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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88)화 (88/166)

86화

“그게 무슨 소리야?”

레디스가 사람에게 화살을 쐈다고?

충격적인 소식에 힐데가르트는 경악했다. 그녀는 황급히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갔다.

레디스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들이 레디스를 품평하듯 주변에 빙 둘러서 있었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겁니다. 전 한 번도 사람을 향해 화살을 겨눈 적 없어요!”

레디스의 맞은편에 서 있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한 명은 나이 지긋한 사내였고, 또 한 명은 그 아들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헛소리! 내 아들이 보고 겪었는데 이보다 더 확실할 수가 있나!”

“이게 무슨 소란인가요?”

힐데가르트는 사람들을 제치고 레디스의 곁에 섰다.

“오빠가 사람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고요?”

“힐데.”

“레디스 오빠는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손수건 문제로 묘하게 불편했다지만 남매는 남매였다.

힐데가르트가 달려오기 무섭게 제 편부터 들자, 레디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보티네 백작은 기가 찬다는 듯 짝다리를 짚고 서서 말했다.

“디안 보티네, 네 입으로 직접 말해 보거라! 네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백작이 그렇게 말하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던 소년이 눈치를 보며 한 발 앞서 나왔다.

“사냥 종료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기 직전에 겪은 일입니다. 쉬고 있는데 갑자기 수풀 너머에서 화살이 날아오더군요. 그것도 두 대나요.”

“헉……!”

“용케 무사했네요.”

사람들은 탄성을 터뜨렸다.

귓속말을 주고받던 이들이 눈을 반짝였다.

“한 발은 아슬아슬하게 빗나갔지만, 나머지 한 발은 팔에 맞았어요. 보호구가 없었으면 팔을 못 쓰게 되었겠죠.”

“그럴 리 없습니다. 저는…….”

“똑똑히 봤습니다! 제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을 때!”

디안 보티네는 더 크게 소리쳤다.

“제 비명을 듣자 혀를 차며 떠난 건 레디스 공자였습니다! 잘못 봤을 리 없어요!”

레디스는 화조차 내지 못하고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을 다르게 받아들였는지, 보티네 백작이 곧바로 일갈했다.

“때마침 카라딘 전하께서 응급조치해 주지 않으셨으면, 내 아들은 영락없는 불구가 되었을 걸세!”

“잠시만요.”

힐데가르트가 억측을 멈추기 위해 말했다.

“지금 그건 일방적인 주장이잖아요? 증거는…….”

“증거라면 아까 카라딘 전하가 보여주셨지! 내 아들을 쏜 청색 조의 푸른 깃 화살을 말이야.”

보티네 백작은 쿵 소리가 나도록 지팡이를 바닥에 찍었다.

증연은 물론 카라딘의 이름과 청색 조의 화살이란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이런 일이 터지네요.”

“이럴 줄 알았어요. 사냥 대회 때마다 꼭 저런 사람이 나타난다니까요.”

“불만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누구 입에서 나오는지 모를 말이 레디스를 할퀴고 지나갔다.

티모시 남작은 난처한 얼굴로 물었다.

“레디스 공자님. 저 말이 사실입니까?”

“절대 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요.”

레디스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저는 오전 사냥 때 지급된 화살 대부분을 썼습니다. 오후에는 화살 한 발만 가지고 있었어요.”

“그 한 발은 언제, 어디에 쓰셨습니까?”

“오후에 사슴을 쫓으며 썼습니다. 호루라기를 불기 직전에는 아무것도 쏘지 않았어요. 화살통도 비어 있었고요!”

힐데가르트는 레디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는 걸 깨달았다.

언제나 장난기 많고, 툭툭 가볍게 던지던 말투는 온데간데없었다.

“전 디안 영식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습니다. 해칠 이유가 없어요.”

“맞아요. 아카락시아 공작가는 보티네 백작가와 별다른 교류가 없었습니다.”

힐데가르트가 그의 말을 두둔했다.

“백작가 영식에게는 별다른 적대감도, 호감도 없어요. 레디스가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요.”

그러나 좀처럼 냉담한 시선이 거두어지는 일은 없었다.

힐데가르트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 즈음이었다.

“잠시 실례.”

언제 왔던 건지, 상황을 전해 들은 키스케가 끼어들었다.

“저 말은 사실이다. 레디스는 사냥이 끝날 무렵, 나와 마주쳤어.”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키스케에게 몰렸다.

“레디스의 화살통에는 화살이 한 발밖에 없었다. 두 발이나 맞았다는 보티네 소백작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아.”

“어, 그랬던가요?”

상황에 맞지 않는, 밝은 목소리가 반박했다.

“제 기억엔 레디스 공자의 화살통은 가득 채워져 있었던 거 같은데요.”

“카라딘.”

“저도 형님이랑 이야기하던 중에 레디스 공자와 마주쳤잖아요?”

카라딘은 자신의 앞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그땐 분명 화살이 몇 대 더 있었던 거로 아는데……. 아닌가? 내가 잘못 본 건가?”

