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아…….”
날치. 날치라면 인정하지.
우리 수중 동물 수인 중에서도 특히나 입이 가볍고 나불거리기 좋아하는, 육지 동물로 치면 촉새 같은 인간들이었다.
“게다가 충분히 경악할 만한 사실이었으니…… 원래 소문은 막장일수록 더 빠르게 퍼지는 법이지요.”
그게 태연하게 말할 내용인가?
“내 이야기가 막장이란 소리로 들리는데.”
찌푸리며 말하자 라일라가 작게 어깨를 으쓱했다.
“누군가에겐 차라리 막장이었으면 하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고개를 드니 라일라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눈앞에는 어느새 계단이 있었다.
나는 라일라의 손을 잡는 대신 보란 듯이 낑낑대며 계단을 올랐다.
나, 방년 3세. 이 정도는 충분히 올라간다고.
라일라는 기분 나쁜 기색 없이 손을 거두고는 작게 웃었다.
“이를테면 천재의 등장에 긴장할 법한 바이얀 님이라거나……. 소르테 님도 계시겠군요.”
각기 백부의 아들과 숙부의 아들이었다.
할머니의 첫째 아들의 첫째 손자. 둘째 아들의 첫째 손자.
나는 손을 탁탁 털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왜 하나는 빼? 벨루스도 있잖아.”
라일라가 아주 잠깐 멈칫했다.
“왜? 걔는 나에 비해서 너무 천재야?”
벨루스. 내 첫째 오빠의 이름이었다.
대답이 없길래 개의치 않고 어깨를 으쓱하며 계단을 올랐다.
라일라가 곧 내 뒤를 따르며 말했다.
“흐음, 가만 보니 공녀님은 언어 능력만 좋은 게 아니셨군요. 근력과 체력도 받쳐 주시는 것 같은데…….”
“그걸 알아차렸어? 눈썰미가 좋네.”
“이 정도도 못해서야 이 교육 기관을 어찌 이끌겠어요.”
내 첫째 오빠 이야기가 나오니까 은근슬쩍 말을 돌리는 것 보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기야 아직은 넌 이 초급 기관 역사상 최고의 천재에 비할 바는 안 된다는 소리겠지.
벨루스.
그놈은 이전 삶에서도 내가 가주가 되는 데 제일 애먹였던 오빠였다.
끝내는 쌈 붙어서 이겨 먹고 내 수하로 받아줬지만.
‘흥. 이번 삶이라고 다를까 보냐.’
라일라는 흥미로운 눈을 숨기지 못했다.
“혹시 물의 힘을 각성하지 못했다는 말 또한 잘못된 소문이었나요?”
“아니, 그건 사실인데.”
그러나 왜일까? 라일라는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기야 계단을 거의 암벽 타듯 손으로 내 몸을 들다시피 하며 올라가는데 숨 한 번 안 몰아쉬니 그렇게 보이겠구나 싶었다.
“내가 대단해 보여?”
“아니라는 말은 못 하겠는걸요.”
나는 씩 웃었다.
“그럼 그대로 할머니한테 전해.”
이 손녀가 얼마나 똑똑하고 대단한지 말이야.
그러자 라일라가 무어라 더 물었지만 나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여기서 입을 다물어야 알아서 오해가 깊어질 테니까.
‘게다가 지금 보이는 것만 끝이 아니지.’
이제 시작인걸. 내가 대답하지 않자 라일라는 깔끔하게 포기하고는 계단을 함께 올랐다.
곧 긴 복도에 접어들었는데, 라일라가 앞장서더니 한곳을 가리켰다.
고래가 그려진 황금색 반 알람판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바로 저기가 오늘부터 함께할 이 기관의 최고 등급의 반. 알파반입니다.”
* * *
수인들은 모체가 되는 동물의 특성과 성향을 따른다.
그렇기에 고래 수인들은 대체로 싸움을 피하고 평화를 사랑했으며 동족 간에 애틋하고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이에 더 나아가 다른 종족에 대한 기본적인 포용력이 큰 편이었다.
심지어 지금 거의 멸종 위기의 수인인 혹등고래들은 적대하는 육지 동물까지 포용할 정도로 평화를 사랑한다.
내 생각에는 그래서 멸종 위기에 처한 거 아닌가 싶지만, 어쨌든.
고래 전체의 성향을 알 만했다.
“오늘 보고서 수업이 끝났으니, 지금부터는 주어진 블록으로 조형을 만드는 놀이를 할 겁니다.”
“녜에!”
그러나, 이 고래들 중에서 이단아가 있었으니.
말해 뭐하겠는가.
바로 수중 동물의 수장 자리를 거머쥔, 범고래들이었다.
“흥. 무순 이딴 유치한 노리 따위를 한댜고.”
“그로게 마립니다, 카론 형님!”
범고래를 제외한 고래들이 평화를 사랑한다는 건 범고래들에게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고래들은 이 깡패 같은 범고래 갱단 아래 있었다.
