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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139)화 (139/166)

136화

“키스케 전하께 상황을 말씀드린다면 통제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럼 그렇게 해줄래?”

힐데가르트는 정신을 잃은 잉그렛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히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어. 적당한 이유를 붙여서 출입자를 통제하고 긴 보라색 머리의 사내를 발견하면 내게 알려줘. 그걸로 충분해.”

“알겠습니다.”

힐데가르트는 황궁 내에 위험 요소가 있다는 걸 즉시 알아챈 노바의 판단력이 제법이라고 생각했다.

“으…….”

“잉그렛 양, 정신이 들어요?”

“……여긴…….”

“투왈렛 룸이에요. 금방 깨어나서 다행이네요.”

시간으로 봐서는 슬슬 눈을 뜰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파르르 떨리던 잉그렛의 눈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저…… 제가,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니에요!”

창백한 안색으로, 잉그렛은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다.

“정말이에요! 누군가가 제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명령을 내렸어요.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멋대로 움직여서……!”

“잉그렛 양, 우선 진정하고…….”

“믿어주세요! 전 다른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았…….”

“진정해요!”

톡, 하고 힐데가르트가 쥔 부채가 그녀의 뺨을 두드렸다.

“잉그렛. 당신의 말을 믿어요. 그러니까 허둥지둥 변명하듯 말하지 말아요. 천천히, 차분히 이야기해요.”

“…….”

“많이 무서웠죠?”

마침내 힐데가르트를 붙잡던 잉그렛의 손에서 힘이 풀리더니,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공녀님. 절 구해주셔서…….”

잉그렛의 민들레처럼 노란 머리카락이 사락사락 흘러내렸다.

“무서웠어요.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서…… 정말 무서웠어요.”

“나쁜 마법에 걸렸던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고, 잊어버려요.”

“저 때문에 다친 사람은 없나요? 제가…… 다치게 한 사람은…….”

“없어요. 오늘 일은 소수의 인원이 평생 안고 갈 비밀인 걸로 해요. 알겠죠?”

힐데가르트는 잉그렛의 곁에서 전전긍긍하는 시녀에게 마실 것을 가지고 오라는 명령을 내린 뒤, 모두에게 자리를 비우도록 했다.

“잉그렛 양. 언제부터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는지 기억해요?”

“……네.”

투왈렛 룸에서 단둘이 남게 되자 안정을 되찾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투왈렛 룸으로 가려다 너무 답답해서 바깥으로 나왔을 때였어요.”

멀지 않은 곳에 위병이 있어서, 분수대 근처에 앉아 쉬고 있던 게 화근이었다.

“누군가 제 이름을 불러서 뒤를 돌아보니, 카라딘 전하가 서 있었어요.”

“카라딘이요?”

“네. 그리고…….”

예상 밖의 이름에 놀란 것도 잠시.

이어지는 말에 힐데가르트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처음 보는 긴 머리의 남자도 함께였어요.”

“……긴 머리의 남자요? 설마 그 사람 머리카락이 보라색이었나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순식간에 기억이 끊겨서…… 하지만 그랬던 거 같아요. 검은색이나 보라색으로 보였어요.”

“…….”

“공녀님? 왜 그러세요? 뭔가 문제라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문제라면 많았다. 드러낼 수 없어서 그렇지.

수도로 온 단테.

상대의 행동을 조종하는 검은 독거미의 저주.

‘카라딘에게선 흑마법사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어. 그런데도 그 두 사람이 같이 있다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무엇인지, 에 관해 생각이 미쳤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노바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노바?”

“공녀님. 잠시 이쪽으로…….”

잉그렛에게 양해를 구한 힐데가르트는 투왈렛 룸을 나섰다.

복도로 나온 그녀는 깜짝 놀랐다.

“키스케? 어쩐 일이야?”

“……힐데.”

무도회장에 있어야 할 키스케가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힐데. 놀라지 말고 들어.”

직감적으로, 좋지 못한 예감이 들었다.

“……성소에 놓아둔 성검이 사라졌어.”

* * *

키스케가 힐데가르트를 찾아오기 몇 분 전.

황궁의 성소를 지키던 로우가 상대를 가로막으려 했다.

“누구십니까? 이곳은 출입 금지…….”

“이 황궁에서 내가 가지 못할 곳은 없는데?”

“실례했습니다. 카라딘 황손 전하를 뵙습니다.”

로우의 역할은 성검의 임시 봉인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황족이 성소를 찾아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가 공손히 인사했으나, 카라딘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제단까지 다가갔다.

고개를 든 로우는 바깥이 시끌시끌한 것을 눈치챘다.

“전하.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요?”

그러나 카라딘은 상대의 말을 무시하고 제가 하고 싶은 질문부터 던졌다.

“성소에 성검을 봉인했다는 게 정말이었군. 이건 꽤 오래전에 잃어버린 물건이 아니었던가?”

“맞습니다.”

로우는 못마땅한 마음을 눌러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힐데가르트 공녀님께서 다시 찾아오셨기에 봉납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힐데가르트.”

튀어나온 익숙한 이름에, 카라딘의 미간이 힘껏 구겨졌다.

“그놈의 힐데가르트, 힐데가르트……. 참 대단한 여자야. 안 그래?”

“예?”

그때였다. 카라딘은 거침없이 제단 앞에 놓인 성검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로우의 안색이 급변했다.

“전하, 물의 제단에서 물러나십시오! 강력한 봉인이……”

텅!

