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힐데가르트는 제 귀를 의심했다.
“저기…… 술집이라뇨? 마탑은 술집이 아니에요.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마탑의 정식 명칭은 천공탑.
마법사의 지식이 하늘에 닿을 만큼 높으며, 또 그렇기를 바라며 정성스레 지었던 이름이다.
물론 주변에서는 단순히 마법사가 모여 지낸다는 이유로 마탑이라 불렀다지만…….
‘술집이라니? 술집이라니!’
힐데가르트는 수영복을 입은 물개를 바라보듯 솔로몬을 응시했다. 당장에라도 그가 농담이라고 말해주길 바라며.
“착오일 리가 있습니까, 마법사 힐데가르트 님.”
하지만 어깨를 으쓱인 미남자는 힐데가르트의 기대를 단번에 박살 냈다.
“초기 마탑이야 학술원과 아카락시아 공작가의 협조와 지원 덕분에 지식 교류를 도모하는 단체였습니다만 지금은 제가 개인적으로 유지하고 있어서요.”
솔로몬은 오른손을 들어 검지와 엄지의 끄트머리를 맞댄 채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었다.
“혼자서는 이것 때문에 도저히 감당하기가 어렵더군요. 그래서 이런저런 궁리 끝에 술집으로 운영 방식을 바꾼 겁니다. 아, 그런 의미로 절 마스터라 불러주시죠.”
마스터가 그런 걸 의미하는 마스터는 아닐 텐데?
힐데가르트는 소리 없는 신음을 흘렸다.
마탑 운영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건 사실이다. 금전 감각이 남보다 뒤떨어진다면 더더욱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그런 일을 대비해 마탑의 운용 자금을 상당수 남겨놓았던 힐데가르트로서는 너무 당당하게 ‘돈 없어서 술집으로 개조했습니다!’라고 외치는 솔로몬을 잘했다고 칭찬해 줄 리 없었다.
“뭘까요? 시선이 아프군요.”
“당연하죠. 먼저 인사를 나누겠다고 해서 보내준 건데 이러면 놀라시잖아요.”
자칫하면 냉랭해질 분위기로 파고든 건 라비엣이었다.
“라비엣 양. 진짜 이 사람이……?”
“네. 제게 아쿠아 알타가 흑마법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이에요.”
“잘 부탁합니다?”
확인 사살이었다. 힐데가르트의 머릿속에 데엥, 종소리가 울렸다.
급할 때는 돌아가는 게 현명한 선택이요, 진리였다.
힐데가르트는 두 손으로 찻잔을 든 채 당혹을 감추며 생각을 정리했다.
본디 마법이란 조금만 실수해도 타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그건 바꿔 말해 조금만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하면 많은 이를 행복하고 이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수단이기 되기도 한다.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지식으로 마법을 연구해서 사람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마법사들이 늘어나길 바랐는데.
80년 전의 유지를 잇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 그녀를 조금 씁쓸하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나? 플람부터가 그 지경인데 다른 사람을 나무랄 때가 아니지.’
씁쓸한 자기반성이었다.
소파에 앉은 솔로몬은 힐데가르트와 정반대였다.
그는 홍차에 눈길은커녕 손도 대지 않았고, 지혜의 고리를 꺼내 들곤 가지고 노는 데 바빴다.
“할 말이 있어서 부르신 게 아니었습니까?”
“맞아요. 맞는데…….”
마침내 힐데가르트도 각오를 굳히곤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런 경우는 예상을 못 했거든요. 당혹스럽네.”
“뭔갈 기대하신 겁니까? 혹시 중후한 매력 같은 걸 기대하셨던 거라면 수염이라도 그리고 올까요?”
“아뇨, 사양할게요.”
정색하며 거절하는 힐데가르트와 달리, 라비엣은 쿡쿡 웃었다.
“솔로의 농담은 언제 들어도 재밌죠?”
“라비엣 양은 이게 재미있어요……?”
어디로 보나 차분한 괴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힐데가르트는 가까스로 이성을 붙잡았다.
“……인사가 늦었지만,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당신을 오랫동안 찾았는데 대체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건가요?”
“그건…….”
지혜의 고리를 가지고 놀던 솔로몬의 손이 잠시 멈췄다.
“제가 후원하는 수도원에서 요양 환자로 있었어요.”
“요양 환자?”
“네.”
대신 대답한 라비엣이 그에게 동의를 구하듯 응시했다.
“이베르타 공작가가 연구 목적으로 후원하는 치료 수도원이 있어요. 그곳의 환자로 처음 만났는데…….”
“알코올 중독이었거든요, 제가.”
“…….”
데에엥!
힐데가르트의 머릿속에서 종이 또 한 번 크게 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솔로몬은 실실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아버지가 마법이나 배울 거라면 당장 집을 나가라고 하셨거든요. 마침 성인이 되었으니 잘 됐다 싶어서 마탑을 물려받자마자 집을 나왔는데, 이게 참.”
마탑의 오래된 서적만을 보관하려니 창고비가 들고, 협회 사무실을 세우려고 하니 월세가 들고, 먹고 살려니 식비가 들고.
“땡전 한 푼 없이 자신만만하게 집을 나왔는데 돈이 술술술 몸 밖으로 새더군요.”
“……고생이 많았겠네요.”
어디서나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큰 법이다.
마탑의 주인이 종일 마법만 연구하고 느긋하게 지내면 누가 마탑을 관리하고 돌보겠는가.
힐데가르트의 눈에 아주 희미하게나마 안쓰러움이 들어찼다. 하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바다 어선에 탔습니다. ”
“……네?”
“참치잡이라고 아세요?”
힐데가르트의 머릿속에 있던 재판관이 법봉을 들며 ‘진짜 이상한 녀석입니다!’라고 소리치며 동정을 철회하라고 외쳤다.
