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나야말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야 하지 않나? 얘가 왜 여기 있어?
아게노르는 마지막으로 보았던 초롱초롱하다 못해 집착마저 어린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웬 가마를 타고 내려오길래.”
“가마?”
아게노르가 끄덕였다.
“벌써 반에서 수하를 만들었구나?”
루가루바 쌍둥이는 수하는 아니지만.
내가 그 반의 짱이니 얼추 비슷하니까 정정하지 않았다.
“넌 왜 여기 있는 거야?”
“이곳으로 왔어.”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잖아.”
중급 기관에 있어야 할 인간이 왜 여기 있냐는 거지.
“혹시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나는 몇 번째 수하야?”
“콜록, 뭐?”
“나 첫 번째 시켜 주면 안 돼?”
과도할 정도로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푸른 눈에 내가 다 움찔할 정도였다.
“아니면, 어떡하면 첫 번째가 될 수 있어? 아, 혹시 앞선 애들 때려눕히면 돼?”
“너 지금 양심이 없냐?”
몇 살이랑 싸우려는 거야?
루가루바의 나이를 떠올린 난 경악했다.
그러자 아게노르가 얼른 표정을 바꿨다.
“음, 그러니까 괴롭히지 말라는 거지?”
“괴롭히면 나한테 죽어.”
“헉, 그럼 해 보고 싶은…….”
“쫓겨날래?”
“아니야. 농담이었어!”
나는 잠시 심각하게 이놈이 원래 이런 놈이었나 생각했다가…….
원래 이런 놈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빠르게 본성을 드러낼 줄은 몰랐는데.
다시 생각해도 황당했다.
셋째 오빠랑 이런 대화를 하는 건 중급 기관에서 자리를 잡은 이후일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래서 여기 왜 온 건데?”
중급 기관과 초급 기관이 인접해 있다고는 하나 그렇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중급 기관 애들이 웬만해선 초급 기관 애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려고 거리를 둔 거였으니까.
“스승님 보러 갈 거잖아.”
아게노르가 목소리를 낮췄다. 왜 낮추는 건진 몰라도 일단 끄덕였다.
“그렇지?”
“어차피 만나는 시간도 같고.”
“그런데?”
아게노르가 예쁘고 해맑게 웃었다.
이 얼굴만은 평범한 아이다울 정도였다.
“같이 가려고.”
“굳이?”
그런데 난 메말랐나 보다. 이놈의 속셈이 뭔지 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각자 알아서 가면 되지 왜?
어쨌거나 여기 오긴 했으므로 일단 마차로 가기로 했다.
* * *
“아, 그건 따르는 후계가 달라서일 거야.”
의외로 내가 생각하던 가벼운 고민 하나를 아게노르가 직접 날려 주었다.
그리 심각한 고민은 아니었지만.
반에서 범고래 애들이 갑자기 둘로 나뉜 이유 같은 거 말이다.
이것도 아게노르가 내게 이런저런 걸 묻다가 나온 얘기였다.
‘시종이 아게노르랑 같이 나타난 걸 보고서 매우 놀란 눈치였지?’
내가 아게노르를 끝내 쫓아내지 않은 이유는 여기 있기도 했다.
굳이 찾아온 인간을 쫓아낼 이유가 없을뿐더러.
‘이것도 할머니 귀에 들어가려나.’
할머니 귀에 들어갔으면 하는 소식이라서 말이다.
내 세 오빠가 각자도생하고 서로 협력하지 않는 거야 유명하니, 아마 신선한 일일 거다.
게다가 시종은 아게노르가 내 옆에서 낑낑대는 모습도 충분히 목격했으니 말 다했다.
“한쪽이 바이얀 따르는 건 알아. 다른 한쪽은 역시 소르테겠지?”
“그렇지.”
바이얀은 큰아버지의 첫째 아들. 소르테는 작은아버지의 첫째 아들.
