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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161)화 (161/166)

158화

“나는 네게 마법을 풀라고 경고했다.”

“스승님.”

“하지만 너는 내 말을 듣지 않는구나.”

얼음을 깎아 만든 것 같은 싸늘함에 플람의 숨소리가 작아졌다.

그의 스승은 입 밖으로 낸 말을 결코 주워 담지 않는 사람이었다.

칼을 뽑은 이상 반드시 무언가를 베는 사람이었다.

“더는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네게 다정하기를 기대하니?”

그런 그녀가 서슬 퍼런 눈으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는 말로 하지 않겠다.”

일곱 갈래로 갈라진 벼락이 그가 서 있던 곳으로 떨어졌다.

연이어 날아온 얼음 창이 대지를 순식간에 얼렸다.

“스승님!”

얼음 창을 부수며 내리꽂히는 번개에 일대가 찌릿찌릿했다.

뺨을 얼얼하게 만드는 공기에 플람의 손에서도 주먹만 한 불덩이가 연이어 생겨나더니 바늘처럼 쏟아지는 얼음 창을 모조리 녹였다.

화염과 얼음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자욱한 수증기가 일대를 뒤덮었다.

플람은 제 앞에서 모습을 감춘 힐데가르트를 찾기 위해 사방을 둘러보았다.

“스승님, 제발, 제 이야기를 조금 더……!”

“시끄러워. 네 사랑 핑계는 이제 질렸어.”

파지지직!

바닥에 꽂힌 얼음을 타고 강력한 전류가 사방으로 퍼졌다.

펑! 펑! 펑! 펑!

플람은 반투명한 보호막 뒤로 몸을 숨겼지만, 곧바로 자신이 서 있는 곳마다 떨어지는 번개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멀찍이 물러났다.

두꺼운 북을 때리듯 대지를 강타하는 푸른 번개는 힐데가르트의 눈동자와 똑같은 색이었다.

바닥에 내리꽂힌 번개는 그대로 소멸하지 않았다. 힐데가르트의 마력은 거미줄처럼 퍼지기 시작하며 마법진의 흔적을 찾아냈다.

“그립지 않으십니까?!”

힐데가르트의 마력이 하얀빛과 함께 어느 한 부분에서 흡수되기 시작했다.

플람의 차원 마법이 흔들리며 생생했던 풍경에 점차 금이 갔다.

“그 옛 시절을, 보고 싶은 사람을 정말 포기하실 수 있냔 말입니다!”

마법이 깨지며 시간 축과 공간 축은 제자리를 찾기 위해 미로 동굴의 모습으로 변했다.

“저는 못 합니다, 할 수 없어요! 스승님! 저희는 이곳에 있을 사람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같이 돌아갈 수 있어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를 악문 플람이 바닥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을 타고 흘러내린 검은 마력이 깨진 마법진을 다시 완벽하게 수복했다.

차원 마법진은 힐데가르트와 플람의 마력이 부딪치는 동안 격렬한 빛을 내며 번뜩거렸다.

“스승님!”

그러나 힐데가르트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한 채, 수식이 드러난 마법진을 빠르게 훑었다.

‘형태는 크게 다르지 않아.’

차원 게이트의 마법 원리는 이동 게이트 마법과 비슷하다. 다만 오직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했고 마력을 영원히 소모한다는 점이 달랐다.

‘이거라면 할 수 있어.’

마침내 계산을 끝낸 힐데가르트의 등 뒤로 다섯 개의 속성 마법진이 떠올랐다.

후광처럼 솟아난 마법진은 곧 찬란한 빛을 터뜨리며 플람에게 마법을 퍼부었다.

플람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더욱 붉어지더니, 발치에서 터져 나온 검은 마력이 쏟아지는 속성 마법을 집어삼켰다.

얼음과 불, 번개와 바람이 춤추듯 쏟아지고 그 모든 공격을 마성신의 마력이 먹어 치웠다.

“스승님은 절대 저를 이기실 수 없어요. 그걸 모르시는 것도 아닐 텐데, 왜.”

한차례 공격이 일단락된 순간.

플람이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왜 자꾸, 제가 당신을 원망하게 만드십니까.”

내내 공격을 막아낸 마성신의 마력은 검은 사슬이 되어 힐데가르트를 향했다.

힐데가르트는 빠르게 방어막을 펼쳤으나, 사슬은 그녀가 뻗은 오른손을 비틀 기세로 팔목을 휘감았다.

“어차피 이렇게 잡히실 거면서.”

사슬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그녀의 몸을 플람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착각하지 마. 잡혀 준 거니까.”

플람이 눈치를 챈 순간에는 이미 늦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힐데가르트의 왼손에서 새하얀 마력의 칼날이 솟았다.

“거짓말, 어떻게 마법을……!”

튀어나온 칼날은 사슬과 플람을 통째로 베어냈다. 대각선으로 크게 번뜩인 빚의 궤적이 까맣게 넘실거리는 마력을 순식간에 동강 냈다.