접촉을 튕겨내는 소리와 함께, 카라딘의 손바닥 안쪽이 새빨갛게 부었다.

로우는 휴우, 하고 한숨을 쉬며 그를 말렸다.

“성검은 신성력으로 봉인해 두었으니 손을 대셔선 안 됩니다. 죄송하지만 그만 돌아가 주시지요.”

“그럴 수야 있나.”

대답이 들려온 건 성소의 입구 부근이었다.

로우는 문득,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가 잠잠해졌다는 걸 깨달으며 고개를 돌렸다.

“애타게 찾아왔던 물건이 눈앞에 있는데. 생선을 앞에 두고 돌아가는 고양이가 어딨겠어?”

“……누구십니까?”

남자는 성소의 문간에 서서,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한 채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입가에는 웃음이 만연했다. 그리고…….

“이런 걸 체크 메이트라고 하지?”

파지지직!

검은 번개가 카라딘의 손끝에서 뻗어 나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로우는 거품을 문 채, 끄륵끄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이 인간, 살아 있는 거지?”

“물론입니다.”

“이 마력이라는 거…… 정말 신기한 힘이잖아?”

카라딘은 검은 번개와 마력의 영향으로 찌릿찌릿한 볼을 매만지며 웃었다.

그의 양쪽 귓가에는 귓불에 딱 달라붙는 까만색 귀걸이가 채워져 있었다.

“재밌네.”

“귀걸이가 마음에 드십니까? 로바르네도 흥미를 보였지요.”

하지만 네 어미는 너처럼 멍청하지 않아서 경계했지만.

단테는 입 밖으로 나올 뻔한 말을 꾹 삼킨 채 화사하게 웃었다.

“그럼 약속대로 이제 성검을 가져다주시겠습니까?”

“……그거 말인데.”

카라딘은 단테가 성소 안으로 걸음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꼈다.

“마음이 바뀌었어.”

“…….”

여우처럼 미소 짓던 단테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지려던 찰나.

“이렇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힘이라면 조금 더 다루고 싶어.”

“아하, 그런 거라면.”

단테의 웃음이 다시 돌아왔다.

“좋습니다.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직접 그 몸에 마력을 채워드리지요.”

“정말이야?”

“예, 물론입니다. 필시 전하께 백방으로 도움이 될 만한 힘이니까요.”

단테는 화사하게 웃으며 거짓을 읊조렸다.

“그럼 이제 성검을 가져다주시겠습니까?”

* * *

데뷔탕트 무도회가 끝난 뒤.

출입자를 통제했지만 이미 카라딘과 단테는 자취를 감춘 뒤였다.

막시밀리언이 골치 아프다는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경비를 두 배는 늘렸어야 했습니다.”

“글쎄. 그런다고 해서 방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을 것 같다.”

힐데가르트가 고개를 저었다.

성검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카라딘에 의해 도둑맞았다.

성소에는 이미 충분한 인원을 배치해 두었다.

그럼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건, 나름 단테가 계획을 세워 접근했던 탓이다.

우선 성소를 지키던 병사 중 한 명이 잉그렛과 마찬가지로 난동을 부린 탓에 그쪽으로 경비가 쏠렸다.

‘그 틈을 타서 성검을 빼돌릴 줄이야.’

성소에 있던 사제, 로우 또한 카라딘의 공격을 받은 뒤 강력한 마법으로 정신을 잃고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제가 부족했던 탓입니다. 설마 이런 일이 황궁에서 버젓이 일어나다니…….”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야.”

힐데가르트는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저었다.

“수배령을 내려야겠다. 막스, 바로 연락을 돌리렴.”

“예. 즉시 검문소에서 비슷한 사람을 발견한 즉시 추적해서 수도로 압송하도록 명하겠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차가웠기에, 힐데가르트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손자를 수배하는 게 내키지 않다면 납치를 당한 걸로 이야기를 퍼뜨려도 괜찮아.”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사태를 속이고 내버려 두는 게 가장 위험하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

“카라딘은…… 자신이 정확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도요.”

플람의 몸속에 기생한 마성신이 기어코 카라딘을 회유해서 성검을 손에 넣은 건 확실하다.

쓸모를 다했을 때, 카라딘이 어떻게 될까?

두 사람 모두 함부로 입에 담을 수는 없을 만큼 끔찍한 상상이었다.

“막스. 너무 절망적인 생각만 하는 건 그만두렴.”

“……예. 카라딘은 성검을 탈취하여 신원 불명의 마법사와 도주 중인 것으로 수배하겠습니다. 즉시 검문을 강화하고 기사단에서도 인원을 차출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해. 나는 나대로 알아보고 성검을 탈환하겠어. 하던 일은 마저 마무리해야지.”

“……죄송합니다, 스승님.”

그 사과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황제로서 부족한 자신을 책하는 의미이자, 손주를 둔 조부로서의 부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한탄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사과하는 일만 늘어나는 모양이구나. 그만두렴. 네게 사과를 받아 봤자 아무 의미 없어.”

“하지만…….”

“됐대도.”

힐데가르트는 제 앞으로 도착한 편지 한 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잘하면……. 사라진 두 사람과 성검의 행방을 쫓는 일이, 조금 수월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신기하게도 힐데가르트의 말대로 되었다.

며칠 뒤, 황궁에서 머무르는 힐데가르트 앞으로 이베르타 학술원에서 청년 한 명이 찾아왔다.

사라진 행방을 추적할 결정적인 단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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