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 (23)화 (23/275)

제23화

“야, 야야. 쟤 아니, 저분 머릴 봐.”

“뭐? 꼬맹이 머리가 뭐가 어쨌…… 아.”

소년들 모두가 내 머리카락을 확인했다.

유독 선명한 탓에 가신들이 내게 대단한 물의 힘이 나타날 거라 기대하게 만들었던 머리카락이었다.

앞선 회차에서 지나간 이야기지만.

“……직계잖아?”

“들어 본 적 있어. 왜, 피에르 님 밑으로 3년 전에, 따님이 태어났다고……. 얼마 전에도 얘기 나왔잖아!”

“아, 그게 쟤야? 성가시게…….”

“야야, 물러나자. 어차피 저건, 아니 저분은 초급 기관이라 나중에 해결하면 돼.”

“……재수가 없으려니.”

소년들은 나를 본 것만으로도 우물쭈물하더니, 이내 아게노르를 노려보고는 주춤주춤 물러났다.

“너 운 좋은 줄 알아!”

나는 소년들이 물러나는 걸 보다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아게노르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나는 작게 감탄했다.

‘와, 누가 피에르 아들 아니랄까 봐 판박이네. 아니, 더 예쁜가?’

말했듯 나는 이전 회차에서 오빠와 마주한 것이 성인이 가까웠을 때의 이야기라, 어린 오빠를 보는 것이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수중 동물 수인들은 특정 부류를 제외하면 대부분 피부가 하얀 편이지.’

게다가 수인들은 공통적으로 힘이 강할수록 아름다운 외양을 가진다.

반짝거리는 미모였다.

다만,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감상용, 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나에겐 하등 자극을 줄 여지가 없다.

날 노려보던 아게노르의 눈에 원망이 어린 것은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왜 방해해?”

조금 전 떠는 척 가장하던 목소리랑 다르게 명료한 목소리였다.

게다가 분노하면서도 머리 색을 드러내지 않는 걸 보아하니 지금도 철두철미한 성미였다.

나는 속으로 쯧쯧 혀를 찼다.

생전 처음 본 여동생에게 하는 첫마디가 이따위라니.

‘역시 이 집은 육아물 가족이 되긴 글렀어.’

물론 나 또한 하하호호 할 생각 없이 적당히 살아남았다가 용 만나러 떠날 생각이지만.

그전까지는 한번 대화를 해 봐야겠지?

대화까지 단절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방긋 웃었다.

“나 몰라?”

아게노르는 아무 대답 없이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래, 소통하지 않겠다면야. 내 쪽에서 방법을 바꿔야지.

나는 짤막한 검지로 아게노르를 가리켰다.

“오빠. 맞지?”

그 순간 아게노르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돌아왔다. 순식간이었다.

이 정도로 이 범고래 꼬맹이는 자신이 표정 관리를 잘했다고 느끼겠지만.

상대는 회귀자다. 내가 보통 눈치인 줄 아냐, 이놈아.

게다가 나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꺼져.”

“꺼질지 말지는 내가 결정하고. 그보다 말 잘하네?”

역시나 육아물 오빠는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뭐 어쩌라고, 하는 표정이었다.

이런 귀여운 얼굴로 ‘오빠. 맞지?’ 한번 해 주면 움찔이라도 보여 주는 게 도리 아니냐?

쯧쯔, 이래서 이 가문은 삭막하다는 거야.

이 미친 범고래 가문 같으니.

“아니, 조금 전까지 저기 소심하게 중얼중얼하던 모습이랑은 안 어울려서 하는 말이지.”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알 바야? 당장 꺼져.”

아게노르가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아홉 살쯤 됐을 법한 덩치는 지나치게 컸다.

우리 반의 카론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힘 좀 쓴다 자랑할 수 있는 거지.

나는 속으로 흡족하게 웃으며 짧은 팔로 팔짱을 꼈다.

아니, 끼려고 낑낑 노력했다.

이놈의 몸은 정말 폼 잡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그래도 난 당당하지만.

아게노르의 얼굴 위로 이건 대체 뭐 하는 놈이지? 하는 표정이 떠오르거나 말거나.

나는 뻔뻔스럽게 앞을 막고 물었다.

“인사는 하지 않을 생각이야?”

“……내가 왜 너랑 인사를 해?”

“조금 전엔 내가 구해 줬잖아?”

“……뭐? 구해 줘?”

나는 끄덕였다.

“그래, 방금 쟤네 방계들 죽이려 했잖아? 뚜렷한 사유 없이 죽이는 건 오빠가 직계라 한들 쫓겨날 사유가 될 수 있어.”

이 집안의 직계 세 또라이.

이 아기 범고래들은 하나씩 고장이 나 있다.

“그게 뭐 어때서?”

아게노르가 나를 노려봤다.

“안 들키고 잘 할 수 있는데……. 너 때문에 망쳤어.”

이것 봐라. 이것 봐.

셋의 공통점이라면 남의 감정엔 공감 잘 못 한다는 거다.

가슴으로 느끼기보다 감정을 외워야 하는 쪽이라고 할까?

그런데 관심은 받고 싶어서 삐뚤어진 놈이 바로 이 셋째였다.

‘그나마 셋째가 제일 양호하지…….’

나는 이런 오빠들이 3회차에서는 진심으로 나를 동료이자 따를 가주로 받아들여서, 최후에는 날 위해 죽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후, 할 수 없군.’

이제 숨길 생각도 없는 듯, 아게노르의 머리 위로 나와 똑같은 머리 색이 보였다.

노려보는 눈동자엔 역시나 처음 보는 여동생을 향한 감탄도 친애도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반항 가득한 시선을 보며 결심했다.

‘여기에 카론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놈이 주먹 한 방에 어떻게 됐는지 직접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

하긴 이 기관은 본래 목적이 이런 곳이었다.

“고래 여러분, 강한 이가 모든 것을 가지는 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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