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범고래 아기님 (12)화 (12/275)

제12화

옷은 접어서 옷장에, 큼지막한 공구와 도구는 저 커다란 상자에, 여러 지시 사항을 들었지만 이런 걸 취급하는 방식은 듣지 못했다.

그렇다고 멋대로 버려 버릴 순 없지 않은가.

피에르가 고개를 돌려 손수건을 응시하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미묘하게 찡그린 아빠의 표정을 보았다.

“버려.”

단호한 말투.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들었던 그 어느 때보다 목소리에 복잡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4회분 인생을 걸고 이건 버리면 탈 날 물건이다!’

나는 범고래치고 눈치가 빠른 범고래다.

이게 다 눈칫밥 먹고 산 세월이 있어서 그래.

“알겠어. 버릴게.”

하지만 피에르가 워낙 단호한 눈이라 지금 버리지 않아도 탈이 날 것 같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다가가 버리는 시늉을 하다…… 돌아선 틈을 타 주머니에 얼른 챙겼다.

돌아보니 이미 피에르는 내게서 시선을 돌린 뒤였다.

나는 다시 물건들을 정리하며 아무렇지 않게 툭 물었다.

“방금 그 손수건은 뭐야? 스승님 물건이 아닌 거야?”

“……그래.”

쓸데없는 말이라고 답변하지 않거나 핀잔을 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왜 이 방에 있는 것인지 모를 거대한 해머를 들어 올리다 말고 흠칫했다.

‘아, 깜짝이야. 이거 떨어트려서 발 찧을 뻔했네.’

나는 해머를 든 채로 깜찍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럼 누구 건데?”

“아내의 물건이다.”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해머를 놓칠 뻔했다……!

‘어우, 깜짝이야. 깜빡이도 안 켜도 들어오네.’

엄마의 물건이었다니.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어째서 순순히 답해 준 건지는 몰라도 버리질 않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런 목소리로 버리라고 한 건지 몰라도 말이지…….’

반복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내가 날 낳아 준 엄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라곤 당연하겠지만 수인이라는 것.

인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

이 두 가지 사실뿐이었다.

‘아무도 내게 알려 주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전 회차에서 오빠들이 내 수하로 들어왔을 때조차도 듣지 못했다.

생각에 빠져서 너무 멍하니 있었던 탓일까.

“아무래도 일이 너무 쉬웠던 모양이군.”

“어, 어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나는 곧 허공에 나타난 물이 공구 상자를 둥실둥실 들어 올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제자의 단계를 파악하는 것도 스승의 업무겠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것이 와르르 쏟아졌다!

“정리하도록.”

……이익, 이 망할 애비!

나는 어느새 모친의 손수건도 잊고 속으로 욕을 하며 도구를 열심히 정리했다.

‘아니, 대체 방 안에 거대한 망치는 왜 이렇게 많은 건데!’

그래도 도움이 아주 안 되는 건 아닌지.

하다 보니 무거운 걸 옮기는 요령이 생기는 것 같았다.

‘물의 힘을 다양하게 쓸수록 요령이 생긴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네.’

확실히 달리기만 할 때나 앉았다 일어났다만 반복할 때보다 무언가 힘이 더 강해지고 더 민첩해진 기분이 들었다.

다만 그 후로도 가지각색의 이유를 대며 엎어 버리는 망할 애비 때문에 그날 하루 대부분을 피에르의 방에서 바삐 보내야 했다.

그렇기에 보지 못했다.

어느새 피에르가 창문 대신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입에 걸었단 것도. 

* * *

‘으으, 삭신이야…….’

다음 날 아침.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시종과 함께 마차를 타고서 교육 기관에 등교했다.

그리고 등교하기 전에 내 상황을 보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8세반…… 그것도 알파반에 들어가신단 말입니까?”

“응.”

나와 함께하는 시종은 할머니의 최측근 시종이기도 했다.

이 얘기는 분명 할머니 귀에도 들어갈 것이다.

‘아니지. 어제부로 이미 보고가 들어갔을지도?’

그냥 월반도 아니고 바로 최고등급의 반으로 월반했다.

게다가 초급 교육 기관의 수장인 라일라가 허락했기에 가능한 일.

즉, 라일라의 인정을 받았단 소리였다.

그녀가 얼마나 깐깐한 사람인지를 아는 이들이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소식일 터.

이는 할머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두고 보라고 했죠, 할망구야.’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시작일 뿐이었다.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시종을 대했다.

“그리고 한 가지 요청이 있는데…….”

여전히 내가 또박또박 말하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하던 시종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시종은 내 요청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거주지를 옮기지 않으시겠다니, 알겠습니다. 우선 그렇게 알고 윗선에도 보고드리겠습니다.”

보통 이맘때쯤 본성으로 옮길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피에르를 찾아가기 어렵거나 불가능해진다고 판단했다.

허름한 지금 방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게다가 새로 들어온 미사가 청소를 잘하는 것 같아 보이니까 말이야.’

청소하니까 말인데…….

‘미사에게 청소 노하우나 물어볼까.’

어제 나는 단순히 피에르의 방만 치운 것이 아니었다.

몇 번의 뺑뺑이 끝에 드디어 물건을 다 정리했더니, 세상에 나를 이번엔 다른 방으로 데려가서는 거기 먼지를 쓸게 하지 않던가!

“다음엔 빨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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