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없겠지, 아마.’
그런 건 기대하기 어렵다. 힐데가르트는 회의적이었다.
‘내기를 받아들이지 말 걸 그랬어.’
찰나의 다정함에 마음이 기울었던 게 잘못이었을까?
검은 별 교단의 사자소생은 대부분 불안정했다. 때문에 힐데가르트는 자신 또한 불완전한 소생의 영향으로, 언젠간 영혼이 소멸하리라 생각해 왔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제 영혼이 소멸하고 진짜 공녀가 돌아올 테니 그 전에 할 수 있는 만큼 가문을 일으켜 세웠다.
‘……어떻게 해야…….’
힐데가르트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지자 솔로몬이 혀를 찼다.
저럴 거면 왜 저렇게 매몰차게 말한 거람?
“너무 무겁게만 생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를 위로하는 데 익숙하지 못한 솔로몬이었다.
“존재라느니 인연이라느니, 저는 현물이 가장 중요한 인간이라 그런 말이 잘 와닿진 않지만.”
그가 관자놀이 부근을 긁적였다.
“그렇게 쉽게, 육체에 영혼이 짠 하고 바뀔 수 있을 리 없잖아요.”
“……해보지도 않고 무슨 소리야.”
난데없는 말에 힐데가르트가 그를 바라보았다.
솔로몬은 어깨를 으쓱였다.
“꼭 겪어봐야만 결과를 아는 건 아니잖아요? 솔직히 말해서요. 공녀님처럼 사자소생으로 되살려진 경우도 처음이지만, 그 몸에 원래 주인이 다시 돌아오는 일도 처음이죠? 전 어떻게 될지 감도 안 잡힙니다.”
“그건…….”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면 어떡하시려고요? 돌아온 영혼이 그 몸에 적응하지 못하면요?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 아파할지는 생각해 보셔야죠.”
힐데가르트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거리자 솔로몬은 이때다 싶었는지 종알종알 떠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공녀님이 벌려놓은 일이 좀 많으십니까?”
혜성처럼 쏜살같이 달린 6년이었다.
그동안 힐데가르트는 황태자 전하의 스승이 되었고, 이동 게이트 사업으로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마법사가 되었으며, 이베르타 가문의 은인이 되었다.
나름 ‘소소하게’ 벌린 사업이 비엔날레 전시회일 정도다.
단 한 사람이 6년간 이룬 업적이라고 하기엔 그 여파가 굉장했다.
“설령 진짜 힐데가르트 공녀가 돌아온다 해도 날벼락이 따로 없죠.”
“……솔로몬.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냥 그대로 살아요, 공녀님.”
솔로몬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어차피 성검의 봉인이 풀리면 제물로 쓰인 혼은 완전히 먹힐 겁니다. 그럼 끝장이죠.”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그의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말투로 끔찍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힐데가르트가 정색하며 화를 내자 솔로몬은 이번에도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요. 대신 공녀님으로선 마음이 힘든 일이겠죠. 하지만 전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생각해서요.”
그의 목소리가 의미심장해졌다.
“뭐 어느 쪽이든 이거 하나는 확실하네요.”
“어떤 거?”
“공녀님은 사서 고생하고 사서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거요.”
“솔로몬!!”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던 힐데가르트가 그를 나무라자, 솔로몬은 깜짝 놀라면서도 유들유들하게 웃었다.
“하여튼 영 마음이 쓰인다면 오르녹스교의 사제에게 상담해 보시라고요! 읏차, 저는 할 만큼 했습니다! 이젠 배고파서 더 못 버텨요!”
키스케에 이어서 솔로몬이 방을 나섰다.
혼자 남겨진 힐데가르트는 머리가 핑 도는 걸 느꼈다.
“하아…….”
하늘이 핑 돈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마음이 무거우니 현기증만큼이나 한숨이 깊었다.
“레온 오빠.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천장을 올려다본 힐데가르트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수배된 카라딘과 로렌조를 붙잡았으나 플람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벌써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긴 건 아닐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터에 예상 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움직이는 동굴이요?”
“네.”
라비엣이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키스케와 힐데가르트, 솔로몬이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베르타 공작령의 외진 곳에는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고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동굴이 있어요.”
라비엣을 뒤따라 온 베르톨트가 가볍게 묵례한 뒤 지도를 펼쳤다.
라비엣은 그중 한 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추락할 위험이 커서 폐쇄해놓은 곳이죠.”
“그런데 어제 로렌조 공…… 아니, 로렌조가 드디어 자백했습니다.”
베르톨트는 자못 흥분한 목소리였다.
단테와 손을 잡았다는 로렌조의 목적은 단 한 가지.
라비엣이 아쿠아 알타를 수습하는 데 실패하면 그걸 빌미로 황실에 고발해 가주 자리를 빼앗는 것이었다.
