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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범고래 아기님 (8)화 (8/275)

제8화

“한번 사는 인생, 죽으면 어때?”

칼립소는 알지 못했다.

“아저씨, 어차피 사람은 어떻게든 죽어.”

이런 말을 하는 자신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린다는 사실을.

이는 놀랍게도 피에르의 관심을 이끄는 데 성공적이었다.

가장 강한 수중 수인인 범고래의 직계임을 감안하더라도 수준급의 외양을 타고난 아이였다.

그러나 세상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을 하고서 눈만은 죽음을 불사한 전사들과 다를 바 없었다.

‘요즘은 애를 어떤 식으로 키우기에 이렇게 맛이 간 거지?’

정작 자신 또한 맛이 간 주제에 피에르가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완벽한 자기 객관화가 되는 인간은 드문 법.

“초급 교육 기관과 물의 힘을 배우는 것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군.”

“왜 없어? 아저씨, 짱이 되려면 당연히 그 힘이 필수지. 아저씨 바보야?”

“…….”

“음, 모를 수도 있지. 그러니 노려보지 마.”

칼립소가 얼른 눈을 굴렸다.

순간이지만 물의 힘으로 주는 압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짱이 되지 못하면 아빠가 실망할 거야.”

피에르는 궁금했다.

왜 자신이 부친이란 걸 알면서도 뻔한 거짓말을 하는가?

나는 네게 일말의 관심조차 없는데.

“도와줘. 아저씨. 응? 아빠는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니까. 분명 내가 힘세고 짱이 되는 범고래가 되길 바랄 거야.”

“…….”

“우리 아빠는…… 으앗!”

앞뒤가 맞지 않는 이 모순투성이의 말의 끝이 어떻게 날지 궁금해졌다.

칼립소에게 보고했던 수하의 말처럼 피에르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단, 대상이 아주 드물게도 그의 흥미를 이끌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을 뿐.

칼립소는 눈을 크게 떴다.

‘물!’

자신의 주변으로 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피에르가 물의 힘으로 자신을 띄우고 있는 것이다!

“네 상처는 그냥 두면서 상처 입힌 자는 살려 두지 않는 자.”

“…으응?”

“네가 강해지길 바라면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자가 정말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나?”

“…….”

아이의 검푸른 눈동자가 피에르를 빤히 응시했다.

곧 아이가 예쁘게 웃었다.

“그럼. 아빠는 나를 엄청 사랑해. 나한텐 아빠가 최고야.”

피에르는 궁금해졌다.

이 거짓말의 끝이 어떻게 될지.

“시간은 알아서 정해도 좋다. 미리 말해 두지만 나는 나이 따위 고려하지 않을 거다. 네가 더 어리든 더 크든 마찬가지였을 거다.”

“……!”

“매일, 같은 시간에 이곳에 나오도록.”

“……!!”

칼립소의 눈으로 처음으로 진짜 미소다운 미소가 스쳤다.

“좋아, 그럼 뭐라고 부를까? 아저씨? 스승님이라 불러 줘?”

“맘대로.”

“그럼 스승님!”

칼립소는 둥실둥실 뜬 채로 자신의 가방을 열심히 열었다.

조그마한 손이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앗!”

칼립소의 손을 벗어나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른 건 다름 아닌 사탕이었다.

그것도 플랑크톤 맛 사탕.

“이거 엄청 맛있는 건데, 내가 숨겨 왔어. 아끼는 거지만 아저씨한텐 줄게.”

피에르의 눈이 자신에게 떨어지지 않는 것을 느끼며 칼립소는 신나게 말했다.

“뇌물이야. 스승님!”

이것은 훗날 후회 없는 발걸음이 되리라고 칼립소는 자신 있게 생각했다.

* * *

‘……후회합니다!’

그로부터 5일 뒤 칼립소는 아주 깊이 후회했다.

아주 깊이!

‘낭패다. 이 정도로 개념이 없는 인간이었을 줄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피에르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칼립소에게 정말 물의 힘을 가르쳐 주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그 힘을 가르쳐 주는 방식이 평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와, 분명해. 애비의 머릿속엔 내 나이가 들어 있지 않은 게 분명하다고.’

칼립소는 직전 생에서 보물의 도움을 받아 물의 힘을 각성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물의 힘이란 게 각성한다고 끝이 아닌지라, 다루는 법이 필요했다.

다행히 칼립소는 각성 이후 어떤 기인을 만나 힘을 다루는 방법을 배웠다.

그 기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물의 힘을 각성하지 못하는 범고래도 지속적으로 물의 힘에 노출되면 각성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얘기였지만 이 기인이 몇 대 전에 뛰쳐나온 범고래 수인이란 점을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닐 터였다.

문제는 칼립소는 이런 방식을 알고만 있었지 경험해 본 바 없었고. 피에르는 이걸 실전에 대입했다는 점이었다.

“물의 힘에 노출부터 시키지.”

“으응?”

“잠수해라.”

“응……?”

“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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