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이게 바로 ‘그건’가?”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말투. 여전하네.
옆에 있던 보좌가 정중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예, 그렇습니다. 가주님.”
“물의 힘은?”
“저, 그것이…….”
보좌가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의 힘.’
범고래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특별한 힘을 말한다.
이 힘이 있으면 수중 생물 수인들은 육지에서도 자신의 힘을 백 퍼센트 모두 발휘할 수 있었다.
바다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힘이 약해지는 단점을 가진 수중 동물 수인에겐 너무나 중요한 힘이었다.
게다가 이 힘이 강력할수록 주변 수중 동물 수인들도 자신의 힘을 백 퍼센트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나아가 이 힘이 절정을 이루게 되면 수중 동물 전체에 이런 버프를 나눠 줄 수 있다.
‘나는 그 경지를 이룩했지.’
직전 회차에서 나는 원작에서 나오는 보물을 손에 넣었다.
보물의 도움을 받아 물의 힘을 깨우치는 동시에 극한까지 끌어 올려 결국 가주 자리는 물론 수중 동물 수인을 싹 모아다 전쟁까지 일으켰다.
‘그 새끼들이 먼저 우리더러 비린내 난다고 후려쳤다고.’
사실 소설로 읽었을 때, 나에게도 모든 수중 동물 수인들이 다시 없을 악당들이었다.
귀염 뽀짝한 다람쥐 여주를 납치하려 들지 않나, 억지로 약을 써서 치료의 힘을 쓰게 하려 들거나. 후에는 죽이려 하기도 했다.
최종 악당 가문인 범고래 수인 가문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 들어와 보니, 진짜 깡패들은 육지 동물 놈들이었다.
대륙의 좋은 땅을 모두 자기들이 차지한 걸로 모자라…….
수중 동물 수인들을 농사조차 짓기 힘든 소금기 가득한 땅으로 내쫓고는 비웃어 댔다.
물고기 놈들은 지들 같은 짠맛 나는 물고기나 실컷 먹으며 살라 했던가.
‘지들은 노린내나 나는 주제에……!’
수중 동물이 본체지만, 인간 모습일 땐 우리도 인간과 똑같이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
척박한 땅에서, 그리고 섬에서 수중 동물 수인들은 진짜 치열하게 살았더라.
그래서 애들이 더 독해진 감은 있지. 암.
‘사실 지난 회차에 대한 복수심도 없었다고는 못 하겠네.’
나는 매번 10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다른 가문으로 팔려 갔다.
첫 회차에는 흑표범 가문이었고 두 번째 회차에서는 쌩난리를 친 끝에 원작 남주가 있는 황실과 엮였지.
그래 봤자 팔려 가는 도구로 살았다.
죽다 죽다 화가 나서 직전 삶에서 도망갔다.
힘을 쌓아 돌아와서는 오빠 놈들 때려잡고 가주가 되었다.
‘젠장, 그렇게 강해지면 뭐 해!’
감히 우리 수중 동물을 무시하는 원작의 육지 동물 가문들과 전쟁을 일으켜 거의 승리할 뻔했는데……!
‘남주 이 미친놈이 가만히 있던 용 공작을 자극해서 다 같이 죽자고 달려들지는 몰랐지.’
이 세계의 치트키.
본래는 육지 동물과 수중 동물 수인들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용 공작.
‘그러나 10년을 주기로 한 번씩 폭주하는 존재.’
현세대의 용 공작은 그저 고요히 살기를 바라는 인물이었다.
원작에서도 원작 여주와는 거의 접점이 없거나 그저 현명한 조언을 해 주는 정도의 존재감이었는데…….
남주가 지들이 질 것 같으니까 조용히 살던 이 공작을 자극해 폭주시켜 버렸고 다 같이 몰살 엔딩을 맞이했다!
그리고 나는 직전 회차에서 결심했다.
이번엔, 꼭 집에 돌아가야지.
‘반드시 용의 신부가 되어야겠어.’
그렇게 결심한 건 좋은데 말이지……. 첫 번째 난관이 눈을 부릅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흠, 저 할머니가 나를 당장 마뜩잖게 생각하지 않게 하려면 어떡해야 하지?
“쯧, 쓸모없는 것을 가져왔나.”
할머니가 혀를 차더니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주님, 아이의 이름은…….”
“칼립소. 칼립소 아콰시아델로 하겠다.”
“예. 그리 적을 올리겠습니다.”
‘이번에도 이름 짓는 과정은 똑같이 흘러가는구나.’
칼립소, 물의 요정과 같은 이름이다.
모든 회차에서 쫓아냈으면서 이름은 왜 이리도 귀하게 지어주었을까?
‘최소한의 양심이야 뭐야. 퉤.’
할머니를 지독하게 원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아무런 감정 없이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럴 수 있었던 건 직전 회차, 내 가신 하나가 죽으면서 한 말 때문이었다.
“……칼립소 님, 돌아가신 전대 가주님은…… 죽는 날까지 후회하셨습니다.”
“허? 무슨 개소리냐? 죽기 전에 노망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