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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95)화 (95/166)

92화

“응. 예상대로지?”

힐데가르트가 씨익 웃었다.

“자세히 설명하러 갔더니, 오히려 그쪽에서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고. 수사에 도움이 될 거 같다며 기대하던걸?”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건, 역시 물건에 담긴 기억을 볼 수 있는 기억 추적 마법 아티팩트였다.

“증거물에 담긴 기억을 볼 수 있으면, 수도의 미제 사건도 많이 줄어들 테니까 말이야.”

“그, 그거야…… 당연히 그렇죠……. 네…….”

“그렇게 놀랄 일이야?”

“놀랄 일입니다!”

이오타가 단호하게 말했다.

“수사관은 황실 경찰 중에서도 극소수의 엘리트만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검증되지 않은 물건을 취급하지 않는다며 쫓아낼 줄 알았는데…….”

“세상에서 미제 사건을 가장 해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수사관이니까. 테리오 영식이 큰 결심을 한 거지.”

이번 사건처럼, 자칫 진상이 흐려질 뻔한 사건에서 아티팩트는 큰 힘이 되어주리라.

“그래도 너무 좋아할 거 없어. 운이 좋기는 했지만, 이제 막 첫발을 뗀 수준인걸?”

입에 침이 바싹 마르는 이오타와 달리, 토끼를 쓰다듬는 힐데가르트는 태연했다.

“적어도 오천 개쯤 주문이 들어와야 고생하는 보람이 있지 않겠어?”

“오, 오천 개요?”

이오타는 멍하니 힐데가르트를 응시했다.

‘이분은 대체…….’

힐데가르트가 했던 두 번째 약속.

그건 바로 그녀의 조언에 따라서 아티팩트를 개량한다면, 새로운 판매처를 뚫어주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오타는 첫 번째라면 모를까, 두 번째는 지키는 게 쉽지 않은 약속일 거라 생각했다.

아티팩트를 만든 이오타조차도 이런 물건을 누가 필요로 할지는 떠올릴 수 없었으니까.

“어쨌든 잘 됐지? 네가 만든 마석 아티팩트며, 마법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거니까.”

“……아.”

그 순간, 이오타는 깨달았다.

‘공녀님과 나의 차이는…… 이거였구나.’

이오타는 아티팩트를 만드는 동안, 이게 누구에게 유용할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저 질 좋은 아티팩트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석에 새겨 넣기 좋은 주문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연구했을 뿐이다.

‘난 물건만 보고, 사람은 보지 않았던 거야.’

반면 힐데가르트는 달랐다.

그녀는 처음부터 마석 아티팩트가 어떻게 하면 귀족가 자제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을지 생각했다.

물건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움직였기에, 비로소 수사관 총괄 같은 사람과 연이 닿았던 거다.

설령 수사관 총괄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시간을 들여 마석 아티팩트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서 약속을 지켰으리라.

“이오타? 왜 그래?”

“……공녀님은 정말 못 당하겠습니다.”

강렬한 깨달음이었다.

폐쇄적인 엘리사 일족에서 자라난 이오타였다.

힐데가르트가 아니었다면, 혼자서는 도저히 돌파구를 찾지 못했으리라.

‘어쩌면 우리 일족은…… 너무 오랫동안 마석 광산에서 안주하고, 틀어박혀 있었던 걸지도 몰라.’

이오타가 주먹을 꾹 쥐었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 공녀님이 계시니까.’

그의 눈이 다부지게 빛났다.

“첫 주문은 백 개밖에 안 돼. 생각보단 적은 숫자지만 실망하진 말고.”

일반적으로, 아티팩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힐데가르트의 조언에 따라 개량한 아티팩트는 구매할 때 마력각인 절차를 거치면,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쓸 수 있는 아티팩트였다.

테리오 리브는 그 점을 특히 높이 평가했다. 그 자리에서 수표를 써 줄 기세였다.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보겠습니다. ……감사해요. 이건 전부 공녀님 덕분입니다.”

“오 대 오야.”

“네, 수익은 정확히 반반으로…….”

“아니, 그거 말고.”

힐데가르트가 고개를 저었다.

“자리를 깐 사람은 나지만, 직접 마석으로 아티팩트를 만들고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건 이오타 너잖아.”

청보랏빛 눈동자가 다정하게 빛났다.

“절반은 네 힘으로 해낸 성과야. 전부 내 덕이라니, 말도 안 되지.”

“……아.”

“나도 고마워. 네 덕분에 레디스의 의혹을 깔끔하게 벗겨낼 수 있었거든.”

만약 이오타가 아티팩트를 빌려주지 않았더라면.

나아가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이번 사건은 골치 아픈 상황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무작정 레디스에게 화살 맞았다, 근데 붕대는 못 풀겠다 생떼를 부리면 난감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지.’

