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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범고래 아기님 (5)화 (5/275)

제5화

“그나저나 이 몸은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너무 약한데 말이지…….”

내 약한 몸은 회귀할 때마다 불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위에 오빠 놈들은 각기 강대한 힘과 신체 다들 타고났는데, 왜 나만……!!”

위의 오빠 놈들은 아빠에게서 힘만 쏙 빼닮았는데, 나는 허약한 육체만 쏙 빼닮아 버렸다.

“이익, 이 나쁜 유전자 로또…….”

씩씩대며 중얼거리면서도 부지런히 내 방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범고래 수인 아기들을 모아 두는 그 방은 거의 관리가 되진 않지만, 나야 할머니 눈에 들었으니 혹시 날 찾을 것을 대비해 오래 자리를 비우는 건 곤란했다.

‘거리 정말 머네.’

나는 폭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 물의 힘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물의 힘은 단순히 물을 다루는 것 외에도 수중 동물이 살 수 있는 근원이었다.

그렇기에 물의 힘을 응용하면 나 같은 어린아이가 웬만한 성인 수인 힘을 내는 것도 가능했다.

내 오빠 중에도 이런 응용 능력에 출중한 놈이 하나 있었다.

‘둘째 놈은 잘 살아 있나…….’

직전 회차에서 내게 패배한 오빠들은 군말 없이 내 아래로 들어와 날 보필했다.

제멋대로에 이기적인 놈들이었지만…….

마지막은 나를 보호하다 죽어 버렸다.

범고래답게 끝까지 제멋대로인 인간들이었던 거다.

문득 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놈들은 현재 본관 혹은 교육 기관에 있을 테고, 어차피 지금의 나와는 초면일 테니까.

‘숨 쉬고 있을 테니 잘 살고 있겠지 뭐.’

어쨌거나 나 또한 범고래 특성에 동화된지라 동지 의식은 있어도 애틋함은 없었다.

보통 고래 수인들은 같은 종족에 대한 동지애가 큰 편이다.

하지만 범고래는 뭐랄까.

서로를 지켜야 할 동료로는 보되, 혹등고래나 돌고래들처럼 종족에 대한 애정과 애틋함이 없는 편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범고래들은 거대한 ‘갱’단 같아서, 서로를 같은 작전을 모의하는 동지로 생각한다고 할까.

‘지난 회차에 물의 힘을 각성하긴 했는데. 이번 회차엔 안 되려나?’

오빠들과 다르게 나는 아버지의 자식들 중에서 유일하게 물의 힘을 타고나지 못했다.

그렇게 매 회차에서 할머니에게 반편이 생선 대가리라는 독설을 받아먹었고.

쓸모없어서 빠르게 팔려 나갔다.

그래서 3회차에서 도망가 차지한 것이 바로, 책 속에 나온 보물 ‘리니어스’인데.

이건 본래 남주가 엄청난 모험 끝에 가져와서는 여주에게 쓰라고 주는 선물이었다.

먼 옛날 물의 용이 흘린 눈물이라는 설정의 보물로, 나는 이것의 도움을 받아 물의 힘을 각성할 수 있었다.

‘이번 회차에서도 그걸 가지러 가야 하나?’

원작에선 남주가 헌신과 사랑의 증거로 내미는 건데.

‘아니야. 그 새끼 사랑을 이루는 데 쓰이게 할 순 없지. 이번에도 나를 위해 써 주마.’

한편으로는 보물을 찾지 않아도 쓸 수 있다면 제일 좋을 텐데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가락을 붙잡고 끙끙 대 봤지만 써지지 않았다.

“끙, 아쉽네…….”

일단 아빠 공략부터 해 보자 싶어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시 갈 길 가려는 순간이었다.

“야, 여기야? 우리 잘못 들어온 거 같은데?”

“아. 여기 맞다니까!”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 웬 애들이 보였다.

나이는 9살에서 12살쯤 되었을까.

‘머리 색을 보아하니, 범고래 방계들이네.’

부지런히 걸은 탓에 살고 있는 건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무시하고 가려는데…….

“아, 진짜 여기라니까, 여기에 그 새로 태어난 직계 여자애가 있댔어! 걔를 못 쓰게 만들어야 한다니까?”

나는 멈칫했다.

직계? 여자애? 나밖에 없잖아.

“아니, 알겠는데 대체 왜? 어차피 걘 물의 힘도 못 쓰는 반편이고, 용의 신부로 팔려 간다며?”

“아니야, 상황이 바뀌었어! 너 몰라? 걔가 가주님한테 인정을 받고 건물을 이동할 거라고. 본관으로!”

“헉…….”

“너 몰라? 이대로 두면 우리가 모시는 바이얀 님에게 해가 된단 말이야! 그분이 잘못되면 우리도 다 같이 죽는 거야!”

나는 바이얀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어떤 상황인지 깨달았다.

‘바이얀……. 백부의 첫째 아들놈이군.’

할머니의 첫째 아들. 내게는 큰아버지. 그 인간의 첫째 아들 바이얀.

이전 삶에서 내가 제일 먼저 쓰러트린 놈이기도 하다.

몹시도 탐욕스럽고 욕심이 큰 놈이었다.

대다수의 범고래 가문 방계 사람들은 한 후계자를 정해서 그들의 가신이 되길 자청한다.

특출한 능력이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밖에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놈들 또한 어린 시절부터 바이얀을 따르는 놈들인 거다.

‘한 놈은 얼굴이 익숙한데.’

