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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144)화 (144/166)

141화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동공을 바라보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힐데가르트가 팔짱을 낀 채 그를 바라보자,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뜸 부정했다.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농담이라니?”

“이 반지를 만든 사람은 초대 마탑주 힐데가르트 공녀가 맞습니다만, 그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어요.”

“맞아. 그래서 내가 널 찾은 거지.”

힐데가르트의 목소리가 한층 유쾌해졌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러니 마법사는 그 어느 때라도 교만하지 말고, 나보다 나약한 자의 배신이 뒤따르더라도 절망하지 말라.”

“…….”

“어라, 이 말은 전대 마탑주한테 들은 적 없어? 나름 마탑을 세울 때 지침으로 삼은 말인데?”

“들었습니다. 들었는데 그걸 당신이 어떻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솔로몬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닫길 반복했다.

대관절 무슨 수를 썼길래 마탑의 격언을 그녀가 알고 있단 말인가?

이젠 이름만 ‘마탑’이지 혼자서 건사하고 있는 1인 협회나 다름없는 곳이다. 솔로몬은 아연함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이 정말 초대 마탑주라고요?”

“그렇다니까.”

사실, 힐데가르트는 솔로몬이 이상한 수수께끼를 낼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알겠어요. 그럼 저도 찾아볼게요. 그리고 한 가지 좋은 걸 알려줄게요. 귀 좀 대볼래요?’

오래전 그의 사촌 동생이었던 아레스가 귀띔해 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레스의 말대로, 직접 얼굴을 마주한 마탑주는 괴짜인데다 자기 마음에 차지 않으면 쳐다도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힐데가르트는 그가 내내 짤깍대던 지혜의 고리엔 이제 관심도 두지 않는 걸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그렇게 믿기 어려우면 한 가지 더. 그 반지 안쪽에 새겨진 문구, 음각이 아니라 양각으로 새겨져 있지? 게다가 마법이 깃든 반지라서, 사용자의 손가락 크기에 맞춰서 조절도 될 거고.”

“…….”

“말했잖아, 내가 만든 거라니까.”

“말도 안 됩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힐데가르트는 소름이 끼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솔로몬을 올려다보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내가 직접 겪기 전까진.”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앉으면 천천히 이야기해 줄게. 올려다보기 목 아파.”

힐데가르트의 말에 순한 양처럼 착석한 상대의 눈이 반짝였다.

이제야 자세한 사정이 궁금해진 모양이다.

“……내가 눈을 뜬 건 6년 전이었어.”

오래된 이야기는 천천히 입에서 흘러나왔다.

* * *

“그러니까…… 요약해 보자면.”

솔로몬이 머리를 긁적였다.

“제자였던 플람이 당신을 되살리기 위해 마성신과 계약을 했다.”

단정하게 땋고 있었던 머리카락이 여러 방향으로 삐죽삐죽 뻗쳤다.

“그리고 당신을 되살리며, 진짜 힐데가르트 공녀의 영혼을 제물로 사용했다?”

“그리고 현재 마성신의 분신이 플람의 몸에 들어가 있는 상태야. 둘 다 살아 있고.”

“흥미로운 이야기긴 합니다만.”

손을 내린 솔로몬이 이번에는 깍지를 끼었다.

“역시 이상한데요? 영혼은 합칠 수는 있어도 쪼개지거나 나눌 수 없는 겁니다. 게다가 영혼이 소멸한 몸에 다른 영혼을 집어넣는다니,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가능한가 아닌가를 따지려는 게 아니야. 실제로 네 눈앞에 있잖아?”

“같은 몸을 쓰고 있는 영혼과의 교감이라던가…… 뭐 그런 거 없었어요?”

그가 진지하게 묻자 덩달아 힐데가르트의 몸도 앞으로 쏠렸다.

“없었어. 지금 내 몸속에 진짜 공녀의 영혼이 없는 건 확실해.”

느꼈다면 힐데가르트도 이렇게 초조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나는 진짜 힐데가르트의 영혼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봐야 할 의무가 있어.”

“그래서 절 찾으셨던 겁니까…….”

솔로몬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가 몇 번 눈동자를 굴리며 고개를 삐딱하게 비틀었다.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하기엔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있군요. 심지어 성검까지 도난당했다니. 마성신의 분신이 꽤 열심히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무엇이든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으니 한 입으로 두말하지는 않겠지?”

“진짜로 맞출 줄은 몰랐는데 말이에요.”

그가 투덜거렸다.

“대체 왜 그런 질문으로 사람을 시험해 봤던 거야?”

“보통 그렇게 물어보면 끙끙거리다가 헛다리를 짚는 걸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거든요.”

“성격이 못됐구나?”

“그걸 대놓고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딱히 부정하지 않는 걸 봐선 본인도 알고 있단 소리였다.