솔로몬은 드넓은 바다가 떠올랐는지, 아스라한 눈빛을 했다.
“제 인생의 끝내주는 시기 중 하나였죠.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서 도망갈 수도 없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끊임없이 올라오는 그물을 잡아당기는 일이었거든요. 정말 죽는 줄 알았달까. 세상에 있는 참치도 멸종시켜 버리고 싶었습니다.”
참치가 듣는다면 기겁하고 도망칠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돈을 버는 방법이 꼭 그것밖에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저도 어선에서 내리자마자 도망친 겁니다.”
그 뒤로도 양털 깎기, 대필, 필사, 파발꾼, 1년 만에 망친 농사 등, 솔로몬의 창업 실패담은 끊임없이 쏟아졌다.
‘몬테를로에 있다는 아버지가 왜 포기했는지 알겠네.’
참치잡이까지 하는 아들이 가문으로 순순히 돌아올 리는 만무하고.
그런데 또 묘하게 기가 죽거나 꺾이는 타입은 아닌 데다, 어찌어찌 제 앞가림을 하고 있으니 돌아오라고 말하기도 애매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고생 끝에 드디어 가게를 차린 겁니다. 지하엔 양조장이 있고 위층에는 마탑의 오래된 자료들이 있거든요.”
“왜 하필 술집이었는데요?”
“제 예산에서 살 수 있는 가게가 술집밖에 없었거든요. 식당으로 개조하자니 그건 자신이 없어서 술집으로 했지요.”
힐데가르트의 등줄기로 소름이 스쳤다. 식당 마탑이라니, 듣기만 해도 끔찍한 혼종이다.
“그런데 사람이 참. 너무 애쓰면 탈이 나더라고요.”
솔로몬이 옆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돌돌 꼬았다.
“이제 좀 편안하게 책이나 읽으면서 살 수 있겠다 싶었는데, 경도의 알코올 중독이 생기지 뭡니까. 빚은 술을 식사때마다 마셔서 그런가? 아무튼 술은 조심해야 합니다, 공녀님.”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아주 잘 알겠어요.”
더 듣다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사정이다.
“라비엣. 미안하지만 자리를 비켜줄 수 있을까요?”
“……괜찮으시겠어요?”
“네.”
힐데가르트가 그녀를 향해 사인을 보내자, 라비엣은 불안한 눈으로 솔로몬에게 무례한 말을 해선 안 된다며 꼭꼭 당부한 뒤 방을 나섰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솔로.”
“솔로몬으로 불러주세요.”
“이름으로 장난치는 게 재미있어요?”
“그쪽이 현자 같아서 더 멋있잖아요?”
괴짜인 건지 철이 없는 건지.
힐데가르트는 한숨과 함께, 여전히 지혜의 고리를 푸는 데 열중하는 마탑주를 바라보았다.
“라비엣 양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난 아쿠아 알타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만 여길 방문한 게 아니에요. 내 진짜 목적은 솔로,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죠.”
“솔로몬이라니까요.”
“솔이든 솔로든 솔로몬이든 사람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면 좀 들어요! 지혜의 고리 좀 그만 만지고!”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런데…… 심장 떨어지겠네.”
전혀 놀라지 않았다는 말투로 그가 입술을 삐죽였다.
“마탑주가 관리하고 보관하는 막대한 서적, 혹은 당신의 지혜.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니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문제가 있어요.”
“그거 혹시 성검이 도난당한 것과 관련 있습니까?”
“…….”
“어떻게 알았냐는 얼굴이네요. 정답은 라비엣이 미리 귀띔해 주더군요.”
솔로몬이 드디어 지혜의 고리를 내려놓았다.
다리를 꼰 그에게서는 여전히 술 냄새가 났다.
“성검에 관해서는 오르녹스 교단이 해결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당신이 나서야 할 이유가 있어요?”
“있다면요? 누가 들어도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날 도와주겠어요?”
“……그게 참.”
노란 눈은 다트판을 바라보듯 그녀를 뚫어지게 보았다.
“신기하네요. 마법사가 사사로운 부탁을 일일이 받아줄 수 없다는 건 공녀님이 가장 잘 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사롭지 않으니까요.”
“좋습니다. 제가 내는 문제를 맞히면 성심성의껏 바닥을 뒹구는 한이 있어도 도와드리지요.”
그와 시선을 마주하던 힐데가르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여기 오래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솔로몬이 그녀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의 검지에는 손톱의 절반만 한 크기의 두꺼운 반지가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반짝거리는 은색과 몇 개의 보석으로 세공된 물건이었다.
“어느 현명한 왕이 신하에게 명령하기를. 전쟁에 이겨 교만할 때는 지혜가 되고, 패배하여 절망할 때는 힘이 되는 말을 찾아 반지에 새겨오라 했다. 그 말이란…… 무엇일까요?”
긴말을 쉼 없이 쏟아낸 그의 눈이 둥글게 변했다.
“지금부터 십 초를 드리지요.”
그는 소파의 손잡이를 톡톡 두드렸다. 숫자를 세겠다는 의미였다.
“그 안에 대답하신다면 무엇이든 도와드리죠.”
“무엇이든?”
“네, 무엇이든. 제한 없이 말입니다. 마스터 솔로몬과 함께 즐거운 장마철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숫자를 세기도 전이었다.
상대를 분석하던 힐데가르트의 시선을 적당히 피했던 솔로몬의 안색이 삽시간에 뒤바뀌었다.
“그 반지의 안쪽에 새겨진 말이잖아요?”
“……그걸 어떻게.”
“어떻게 몰라? 마탑주에게 대대로 물려준다는 그 반지를 만든 사람이 나인데.”
솔로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