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미하일과 레디스가 머리를 맞대며 묘지에 관리인을 따로 둘지 상의하는 동안, 힐데가르트는 서재를 뒤졌다.
몇 권의 책을 뒤진 끝에 원하던 자료를 찾았다. 흑마법과 금기 마법에 관한 책이었다.
“……틀림없어. 그건 소생 마법진이야.”
소생 마법.
죽은 생물을 살리는 마법.
만일 소생 마법진을 그린 사람이 플람이라면, 그가 흑마법사가 되었다는 뜻이다.
힐데가르트는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가슴이 차가워졌다.
속이 썩어서 문드러지는 기분이었다.
플람이 그런 짓을 했을 리 없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일련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면, 무작정 무시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당장 조사해 봐야 해. 플람이 어떻게 된 건지……. 살아 있는 건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녀가 직접 움직여서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힐데가르트는 보호자인 척 구는 피보호자가 두 명이나 있었고, 키스케의 수업이며 상단의 사업도 한 번씩 확인해야 했다.
그녀는 정보상을 통해 의뢰를 넣었지만, 그 후로도 며칠간 ‘진짜’ 힐데가르트의 소지품이나 일기를 뒤져보거나, 넋을 놓거나, 반대로 현실 도피를 하는 사람처럼 정신없이 마법 연구에 몰두했다.
키스케는 그런 힐데가르트의 변화를 가장 기민하게 눈치챈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힐데.”
“…….”
“……힐데!”
“아, 어? 불렀어?”
“왜 불러도 반응이 없는 거야?”
어느새 곁에 다가온 키스케가 그녀를 불렀다.
“더위 먹었어? 안색이 엄청 안 좋은데.”
“……차라리 그러면 좋겠다.”
“뭐?”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왜 그래?”
키스케는 손가락으로 정원 저편을 가리켰다.
따라서 시선을 옮긴 힐데가르트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비토!”
“안녕하세요, 공녀님.”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캄파넬 지방에 대한 조사가 끝나서 보고드리려고 합니다. 잠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물론이지!”
힐데가르트는 지체하지 않았다.
그녀가 당장 비토를 응접실로 데리고 가려 할 때였다.
키스케가 무작정 그녀를 붙잡았다.
“……너, 좀 쉬는 게 어때?”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서 하는 말이야. 요즘 계속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있잖아.”
뜻밖의 물음에 힐데가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난 괜찮아.”
“그럼 왜 그렇게 땀을 흘리는데?”
“그야 여름이잖아.”
힐데가르트는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했다.
“날이 습한 거 같지 않아? 저녁엔 비가 올 거 같아.”
“…….”
“키스케? 혹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키스케가 그녀의 가는 팔목을 붙잡은 채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안색이 안 좋아서 쓰러질까 봐 걱정되는데.”
“엥?”
눈을 몇 번 깜빡이던 힐데가르트는 곧이어 소리 높여 웃었다.
“어휴, 그랬어요? 우리 키스케 전하가 날 걱정했어?”
“너……!”
“네, 네. 고마워요. 괜찮아, 잠을 좀 못 자서 그런 거뿐이야. 몸이 크게 안 좋았으면 네 수련을 봐주려고 했겠어?”
힐데가르트는 손을 뻗어 키스케의 볼을 꼬집으려 했다.
“귀엽기는.”
귀 끝이 붉게 달아오른 키스케는 그녀의 팔목을 화급히 놓았다.
그가 뒷걸음질 치며 신경질을 냈다.
“어린애 취급 좀 그만하라고!”
“금방 다녀올 테니까 연습 게으름 피우면 안 된다?”
“빨리 가버려!”
키스케는 짜증을 냈으나, 힐데가르트는 그 모습마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사라졌다.
어린애 취급에 부아가 치민 키스케가 매몰차게 고개를 돌렸다.
며칠 전 가문의 묘지가 엉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부터 힐데가르트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겉으로는 여전히 많이 웃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이야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를 늘어뜨린 채 깊게 생각에 잠기곤 했다.