“하여간 평범한 고래 놈둘운 안 된다니까. 블록 따위에 애처럼 됴아하눈 모습이라니.”
“그로게 마립니다, 카론 형님!!”
넘치는 깡패력과 쪽수로 밀어붙인 이들의 행태는 아이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본능이 더욱 강한 수인 아이들일수록 더욱 야생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야, 비켜.”
이들 고래 최고 반, 이름 ‘알파반’에는 범고래를 포함한 각 고래들 중 가장 최고 엘리트이자 특출난 아이들만 모였지만.
“내 건데에에…….”
“뭐. 확 그냥!”
“으애애앵, 선생님……!”
이들 사이에서도 범고래란 깡패는 존재했으며, 나아가 이들 범고래 중에서도 짱을 먹은 존재가 바로 방계의 ‘카론’이었다.
“으음, 카론 학생. 흰돌고래 학우를 때리면 안 됩니다.”
“내가 언뎨 때렸나요? 구냥 손이 거기 있었눈데, 쟤가 박운 겁니다.”
“…….”
“뭐야, 너 틀려써? 말해 바.”
“히이이잉, 선샌님……!! 카론이가 노려봐써요!”
올해로 8살이 된 카론은 다른 아이들보다 배로 큰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카론 학생,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활동하도록 하세요.”
“네에, 네에. 알겠숩니다.”
그러나 고래 수인의 공통된 특징.
7살 혹은 8살이 되어도 어눌한 말투를 구사할 수밖에 없는 특징.
7~8세 반의 최고들만 모인 알파반도 이러한 특징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카론이라고 다르진 않았다.
“흥, 내 지느러미만도 못한 것둘이……! 확, 몰 바.”
그러나 카론은 이 덜떨어진 고래들 사이에서 자신만은 최고라고 믿었다.
비슷한 나이, 수준에 따라 한 반에 몰아넣는 이 교육 기관에서 가장 최고의 반에 들어온 것이 바로 카론의 자부심이었으며, 여기에서 최고를 먹은 것이야말로 가문의 자랑이었다.
‘비록 직계 공자님들만큼 천재는 아니더라도. 나 정도라면!’
언젠가는 물의 힘을 각성하고야 말 거라는 원대한 포부도 있었다.
게다가 이미 가문 사람들은 물론 주변 가문 이들까지 기대가 컸다.
보통 범고래 아이들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강하며 체력도 좋은 카론을 보고 방계 중에서도 특출나 물의 힘을 각성할 거란 기대를 말이다.
“아휴, 쟤 또 저래. 또또.”
“또또!”
“야, 거기 돌고래 쌍둥이, 됴용히 안 해?”
“……합!”
“…합!”
이 반에서는 명실상부, 카론보다 뛰어난 아이는 없었다.
강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곳이 바로 이 범고래가 차린 교육 기관.
나아가 수중 동물 교육 기관의 취지.
따라서 선생들도 지나치게 눈에 띄지만 않으면 제지하지 않았기에 카론의 폭거는 날로 커지기만 했다.
카론은 초급 교육 기관을 수료할 때까지 이 반의 대장으로 지낼 것이다.
범고래 아이들은 이미 카론의 밑에 붙은 지 오래였다.
“자 오늘 여기 새 친구 ‘칼립소’가 왔어요. 다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이는 오늘 선생이 새로운 애를 데려와 소개한다 한들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한데…… 선생의 뒤를 아장아장 걸어오는 조그만 아이를 본 순간 카론의 눈이 커졌다.
‘직계?’
새카만 머리카락, 그리고 머리 위에 있는 눈처럼 생긴 흰 반점.
분명 범고래 가문의 직계를 이어받았단 증거. 자주 볼 수 없는 색이었다.
“스스로 소개해 볼까요?”
게다가 뒤에 따라온 사람은 이 초급 교육 기관을 다니는 아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 기관의 주인, 라일라였다.
거의 혼내지 않거나 방관하는 선생은 그리 두려워하지 않아도 라일라만은 본능적으로 무서워하는 카론이 움찔했다.
“확실히 우리 기관은 강한 아이를 반깁니다만, 카론 군은…… 적당히 하는 게 좋겠군요.”
이는 돌고래 쌍둥이를 때리다가 라일라에게 한 차례 경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는데, 그때 본 물의 힘을 아직도 몸이 기억했다.
카론뿐만 아니라 카론의 성향과 비슷한 패악을 부리는 다른 범고래 방계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라일라를 보며 긴장한 눈치였다.
게다가 여자아이라니……. 카론은 곧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그, 피에르 님의 딸이 태어났다잖아요? 근데 물의 힘을 각성도 못 했다나 봐요.”
“쓸모없는 아이라지요. 우린 가주님의 첫째 아드님이자 그분의 아들인 바이얀 님을 지지하니. 쓸모없는 게 태어나면 좋은 일이죠. 용의 신부로 팔려 갈 예정이라던데 잘됐어요.”
“어쩜, 피에르 님 밑에서 그런 쓸모없는 게 태어났담…….”
“그게 바로 유전자의 신비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