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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138)화 (138/166)

135화

“라비엣 공녀님이 오지 않으신 게 아쉽네요. 매우 바쁘신가.”

“이베르타 공작령에서 일이 많으신 모양이에요. 가여우신 분.”

“그래도 올해로 열여덟이시니 가문을 물려받으시겠죠. 다시 만나면 공작 각하라고 불러야겠네요.”

무도회로 돌아온 힐데가르트의 곁에 찰싹 달라붙은 건 유시스였다.

레디스와 정식으로 혼담이 오간 뒤로, 유시스는 그녀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었다.

오늘만 해도 힐데가르트의 데뷔탕트를 위해 일찍부터 찾아와 아는 이들을 모두 소개해 준 그녀였다.

힐데가르트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자, 유시스는 눈치껏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힐데도 만나보면 좋아하게 될 거예요. 이야기가 잘 통하시는 분이거든요.”

그 노력이 퍽 귀여워 보였기에, 힐데가르트는 피식 웃었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라면 몇 번 나누어본 적이 있어요. 2년 전 작위 계승식 때 오셨거든요.”

“아, 맞아. 그랬었죠. 참!”

선대 이베르타 공작의 적녀인 라비엣과 숙부인 로렌조는 계승권 문제로 벌써 몇 년이나 다투고 있는 관계였다.

미하일 아카락시아의 작위 계승식 때도 두 사람이 따로따로 마차를 타고 왔을 정도였으니.

유시스는 아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잉그렛 양은 어딜 가신 거죠? 그분도 라비엣 공녀님과 절친하신 분이거든요. 아까까지만 해도 여기 계셨던 거 같은데…….”

“시녀와 함께 화장을 고치러 투왈렛 룸으로 갔어요.”

힐데가르트는 부채를 접은 뒤 유시스와 함께하던 자리에서 물러났다.

구두를 신고 너무 오래 서 있던 탓에 발끝이 뻐근했다.

“저도 잠시만 실례할게요.”

“쉬다 오시려고요? 저도 같이 갈까요?”

“괜찮아요. 한 시간쯤 뒤에 다시 만나요, 유시스.”

“알겠어요!”

무도회장을 나선 힐데가르트의 걸음이 투왈렛 룸이 있는 별궁의 복도로 향했다.

투왈렛 룸이 마련된 별궁에는 초대장을 받은 가문만 사용할 수 있도록 문 앞에 가문의 이름이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다.

아카락시아가 배정받은 투왈렛 룸은 상당히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가는 데만 해도 시간이 걸린다니깐.’

그렇게 생각하며 걷고 있을 때였다.

‘뭐지?’

어디선가 쿵, 쿵 하고 누군가가 문을 정신없이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요! ……! 여기……!”

힐데가르트가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돌아보았다.

마침내 비명이 선명하게 들리는 곳에서 걸음이 멈췄다.

“도와주세요! 밖에 아무도 없어요? 아무나 좀…….”

“괜찮으세요?”

“아…… 네! 밖에 계신 분, 저 좀 꺼내주세요!!”

소리의 근원지는 다름 아닌 콘스탄체 후작가의 투왈렛 룸이었다.

투왈렛 룸의 손잡이에는 안쪽에서 열 수 없도록 촛대가 끼워져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세게 두드렸는지, 손잡이와 촛대가 모두 비틀려 있어서 힘으로 빼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힐데가르트가 손에서 마력을 일으켰다.

“문 안쪽으로 물러나세요!”

쿵!

문에 달린 손잡이가 날아가자 복도에 요란한 소리가 나며 촛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안쪽에서 문을 열고 나온 시녀가 울먹이며 연신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힐데가르트 공녀님이시죠? 정말 감사합니다…….”

“이게 무슨 일이죠?”

힐데가르트는 다시금 팻말을 확인했다. 콘스탄체 후작가의 투왈렛 룸이 분명했다.

“잉그렛 영애는 어딜 갔죠? 좀 전까지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게…….”

시녀는 잠시 말하기를 머뭇거렸다.

“공녀님, 아가씨가…… 아가씨가 이상해요. 갑자기 그분답지 않게 난폭해지셔서…….”

“난폭해져요? 잉그렛 양이?”

힐데가르트가 의아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짧게나마 이야기를 해본 잉그렛은 난폭한 기질 하나 없는 기품 있는 숙녀였다. 도무지 시녀를 가두어둘 만한 성격이 아니었는데…….

그때였다. 힐데가르트의 귓속으로 이번에는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어찌나 섬찟한 비명이었는지, 그녀는 물론이고 콘스탄체 후작가의 시녀 또한 안색이 창백해질 정도였다.

힐데가르트는 단번에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들었다.

‘로빈!’

그녀가 사색이 된 시녀를 향해 말했다.

“당장 가서 사람을 불러오세요! 복도 끝에 가면 노바 경이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을 불러오세요!”

힐데가르트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구두에 갇힌 발이 욱신거렸으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투왈렛 룸까지 달렸다.

힐데가르트가 힘껏 문을 밀었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틈을 통해 자세히 보니 이번에는 안쪽에서 촛대를 끼워놓았을 뿐만 아니라…….

‘결계가 쳐져 있어?’

경비병이 검으로 내려쳤다면, 칼날 채 부러졌을 정도의 결계였다.