놈들은 지독한 라이벌이었다.
‘내가 보기엔 도긴개긴이지만.’
하기야 손속이 잔인하고 약자를 괴롭히기만 하는 바이얀보다야 약아빠진 소르테가 지느러미 때만큼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르테는 결코 가지가 될 만한 그릇이 못 됐다.
“곧 가문 회의니까.”
아게노르는 중급 기관도 비슷한 분위기라며 가볍게 말했다.
“넌 어떡할 거야? 몇 시에 갈 거야?”
“뭐?”
“응? 가문 회의 안 가?”
나는 조금 황당했다.
아게노르는 내가 가문 회의에 갈 거라고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눈치였다.
“가게 되더라도 나 첫 참여거든?”
“아, 그렇구나. 소개가 필요한 거지?”
이것 봐. 이번엔 소개는 문제없이 진행될 거란 눈이다.
……진짜 적응 안 되네.
“그보다 나도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유망주들이 가문 회의 직전에 많이 사라졌어?”
“음, 글쎄.”
라일라가 내게 해 줬던 말을 물어봤다.
나라고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내가 아는 정보는 대개 가주가 되고 나서 접한 정보가 많았다.
이 상황은 처음이었기에 확인차 묻는 것이었다.
“가문 회의 전에 사라진 놈들이 많았냐고 하면, 맞아.”
“그런데 말이 왜 그래?”
“하지만 사라질 정도면 애초에 유망주가 아니잖아?”
아게노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애초에 나도 첫째 형도, 둘째 형도. 가문 회의 전에는 늘 덤비는 놈들이 많았어. 하지만 문제없이 참여했는걸.”
나는 천천히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네.”
“그렇지?”
아게노르가 배시시 웃었다.
“역시 여동생님은 말이 통해. 그리고 걱정하지 마.”
아게노르의 손이 내 머리 위로 올라왔다.
생소한 느낌에 찡그렸다.
“나 부려 먹을 거지?”
“…….”
“꼭 부려 먹어 줘야 해.”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충동이 가득했다.
예쁘게 생긴 미소년이지만 역시 이놈 또한 싸움을 즐기는 범고래임을 증명하듯.
나는 찡그린 동시에 아게노르의 손을 잡아 꺾었다.
“기어오르지 마.”
“아야야야, 아야야, 항복, 항복!”
* * *
라일라가 나름의 조언을 해 주었지만 아게노르와의 대화로 깨달았다.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란 걸.
그렇게 교육 기관에 등교하고 하교하면 아빠에게 찾아가 훈련을 받고.
며칠이 평화롭게 흘렀다.
나는 또다시 새롭게 깨달았다.
‘걱정할 필요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걱정을 안 하면 안 되는 거였구나.’
눈앞에 나타난 이들을 쳐다보면서 어떻게 할까 열심히 고민했다.
“저, 저김니다. 저게 바로 새로운 공뇨입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설명하려면 잠시 10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오늘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교육을 마치고 계단은 쌍둥이들의 도움을 받아 내려온 참이었다.
아게노르는 며칠 전 내가 성가시니까 더는 찾아오지 말라고 해서 더는 찾아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쌍둥이들이랑 막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우르르 몰려와 나와 쌍둥이들을 에워쌌다.
나는 재빠르게 쌍둥이들을 내 뒤로 숨겼지만, 어디 이 쌍둥이들이 내게 가려질 덩치들이던가.
나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리고 지금이었다.
저 그림자들 사이에 요즘 통 안 보이던 카론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카론뿐만이 아니었다.
“어…… 마, 맞아요! 저 꼬맹이입니다!”
“쟤에요! 쟵니다!”
익숙한 얼굴이 둘이나 더 있었는데.
처음엔 알아보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겨우 기억했다.
“가주님이 어떤 분이신데 인정했겠어? 분명 살려 두면 바이얀 님의 앞길에 방해가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