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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140)화 (140/166)

137화

Chapter 12. 아쿠아 알타

카라딘과 단테의 행방이 묘연해진 지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게이트를 검문하면서까지 수색에 집중했으나, 예상대로 별 소득은 없었다.

한데 한 청년이 뜻밖의 소식을 물고 왔다. 그 청년은 자신이 이베르타 출신임을 밝히며 인사했다.

“영광입니다, 힐데가르트 님. 이렇게 직접 뵙는 건 처음입니다.”

“어서 오세요, 베르톨트.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짧은 머리는 빗질을 하고 왔는지 윤기가 일었다.

힐데가르트는 그를 협실로 안내했다.

안쪽에서 노바와 이야기를 나누던 키스케가 고개를 까딱이자, 베르톨트는 상대를 처음 본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이분은?”

“키스케 라모프 드롯셀마이어다. 중대한 사안이라 해서 함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데, 괜찮겠나.”

“화,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물론입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노바가 방을 나서고 시녀가 따뜻한 레몬티를 내왔다. 힐데가르트는 먼저 찻잔을 들었다.

“긴장할 것 없어요. 우리 모두 베르톨트가 쓴 편지 내용을 직접 듣고 싶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어요.”

“그러셨군요. 편지를 무시하지 않고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베르톨트는 예의상 음료를 몇 모금 마신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실은, 제가 공녀님을 찾아온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혹시 이베르타 지방의 아쿠아 알타라는 현상을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힐데가르트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키스케는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동부 이베르타에서만 벌어지는 독특한 현상이지 않나. 에르티나 지방이었던가?”

“맞습니다. 보통 4년에서 6년에 한 번 발생하는 침수 피해인데, 그 규모가 워낙 커서 재해나 다름없지요.”

“수해 피해가 크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이 수해(水害)는 여름에서 가을 동안 북쪽에서 부는 더운 바람과 계절풍 때문에 일어나는지라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지요.”

제국의 동쪽은 노른자 땅이라 불릴 만큼 넓은데다, 비옥한 토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이베르타는 땅이 넓은 만큼 앞선 에르티나 같은 대도시에서는 수해 피해가 있었고 태풍 같은 자연재해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곤 했다.

“문제는 이 아쿠아 알타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젠 몇 년에 한 번이 아니라 해마다 도시가 침수되고 있습니다.”

“그 소식은 저도 신문에서 접한 적 있어요. 하지만 이베르타에서도 그만큼 방비를 단단히 해놓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쿠아 알타는 80년 전에도 이베르타 공작가를 골치 아프게 하는 문제였다.

“재해의 규모가 그렇게 큰가요?”

“아닙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짧은 머리를 쓸어 올린 베르톨트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비밀입니다만…… 실은 누군가가 고의로 방비 장치를 파괴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네?”

힐데가르트는 깜짝 놀랐다.

곁에 있던 키스케에게 눈짓하자, 그 또한 이런 보고는 처음이라는 듯 생소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하는 거지?”

“저희도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실패했지요.”

범인은 수해 피해가 가장 극대화될 타이밍에 맞춰 번번이 수문이나 제방을 터뜨리는 기행을 벌였다.

이베르타에서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병사를 배치했지만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병사들이 물난리를 피하고자 몸을 뺐을 때 방비 장치를 망가뜨리기 일쑤였다.

“이런 일이 벌써 사 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피해자는 어림잡아 수백입니다.”

결코 적은 피해가 아니었다.

이미 에르티나 지방의 사람들은 어머니의 어머니 적부터 그 지방의 수해를 겪으며 살아온 이들이었다.

당연히 대피해야 할 장소며 위급 상황에 익숙한 사람들인데…… 그런 곳에서 수백의 피해가 났다는 건 꽤 큰 문제였다.

“자연재해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거역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사람이 벌인 짓이라면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벌인 짓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이죠?”

놀란 것도 잠시.

힐데가르트는 마음에 걸리는 점을 차분히 되물었다.

“그대가 이야기한 걸 종합해 보면, 방비 장치를 고의로 파괴한 건지 물난리 중에 부서진 건지 구별하긴 어려워 보여요. 뭔가 결정적인 증거나 증인이 있던 건가요?”

“실은…… 이 문제가 흑마법사의 소행 같다고 말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네? 누구죠?”

“자신을 ‘일단은 마탑주’라고 칭한 남자인데…….”

“뭐라고요?!”

