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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76)화 (76/166)

74화

그녀는 실없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몰아냈다.

‘그나저나, 역시 보통 마석으로는 안 되겠는데.’

힐데가르트는 이번 실험 결과를 꼼꼼하게 적었다.

“노바. 내가 설치해 뒀던 마석은 어떻게 됐어?”

“아, 그거라면 말씀하셨던 대로입니다.”

노바가 피크닉 매트를 깔며 대답했다.

“물통이 넘어올 때 마석의 삼 분의 일이 부서졌어요.”

“그럼 노바가 넘어왔으니 나머지 마석도 전부 부서졌겠네.”

똑같은 이동 마법이라 해도 사물보다는 사람을 옮기는 데 더 많은 마력이 필요했다.

힐데가르트가 노트를 보고 신음을 흘렸다.

“두 분 모두 식사는 아직이시죠? 샌드위치입니다.”

키스케가 먼저 자리를 잡자 그녀도 매트 위에 앉았다.

힐데가르트도 노트를 덮었다.

“생각보다 마석 소모가 커서 상단주가 챙겨 준 마석을 다 쓰게 될 것 같아.”

“그 정도로 많이 든단 말이야?”

“응.”

“그럼 이동 게이트에 쓰일 마석도 엄청난 양이 필요하겠군.”

“맞아. 소모량을 조절해야겠어.”

“방법은 있어?”

“크게 두 가지가 있어.”

힐데가르트가 손가락을 들었다.

“첫째는 이동 게이트를 사용하는 사람을 제한하는 거야.”

“합리적이긴 하네. 공급할 수 있는 마석은 정해져 있으니까.”

“응. 일반인은 이용할 수 없게, 아예 처음부터 비싼 가격을 매기는 거지. 100만 케루블 정도?”

“난 네가 그 방법을 선택할 것 같지는 않은데?”

“왜?”

“마법의 사유화는 마법의 도태로 이어진다. 네가 했던 말이잖아.”

키스케의 대답에 힐데가르트는 씩 웃었다.

“기억하는구나? 맞아. 난 이 방법은 가능한 피하고 싶어.”

이동 게이트 사업의 핵심은 다양한 이용자와 폭발적인 대중화다.

한정된 이들에만 주어지는 건 문물이 아닌 특권이다. 대중화하고는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가치였다.

“돈 있는 사람만 이동 게이트를 이용하게 만드는 건 내 철학이랑 어긋나.”

그러니 모든 이가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급하게 의사를 모셔와야 할 사람, 안전하게 죄수를 호송해야 하는 사람.

사람들이 편리성과 필요성을 실감한다면, 자연스레 이동 게이트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차이가 심하게 벌어질 것이다.

그땐 어느 영지에서든 돈을 집채만큼 싸 들고 와서 이동 게이트를 설치해 주십사 애원할 것이다.

게이트 이용 요금으로 벌어들이는 돈도 막대할 테고.

“그럼 두 번째 방법은 뭔데?”

“작은 마석이 아니라, 아주 커다란 마석을 설치해서 이동 게이트를 만드는 거야.”

“얼마나 커다란 게 필요한 건데요?”

“건물 2층 높이 정도?”

힐데가르트가 양팔을 벌렸다.

“거기에 맞춰서 마법진도 더 개량해야 해. 마력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니까.”

“그만한 크기의 마석을 구할 수나 있겠어?”

“뭣하면 합성 마법을 쓰면 돼. 참, 가장 결정적으로 필요한 게 하나 있어.”

“뭔데?”

“마법사야.”

기껏 설치한 커다란 게이트도 관리해 줄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게이트를 관리해 줄 마법사가 다섯 명…… 아니지, 열 명은 필요해.”

문제는 그 마법사를 어디서 데리고 오느냐였다.

“마탑이 건재했다면 그쪽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마탑이 무너진 지도 수십 년이 흘렀다.

마법을 능란하게 구사하는 마법사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모습을 감춰버렸다.

“따로 연락이 닿는 마법사들은 없으신가요?”

“응. 한 명도 없어. 몬테를로 공작가에 마탑을 이어받은 사람이 있다길래 연락해 봤는데 답장이 안 와.”

마도서를 취급하는 서점이나 마석 판매처에도 마탑주를 찾는 편지를 보내봤으나, 모두 헛수고였다.

키스케가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마탑주가 있기는 해?”

“임시지만 있대. 마탑을 재건하려고 물려받았다는데…… 그새 하늘로 솟은 건지, 땅으로 꺼진 건지.”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노바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피크닉 바구니에서 새콤한 자두를 꺼내 반으로 잘랐다.

“공녀님이라면 하실 수 있어요. 그렇죠?”

“왜 나한테 물어봐?”

키스케가 당혹스러워하던 것도 잠시.

힐데가르트와 시선을 마주한 그가 조그맣게 덧붙였다.

“……나도 황실에 연락을 넣어서 알아보라고 하지.”

힐데가르트가 그를 빤히 보자, 키스케는 습관처럼 이유를 찾았다.

“널 위해서 도와주겠다는 건 아니야.”

키스케는 습관처럼 그렇게 말한 뒤 한참 이유를 찾았다.

“네가, 이동 마법 게이트를 완성하면, 제국에 커다란 도움이 되니까 돕는 거야.”

시선을 피한 키스케가 간신히 이유를 댔다.

그러자 힐데가르트의 입가에 미소가 머물렀다.

“뭐야, 왜 웃어?”

“아무것도 아니야. 고마워서.”

