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공녀님 (67)화 (67/166)

Chapter 6. 나를 향해 달려오는 사람

얼마 후, 베가 상단이 파산하고 레이븐 상단주가 영지에서 협박 폭행죄로 쫓겨난 날.

힐데가르트는 지주 상단에 수익금을 정산받은 뒤, 레디스와 이야기하여 공작가의 기사단을 다시 설립하기로 했다.

또, 지주 상단과 함께 내년 가을 개장을 목표로 이동 게이트 사업을 진행하기로 약속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이동 마법 연구.

그리고 키스케의 수업이었다.

키스케는 그간 아카락시아 공작령에서 시간을 보내며 안정을 찾는 데 집중했다.

그는 이제 아카락시아 저택에서 헤매지 않았고, 미하일이나 레디스와도 곧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법을 배울 만한 마력 또한 체내에 적절히 쌓여 있으니 더는 수업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수업은 온실에서 할 거야. 마력을 보충하기 쉬우니까.”

“네가 좋아서 고른 게 아니라?”

“그것도 있지.”

힐데가르트는 가볍게 대답한 뒤 마지막 휴일을 재미있게 즐기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덕분에 키스케는 못마땅한 얼굴을 했지만, 그 표정이 귀여워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이동 게이트 사업이 가문의 실익과 연관되어 있다면, 키스케와의 원만한 관계는 가문에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리고…… 꼭 그런 이유만이 아니더라도.

‘스승님은 제 마음을 모르십니다.’

이번에도 가까이에서 제자를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제자…….’

그녀는 수시로 레온하르트를, 플람을, 막시밀리언과 옛 시절을 떠올렸다.

마성신을 봉인했던 그 마지막 전투에서 플람은 어떻게 됐을까.

‘내가 실종된 일로 크게 상심했겠지?’

예기치 못한 헤어짐에 슬퍼하고 후회했을 플람이다.

‘……비토를 통해서 플람의 행방을 알아보면 뭐라도 건질 수 있을까?’

온실을 향해 걷던 힐데가르트의 발이 멈췄다.

“힐데?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힐데가르트는 재빠르게 웃으며 눈앞의 일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스렸다.

‘적당히 배우게 할 거면 굳이 키스케를 공작령으로 데려오지도 않았어.’

그렇게 생각하며 새삼 의욕을 다지는 힐데가르트와,

‘적당히 배운 뒤 떠나야 서로 편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키스케였으니.

얼마 후 시작된 수업에서, 두 사람이 부딪치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수업 1일 차.

“자, 고대하던 첫 수업이지?”

“그건 뭐야. 설마 일주일…….”

쿵!

“……안에 읽어야 할 책은 아니겠지.”

키스케는 힐데가르트가 내려놓은 두꺼운 책 일곱 권을 보았다.

황실 서고에서 보았던 <마도학Ⅰ>뿐만이 아니었다.

<마법 원리>, <마력 응용>, <마석 활용법>, <실전 입문>, <속성 마법>, <마법의 역사>…….

하루에 한 권씩만 읽어도 일주일 내내 책장만 넘겨야 했다.

“일주일? 그럴 리가!”

“그럼 한 달? 그 정도라면…….”

“무슨 소리야, 키스케! 오늘 안에 다 읽어야지!”

키스케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수업 2일 차.

“지금부터 이 마석으로 키스케 네게 어떤 속성 마법에 재능이 있는지 알아볼 거야.”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칠판에 글씨를 써 내려가는 힐데가르트의 손길이 분주했다.

“기본은 5대 속성이지만 혹시 원하던 속성이 나오지 않아도 실망하지 마. 어차피 수련하면 충분히 타 속성을 다룰 수 있으니까. 예전에는 3원질이나 4원소로 속성 마법을 나누기도 했고 학파에 따라서는 타 속성을 5대 속성에 넣기도 하고, 다른 속성을 주력으로 삼는 마법사도 많았대. 특히 바람이나 뇌속은 5대 속성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서 충분히 위력 넘치는 마법을 구사할 수 있으니…….”

