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 (14)화 (14/275)

제14화

명확한 발음,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말투.

이 반의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그제야 카론은 우습게 보던 걸 멈췄고, 여자아이의 모습을 낱낱이 뜯어 보기 시작했다.

“우아아, 딥따 이뿌다…….”

“인형 가타. 친해지고 시퍼.”

“플랑크톤 사턍 조아할까?”

“난 조하해!”

“너한테 안 무러써!”

아이들일수록 미적 수준은 더욱 높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적나라했다.

그런 아이들의 눈에 새로 들어온 칼립소는 조그마한 인형 같았다.

“나는 칼립소 아콰시아델입니다.”

느슨하게 묶은 양 갈래머리와 동글동글하지만 멀리서도 보이는 쭉 길게 뻗은 속눈썹에 직계의 상징인 새파란 눈동자까지.

“이 반이 교육받는 반 중에 제일 똑똑하고 최상위 반이라 들었습니다.”

비록 뚱한 표정이긴 했지만 그마저도 하나의 특징을 이루는 것같이 귀여운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반에 기대가 많아요. 부디 내 기대를 충족해 주는 학우들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범고래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가 덜 반영된 것처럼 보이는 것 또한 이런 귀여움에 한몫했다.

전혀 아이답지 않은 포부 넘치는 소개가 나오자 교사들마저도 당황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와, 와아. 모두 들었죠? 새 학우를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와아아아!”

“화뇽해요!”

“어소 와요!”

“이뿌다!”

다행히 대체로 평화를 사랑하는 고래 아이들은 맑게 웃거나 박수를 치며 칼립소를 반겼다.

칼립소는 대체로 아이들의 환영을 받으며 아이들 속에 앉는…… 대신 가장 끄트머리에 가서 털썩 앉았다.

“자, 다들 오늘의 수행과제인 블록으로 조형을 만드는 놀이로 돌아가 결과물을 제출해 주세요. 완성한 사람은 선생님을 부르도록 하세요.”

“녜에!”

아이들은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자, 과제에 열중하는 대신 홀로 앉은 칼립소의 주변을 기웃거렸다.

이는 범고래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렇게 작은데 왜 우리 반에 왔대?

나이가 적은 거야 아니면 같은 나인데 성장을 못 한 거야? 나도 몰라!

이러한 대화가 이러쿵저러쿵 오갔다.

‘흐, 흐리멍텅하게 생긴 게……!’

일련의 과정 속에 카론은 가까스로 칼립소를 우습게 볼 수 있었다.

“뎌기요.”

칼립소가 고개를 돌렸다. 뚱한 표정이었다.

“그 머리색운 직계님이죠?”

칼립소는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아이를 응시했다.

아이고, 더럽게 크네.

‘목 아프게.’

앉아서 보기엔 꽤 커다란 아이였다.

아마 최고령인 8살이 아닐까 싶은데, 이걸 감안하고서라도 또래보다 훨씬 큰 덩치.

게다가 저놈이 다가오자 다가오던 애들은 물론 호기심을 보이던 범고래 애들마저도 움찔하며 물러난다.

이러면 모를 수가 없지.

‘이놈이 짱이구만?’

칼립소는 목을 살짝씩 풀며 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본디 대가리를 노릴 땐 기선 제압이 먼저다.

“직꼐 맞냐구요.”

칼립소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이 반은 이제 내가 접수한다.

“내 머리 색을 보면 모르지 않을 텐데.”

카론이 움찔했다.

곧 카론은 자신이 움찔했다는 것에 화가 난 듯 씩씩거렸다.

이를 보고 칼립소는 판단했다.

‘쉽게 흥분하는 놈치고 강한 놈이 없지.’

진짜 강한 놈은 흥분하면서도 냉정을 유지하는 놈이다.

‘내 둘째 오빠놈처럼 말이지.’

다행스럽게도 이 반엔 오빠들 같은 미친놈, 아니 대단한 범고래는 없는 듯했다.

하기야 특출난 그놈들을 고작 여기와 비교하는 건 뭣하지만.

“넌 몇 살이지?”

“여떨 살입니다. 직계님운…… 나이에 비해 아주 작우시군요?”

칼립소는 조롱에 당황하기는커녕 귀엽게 고개를 갸웃했다.

자못 사랑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채로 태연하게 말했다.

“너야말로 얼마나 덜떨어졌으면 그 덩치로 중등 기관을 못 가고 아직도 유치원, 아니. 이 초급 기관에 있는 거야?”

“당연히 뛰어난…… 녜?”

“덜떨어졌다고 멍청아. 넌 아직 여기 아직 있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

칼립소가 심드렁하게 답변하자, 덩치 카론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수인으로서 받는 교육 기관은 중급 기관까지가 의무 교육이지. 대체로 8살에는 중급 기관으로 넘어가고.”

학년을 올라가기 위해 보는 능력은 신체와 지능.

특히나 범고래는 체력과 강함에 더해 지능까지 요구했다.

“제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멍청하면 중급 기관엔 못 가. 왜 덜떨어졌다고 자랑을 하고 있어?”