이 녀석이 할아버지를 닮아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나이를 먹은 건가.

키스케가 마냥 웃기면서도 귀엽게만 느껴져서, 힐데가르트는 피식 웃었다.

* * *

가을 사냥 대회는 단순히 귀족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행사가 아니었다.

안온한 겨울과 이듬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사냥감을 바치는 중요한 행사였다.

따라서 사냥제에서의 우승은 우승자에게나 가문에게나 커다란 영광이었다.

사냥 대회가 점차 가까워질수록, 레디스는 활을, 키스케는 화염 마법을 연습했다.

아침마다 대련하던 두 사람 사이에도 좋은 의미로 투지와 긴장감이 흘렀다.

시간이 흘러 사냥 대회로 떠날 날이 다가왔다.

사용인과 함께 저택 앞까지 나온 미하일이 힐데가르트를 꼭 껴안았다.

미하일은 마차 앞에 서 있는 키스케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몸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전하. 부족한 동생들입니다만 전하께 누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키스케가 고개를 까딱였다.

노바는 미하일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뒤 마부석에 탔다.

힐데가르트가 미하일에게 손을 흔들었다.

마차는 몇 군데의 마을을 거쳐 티모시로 향했다.

‘나 때는 랑케르트 공작가의 영토였는데, 지금은 쪼개진 모양이네.’

티모시 영지에 들어서자, 근사한 휴양림으로 유명한 곳답게 근사한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힐데가르트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세월이란 잔인했다.

사람이 변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고, 공작가의 영토가 쪼개지기도 하고, 마탑이 무너지기도 한다.

‘그래서 플람도 변한 걸까?’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서?

힐데가르트는 플람을 떠올리면 마음속 어딘가가 답답하고 꽉 막히는 것 같았다.

때때로 그녀를 향해 아주 간절한 눈빛을 하던 제자였다.

눈빛 속에 담긴 열망은 진즉부터 알았지만, 그건 자기 감정을 착각하는 거로 생각했다.

돌봐준 상대를 향한 애정과 신뢰를 착각하는 거라고 믿었다. 그랬는데.

‘……마음이 복잡하네.’

플람이 살아 있다면 만나고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끼며 키웠던 제자가 흑마법사가 되었음을 확인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만일 정말 플람이 다시 살아 있다면, 흑마법사가 된 거라면.

그래서 저를 되살린 거라면…….

‘내가 널 어떻게 해야 할까.’

힐데가르트의 시선이 가라앉았다.

“야. 힐데.”

“응? 왜?”

힐데가르트가 레디스를 보았다.

“너 나한테 손수건 안 줄 건 아니지?”

“으응? 뭐야, 왜 그래. 내 손수건 받고 싶어서 그래?”

“당연히 나 주는 거 아니었어?”

“세상에 당연한 게 어딨어.”

레디스의 표정이 레몬을 씹어먹는 사람처럼 구겨졌다.

“너 마석 광산 가지고 싶다며! 그럼 당연히 내가 우승해야 하는 거잖아. 그럼 나한테 줘야지!”

“내가 안 주면 우승 안 할 작정이었어?”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힐데가르트는 레디스의 태도가 못내 당황스러웠다.

곧 레디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너…… 설마 다른 사람한테 손수건을 주려고 했던 건 아니지? 그럴 상대가 있는 거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런 사람 없거든?”

힐데가르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알겠어. 그럼 내 손수건은 오빠한테 줄 테니깐 꼭 우승해야 해?”

그때까지만 해도, 힐데가르트는 그 약속이 난처한 상황을 불러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 * *

2주간 사냥 대회가 진행될 숲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한쪽에는 뾰족하게 솟은 나무가 자라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드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사냥터와 인접한 공관 근처에 마차를 세우자, 훤칠한 키의 갈색 머리 사내가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예네스 티모시 남작입니다.”

“안녕하세요. 레디스 아카락시아입니다.”

“힐데가르트 아카락시아예요.”

힐데가르트의 예의 바른 인사를 보자 티모시 남작이 빙긋 웃었다.

“무지개의 아카락시아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초대장을 보여주시겠습니까?”

레디스가 사냥 대회 초대장을 건넸다.

그러자 티모시 남작은 수첩을 꺼내서 확인한 뒤 곧바로 열쇠를 건넸다.

“두 분께서 머무르실 공관 저택은 안쪽입니다. 시종 두 명을 배정해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사냥 대회 기간 중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무엇이든 이야기해 주십시오.”

시종들이 두 사람의 짐을 옮겼다.

레디스와 시종들이 이야기하는 사이, 힐데가르트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무심코 흘러나온 하품을 꾹 참고 있을 때였다.

“저기 봐, 키스케 전하셔!”

“뭐? 어디?”

“저쪽 말이야. 아까 티모시 남작이 제일 먼저 인사한…….”

사람들의 입에 키스케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힐데가르트가 슬쩍 웃었다.

‘우리 애는 인기도 좋지.’

키스케의 금발은 분명 눈에 띌 정도로 예뻤다. 그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보고 있었다.

키스케는 그런 관심이 퍽 익숙한 것 같았다.

“제국의 샛별을 뵙습니다.”

예상대로는 도착하기 무섭게 키스케의 곁으로 몇몇 소녀가 다가왔다.

“키스케 전하, 괜찮으시면 이 손수건을 받아주시겠어요? 이번 대회 때…….”

“미안하지만.”

키스케가 힐데가르트를 흘끔 보았다.

“사양하지. 받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거든.”

그 순간, 힐데가르트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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