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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115)화 (115/166)

112화

미하일의 반응은 걱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나 힐데가르트는 저도 모르게 표정이 굳는 걸 느꼈다.

애써 끌어 올린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힐데 네가 혼자서도 다 잘하니 오빠가 도와줄 게 없네.”

“항상 응원해 주고 있는 거 알아. 그것만으로도 나한텐 큰 도움이지.”

미하일이 하하, 웃더니 팔짱을 낀 채 책상에 기댔다.

그가 힐데가르트를 가만 보았다.

“힐데. 안 그래도 한번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응? 뭘?”

“오빠는 널 보호하고 책임지는 사람이지만, 나는 마법사도 아닌 데다 이동 게이트 사업은 네가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네가 맡아야 해.”

호수처럼 아름다운 눈이 그녀를 담았다.

“정말 할 수 있겠어?”

“……내가 못 미더워?”

“그게 아니지. 걱정되는 거야. 오빤 항상 네가 걱정이야.”

힐데가르트는 픽 웃어버릴 뻔했다.

오빠들의 특성이라도 되는 걸까?

레온하르트에 이어 미하일까지 저렇게 애틋한 눈으로 저를 보고 있으니 웃음이 흘렀다.

“당연히 할 수 있지. 내가 감당하지 못할 일이라면 시작도 안 했을 거야. 나 못 믿어?”

“믿어. 당연히 믿지. 다만…….”

미하일은 잉크가 마른 편지를 곱게 접으며 말했다.

“요번에 공회에 다녀왔을 때 그런 생각을 했거든. 네가 갑자기 어른스러워진 건…… 나라도 오빠들을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애쓰는 게 아닐까…… 하고.”

“……왜 그런 생각을 해.”

“그러게, 네가 예전이랑 달리 너무 변해서 그런가?”

심장이 쿵, 하고 땅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침착하자.’

미하일의 말은 당연한 것이다.

일일이 반응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테니 태연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짐하면서도, 힐데가르트는 가슴 한구석이 쓰라렸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도, 그들의 눈에는 제가 ‘진짜’ 힐데가르트가 변한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

“아, 미안해. 너한테 못 미더운 오빠인가 싶어서 자학하려는 게 아니야. 그런 사람으로 남지 않게, 오빠도 열심히 할게.”

“미하일 오빠.”

“응?”

“이런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나하고 약속해 줄래?”

힐데가르트는 미하일이 적은 편지를 물끄러미 바라본 뒤 말했다.

“이동 게이트 사업이 잘 풀린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카락시아 공작가에 빌붙으려 드는 가문이 많을 거야.”

“아…… 응. 무슨 의미인지 알아.”

썩어도 준치라고 아카락시아는 제국에 넷뿐인 공작가다.

핏줄이 명분이 되는 세상에서 귀족 신분을 원하는 자들은 끝도 없이 많다.

“우리 가문을 우습게 봤던 가문 중에서, 태도를 바꾸는 가문이 나올 거야. 난 그런 가문하고는 얼굴도 마주하고 싶지 않아.”

“…….”

미하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지참금이 많은…… 좋은 혼담을 들고 온다 해도, 그런 가문과는 어떠한 연도 맺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다행히 미하일은 재빨리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다.

“아무리 좋은 혼담이 들어오더라도, 난 너희의 의사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

“…….”

“힐데 네게 맡겨둔 가주 반지를 두고 약속할게. 이러면 믿을 수 있지?”

“……응.”

힐데는 살며시 웃으며 미하일이 내민 새끼손가락에 제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런데 엄지손가락을 꾹 마주하며 도장을 찍기 직전이었다.

“근데 있잖아…….”

“응?”

“혹시, 힐데 너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오빠한테 꼭 말해줘야 해?”

“갑자기 무슨 소리야?”

힐데가르트는 잠시 키스케의 얼굴이 떠올랐으나,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오빠가 성격은 어떤지, 혹시 인성에 결함은 없는지. 안 좋은 소문은 없었는지, 너한테 해가 될 만한 놈인지 꼭 알아볼 거야…….”

“됐네요!”

“말 안 해줄 거야?”

“그런 사람 생길 일 없어. 일이나 마저 해요, 얼른.”

그녀는 미하일의 손을 꽉 잡으며 엄지손가락을 마구 눌렀다.

“알려줘야 해, 응? 힐데!”

“네에, 네에!”

건성으로 대답한 힐데가르트는 영 이런 화제가 거북하다는 듯 재빠르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 * *

“힐데!”

서재를 막 빠져나왔을 때였다.

1층으로 내려오자, 현관 홀에 있던 아레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안 그래도 찾아가 보려 했는데 잘됐네요!”

“아레스…… 설마 벌써 가려고요? 점심이라도 같이하고 가요!”