저놈은 저 덩치로 아직도 여기 있으니, 잘났다고 뻗댈 때가 아니었다.

어느새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구경하고 있었다.

범고래 아이들마저 슬금슬금 다가오는 중이다.

칼립소는 커다란 눈을 들어 슬쩍 주변을 곁눈질로 훑어봤다.

‘라일라는…… 안 말릴 것 같고.’

선생들은 방관 중.

“이익, 너는 난쟁이 똥자루면서!”

“이봐, 아가야.”

칼립소는 구경하던 아이 중 하나를 불렀다.

시선을 받은 아이가 어깨를 움찔했다.

회색 바탕에 남색 무늬가 콕콕 박힌 머리.

칼립소의 머리로 각가지 고래의 특징이 지나갔다.

“너 귀신고래니?”

“녜? 녜! 녜……! 마자요!”

“너 숫자 셀 줄 아니?”

아이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어떤 수인인지 맞춰 주어 기쁜 낯이었다.

“녜에! 잘 셉니다!”

기특해라.

“그래, 그럼 저 덜떨어진 애…… 쟨 이름이 뭐냐?”

“카론이요!”

“그래. 그럼 넌 이름이 뭐니?”

“요셉입미다!”

“그래, 요셉?”

칼립소는 귀신고래 아이 요셉에게 당당히 손가락을 폈다.

“이 손가락을 한 번 세 보렴.”

“하…나, 둘, 세엣. 셋이요!”

“좋아. 이제 저 카론한테 내 나이를 알려 주렴.”

“녜! 공뇨님운 세 살이에여!”

카론이 눈을 깜빡였다.

칼립소는 싱긋 웃었다.

“쯧, 너는 3살이랑 같은 반을 하고 싶더냐?”

* * *

카론이란 놈의 얼굴이 매우 빨개졌다.

의도했던 바였다.

‘본인이 봐도 자기 처지가 덜떨어진 걸 알게 된 거겠지.’

사실 8살인 걸 감안하고 보면 아주 늦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가 여기서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 수준도 아니었다.

여기 짱 수준이 왜 이래?

‘그래도 바로 전 회차의 방계놈들 수준은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애들이 빠져 가지고는.

나는 범고래 방계들을 쭉 훑었다.

아무 무늬 없는 회색 머리만 골라 보면 되니 아주 쉽게 보였다.

“뭐, 뭐! 말두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너가 무슨 세 쌸이야! 우린 다섯 땰 때까지 제대로 말도 못하눈 고래인데……!”

어디서 본인 머리를 나랑 똑같이 여기고 있어?

내가 심드렁하게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리자, 귀로 콧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아앗, 안 대!!”

주변 아이들의 소리와 동시에 내가 있던 자리로 주먹이 내려왔다.

콰앙! 아직 아이였지만 범고래는 최강의 수중 생물.

얕게나마 폭신한 바닥이 파였다.

조금만 더 제대로 조준했다면 내가 저 바닥처럼 됐을지 모를 일이었다.

“흥! 직계라고눈 해도 아딕 땅꼬맹이잖…….”

“네놈은 예의부터 배워야겠구나.”

“머?!”

으음, 잘 될진 모르겠지만…….

나는 달려가서 그대로 머리를 쾅 박았다.

‘내가 주먹 대신 박치기로 봐준다, 이놈아.’

……는 페이크고, 아직 이 조막만 한 주먹보다 면적이 큰 머리가 제격일 것이다!

카앙!

그래도 피에르가 열심히 굴린 성과가 있었던 걸까?

날아간 놈을 보고 내가 더 놀랐다.

‘……뭐야. 훈련이 진짜 효과 있던 거였어?’

설마하니 실전에 써먹을 수 있을 정돌 줄은 몰랐는데.

“헉 떼땅에……!”

“카론이 이케 나라가써!”

달려가는 한순간, 왜일까. 몸이 가벼워졌던 걸 느꼈다.

마치 아주 잠깐 전회차에서 물의 힘을 각성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손을 보았지만 여전히 힘을 주어도 물은 솟아나지 않았다.

살짝 일어난 먼지바람 사이로 드러누운 카론이 보였다.

좀 불쌍한가 싶어도 별거 아니다. 이런 거로는 절대 안 죽는다.

‘암. 내가 맞고 자라서 안다. 엄살 피우지 마라 이놈아.’

제 머리를 잡고 끙끙대기 바쁜 모습.

눈이 마주치자, 나는 지체 없이 주변에 있던 블록을 잡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피에르가 노동 피로가 쌓이도록 청소와 물건 정리를 시켰지.’

돌을 부스러트리고 해머를 들던 감각을 살려서…….

힘을 꽉 주자, 블록이 손에서 와사삭 부서졌다.

아이들의 우와아아 소리와 함께 사색이 된 카론의 얼굴이 보였다.

“덤비려고?”

“…….”

범고래들의 싸움은 승패가 곧 서열을 나눈다.

카론의 눈이 아래를 향했다. 패배를 인정하는 모든 짐승의 모습은 같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앙증맞은 주먹을 후 불었다.

“우리 아빠가 맞고 다니지 말랬어.”

이 반은 오늘부터 내가 접수한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