 좋게 생각하자.

아무래도 이 아빠는 당장은 모든 걸 덮고 내게 협조하려는 것 같았으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이 긴장은 징계위 이후로 미뤄 둬야 한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바이얀 쪽에서도 매우 놀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상태였다.

연신 차분했던 큰어머니 역시 놀란 듯 아빠를 응시하고 있었다.

‘좋아, 어쨌거나 이 회의를 깽판 놓으러 온 것만 아니라면야.’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회의에서 유일하게 있던 약점을 극복한 상황이었으니까.

“이, 이건 무효다. 미리 출석하지 않았잖아!”

“바이얀 님, 의장인 저희 셋 모두가 동의한 사항입니다. 바이얀 님께서는 회의가 시작하실 때 진실하고 충실하시기로 한 맹세를 잊지 않으셨길 바라겠습니다.”

단호한 라일라의 말에 바이얀이 설핏 찌푸렸다.

‘잘한다, 라일라.’

그러나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그 바이얀이 아니지.

바이얀의 뒤에서 물줄기가 솟았다. 사납기 짝이 없는 성난 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힘은 그대로 다른 힘에 먹혀 들어갔다.

“아드님, 앉아요.”

“……어머니.”

“의장이 인정했다고 하지 않아요.”

“…….”

실눈에 가까운 눈을 가진 큰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바이얀을 향하자, 그제야 바이얀이 이를 아득바득 갈며 자리에 앉았다.

쾅!

책상을 쳐서 부숴 버린 건 덤이었다.

‘쯧, 저래 봐야, 이 회의의 본질을 모르는 거지.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이 회의는 이미 결론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징계 위원회란 본디 배심원이 있는 재판처럼 회의 내용을 낱낱이 보여 준 뒤 각자의 억울함과 사정을 소상히 주장한 뒤, 배심원을 포함하여 처벌 수위를 정하는 자리였다.

그러니까, 저 의장과 가신들이 폼으로 있는 게 아니라 이 자리에서만큼은 잘 보여야 할 상대였다.

‘저놈은 이 결과가 할머니 귀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을 못 하는 건가, 안 하는 건가.’

뭐, 알아서 자폭해 주면 좋은 일이지.

진지하게 응시하며 작게 웃는데 시선이 와닿았다.

아빠랑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슬그머니 피했다가 얼른 다시 돌려 배시시 웃었다.

‘잊지 말자, 스마일.’

아빠가 픽 웃었다.

……가소롭다는 표정이라 목 뒤로 살짝 진땀이 일었다.

“잠시 소란이 있었으나, 본 의제를 개시하겠습니다. 앞으로 이의 있으신 분은 의장을 향해 손을 거수하여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지금까지 침묵하던 남은 의장이 느릿하게 말을 뱉었다.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허리를 쭉 펴고 언제라도 입을 열 준비를 할 때였다.

“본 회의는…….”

“실례합니다!”

의장의 말과 함께 문이 덜컹 열렸다.

아빠가 소리 없이 열었던 때에 비하면 매우 요란한 소리였다.

훼방받은 의장이 인상을 확 찡그렸다.

라일라와 차야도 마찬가지였지만, 들어선 사람을 보고서 모두 입을 다물었다.

“가주의 시종이 여긴 무슨 일이오?”

“가주님의 명입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막 들어선 사람은 가주 직속 시종이었으니까.

‘가주의 명?’

지금 어딘가에서 한창 가문 회의를 하고 있을 할머니가 왜 나온단 말인가.

‘불안한데.’

이건 다 이긴 싸움이다.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는데.

좋지 않은 예감에 찌푸리는 순간이었다.

“지금부터 이 최고 징계 위원회는 자리를 옮겨, 파란의 홀에서 이어질 것입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따라서 가주님께서 자리한 가문 회의 내에서 재개될 것입니다!”

……뭐?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시종을 바라보던 그대로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진짜 이게 무슨 소리야!’

다 된 밥에 범고래 빠트리는 것도 유분수지.

‘가문 회의는 저놈의 텃밭이잖아!’

현재 상황은 바이얀의 기가 막힌 자살골로 이대로만 있으면 저놈의 처벌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생각보다 교육 기관이 이 범고래 사회에서 작용하는 영향력은 컸다.

중급 기관의 이사장 차야만 보더라도 할머니와 전우였던 사이다.

따라서 최고위 징계위에서 유력 후계자인 바이얀의 처벌 기록이 남는 건 생각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다.

감히 나와 쌍둥이를 때린 놈에게 흙탕물을 제대로 튀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지금 막 바이얀에게 별로 좋지 않은 분위기로 잘 이끌고 있었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

할머니가 있는 자리에서, 그것도 가문 회의에서 이 징계위를 이어 간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속으로 이를 뿌득 갈았다.

애써 썩어 가는 표정을 숨기는 사이, 맞은편 바이얀을 비롯한 패거리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가문 회의는 저놈의 세력이 포진한 곳이야.’

유력한 후계 후보란 결국 따르는 대가리가 많다는 소리다.

특히나 방계와 가신이 많은 가문 회의로 가면 머릿수가 많은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건 바이얀 저놈이 유리한 고지로 가는 거나 다름없어.’

이를 너무도 잘 아는 바이얀과 패거리 놈들은 이제 축제 분위기였다.

연신 차분하던 큰어머니마저도 즐겁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음, 여동생님. 우리 어떡할까?”

아게노르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이곳에서 할머니 명은 절대적이야.’

가주가 명한 이상 정해진 사항이나 다름없었다.

“어쩌긴. 어쩔 수 없지.”

‘저놈 주옥 되는 걸 꼭 보고 싶었지만.’

입술을 깨물다 말고 체념과 함께 속으로 한숨을 푹 쉴 때였다.

“괜찮다.”

나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