문제는 보통 저렇게 유력한 후계자를 모시는 방계들은…… 권력이 막강해진다는 거다.

나처럼 아직 아무런 세력도 보호자도 없는 직계 아이 정도는 무시할 정도로.

“가주님이 어떤 분이신데 인정했겠어? 분명 살려 두면 바이얀 님의 앞길에 방해가 될 거야.”

“……혹시 바이얀 님이 직접 얘기하셨어?”

“그래!”

허어, 지켜보자니. 아무래도 내가 할머니의 인정을 받은 사실이 벌써 파다하게 퍼진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 할머니에게서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 내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현재 손주들끼리도 후계 관련 경쟁이 치열한 지금, 가주의 인정을 받은 직계의 등장이란.

고인물들에겐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아직 저 건물에 살고 있어. 지금이라면 죽여도 아무도 모를걸? 그냥 보통 애들이 그렇듯 3살을 못 넘기고 허약해서 죽었겠거니 싶겠지.”

“아하……!”

이렇게 죽이러 올 만큼 말이다.

‘하아, 물의 힘만 있었으면 저런 건방진 어린 것들쯤은 한 손으로 쫓아내 줬을 텐데.’

범고래들은 바다의 무법자, 바다의 깡패라고 불리는 생물.

그 탓에 기본적으로 범고래의 사이코틱한 폭력성은 인간이 되어도 그대로 이어진다.

저런 어린 것들도 아무렇지 않게 죽이니 마니 입에 올릴 정도란 말이다.

‘분하지만 지금 당장은 대항할 힘이 없어. 이대로 숨어야…….’

이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거짓말처럼 뒤로 빼다 말고 소년들과 눈이 마주쳤다.

찰나간 소년의 검은 눈동자가 빠르게 내 머리를 훑었다.

‘머리카락!’

직계는 방계와 머리 색부터 다르다!

“야, 저, 저, 쟤……!”

어차피 가릴 것도 없었겠지만 나는 낭패한 표정으로 곧바로 몸을 돌려 뛰었다.

‘아씨, 뛰는 건 아직 안 익숙하다고!’

기본적으로 고래는 포유류다.

새끼로 태어나는 동물은 난생-알에서 태어나는-동물보다 천천히 성장한다.

그렇지 않아도 발달이 느린 고래의 몸에 몸까지 허약하니, 결국 붙잡히고 만 건 당연한 결과였다.

문제는 쉽게 앞지른 소년의 모습에 멈칫하다 그대로 엎어졌단 거지만.

‘이익, 굴욕이다…….’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야, 얘 검댕이 봐. 으 더러워.”

“어휴, 흙먼지. 이런 게 정말 직계란 말이야? 덜떨어져 보이는데?”

“물의 힘을 사용할 줄 모른다잖아.”

두 명의 소년이 쓰러진 나를 에워쌌다.

“그러니까 우리도 얠 죽일 수 있다는 거지.”

나는 주변을 보았지만 도와줄 만한 인간이 있을 리 없었다.

“근데 물의 힘도 없으면서 가주님 눈에는 어떻게 들었대?”

오냐 말 잘했다.

“너네, 방계. 그중에서도 바이얀 놈 밑에 있는 놈들이지?”

내 말에 소년들이 멈칫했다.

그중 한 놈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지금 얘 말한 거 맞지? 나만 들었냐?”

“아니, 나도 들었는데……. 아니, 아직 30개월이 안 된 애라고 들었는데, 말이 가능해? 아씨 소름 돋았어. 난 8살이 되어서야 말 시작했는데…….”

“허, 물의 힘도 없이 가주님 눈에 어떻게 들었나 했더니.”

소년 하나가 내 머리를 툭툭 치며 히죽 웃었다.

“여기가 특출나게 좋으셨구만?”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웃음. 눈빛에서는 악의가 번들거렸다.

“역시…… 이건 살려 두면 바이얀 님에게 해충이 되겠어.”

뭐? 해충?

“해충이라고? 너 말 다 했냐?”

나는 내 머리를 때리던 손가락을 탁 잡았다. 그대로 있는 힘껏 꽉 깨물었다.

“아아아악! 미친, 미친 이거 안 놔?!”

“윽!”

놈이 힘껏 밀어낸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해충이면 육지 동물이잖아, 이 미개한 생선 새끼야! 감히 날 육지 곤충에 비유해? 이 스틱으로 둥둥 치면 대가리에서 북소리 날 플랑크톤 새끼야!”

“…….”

“……얘 뭐래는 거냐?”

같은 수중 동물끼리 육지 동물로 모욕을 주다니 이 나쁜 새끼들.

“음, 머리는 좋은데 미쳐 버린 거 아닐까? 왜, 그런 애들 있잖아. 너무 똑똑해서 돌아 버린.”

“일리 있네. 뭐 무슨 상관이야. 그냥 곱게 죽여 주려 했더니……. 그냥 두면 안 되겠네.”

살벌한 시선에도 나는 쫄지 않았다.

“너네, 날 죽이겠다고? 내가 지금 어딜 다녀온 줄 알아?”

“조그만 게 진짜 말 많네. 너 내 손가락 깨문 만큼은 맞다가 죽어라.”

발길질이 이어졌다.

이따위 발 정도야 내가 지난 삶에서 겪었던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소리 높여 외쳤다.

“너!! 내가 지금 우리 아빠 만나고 오는 길이거든?!”

그 순간 발길질이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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