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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149)화 (149/166)

146화

마법은 일단 한번 그 힘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달리기 주자가 오래 달리면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드는 것과 비슷하다. 마법으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고양감도 상대가 힐데가르트라면 금세 사라질 느낌에 불과했다.

자신의 힘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확실히 알 수 있으니까.

카카칵! 카각!

카라딘의 손에서 뻗어 나온 검은 번개는 톱니바퀴처럼 둥근 모양으로 변해서 얇은 결계를 찢으려 했다.

그러나 힐데가르트가 한발 빨랐다.

그녀의 손에서 뻗어 나간 황금빛 번개가 검은 번개를 산산조각 냈다.

급할 것도, 당황할 것도 없었다.

실력으로나, 경험으로나 그녀는 압도적 승자이자 사냥꾼이었다.

파앗!

두 번, 세 번 쏟아지는 번개의 위력은 지면을 쪼갤 기세였다.

하지만 빈번히 닿지 못하는 일격이었다.

세로로 길게 날아간 검은색 번개는 더 큰 황금색 번개에 먹히며 상쇄되듯 사라졌다.

“왜 그러니?”

어떤 공격을 하든, 힐데가르트의 마법은 카라딘보다 더 정교하고 빨랐다.

뿐만 아니라 정확히 두 배의 위력으로 되돌려주고 있었다.

파앙!

“아아악!”

반사된 마법이 카라딘의 가슴께에 적중했다.

그의 걸음이 네 발자국 가까이 뒤로 밀려 나갔다.

바로 옆에서 그 광경을 본 로렌조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이…… 웃기지 마!”

카라딘의 귀걸이에서 흘러나온 검은 마력이 한 점으로 압축됐다.

마력 때문에 그의 귓가가 찌릿찌릿했다.

“죽어…… 죽으란 말이야!”

검은색 번개가 힐데가르트를 짓뭉개겠다는 일념 하나로 사방에서 압박하듯 쏟아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힐데가르트가 더 빨랐다.

“마법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야.”

네 갈래로 찢겨 날아온 검은 번개.

사뭇 위협적이었으나, 힐데가르트가 여덟 개로 쏘아 보낸 황금빛 번개는 모조리 공격을 맞받아치더니, 그대로 카라딘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렇게 쓰는 거지.”

창백해진 카라딘이 황급히 보호막을 펼쳤으나 사각을 벗어난 번개가 그를 할퀴고 지나갔다.

“크헉……!!”

카라딘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며 무릎을 꿇었다.

황금색 번개가 할퀴고 간 자리에는 새까맣게 탄 옷 자국만 남아 있었다.

흙먼지 대신 빗물이 튀는 광경 속.

두 사람의 실력 차는 마법에 문외한 이들이 보더라도 압도적이었다.

“계속할 거야?”

우웅!

힐데가르트의 등 뒤로 다섯 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마법진은 후광처럼 빛나며 든든하게 그녀의 배후를 지켰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언제까지든 상대해 줄게.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말이야.”

“……아아악!”

제 분을 이기지 못한 카라딘이 힘껏 쥔 주먹으로 바닥을 내려쳤다.

승부는 거의 난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뭐지?’

좀 전부터 묘하게 신경에 거슬리는데.

힐데가르트는 도망치지도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는 로렌조를 보았다.

로렌조의 표정은 미묘했다.

압도적인 실력 차에 놀라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착잡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체념한 기색이라고 하기엔…….

‘왜 웃고 있어?’

힐데가르트가 제 눈을 의심하던 때였다.

“공녀님!”

덜컹!

라비엣의 비명에 뒤를 돌아보니 수십은 되어 보이는 사내들이 별장의 철문을 걸어 잠근 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빗장을 단단히 걸어라.”

로렌조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이거였구나!’

그 순간,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최근 이베르타 영지 쪽에 수상한 인력이 남아돌고 있어서요.’

‘수상한 인력이요?’

‘예. 노역을 끝낸 빈민이나 복역을 마친 도적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데뷔탕트를 치르기 전, 이베르타의 동향이 수상하다던 테리오 총괄의 정보였다.

화가 난 힐데가르트는 언성을 높이며 그에게 일갈했다.

“로렌조 공, 당신 어디까지 추락할 셈이야? 당신보다 한참 어린 조카를 우물에 던지는 것도 모자라 부랑자를 모아 살인 도구로 쓸 만큼 작위가 탐나?!”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늦었소. 당신은 돈으로 회유되지 않는 사람이지 않소?”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럼 죽여야지. 죽여서라도 입을 막는 수밖엔 없지! 당신이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 해도 마력이 무한하지는 않을 테니까!”

지면을 세차게 때리는 빗줄기 너머로 보이는 로렌조의 눈빛이 섬뜩했다.

“주인 나리. 이제 움직이면 되는 겁니까?”

“그래. 최대한 조용히 처리해라.”

로렌조가 무리 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어린것은 다시 우물에 집어넣고 여자 쪽은 마음대로 해라. 단…… 확실히 죽여.”

“분부대로 해드리죠.”

차르릉, 하고 칼날이 섬뜩하게 울리는 소리가 났다.

무기를 빼 든 사내들이 힐데가르트를 사방으로 압박하듯 모여들었다.

“……공녀님.”

실낱같이 가는 라비엣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힐데가르트는 눈앞의 상대들을 노려보느라, 그게 저를 향해 말을 거는 소리인 줄도 몰랐다.

