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프롤로그
“하아, 하아.”
새카맣기 그지없는 하늘.
주변으로 검은 연기가 풀풀 날리고 어디선가 썩은 냄새가 풍겨 왔다.
나는 핏물로 엉망이 된 눈꺼풀을 간신히 뜨며 주변에 죽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보았다.
‘……저놈은 남자주인공이고, 저놈은 서브남주네.’
죽어 널브러진 인물들에게서 고개를 돌리면 또다시 죽은 사람들이 한 무더기로 나뒹굴고 있다.
특이한 점을 꼽으라면…… 그들은 모두 같은 머리 색이다.
나랑 같은 머리 색.
내 오빠들이었다.
‘저놈은 첫째, 끝까지 칼을 움켜쥐고 있는 놈은 둘째……. 셋째 저놈은 울보면서 눈조차 감지 못했네.’
이제 나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번 회차도 22살을 못 넘기냐.’
죽음을 앞둔 사람 특유의 두려움은 어디에도 없었다.
왜냐, 나는 벌써 이 짓을 세 번째 반복 중이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이 세계는 육아물 장르인 책 속이다.
나는 이 세계를 무려 3번이나 겪고 있다.
지쳤다.
20살, 21살 그리고 22살.
모두 내가 죽은 나이였다.
나는 죽었거나 죽어 가는 가족들을 보면서 연민했다.
‘……악당 가문에서 태어난 게 죄도 아니고. 퉤.’
책에 빙의했는데 나처럼 불쌍하게 사는 인간은 또 없을 거다.
거기다 무려 귀염 뽀짝한 육아물에 빙의했다면 더더욱.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가득 채운 검은 덩어리.
그 사이에 인간이 하나 둥실둥실 떠올라 있었다.
떠 있는 남자의 뒤엔 연기가 어떤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바로 용이었다.
설명하자면 저 남자는 살아 있는 용이었다.
용 공작이라 불리는 자.
그리고 저 용이 분노하고 폭주하면서 이 사달이 일어난 상황이었다.
‘하아, 다음 회차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럴 일은 없겠지.’
별 생 지랄을 다 해도 왜 운명은 변하지 않는가.
이제 내 생명 또한 다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남자가 손을 들어 올렸고, 그 손에 검은 구체가 생성되었다.
거대한 크기의 검은 구체.
저거보다 훨씬 조그만 것에 도시가 날아갔던 걸 생각하면 이번에야말로 끝일 것이다.
‘미친 남주 새끼들이 저 용 공작만 폭주하게 만들지 않았더라면……!’
대체 애꿎은 용 공작은 왜 건드려서 이 사달을 만드냔 말이다!
‘아니, 육아물의 엔딩이 몰살이라니 말이 되냐고오오!’
마지막으로 하늘을 멍하니 보다가 돌연 나는 눈을 부릅떴다.
남자가 떠 있는 하늘, 저 검은 구 폭발과 함께 아마도 멸망할 세상.
이미 조각조각 난 하늘 사이로 익숙한 무언가 보였던 것이다.
정겨운 도로, 정겨운 대교와 로터리. 그리고 광화문과 경복궁…….
‘잠깐. 서울 거리?!’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이제는 그리운 서울 거리였다.
선명한 한글 표지판을 발견하고 눈을 더욱 크게 떴다.
‘왜 저게 보이는 거야? 아, 저기로 들어가면, 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눈이 서서히 감기고 있었다.
뭐야, 뭐냐고. 드디어 고향을 발견했는데……!
억울하다.
더 이상은 버틸 힘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다가오는 검은 구체를 보면서도 희열을 느꼈다.
저거다, 저거면 나는 더 오래 살 수 있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죽음 앞에서 나는 히죽 웃었다.
육아물 인생 3회차.
다음 생은 용을 공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