오늘도 멀쩡한 척을 하고 있었지만, 반듯하게 걷는 뒷모습은 위태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있잖아, 키스케. 혹시 다른 사람이 걱정될 땐 ‘네가 쓰러져서 걱정했어’라고 솔직하게 말해봐. 그럼 기뻐할 거야.’
……거짓말쟁이.
솔직하게 말하면 기뻐한다며.
“효과가 하나도 없잖아.”
그는 멀어지는 등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 *
응접실 소파에 앉은 비토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가 힐데가르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녀님, 안색이 창백하신데요?”
“어, 그래?”
“전보다 더 야윈 거 같은데 무슨 일 있으셨나요?”
우울해 보였나?
힐데가르트는 고개를 저으며 양 뺨을 문질렀다.
“별일 없었어. 그보다 캄파넬에 대한 조사는 끝난 거야?”
“예. 우선 상단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캄파넬 땅 자체는 그다지 매력적인 땅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여전히 어지간해서는 사람이 얼씬도 안 한답니다.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땅이니까요.”
“흉흉한 전적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해.”
“그런데 묘한 일은 있었다고 해요.”
“묘한 일?”
“캄파넬에서 일하는 상단 인부에게 들은 말인데, 인부와 용병 몇 명이 출입 금지 구역에 숨어든 사람을 쫓아낸 적이 있대요.”
“출입 금지 구역? 설마 예전에 마성신이 소환되었던 곳을 말하는 거야?”
“네. 맞아요. 한동안 유골이 엄청나게 발견되었던 그곳입니다.”
이야기를 듣던 힐데가르트의 몸이 자연스레 앞쪽으로 쏠렸다.
“……숨어든 사람의 특징은?”
“특유의 서부 억양도 그렇고, 랑케르트 사람이 분명하다고 하던걸요.”
랑케르트.
‘캄파넬 지방에 사람을 보낸 게 분명해.’
캄파넬은 사연 없는 사람이 함부로 발 들일 만한 땅이 아니다.
만 명도 넘는 사람이 교단의 제물을 자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곳인데, 가벼운 마음으로 출입 금지 구역에 침입했을 리 없다.
“그 자리에서 잡은 거지? 무슨 용건으로 숨어들었대?”
“뭔갈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인부들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요.”
비토가 땅을 파는 시늉을 했다.
“인부들이 뭘 찾는지 물어봤는데, 들어오면 안 되는 줄 몰랐다면서 둘러대곤 도망쳤다고 합니다.”
“말도 안 돼. 누가 들어도 대충 모면하는 말이잖아?”
랑케르트 가문에서 캄파넬 지방에 묻혀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죽은 사람의 유해를 수습하러 왔다기엔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다.
값비싼 유물이나 보석 또한 캄파넬과는 인연이 없는데, 왜 그런 짓을 하지?
‘혹시 베가 상단을 이용해서 캄파넬 상단을 노린 이유도 그것 때문인가?’
그녀가 눈썹을 찡그렸다.
“또, 랑케르트 가문 말인데, 이쪽은 특별한 이야기가 없었어요.”
하지만 비토의 이야기 중에는 나름대로 정보가 될 만한 이야기가 몇 있었다.
우선 랑케르트 가문의 가주.
칼란도 랑케르트의 심각한 아들 집착증.
“칼란도 공작이 그랬다더군요.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약을 판다면 딸 셋을 전부 팔아치워서라도 살 텐데’라고요.”
“……세상에.”
“그런 약이 생기면 언제든지 투자해 줄 테니 그때 오라며 쫓아냈던 모양입니다. 동료가 이를 갈면서 이야기해 줬어요.”
비토는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귀족인 힐데가르트 앞에서, 설령 다른 가문이라 할지라도 공작의 뒷담을 하는 게 죄스럽다는 듯.
“좀 심하게 특이하긴 하죠. 요즘은 딸에게 작위를 물려주는 경우도 많잖아요?”