그제야 플람은 힐데가르트의 팔목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탈리스만……!!”

보잘것없는 탈리스만이 흑마법을 막아낸 것이다.

“너조차도 네 마력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고?”

바보 같은 소리. 힐데가르트는 조소를 흘렸다.

“마법사는 항상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느냐.”

플람이 배운 마법의 근원은 모두 힐데가르트에게서 왔다.

그건 바꿔 말하면 그가 쓰는 마법의 원리를 힐데가르트가 모두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네가 모르는 너의 한계를 오늘 배우겠구나.”

자유로워진 오른손에서 일곱 색으로 빛나는 마법진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나타났다.

플람이 그것을 못 알아볼 리 만무했다. 바깥에 있는 이들의 발을 묶어놓기 위해 만든 이중 마법 중 하나였으니까.

“마지막 가르침으로 생각해도 좋아.”

“허억……!”

힐데가르트는 마력을 흡수하는 마법진을 플람의 몸속에 때려 박았다.

차원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 돌고 있던 마력이 모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겨우 진정시켜 둔 마법은 다시금 깨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에 금이 가듯 마법이 깨지더니, 시간 축과 공간 축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도 이변이 일어났다.

힐데가르트는 부서지기 시작하는 모든 것을 씁쓸한 눈으로 보았다.

‘이건 진짜가 아니야.’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고 선명해도 결국 허상에 불과한 순간일 뿐.

그러나 제대로 마음을 정리할 틈도 없이 작별해야만 했던 풍경을 먼발치에서나마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힐데가르트는 그곳에 사랑하는 오빠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잘 있어, 레온 오빠.”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마법이 깨졌다.

플람은 기절한 상태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키스케와 헤어졌던 곳보다 더욱 어둡고 서늘한 공기로 봐서는 미로 동굴의 최하층부에 해당하는 듯했다.

‘성검.’

주변을 둘러보던 힐데가르트는 금방 성검을 찾아냈다.

카라딘이 빼돌렸던 성검은 상아색 돌을 깎아 만든 제단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녀가 제단 쪽으로 걸어가려 하던 순간. 플람의 몸에서 검은 마력이 피가 흐르듯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플람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력은 분수처럼 솟더니 플람과 거의 똑같은 형상으로 변했다.

“지독한 여자군.”

이제는 익숙해진 핏빛 눈이었다. 단테는 그녀가 마법진을 때려 박았던 곳을 슬슬 쓰다듬었다.

“제자가 두 번 다시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되어도 상관없다 이거야? 응?”

“플람은 더 이상 내 제자가 아니야.”

힐데가르트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내 제자로서도, 마법사로서도 자격이 없어.”

“불쌍한 놈이로군.”

혀를 차던 단테가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제 어깨를 감쌌다.

“아, 스승님. 저는 당신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부쉈어요. 평생을 배워온 진리도, 사람으로서의 양심도, 도리도 모두 부수고 사랑만을 원했는데.”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지.”

자기 자신을 부수며 외치는 사랑은 누구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그 원흉을 제공한 너도 오늘로 끝이야.”

“허. 내가 끝이라고?”

단테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그가 제 앞에 쓰러져 있는 플람을 폴짝 뛰어넘으려던 것도 잠시.

“말도 안 되는 소리. 힐데가르트. 네가 뛰어난 마법사라는 건 인정하지만…….”

짜증 난다는 듯 구둣발로 플람을 걷어찬 그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나는 마성신의 분신이야. 오르녹스 신조차 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검 속에 봉인했는데 네가 무슨 수를 써서 나를 막겠다는 거지? 제물도 거의 다 모아서 이젠 완벽한 몸도 갖췄는데?”

단테의 발밑에서 파도처럼 검은 마력이 일렁였다.

“내게도 마법진을 때려 넣어보려고? 그 가소로운 탈리스만이 흑마법을 몇 번이나 막아줄 것 같아? 한 번? 두 번?”

“글쎄.”

“난 플람과 다르게 손속을 봐줄 생각은 없어. 네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네 마력을 모두 쓰게 만들 수도 있지.”

단테는 애가 탔다. 계약자의 육신에 종속된 몸이 아닌, 완벽한 육체를 가지고 부활을 꿈꾼 지 수십 년이 지났다. 이제 부활은 코앞이다.

“플람이 불쌍해지는 건 처음이로군. 너 같은 여자 때문에 나와 거래하다니. 동정의 의미로 널 박제해서…….”

“누가 누구를 동정하는 거야?”

그 순간. 힐데가르트는 꼭 플람이 했던 것처럼 지면에 손을 뻗었다.

오직 단 한 명을 가두기 위해 시간 축과 공간 축을 어그러뜨리는 차원 마법.

플람이 그녀를 위해 깔아둔 마법진을 힐데가르트가 역으로 계산하여 제 마력을 퍼부은 것이다.

“내 목표는 처음부터 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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