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 (28)화 (28/275)

제28화

“온 건가?”

최근 피에르는 예전처럼 분수대에 있지 않았다.

내가 건물에 처음 들어간 뒤로 자신의 방이나 응접실에 있다가 내가 온 걸 보곤 이렇게 말하곤 했다.

가끔 나는 피에르가 내가 잘 보이는 창문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며 혹시 내가 오는 걸 기다리는 건가? 생각도 했지만.

아마도 착각일 것이다.

“으응……. 안녕 스승님.”

“그래.”

나는 열심히 아빠의 눈치를 살폈다.

어디 보자, 오늘 뭔가 좀 다른 게 있나?

여전히 드럽게 잘생긴 데다 어디 홍콩 삼합회 간부처럼 생긴 듯한 미모는 여전했고 나른한 듯 피로한 표정도 그대로였다.

육안으로는 전혀 다른 게 없었다.

“…….”

……아니다. 아닌가?

‘왜, 왜. 이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지?’

다르다. 뭔가가 조금 달랐다.

평소랑은 다르게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멈춘 줄 알았던 식은땀이 다시 흘렀다.

만약 저 아빠가 내가 속인 걸 알게 되면 어떻게 나올까?

나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영원히 들키지 않을 거란 생각은 안 했다.

다만, 내가 아는 피에르란 사람은 내가 무엇을 속였는지 알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리라고 판단했을 뿐.

‘적어도 아빠는 세상사에 관심이 없으니 한 달 정도는 더 버틸 줄 알았는데?’

난 서동요 작전을 펼치면서 들킬 타이밍도 내가 맞춰 놓고 있었단 말이야!

이렇게 오늘 당장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단 거지!

게다가 저렇게 빤히 쳐다보니, 흡사 꼭 ‘네 죄를 네가 알렷다!’ 하고 쳐다보는 것 같아서.

켕기는 게 있는 사람 입장으로선 매우 곤란했다.

아직까진 저 아빠의 비호가 필요한데.

“그건 뭐지?”

마침내 아빠가 입을 열었을 때 나는 빠르게 반응했다. 도리어 이건 돌파구가 되었다.

“뭐? 이거? 내가 든 양피지?”

“그래.”

아! 손에 든 양피지를 보고 있었던 건가?

내 얼굴로 화색이 떠올랐다.

“이거 스승님을 위해 내가 가져온 거지! 어때, 뭘지 궁금하지? 기대되지 않아?”

“……딱히.”

됐다!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반응에 나는 꽉 막힌 속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 피에르가 왜 라일라에게 그런 명을 내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나랑 구체적인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 걸 거야.’

대체 무슨 변덕으로 그런 명령을 내린 건지 궁금했지만 일단은 아직은 꺼낼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얼른 양피지를 고쳐 안았다.

“기다려 봐, 스승님! 내가 오늘은 끝내주는 요리를 만들어 줄게!”

내가 루가루바 형제에게 요청했던 것.

그건 바로 요리의 레시피였다.

* * *

피에르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근 삼 년 안에 이렇게 좋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저조했다.

대체로 나른하거나 피로하거나. 권태롭거나.

이 세 가지 중의 하나가 아니면 체념에 가까운 감정만을 가지고 살아온 그답지 않은, 선명한 색의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건 오로지 그가 제자로 들여 버린 제 딸 때문에 생긴 기분이었다.

“혹시 두 번째 제자는 안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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