레몬티가 식은 것을 확인하고 들이키던 키스케는 하마터면 못 보일 꼴을 보일 뻔했다.

기침을 참던 황태자가 몸을 들썩이는 것도 모자라, 힐데가르트의 반응도 격렬하자 베르톨트는 깜짝 놀랐다.

“제, 제 발언에 뭔가 실수라도…….”

“그 말 사실인가? 마탑주라고?”

“예. 저희도 처음에는 놀랐지만 듣고 보니 사람의 힘으로 벌일 수 있는 짓은 아닌 것 같아서…….”

슬그머니 두 사람의 눈치를 본 베르톨트가 쐐기를 박았다.

“수배령을 보았습니다. 카라딘 전하와 흑마법사를 수배하셨지요?”

“……설마.”

“예. 목격 증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곧장 게이트를 타고 공녀님을 뵈러 온 것입니다.”

이야기를 마친 베르톨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탁드립니다. 현재 이베르타는 계승권 문제로 가문이 둘로 나뉜 상황입니다. 라비엣 공녀님께서도 이 일로 크게 걱정하고 계시지만, 로렌조 공께서 좀처럼 협력해 주지 않아 애꿎은 이들의 피해가 걱정됩니다.”

힐데가르트가 그를 말리기도 전에, 허리를 굽히며 정중히 부탁하는 그의 목소리에 희미한 떨림이 묻어나왔다.

“부디 수문을 파괴하는 흑마법사를 붙잡고, 아쿠아 알타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시지 않겠습니까?”

힐데가르트는 한없이 진지한 연구원의 머리를 가만 보았다.

그녀가 평소와 달리 주저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사람은 키스케뿐이었다.

한참 뒤 그녀가 말했다.

“잠시 기다려 줄래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 * *

베르톨트가 자리를 비우자, 힐데가르트는 찰랑이는 찻잔을 가만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런 상황은…… 예상외인데.’

원래 베르톨트가 보낸 소식은 이베르타를 도와준다면 학술원의 인재들로 구성된 파견조사단으로 찾고 있는 상대의 수색을 돕겠단 말이었다.

힐데가르트가 플람이라는 사내를 찾고 있는 건, 소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베르타 공작 영애가 생각보다 똑똑한걸. 학술원을 장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모양이야.’

학술원은 현재 거의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마도학을 유일하게 학문 중 하나로 채택한 곳이다.

그곳에서 엄선한 인재들이라면 마력을 추적하는 데 큰 힘이 될 테고, 두더지처럼 숨어버리는 단테를 끌어내는 것도 한결 쉬우리라 생각했다.

“힐데. 왜 그렇게 고민하는 거야?”

키스케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너라면 바로 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카라딘의 목격 소식이 넝쿨째 굴러들어왔으니 우선 이베르타로 가긴 해야지. 하지만…….”

일의 경중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은 성검을 회수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였다.

“시기상으로 아쿠아 알타가 얼마 남지 않았어. 이베르타의 수해야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겨우 잡은 단테를 놓치면 어떡하고?”

무려 6년간 자취를 감쳤던 플람과 단테가 이제 겨우 코앞에 있다.

힐데가르트는 양 갈래 길 앞에 선 사람처럼 흔들렸다.

왼쪽 길이 플람과 단테라면, 오른쪽은 아쿠아 알타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어느 한쪽을 택해야만 했다.

그때였다. 키스케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머물렀다.

“그게 고민이었던 거야?”

“사람이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왜 웃는 거야?”

“너답다 싶어서.”

이럴 때도 다른 이를 돕겠다는 신념 하나는 분명한 그녀였다.

자신의 이기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는 그녀의 행동을 위선이라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키스케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언제나 눈부시게 빛나고, 아름답다 생각했다.

티끌이라도 좋으니 그런 힐데가르트를 닮고 싶었다.

평생 존경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난 것은 키스케의 축복이었기에, 그는 웃으며 제안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힐데 네가 아쿠아 알타를 해결하는 사이, 나와 노바가 카라딘과 단테를 쫓을게. 어때?”

“……뭐?”

예상을 벗어난 제안에 힐데가르트는 크게 놀랐다.

그녀의 허를 찌르는 발상이었다.

“넌 오랫동안 마탑주를 찾아왔잖아. 베르톨트가 말한 사람이 정말 마탑주가 맞는지도 확인하고 싶은 거지? 그래서 망설이고 있는 거잖아.”

“……눈치채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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