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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105)화 (105/166)

102화

그녀는 곧바로 눈앞의 상대가 자신의 언짢아하는 반응을 즐기고 있단 걸 알았다.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

“……네가 날 만나고 싶었다고?”

힐데가르트의 건조한 목소리에 희미한 비웃음이 실렸다.

“그거 웃기네. 네가 진짜 마성신이라면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럴 리 없기는. 넌 내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여자잖아. 당연히 한 번쯤은 만나서 이야기해 보고 싶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고개를 갸웃거린 단테의 입가에 곧 웃음이 맺혔다.

“그리고 단테, 라고 불러줬으면 하는데.”

“헛소리. 너와 친한 척 대화 나눌 생각 따윈 없어.”

“매정하긴.”

그가 힐데가르트를 향해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다.

“어때? 네 제자의 끔찍한 집착으로 얻은 새로운 삶은 즐거워?”

“…….”

“으음? 놀라질 않네…… 재미없게.”

힐데가르트의 밋밋한 반응에 그가 입을 삐죽였다.

“그럼 이것도 알아? 플람이 널 되살리는 데 어떤 영혼을 썼는지?”

“……조용히 해.”

“그 몸.”

“네 말 따윈 안 믿어!”

“진짜 힐데가르트.”

단테는 손가락 끄트머리로 그녀의 몸을 쿡 찔렀다.

“네 몸의 진짜 주인. 진짜 힐데가르트가 널 되살리기 위해 갈려 나간 거야.”

“…….”

기어코 힐데가르트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단테는 황홀한 얼굴로 웃었다.

“드디어 예쁜 표정을 보네. 최고야. 그 얼굴을 꼭 한번 보고 싶었어.”

저질스러운 말에 힐데가르트가 그를 노려보았지만,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 말은 과연 사실일까?

사방을 뒤덮은 어둠처럼, 진실을 가려내기 어려운 말이다.

‘진짜 힐데가르트가 흑마법의 제물로 쓰였다고? 그것도 내 사자 소생을 위해서…….’

그게 정말이라면 힐데가르트가 제일 피하고 싶었던 사태가 벌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고개를 저은 건 한참 뒤였다. 힐데가르트가 그를 똑바로 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럴 리 없어. 거짓말을 하는구나.”

부정하는 목소리가 단호했다.

단테의 표정이 묘해졌다.

“플람은 나를 잘 알아. 그런 짓을 했다간 내가 평생 용서하지 않을 걸 아는 애란 말이야.”

다른 누구도 아닌 플람이라면, 최소한 힐데가르트가 용납하지 못하는 선을 이해하고 있을 사람이다.

“네 말은 믿을 수 없어. 애초에 플람은 흑마법에는 손도 대본 적 없고, 증오하는 애였다고!”

“아…… 믿고 싶은 말만 믿는 게 인간의 특징이었지? 너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는 한 모양이야?”

단테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면 좋을 대로 해.”

“플람에게 무슨 짓을 했지? 그게 아니라면 네가…….”

“아무 짓도 안 했어. 우린 서로 원하는 걸 제공하기로 한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단테는 제 가슴을 툭툭 치며 투덜거렸다.

“오히려 한 몸을 공유한 채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성가신 관계라고 할 수 있지.”

“주도권 싸움?”

“그 애는 나에게 육신에 머무르는 걸 허락했고, 난 그 애가 간절히 원하던 널 다시 불러올 수 있도록 해주었지.”

“네 몸 안에 플람이 있단 말이야?”

“그래. 틈만 나면 제 몸을 차지하려고 얼마나 아우성인데. 편법까지 써가면서 안간힘이라니까?”

단테는 갸륵하기까지 한 시도라며 마른 웃음을 터였다.

눈앞의 상대를 보며, 힐데가르트는 확신했다.

역시, 플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랑케르트에게 협력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성검을 찾은 건 네 짓이었구나. 네가 랑케르트를 상대로 벌인 짓이었어.”

“그래…… 맞아.”

“어쩐지 이상했어. 그럴 패기도 없는 녀석들이 무슨 대책 없는 짓을 벌였나 했더니…….”

캄파넬에 있는 성검 하나를 위해, 랑케르트는 자신들이 내주었던 쓸모없는 땅을 다시 찾아야 할 신세가 된 것이다.

“성검을 신전에 완전히 봉납하지 않은 게 실책이었고.”

단테는 슬쩍 웃었다.

성검을 신전에 봉납하지 않았던 탓에, 그릇에 갇힌 마성신의 영혼이 밖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마성신의 일부가 플람의 몸을 차지했던 거였어.’

하지만 차지한 뒤에도 즉시 몸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는 없었기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게 분명했다.

“나도 이렇게 반푼어치의 힘을 가지고 부활할 생각은 없었어, 힐데.”

“친한 척 부르지 마. ”

“정말이야. 네가 날 봉인한 뒤로 캄파넬에는 지나가는 들개 새끼 하나 구경할 수 없는 곳이었단 말이야. 도무지 써먹을 만한 놈이 없었지 뭐야.”

단테는 푸념하듯 투덜거렸다.

“그런데 운명처럼 네 제자가 내 앞에 나타난 게 아니겠어?”