안쪽에서 다시금 로빈의 비명이 들려오자, 힐데가르트는 더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의 손으로 새하얀 마력이 모였다.

파사사삭!

콰앙!

격렬한 소리와 함께 결계가 깨지고, 이어서 손잡이가 완전히 부러졌다.

“로빈!”

“아가씨!!”

문을 열고 들어간 힐데가르트가 가장 먼저 본 건, 가위를 내려찍기 위해 들고 있는 잉그렛이었다.

로빈은 그녀를 피해 소파 뒤로 몸을 피했는데, 천 소파의 찢긴 자국을 보아하니 잉그렛이 몇 번 가위를 내려찍은 게 분명했다.

“잉그렛 양, 손에 든 가위 내려놓아요!”

“…….”

“잉그렛 양! 제 말이 안 들리나요? 잉그렛 콘스탄체!”

힐데가르트가 아무리 소리쳐도, 잉그렛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잉그렛은 몇 초가 지나고 나서야, 힐데가르트를 인지한 인형처럼 고개만을 비틀었다.

가위를 든 그녀의 팔과 몸은 여전히 로빈을 향하고 있었으나, 목과 머리만 직각으로 꺾여 저를 바라보는 광경은 섬뜩하기 짝이 없었다.

‘이상해. 게다가 저 모습은 마치…….’

힐데가르트는 침을 삼켰다.

“로빈. 내가 신호를 하면 이쪽으로 와.”

“아가씨, 하지만…….”

“괜찮아. 너 하나 지켜줄 힘은 충분하니까!”

만약 자신이 예상하는 게 맞다면, 해결하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나, 둘…… 뛰어!”

신호와 함께 로빈이 그녀 쪽으로 달려오자, 잉그렛 또한 가위를 든 손으로 그녀를 내려찍기 위해 함께 움직였다.

그 찰나의 순간, 힐데가르트의 손에서 날아간 마력탄이 실내의 조명을 모조리 박살 냈다.

사방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 순간 분명히 드러났다. 잉그렛의 목 뒤로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실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아가씨!”

코앞까지 다가온 잉그렛이 가위를 내려찍으려던 순간이었다.

힐데가르트는 절묘하게 그녀의 손목을 쳐내서 흉기를 떨어뜨리게 한 다음, 손목을 붙잡아서 제품으로 잡아당겼다.

균형을 잃은 잉그렛이 구두를 신고 있던 발목을 접질리며 기우뚱거린 순간.

“잠깐만 잠들어 있어요, 잉그렛 양.”

서걱!

힐데가르트의 마력이 거미줄처럼 늘어져 있었던 은색 실선을 싹둑 잘라냈다.

정신을 잃은 잉그렛은 언제 난동을 부렸냐는 듯, 정신을 잃었다.

그녀가 잠들자 방금까지 일어난 일이 모두 꿈이었던 것 양 조용했다.

“로빈. 무사해?”

“아가씨…….”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거지?”

로빈이 울음을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복도에서 정신없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공녀님!!”

“노바. 다행이다. 시간 맞춰서 왔네.”

“잉그렛 영애까지……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난 괜찮으니까, 우선 잉그렛 영애를 옆방으로 옮겨줄래?”

힐데가르트는 엉망이 된 투왈렛 룸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 * *

혹시 몰라 연회장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불려온 황실 의원은 쓰러진 잉그렛 영애에게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며 진찰을 마쳤다.

다친 곳 하나 없는 건 힐데가르트도 마찬가지였으나 노바와 로빈의 아우성에 못 이겨 그녀도 진찰을 받았다.

로빈만이 가위에 스치며 입은 상처를 치료를 받았다. 그동안 힐데가르트가 구두를 벗으며 말했다.

“이 일은 당분간 우리만의 비밀로 해요. 잉그렛 영애가 데뷔탕트 무도회에서 가위를 들고 사람을 찌르려 했다는 소문이 나면 큰일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힐데가르트가 구해준 시녀가 연신 고개를 꾸벅거렸다.

엄연히 아카락시아 공작가에서 나서서 따질 수 있는 대형 사고였다.

힐데가르트가 나서서 사전에 입을 맞추려 하니 고마움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상해요, 정말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으셨던 분인데…… 사용인에게 손 한 번 올린 적 없으신 아가씨세요. 그런데 왜…….”

시녀가 훌쩍거렸다.

“아가씨가 눈을 뜨실까요?

“너무 걱정하지 말렴. 금방 눈을 뜰 테니까.”

힐데가르트는 소파에 눕혀진 잉그렛을 가만히 살폈다.

그리고…….

‘역시. 잘못 본 것도, 우연의 일치도 아니었어.’

쓰러진 잉그렛의 목 뒤에 새끼손톱만 한 멍 자국이 있었다.

흑마법 중 하나인 검은 독거미의 저주.

주인의 손길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인형술에서 착안했다는 이 마법은, 마력을 가느다란 실처럼 뽑아서 상대의 행동을 조종한다.

‘이론이야 간단하지만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야.’

이런 게 가능한 사람은, 흑마법사는 손꼽히게 적다.

‘단테.’

수도로 들어왔다는 테리오 총괄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공녀님. 성문을 닫고 데뷔탕트 무도회의 출입자를 통제하는 게 좋을까요?”

힐데가르트의 곁에 서 있던 노바가 조심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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