카라딘 황자의 모호한 말에 주변 사람들이 더욱 의아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 키스케 전하가 아카락시아 공작가를 감싸신 건가?”

“팔도 안으로 굽는다잖아요.”

“아.”

힐데가르트의 표정이 확 굳었다.

“이건 살인 미수입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활을 쏘다니!”

보티네 백작의 목소리는 귀가 아플 정도로 쩌렁쩌렁했다.

감히 소백작의 목숨을 위협했다며 무작정 큰소리를 치는 상대 앞에서, 레디스는 새삼 이 자리에 없는 아버지가 간절해졌다.

“아니에요! 전 정말……!”

“사과하시오!”

“제가 쏜 게 아니에요!”

“레디스 공자!!”

아무리 말해도, 오해를 풀고 싶어도 단정 짓는 상대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레디스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졌다.

“제가 쏜 화살은 분명 참나무에 박혔습니다. 그게 마지막 화살이었으니 똑똑히 기억해요!”

“그래, 아무렴 그러시겠지!”

보티네 백작은 자신의 외아들을 보호하듯 등 뒤로 숨기며 말했다.

“아무리 선대 공작 부부가 안 계신다지만, 저렇게 막돼먹은 짓을 하고도 고개를 들고 다니다니. 뻔뻔하기가 이를 데 없군.”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보티네 백작님.”

더 큰 싸움을 감지한 티모시 남작이 넌지시 그를 불렀다.

힐데가르트가 쏘아붙이려던 순간, 하늘에서는 쿠르릉 소리를 내며 날씨가 점차 궂어지기 시작했다.

“하아……. 어쩔 수 없군요.”

한숨을 쉰 티모시 남작이 두 남매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 일은 우선 내일 아침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그럴 순 없어요.”

힐데가르트가 차갑게 말했다.

“이 자리에서 명확하게 해야죠. 왜 한쪽 말만 듣고 넘기려 하세요?”

“힐데가르트 공녀님.”

“보티네 소백작을 쏘았다는 화살을 보여주세요. 당장 마법으로…….”

“죄송하지만 이건 어른들의 문제입니다.”

뭐라고?

“공녀님이 끼어들 상황과 아닌 상황은 구별하셔야지요.”

“……여기 아카락시아 공작이 있어도 그렇게 말씀하셨을 건가요?”

“안 계시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분노에 머리가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이 취급을 당한 것만큼이나, 부모가 없는 두 사람을 나무라는 태도에 화가 났다.

‘게다가 이 편파적인 태도는 뭐야?’

보티네 백작이 말할 때는 고개를 끄덕였으면서, 레디스가 말을 할 때는 팔짱을 끼다니.

“레디스 님.”

티모시 남작은 하늘을 한 번 올려 본 다음 말했다.

“이 오해가 풀리기 전까지는 공자님의 사냥 대회 참가를 제한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게 무슨……!”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니까요.”

“말도 안 돼요! 전 정말 그런 짓 한 적 없습니다!”

“다른 분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이니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안전 조치라니…….”

“이 이야기는 내일 다시 하도록 하죠.”

“제가 안 했어요! 안 했다고 몇 번을 이야기해요?!”

레디스는 큰 충격을 받았는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투둑, 툭.

“어머, 빗방울이…….”

“소나기가 내리려나 봐요. 어서 돌아가죠.”

“그래요.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아침 듣는 거로 해요.”

“들을 필요나 있겠어요?”

빗방울처럼 가볍지만, 돌팔매질보다 아픈 말이 그를 치고 갔다.

“오늘 사냥 결과는 내일 발표하겠습니다. 빗줄기가 더 굵어지기 전에 우선 들어가시죠.”

티모시 남작이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사람들은 레디스와 힐데가르트를 흘끔거리며 뿔뿔이 흩어졌다.

빗줄기 속에서 느껴진 희미한 비웃음은 누구에게서 나온 걸까.

힐데가르트는 세차게 주먹을 쥐었다.

“힐데.”

키스케가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힐데가르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는 동안에도, 그녀는 레디스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난 오빠 말 믿어.”

“…….”

“오빠 말만 믿을 거야, 나는.”

이윽고 차가운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며드는 한기에도, 힐데가르트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 * *

비를 맞고 돌아온 레디스는 무작정 눕더니 이불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었다. 소란을 전해 들은 유시스와 청색 조 사람 몇 명이 그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모두가 믿는 건 아닌 것 같아.’

하지만 그뿐이다.

소문이란 주로 진실보다는 ‘진실이었으면 하는 말’이다.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진실처럼 굳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모함이야. 게다가 키스케가 했던 말도 흐지부지 넘겼잖아?’

어째서 모함을 당한 사람이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걸까.

힐데가르트가 눈가를 쓸었다.

‘키스케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힐데가르트가 겉옷을 집어 든 때였다.

공관에서 수발을 들던 시종 한 명이 달려와 황급히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뭐라고? 누구?”

“칼란도 랑케르트 공작 각하께서…… 레디스 공자님의 일로 뵙기를 청하십니다.”

힐데가르트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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