20분 뒤 힐데가르트가 뒤를 돌았다.

“키스케?”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업 3일 차.

“어제 왜 도망갔어?”

“대체 교육 계획이 어떻게 돼먹은 거야. 누가 이런 식으로 가르쳐?”

“어제 왜 나만 두고 도망갔어?”

“너 혼자 설명만 하면 다야? 말이 너무 빨라서 따라갈 수가 없잖아.”

“어제 왜 말없이 도망갔어?”

“내일도 이런 식이라면 수업 관두려고 도망갔다.”

키스케가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노려보았다.

‘사람을 앞에 세워놓고 혼자 30분간 떠들게 했으면서, 너무 당당한 거 아니야?’

힐데가르트는 부들부들 떨었다.

“……좋아. 그럼 오늘은 자습하자.”

“세 시간. 그 이상은 안 해.”

“아홉 시간. 그 이하는 안 돼!”

결국, 6시간으로 타협했다.

수업 4일 차.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의욕만 앞섰나 봐.”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수업 계획표를 짜봤어.”

힐데가르트는 오늘도 삐딱하게 팔짱을 낀 키스케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일단 너에게 잘 맞는 화염 속성을 중심으로 공부하자. 이론 두 시간, 실전 세 시간, 복습 한 시간으로…….”

쫘아악!

수업 계획표가 키스케의 손안에서 무참하게 둘로 찢어졌다.

순식간에 잘게 찢긴 종이가 허공을 흩날렸다.

“왜 찢는데!!”

“장난해? 너라면 밥 먹고 거울 보고 물 마시는 시간까지 한 시간 단위로 적혀 있는 계획표를 따르겠어?”

“한 시간 단위가 뭐 어때서! 우리 오빤 나보다 더 심했거든?!”

그 순간 저택 저편에 있던 미하일과 레디스가 동시에 귀를 후볐다.

수업 5일 차.

“……노바. 왜 여기 있어요?”

“주군과 신하는 한 몸이라며 키스케 전하가 앉혀두고 가셨습니다.”

“당장 나가서 키스케 찾아오세요.”

“넵.”

수업 6일 차.

“믿을 수가 없어, 키스케.”

힐데가르트는 마른세수를 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건 정말 심각한 일이야. 우리가 닷새 동안 알아낸 거라곤 네가 화염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것뿐이라고!”

“나야말로 믿을 수가 없다. 너 실은 고문관의 재능을 타고난 거 아니야?”

키스케는 <속성 마법> 책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 책은 수업 첫날 힐데가르트가 하루 안에 읽으라고 했던 책 중 하나였다.

단결하고 투쟁하여 겨우 하루에 한 권씩 읽기로 타협 보았다지만, 이젠 슬슬 키스케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해 있었다.

“고문관이라니? 말을 좀 섭섭하게 한다?”

힐데가르트가 뾰로통한 얼굴을 하더니 불만을 줄줄이 쏟아냈다.

“요즘 애들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나 때는 말이야! 제국 서점을 다 뒤져서 껍질에 붙은 꽃게 알 긁어내듯이 책을 사봤는데!”

“저녁엔 해산물 요리가 좋겠군. 주방장한테 전해줘.”

“또 내 말 안 듣지!”

“책 다 읽었어.”

“책 찢지 마! 비행기 접지 마!”

바야흐로 수업은 7일째를 맞이했다.

힐데가르트가 새로운 책 열네 권을 카트에 싣고 들어오자 키스케는 곧바로 온실에서 나가버렸다.

“안 해!”

수업 거부였다.

힐데가르트는 첫날밤을 소박맞은 새신부처럼 온실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너무하는 거 아니야? 내가 뭘 어쨌다고 수업을 거부해?”

과연 너무한 사람은 어느 쪽인가?

사실관계가 명백했으나 레디스는 흐린 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가끔은 진실을 알아도 모른 척해야 하는 순간이 생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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