그걸 위해 두 사람이 협력 관계에 들어선 게 사 년 전부터라던가.
반면 단테의 목적은 일반인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지점이었다.
바로 ‘아쿠아 알타의 규모를 해마다 키우는 것.’
그리고…….
“그 동굴에 마법을 걸고, 제단 세웠다고 해요.”
“제단?”
“네.”
라비엣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한번 동굴에 발을 들이면 구조가 움직여서 나가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마법이라고…… 물론 로렌조의 자백이니 백 퍼센트 믿을 순 없겠지만요.”
“출입자를 막는 미궁의 구조와 비슷한 건가. 그런 마법이 있긴 하지.”
힐데가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톨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해서, 지금부터 조사에 들어가려 합니다. 키스케 전하께서 허락하신다면 긴급 수배자로 지정하여 기사들을 보낼 수 있습니다만.”
“허락하는 건 어렵지 않아.”
“그렇습니까? 그럼 이베르타에서 먼저 기사 몇 명을…….”
“아니, 잠깐만 기다려 봐.”
힐데가르트의 목소리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만약 거기에 단테가 제단을 세운 거라면 섣불리 접근해선 안 돼.”
“네?”
“돌입하기 전에 그만한 준비가 필요해. 잘못하면 동굴 미로에 빠져서 내내 빠져나오지 못할 테니까.”
솔로몬도 마침 그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는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공녀님과 의견이 같습니다. 사전 탐사가 필요한 거라면 차라리 제가 혼자서 조용히 다녀와 보는 게 낫겠어요.”
보기 드문 의욕이다.
라비엣이 신기하다는 듯 솔로몬을 응시했다.
“직접 가겠다구요? 솔로몬, 어쩌다 이렇게 부지런해졌어요?”
“아니, 뭐…… 어차피 제가 안 간다고 해봤자 시키실 것 같아서.”
하늘 같은 천공탑의 초대 마탑주가 저렇게 기세등등하시니 알아서 기어야지 뭐…… 라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솔로몬이었다.
“아무튼 슬슬 슬슬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네요.”
솔로몬이 에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러곤 힐데가르트를 보며 말했다.
“성검 속에 있는 마성신을 부활시키기 위해선 그만한 제물이 필요합니다. 그를 위한 제단이겠고요.”
“동의해. 마지막으로 마성신을 부활시켰을 때는 천 명이 필요했어.”
플람이 죽인 흑마법사로 천 명을 채워 부활했던 마성신.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모든 퍼즐이 딱 맞춰졌다.
“베르톨트. 에르티나 고아원을 찾아갔을 때 나한테 그랬지? 4년간 수해로 죽은 사람을 합치면 800명은 훌쩍 넘는다고.”
“……네, 그렇습니다. 분명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올해는? 올해까지 합치면 얼마나 되지?”
힐데가르트가 저수조의 물을 모두 얼리고 수해 대부분을 막아냈으나, 수해로 인한 지반 붕괴로 몇 명의 사상자가 난 상황이었다.
“지금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베르톨트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라비엣은 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작은 주먹을 꼭 말아쥐었다.
“죄송해요, 공녀님. 숙부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진작 제가 알아차렸어야 하는 건데.”
“그렇지 않아요. 작정하고 누군가를 속이려 드는 사람이 나쁜 거죠.”
그녀가 라비엣을 짧게 위로했다.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그걸 정하는 거죠.”
힐데가르트의 시선이 움직이는 동굴이 있다는 지도 위로 향했다.
“……우선.”
내내 말문을 닫은 채였던 키스케가 입을 열었다.
“폐하께 간단히 소식을 전하고 필요하다면 황실에서 병사들을 불러오도록 하지. 거기에 더 필요한 게 있나?”
“……성검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아. 오르녹스 교단에 사람을 보내서 로우 사제를 모셔왔으면 해.”
힐데가르트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의 살얼음 같은 분위기는 지켜보는 솔로몬의 간담을 덩달아 서늘하게 만들었다.
물론 두 사람 다 평정을 유지하고 있기에, 미묘한 공기를 눈치채지 못한 라비엣이 나서서 끼어들었다.
“그건 제가 맡겠습니다. 겸사겸사 요전에 도와주셨으니 그 인사도 겸해서요!”
“좋아. 그럼 바로 움직이자.”
힐데가르트도 키스케도 일부러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 회의는 끝났다.
“마법사. 한 가지 부탁이 있어.”
회의가 끝난 직후였다.
일부러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던 키스케는, 힐데가르트가 회의실을 나서자 솔로몬을 붙잡았다.
“부탁이요?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이거 말인데.”
그렇게 말하며 키스케가 품에서 꺼낸 건 다름 아닌 탈리스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