힐데가르트가 부드럽게 웃었다.

이오타는 그 웃음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예쁜 사람이 철판 위의 얼음처럼 사르르 가슴이 녹는 미소를 보내니 심장이 쿵쿵거렸다.

“아닙니다, 저는 당연히…….”

잠시 이를 사리물던 이오타가 간격을 두고 말했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거예요. 저는 공녀님의 ‘내 사람’이니까요.”

이오타는 ‘내 사람’이라는 단어에 유독 힘을 주어 말했다.

힐데가르트가 그의 대답에 놀란 것도 잠시.

곧 그녀의 입가에도 환한 미소가 걸렸다.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이오타.”

“네!”

만약 이오타에게 복슬복슬한 강아지 꼬리가 있었다면, 지금쯤 붕붕 흔들렸을 게 틀림없었다.

‘좋아. 지금이라면…….’

힐데가르트의 따뜻한 반응에 용기를 낸 강아지, 이오타가 외쳤다.

“저, 공녀님!”

“응?”

“혹시 괜찮으시면, 오늘 저와 함께 마무리 축제……!”

쾅쾅쾅쾅쾅!!

그때였다. 무지막지한 소리를 내며 공관 저택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힐데가르트의 고개가 자연스레 소리의 근원지로 돌아갔다.

“어라? 손님인가?”

“……제가 보고 올까요?”

“아니야, 어차피 시종이 나가볼 텐데 뭘. 여기 있어.”

힐데가르트가 손을 내저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곧 과격한 방문자는 협실로 들어섰다.

예상대로였다.

부서지게 문을 두드린 사람은 다름 아닌 키스케였다.

금가루를 곱게 뿌려둔 것처럼 예쁜 소년은, 평소와 달리 안경을 쓰고 있었다.

“키스케, 벌써 온 거야?”

“……시간 아깝잖아. 모처럼 마무리 축제 날인데.”

“너도 이러쿵저러쿵해도 축제를 기대했구나.”

“……그런 건 아닌데.”

키스케는 ‘너와 저 녀석이 단둘이 있는 게 싫었다’라고 대답하는 대신,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힐데가르트를 빤히 보던 그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오늘…… 옷, 예쁘게 입었네?”

힐데가르트는 움직이기 편한 실크 리본 원피스와 퍼프 스타일 소매인 겉옷을 걸치고 있었다.

평소에 입던 옷과는 살짝 결이 다른 디자인이라 그런지 눈에 더 잘 들어왔다.

“같이 놀러 가기로 했으니까 차려입었지.”

“…….”

키스케는 괜히 그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지는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는 키스케 너도 안경을 쓰니 인상이 달라지는구나?”

키스케는 평소와 달리, 머리카락을 살짝 옆으로 넘긴 데다 안경까지 쓴 상태였다.

덕분에, 평소보다 훨씬 더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안경을 어색하게 고쳐 쓴 그가 말했다.

“……정말 이 안경으로 괜찮은 거야? 사람들이 날 못 알아보는 게 확실해?”

“당연하지. 내가 안면 인식 방해 마법을 걸었다니깐?”

비록 반나절 동안만 유효한 마법이라지만, 키스케가 저 안경을 쓰고 있는 한 그가 신문에서 본 황태손임을 알아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마 이 스승님을 못 믿는 거야?”

“……그런 말 한 적 없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안경이 벗겨지면 내가 어깨에 둘러메서 데리고 도망칠 테니까.”

“됐어.”

키스케가 툴툴거렸다.

“왜! 나 못 믿어? 응? 스승님을 못 믿는 거야?”

“믿어, 믿는다고. 준비는 끝났으니 이제 가자. 바쁜 일 안 끝났어?”

“다 끝났어. 그런데 잠깐만.”

힐데가르트는 애매하게 말이 끊긴 이오타를 향해 물었다.

“이오타, 아까 말하던 도중에 끊겼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

“아…… 음…….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다시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바늘처럼 따끔거린다.

이 상황에서 호기롭게 축제를 권한다면, 용기 하나는 가상하다고 평가받겠지.

그 대가로 바늘 대신 창끝 같은 시선에 꿰뚫려 죽을 테고 말이다.

결국 이렇게 또 한 번 키스케 때문에 기회를 잃은 이오타가 쓸쓸히 대답했다.

“아방가르드 2세는 제가 돌보고 있을게요…….”

“그래 줄래? 나야 고맙지.”

힐데가르트는 토끼를 제품에서 떼어놓은 뒤, 이오타에게 안겨주었다.

“그럼 다녀올게, 이오타!”

“…….”

한쪽은 화사한 미소를, 다른 한쪽은 살벌한 시선을 뿌리는 두 사람이었다.

결국, 남겨진 이오타는 훌쩍이며 아방가르드 2세를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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