단테는 방치된 성검에서 흘러나온 영혼 일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스승이 죽었던 곳을 무작정 파보며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던 제자는 유혹하기에는 최적이었다.

매일 죄책감에 빠져 익사할 것 같은 플람이었으니까.

원하는 것을 줄 테니 저에게 몸을 일부를 내어달라며 살살 구슬리는 건 손쉬웠다.

“성검을 차지하면 그다음엔? 부활이라도 할 셈이야?”

“물론이지! 겸사겸사 성가신 검 따윈 두 동강 내야지. 다시 봉인당하는 건…… 으으, 상상만 해도 지긋지긋해.”

팔짱을 낀 단테가 팔에 돋아난 닭살을 털어내는 시늉을 했다.

인간 흉내를 내는 단테를 볼수록 가슴에서 차갑게 불꽃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힐데가르트의 눈썹이 삐딱하게 올라갔다.

“원대한 계획이지만 유감이야. 성검은 내가 먼저 회수할 거야.”

이번에야말로 성검을 신전에 봉납하고 플람에게 기생하는 마성신의 분신을 완전히 떼어놓으리라.

하지만 힐데가르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그가 코웃음 쳤다.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물론이지.”

“그럼 내가 왜 이 모든 일을 말해준 거라고 생각해?”

“…….”

힐데가르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미 플람의 육체에 안착한 내가 사라질 일은 없기 때문이야.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거짓말하지 마! 육체와 맞지 않는 영혼이 비집고 들어가면 소멸하는 쪽은…….”

“그런 상식적인 경우는 너나 나에게 해당하지 않는다는 걸 아직도 이해 못 했어?”

와르르 쏟아지듯 웃음을 터뜨린 단테가 그녀에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나 힐데가르트가 그 이상 다가오지 말라며 턱짓하자, 단테는 다시금 뒷걸음질 쳤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를 걱정하는 게 좋을걸?”

“반대의 경우라니?”

“이래 보여도 마성신의 분신이거든.”

단테는 긴 머리카락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돌돌 말리며 잡아당겼다.

그는 플람이 이상하리만치 머리카락을 기르는 데 집착한다며 투덜거렸다.

“나도 이번에 안 건데…… 내 영혼과 얽힌 인간은 조금씩 인간성을 잃어가는 것 같거든.”

“…….”

“가엽게도…… 나약한 영혼들이지.”

순간, 힐데가르트는 동굴에서 보았던 플람의 이질적인 모습을 떠올렸다.

‘막시밀리언은 그만하면 오래 살았으니 죽어도 괜찮지 않나……?’

힐데가르트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단테의 말은 무서우리만치 아귀가 맞아떨어졌고, 거짓말을 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 그의 말에는 거짓이 한 점도 없는 건 아닐까.

한 번 죽은 저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 플람이 다른 이의 영혼을…….

“플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

“설령 다시 만난다 해도, 그게 네가 알던 제자일 것 같아? 만난다면 용서는 할 수 있고? 응?”

힐데가르트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입술을 짓씹으며 감정을 삼킨 그녀였지만 손끝이 떨리는 것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

단테는 황홀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웃음을 터뜨렸다.

“최고야……. 그 표정. 영혼을 구석구석 핥아서 비참함을 맛보고 싶을 만큼 짜릿해.”

“역겨운 소리에 잠이 다 달아날 것 같네.”

힐데가르트의 목소리에서는 분노가 한 자 한 자 묻어 나왔다.

“널 반드시 없앨 거야.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깡그리 지워버릴 거야!”

“네 분노와 비탄이 아름다운 오페라 같아서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겠어.”

단테의 발밑에서 진득하고 섬뜩한 기운이 기어올랐다.

“사람들은 모두 죽지 않기를 바라지만, 의외로 죽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살지.”

“…….”

“다시 얻은 삶이 너에게 축복인지 저주인지 물을 필요도 없겠네.”

감미롭게 속삭인 남자는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어둠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 * *

숲으로 뛰어들었던 때와 달리,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플람에 대한 의문은 제법 풀렸으나, 아직도 막막한 심정은 어쩔 수 없었다.

진짜 힐데가르트의 영혼을 제물 삼아 저를 다시 살린 거라고?

‘거짓말일 거야. 분명…….’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라면 어떡하지.

터벅터벅 걸어가던 힐데가르트가 고개를 떨궜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알아서는 안 될, 차라리 몰랐으면 했던 비밀을 꽝꽝 언 얼음 같았다.

가슴에 담아두니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아려와서 몸서리가 쳐진다.

“이제 오셨습니까, 공녀님?”

“……테리오 총괄. 아직 돌아가지 않으셨어요?”

“물론입니다. 공녀님이 혼자서 가버리셨는데 그대로 모르는 척 가버리면 그게 사람입니까?”

테리오는 그녀를 본 즉시 재킷을 벗어 건넸다.

“날이 찹니다. 겉옷도 없이 밖을 돌아다니실 계절이 아니에요.”

“고마워요. 설마 기다리고 계셨을 줄은 몰랐는데.”

“유능한 마법사이신 건 알고 있습니다만…… 너무 무모하게 행동하진 말아주세요.”

힐데가르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빙긋 웃었다.

“잘 오셨습니다. 마침 키스케 전하께서 눈을 뜨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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