“공녀님, 도망치세요.”

“……네?”

“저를 보호하면서 싸우는 건 승산이 없어요. 차라리 공녀님이라도 안전하게 도망치는 게 나아요.”

“…….”

“어차피 숙부님의 목표는 저 하나예요. 그러니까…….”

“라비엣. 내가 말했죠?”

힐데가르트는 우물가 근처에서 굴러다니던 장대를 집어 들었다.

“자신의 힘이 모자라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라고요.”

“…….”

아무래도 어지간히 얕보인 모양이다.

근처에서 익숙한 마력을 느낀 힐데가르트가 씩 웃으며 라비엣의 어깨를 한 손으로 토닥였다.

확실히 로렌조의 예상대로 그녀의 마력이 얼마 없는 건 사실이었다.

‘남은 마력은 삼 분의 일도 안 되지만…….’

상황이 더 나빠진다 한들 그녀가 할 일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라비엣을 제 등 뒤로 다시 숨겼다.

“경고하는데.”

힐데가르트가 나무 장대로 바닥에 긴 선을 그었다.

마력을 뽑아 검의 형상으로 만들어 쥔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이 선을 넘어오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어. 기껏해야 돈 몇 푼 벌러 왔다가 평생을 고생하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물러나.”

“헛소리가 장황하군.”

부랑자들은 노골적으로 야유를 보내거나 음습한 눈으로 힐데가르트를 바라보았다.

직접 마주하는 것도 아닌데 몸이 떨려오는 라비엣으로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녀는 무섭지 않은 걸까?

‘정말 도망칠 생각이 없는 거야?’

“로렌조! 저 계집은 내가……!”

“지금은 한시가 급합니다.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죠. ……뭘 하고 있나! 어서 공격하지 않고!”

로렌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내들이 칼을 쥐었다.

“죽여!”

“빨랑빨랑 움직여!”

노골적인 살기에 몸을 떨던 라비엣이 무심코 한 발자국 물러났다.

“히, 힐데가르트 공녀님!”

얼굴에 핏기가 가신 라비엣이 그녀를 만류하려던 찰나.

힐데가르트는 오히려 한발 앞으로 성큼 내디뎠다. 그리고…….

‘어?’

라비엣의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한 광경은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모습이었다.

후우웅!

힐데가르트의 마력으로 만든 검이 바깥으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선 안으로 밀고 들어온 남자의 팔을 무기째 벴다.

“크아아악!”

우아한 몸놀림과 깔끔한 손놀림.

물기를 머금은 은빛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흔들리는 모습이란, 마치 발레리나의 의상 끝에 달린 리본 같았다.

‘아.’

오래전, 라비엣은 이베르타의 기사단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물어본 적이 있다.

검이 아닌 맨손으로 싸울 때 가장 상대하기 거북한 게 누구냐고.

기사단장은 재밌는 질문이라며 웃은 뒤 대답했다.

‘무용수와는 절대 싸우지 마십시오. 그들은 유연하고 민첩하며 군더더기 없이 빠르거든요. 힘의 강약 조절이 능숙한 이들이랄까요?’

힐데가르트는 마치 그 무용수 같았다.

퍼억!

그리고 라비엣이 알 리 없는 한 가지 사실.

그어둔 선을 넘는 이들을 가차 없이 마력으로 날리고, 검으로 베어내는 마검사.

지금의 힐데가르트는 한때 플람과 막시밀리언이 죽을 때까지 흉내 내지 못할 거라며 혀를 내둘렀던 아름다운 마검사의 일면이 아주 조금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는 걸.

“하나.”

힐데가르트는 어느새 몇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 새로운 선을 그었다.

그녀가 한 발씩 앞서갈수록, 부랑자들은 두 발씩 물러났다.

“둘.”

그녀는 두 번째 선을 넘어오는 이들 또한 전부 베었다.

빛의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 진한 핏방울이 묻어나왔다.

“셋.”

마침내 그녀를 두려워하던 부랑자들이 모두 물러나자, 안색이 새카맣게 변한 로렌조가 입을 벌리며 신음을 토했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멍청한 새끼!”

보다 못한 카라딘이 나섰다.

귀에서 새카만 마력을 뽑아낸 그가 오른손으로는 힐데가르트에게, 왼손으로는 라비엣에게 번개를 뿌렸다.

“죽어! 죽으란 말이야!”

라비엣을 향한 공격에 힐데가르트가 동요한 것도 잠시.

화르륵!

터엉!

한층 견고해진 결계와 마력으로 만든 화염벽이 번개를 막아냈다.

“힐데!”

“타이밍이 좋은 걸, 키스케?”

카라딘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러나 소리칠 틈이 없었다.

“일단 그 귀걸이부터 부숴야겠네.”

코앞까지 다가온 힐데가르트의 손끝에서 마력의 탄환이 날아왔다.

탄환은 정확히 카라딘의 양쪽 귀를 스쳤다.

파사삭!

“아아아아악!”

검은 마력이 담긴 귀걸이가 유리 조각이 터지듯 산산이 부서졌다.

머리를 부여잡은 카라딘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뒹굴던 그때.

“힐데가르트 공녀님!”

“라비엣 공녀님! 무사하십니까?!”

우지끈, 하고 육중한 소리가 저편에서 들려왔다.

그것은 노바와 이베르타 공작가의 기사가 철문을 통째로 뜯어내며 들이닥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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