물론 칼란도의 그런 기질은 오늘 갑자기 생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유명한 편에 속했다.
“칼란도 랑케르트 공작은 안 좋은 소문이 많아요. 공작 부인도 한 번 갈아 치웠고, 하녀를 통해 자식도 봤다는데 아들만 낳았다 하면 미숙아를 낳았대요. 그래서 유독 미신에 집착한다는데요?”
“……그래?”
현존하는 미신은 상당수가 흑마법에서 유래된 경우가 많았다.
만약 정말 랑케르트 공작이 미신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흑마법이나 저주 쪽으로도 지식이 있을지도 몰라.’
힐데가르트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지주 상단 사람들을 통해 알아낸 건 여기까지입니다. 더 조사해 볼까요?”
“그렇게 해주겠어?”
힐데가르트는 챙겨왔던 은화 주머니를 건넸다.
“랑케르트가 캄파넬에서 뭘 찾고 있었는지를 알아봐야겠어. 조금 멀지만 랑케르트 영지에 직접 가줬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그 정도야 가뿐하죠.”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더 있어.”
“어떤걸요?”
그녀는 나긋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랑케르트 영지에 흑마법사가 드나든 적이 있는지를 알아봐 줘.”
비토는 약간 놀란 눈치였지만, 힐데가르트는 침착하게 말했다.
“베가 상단주가 기억을 잃었잖아? 그건 흑마법사가 한 짓일 거야.”
“아! 랑케르트 공작가뿐만 아니라 다른 각도로 파보라는 말씀이시군요?”
“맞아. 그리고…….”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혹시 플람이라는 사람이 랑케르트 영지에 있었는지도 알아봐 줄래?”
랑케르트 가문은 항상 저주 사건의 중심에서 한 발자국 비켜서 있었다.
막시밀리언을 저주할 때 쓰였던 매개체와 제물은 로바르네 2황자비의 정원에서 나왔다.
결정적으로 수상한 건 마우제네 랑케르트의 문신이다.
레이븐 상단주의 손목에 똑같은 게 새겨져 있었지.
그게 전부 우연일까?
‘랑케르트 가문에 협력하는 흑마법사가 있는 걸지도 몰라.’
마성신을 봉인한 지금, 흑마법사의 명맥은 거의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흑마법을 자세히 아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기본적인 마도 지식에 능통한 사람이겠지.
힐데가르트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막시밀리언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마냥 기쁨과 감격뿐이었다.
한데 플람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자…… 또, 그가 흑마법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동전의 양면처럼 모순된 마음이 들었다.
찾고 싶다. 아니, 찾고 싶지 않다.
네가 흑마법사가 되었을 리 없어. 하지만 모르는 일이지.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잖아. 우리 가문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80년의 세월 앞에서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공녀님?”
“응?”
“괜찮으세요? 얼굴빛이 안 좋으신데.”
“아…… 미안.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힐데가르트가 다시 얼굴 위에 웃음을 드리웠다.
“인상착의는 노란 눈에 검은색에 가까운 긴 보라색 머리야. 나이는 아주 많이 먹었을 테지만…… 아닐 수도 있어.”
그녀는 플람의 특기가 엘릭서 제조였다는 걸 떠올렸다.
“나이대가 모호한가요?”
힐데가르트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토는 그녀답지 않은 소극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주세요! 금방 알아보겠습니다.”
“고마워.”
믿음직한 대답에 겨우 그녀가 웃었다.
힐데가르트는 모자를 손에 들고 일어나려 하는 비토에게 물었다.
“비앙카는 어때? 상단 일에 익숙해졌대?”
“그럼요.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요.”
그렇게 말한 비토는 깜빡 잊을 뻔했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라이그너 상단주님께서 황태손 전하와 공녀님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선물?”
그것도 나랑 키스케에게?
“무슨 선물인데?”
“그건 제 입으로 말할 수 없는데.”
비토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직접 보여드리고 싶네요.”
힐데가르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