하지만 눈앞의 인물이 어떤 사람이건, 힐데가르트는 그가 다 스러져가는 마탑을 건사하기 위해 온갖 개고생을 자처했다는 점에서 고마움을 느꼈다.

‘마탑의 반지도 팔아먹지 않고 남겨두고 말이야.’

나이가 지긋한 귀족이 취미 삼아 마탑을 물려받은 건가 싶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영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게 튀어나온 셈이었다.

“알겠습니다. 우선, 이베르타 수도원에 흩어져 있는 고서들을 해독해 보도록 하죠.”

“뭐? 마탑의 자료가 아니라?”

“마탑의 자료라면 제가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씩 웃으며 제 관자놀이를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그걸 다?”

“네.”

“양이 상당할 텐데?”

“못 믿으시겠다면 증명해 볼까요? 아무거나 생각나는 자료 하나 말씀해 보세요.”

“좋아. 그럼 데모시움의 <마력 이론>의 읽어봤겠지?”

“그거 재밌는 책이었죠. 다섯 페이지 여섯 번째 줄이 아마 <우리의 주변을 감싸는 마력이 이토록 포근하고 다정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

힐데가르트의 입이 쩍 벌어지자, 그가 ‘음 하하하!’ 하고 경망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니까요?”

“은근히 머리가 좋았구나, 솔로몬.”

“은근이라뇨! 여기선 놀랄 타이밍 아닙니까?! 최소한 칭찬이라도 해주셔야죠!”

꼭 한마디씩 덧붙여서 칭찬해 주려던 마음도 싹 달아나게 만드는 녀석이었다.

“어쨌든 영혼 소생에 관한 흑마법 중에는 상대의 영혼을 갈취하는 법이 있긴 합니다만…….”

“아, 그렇지.”

힐데가르트는 냉큼 라비엣이 준비해 둔 필기구를 집어 들었다.

“내가 부활했을 때, 이런 문양의 마법진이 있었어. 참고가 될까?”

솔로몬은 그녀가 그린 마법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떠오르는 가설이 있긴 해요. 정확한 뒷받침을 위해서는 마성신에 대한 자료가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떤 가설인데?”

“흐음, 아직은 근거가 부족한 가설이지만요…… 영혼은 합칠 수는 있어도 쪼개지거나 나눌 수는 없잖아요?”

솔로몬이 그녀에게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그렇다면 진짜 공녀의 영혼은 어떤 형태가 되었든, 아마 완전한 형태로 소멸하였거나, 혹은…….”

“……어딘가에 온전히 보관되어 있다?”

“그겁니다.”

너무 희망적인 관측인가요, 라며 솔로몬이 덧붙였지만, 그 말만으로도 힐데가르트는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시간을 조금만 주시면 바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여기는 이베르타니까요. 자료를 수집하기에는 적합하지요.”

이베르타 공작령은 교리를 설파하기 위해 설립한 수도원이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

신전의 중요한 서류들을 필사하거나 개별적으로 보관하고 있는 만큼, 마성신에 대한 자료를 찾기에는 여기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해독이 어려운 문서는 신전에 요청할 수도 있어.”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할 줄 알거든요.”

“뭐? 고어를 해독할 줄 안다고?!”

“그것도 못 하는 데 나섰겠습니까.”

솔로몬이 가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쪽은 제게 맡기시고, 초대 마탑주님께선 아쿠아 알타 쪽을 해결해 주세요. 라비엣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더군요.”

“말하지 않아도 그럴 작정이었어.”

솔로몬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이 악수하던 순간이었다. 노크 소리와 거의 동시에 날이 선 라비엣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기 도중에 실례할게요, 두 분!”

라비엣이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힐데가르트는 그제야 바깥에 호우가 쏟아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야기에 너무 집중하느라 주변을 까맣게 잊었고 말았다.

“방금, 수문 장치 근처에서 수상한 사람을 붙잡았다고 해요!”

“수상한 사람?”

“네, 반쯤 정신을 잃은 상태라는데…… 평범한 사람 같지 않다고 해요. 같이 가주실 수 있나요?”

힐데가르트의 푸른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혹시 그 사람,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것처럼 움직이던가요?”

“조종? 무슨 소립니까, 공녀님?”

“흑마법. 검은 독거미의 저주일 확률이 높아.”

“아!”

솔로몬이 제 이마를 찰싹 쳤다.

“그것까진 잘 모르겠어요. 일단 힘으로 제압해서 가둬놨다고 하는데…….”

“바로 가보도록 하죠. 솔로몬, 같이 갈 거야?”

“어째 은근슬쩍 제게 십년지기 친구처럼 말을 놓으셨네요?! 갑니다! 가겠습니다!”

몇 분 뒤, 세 사람을 태운 마차가 빠르게 저택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멀어지는 마차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통유리로 된 창문 앞에 서 있는 로렌조 이베르타였다.

로렌조가 제 등 뒤에 있는 사람을 향해 말했다.

“올해로 이런 짓은 마지막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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