“아니에요.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래도 이대로 보내면 안 되죠. 조금만 기다려요. 먹을거리를 준비하라고 할게요.”

힐데가르트는 아레스가 거절할 틈도 없이 하녀에게 가져갈 수 있는 음식과 과일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했어요, 힐데.”

“별말씀을요.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그땐…….”

아, 그렇지. 키스케가 떠나면 다시 볼 일이 없겠네.

힐데가르트의 말이 잠시 멈췄지만, 곧바로 아레스가 웃으며 뒷말을 받았다.

“그땐 우리끼리 재밌게 놀아요. 키스케만 쏙 빼놓고 놀면, 그 녀석 안 그러는 척하면서도 엄청 부러워할걸요?”

“좋아요.”

“그럼 전 이만…….”

“잠깐만요 아레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네? 어떤 건데요?”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소매치기도 모자라 황실에서 사자가 와서 제대로 이야기할 틈이 없었다.

“제가 마법사인 건 알고 계시죠?”

“물론이죠.”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혹시 몬테를로 가문에 마탑주 자리를 이어받았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요?”

아레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왜 그런 걸 물어보냐는 얼굴로 힐데를 빤히 보았다.

“제가 개인적으로 마탑주를 찾아야 할 일이 있어요. 그런데 몬테를로 사람이라는 거밖엔 몰라요. 연락을 넣어봐도 감감무소식이고, 편지 주소지를 찾아가 보니 술집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오타가 알려준 주소로 사람을 보내보았으나, 마탑은커녕 낡은 술집 하나가 전부였고 그마저도 영업 정지를 당한 상태라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레스가 볼을 긁적였다.

“안다면 아는데, 저하고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어요. 정확히는 가문하고도 연락이 끊겼죠.”

“마탑주 당사자를 아는 거예요?”

“네. 저희 사촌 형이거든요.”

“……!”

힐데가르트가 눈을 크게 떴다.

“가문보다는 마법이 좋다면서 집을 뛰쳐나갔는데, 동전 한 닢 쥐여주지 않았거든요. 금방 돌아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대로 독립해 버렸죠.”

아레스가 킥킥 웃었다.

“덕분에 큰아버지 혈압이 꽤 올라갔을 거예요.”

“그건…… 같이 웃긴 좀 힘든 이야기네요. 혈압은 괜찮으시고요?”

“아들을 안 보니까 더 올라갈 것 같다고 찾아오라 하셨는데, 이미 추적 불가예요. 저희 가문에서는 포기했달까?”

“…….”

설마 가문 내에서도 내놓은 자식일 줄이야.

아레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잘 먹고 잘살 괴짜라서 걱정은 안 해요. 그런데 형은 왜 찾으시는 건데요?”

“마법으로 도움을 좀 받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어떤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도와주진 않을 거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혹시 연락이 닿으면 저에게 알려주실 수 있어요?”

“……그렇게 연락이 필요한 일이에요?”

“네. 저한테는 절실해요.”

힐데가르트의 눈을 가만 들여다본 아레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저도 찾아볼게요. 그리고 한 가지 좋은 걸 알려줄게요. 귀 좀 대볼래요?”

이어지는 아레스의 말에 힐데가르트의 얼굴은 갈수록 일그러졌다.

“……정말 그런 말로 마탑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요?”

“네. 말했잖아요, 괴짜라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면 쳐다도 안 보는 사람이라니까요.”

“알겠어요. 기억해 둘게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레스.”

“별말을요.”

아레스가 그녀의 손등 위에 입맞춤했다.

* * *

키스케와 함께 떠나는 아레스를 배웅한 힐데가르트는 겉옷을 더욱 껴입었다.

그녀가 손끝을 호호 불며 닭살이 오소소 돋아난 팔을 비볐다.

“춥다. 진짜 춥네.”

“그래? 생각보단 날이 따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키스케 넌 이 정도 추위가 아무렇지도 않아?”

키스케는 멀뚱히 그녀를 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내 손도 차가우니까 같이 잡으면 되겠네.”

“……뭐니, 이거? 설마 손잡으면 따뜻해질 거라는 그런 뻔한 말을 할 생각은 아니겠지?”

키스케의 볼이 조금 빨갛게 부었다.

“나는 뻔한 말밖에 배운 적이 없어. 신선한 게 좋으면 앞으로 연습할게.”

“우리 전하가 언제부터 이렇게 노력파였어?”

“어제부터.”

“심지어 살짝 뻔뻔해지기까지?”

힐데가르트가 기가 막힌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솔직히 말하면, 힐데가르트는 키스케의 말에 당혹스러움을 느꼈을지언정 두근거리거나 연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도 사람이었다. 저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위해주는 상대를 못 알아볼 리 만무했다.

“키스케.”

“응?”

“넌 내가 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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