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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13)화 (13/166)

13화

“레디…… 힐데! 너 이마가……!”

미하일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이모님.”

숨을 가라앉힌 미하일이 일단 세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해 말했다.

“지금 많이 흥분하신 거 같아요.”

“너희 둘 다 이리 와!”

“우선 저하고 이야기해요. 오시자마자 화내지 마시고…….”

“형이랑 무슨 이야기를 해? 지금 얘 때리려고 하는 거 못 봤어?!”

백작 부인이 다시 한번 신경질적으로 손목을 뿌리쳤다.

그러자 엉겁결에 손목을 놓친 레디스는 그녀를 쏘아본 뒤 힐데가르트의 앞을 보호하듯 막아섰다.

“아주 난리구나. 네 동생들 전부 정신이 나갔다니?”

“……죄송합니다.”

“형.”

“왜 습관처럼 사과하는데? 미하일 넌 잘못 없어!”

“힐데 아가씨, 도련님 이름을 그렇게 부르면…….”

엉망진창이었다.

미하일은 입술을 깨물더니 로빈을 향해 어렵게 입을 뗐다.

“……로빈, 힐데 이마에 난 상처부터 치료해 줄래?”

“누구 마음대로?”

“이모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우선 진정하세요.”

힐데가르트는 머리가 찻주전자로 변한 것만 같았다.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지자 자꾸만 들썩거리고 난리였다.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하고 있단 말인가?

로빈은 미하일과 마찬가지로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이들의 등을 떠밀었다.

“레디스 도련님, 같이 가요. 아가씨 이마에 난 상처부터 치료해야 해요.”

“하, 진짜…….”

레디스는 짜증을 냈지만 별수 없이 한 발 뒤로 물러나더니, 곧바로 힐데가르트의 이마부터 살폈다.

“힐데, 일단 가자.”

“잠깐만.”

힐데가르트가 레디스의 몸을 밀어냈다.

그러고는 아직도 기세등등한 백작 부인에게 말했다.

“가진 돈을 몽땅 날리든, 손에 피를 묻히고 돌아오든 문부터 열어주고 살펴주는 게 가족이에요. 그런 기본도 모르시나요?”

“뭐?”

“아무래도 부인과 전 가족의 기준이 다른 것 같네요.”

“힐데가르트!”

“재판은 취소 안 해요. 누구랑 다르게 저는 경솔한 성격이 아니거든요.”

쏘아붙인 힐데가르트는 발갛게 부어오른 로빈의 팔을 본 다음 등 돌렸다.

레디스가 그 뒤를 따르며 자리를 피하자, 백작 부인은 쩌렁쩌렁 소리쳤다.

“뺨을 때리기 전에 당장 내려오지 못해!”

“이야기라면 제가 들을게요. 이모님.”

벌벌 떨면서도 미하일은 끝까지 백작 부인을 막아냈다.

* * *

서재 문이 닫히자 백작 부인과 미하일은 단둘이 되었다.

움츠러든 미하일은 난처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이모님, 방금 일은…….”

솔베르 백작 부인은 차가운 눈으로 힐난했다.

“대체 동생을 어떻게 돌보면 저 모양 저 꼴이 돼.”

“죄송합니다. 오시기 전에 한 번 연락을 주셨으면…….”

“내가 연락을 줬으면? 네 동생들 못 만나게 하려고? 저 꼴이라서?”

“……그런 의미로 드린 말씀은 아니에요.”

미하일의 얼굴이 부쩍 어두워졌다.

이렇게 화를 내는 이모님을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공작가 수입이 부족해서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인데 뭐 하자는 거야? 누구 마음대로 후견인을 바꾸겠다고.”

미하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후견인을 바꾸다니요? 그게 무슨 소리세요?”

“이젠 잡아뗄 셈이니? 힐데가르트가 편지를 보냈다. 내게 후견인 자격이 없다면서. 내일모레 재판을 한다고!”

백작 부인은 다시 떠올려도 기가 막힌다는 듯 코웃음 쳤다.

소금 기둥처럼 굳어 있던 미하일은 놀란 얼굴로 팔을 저었다.

“그건, 저도 몰랐…… 어요.”

“뭐? 그걸 몰랐다고?”

“제가, 제가 힐데하고 이야기를 해볼게요.”

미하일은 왜 이렇게 이모가 화를 내며 달려온 건지 깨달았다.

“답답해서 그랬을 거예요. 요즘 부쩍…….”

“너희가 답답할 게 뭐가 있는데?”

“…….”

미하일의 시선이 자연스레 백작 부인이 끼고 있는 반지로 향했다.

가주 인장 반지.

백작 부인은 그새 그 사실을 알아채고 추궁했다.

“나만 없으면 공작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구나.”

“이모님.”

“심지어 너뿐만이 아니라 그 애들도.”

톡 쏘아붙인 백작 부인은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두겠다는 듯 다그쳤다.

“미하일, 세금 수입 계산하는 법은 알고 있니? 1년에 몇 번 황실에 서신을 보내야 하는지는 알아?”

“…….”

“저택 유지비 계산은? 공작가의 가주가 될 때 누구에게 초대장을 보내야 하는지는? 지주 상단과 봐야 할 업무는?”

“…….”

미하일의 입이 꽉 다물렸다.

그럼 그렇지.

백작 부인은 미하일에게서 반응이 없자 순식간에 의기양양해졌다.

“너 동생들이랑 헤어지고 싶어?”

“이모님.”

미하일은 화들짝 놀랐다. 그가 황급히 애원했다.

“아니에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한 번도요.”

백작 부인이 무섭게 눈을 부라렸다.

“죄송해요. 제가 애들에게 잘 말할게요.”

“처신 똑바로 해. 당장 가서 힐데한테 재판을 취소하라고 해라.”

“…….”

미하일은 가슴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참아야 해.’

이대로 이모님이 후견인을 그만둔다면, 동생들을 다른 공작가로 보내야 한다.

그러면 동생들을 두 번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

“요즘 애들은 마음에 안 들면 고집부터 부리고 보는구나.”

백작 부인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대체 너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게 어떻게 공작 노릇을 하려고? 망신당하려고 작정한 거야?”

“…….”

“나도 평생 너희 후견인 노릇이나 하며 살 생각 없어. 어련히 때 되면 알아서 될 일을 가지고.”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그 하녀도 같이 내쫓아야겠구나.”

“이모님, 그건……!”

“불만 있니?”

“…….”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미하일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싫다고 나섰다가 백작 부인이 후견인을 정말로 그만두는 일이 두려워서였다.

“나 원.”

백작 부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턱을 치켜들었다.

거의 다 망해가는 공작가. 곧 작위를 반납하고 아이들이 따로따로 흩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그녀가 냉랭한 시선을 던졌다.

‘안 그래도 그 물건이 안 보여서 짜증 나는데 애들까지 시끄럽게 굴고 난리야.’

백작 부인은 서재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 * *

한편, 흥분한 힐데가르트는 흡사 흉악범처럼 레디스에게 연행되었다.

침대에 앉은 힐데가르트는 부루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찌어찌 진정했다곤 하지만, 속이 썩어서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너 이리 좀 와봐.”

레디스는 그렇게 말했으면서 자기가 구급상자를 들고 다가왔다.

혼자서 상처를 치료한 적이 많았는지 능숙하게 구급상자를 뒤적였다.

“안 아프냐?”

“아파. 그래도 연고는 됐어.”

힐데가르트가 레디스의 팔을 치웠다.

“이건 증거니까 보존해 놔야 해.”

“증거?”

“백작 부인이 우리에게 손찌검했다는 증거야.”

힐데가르트가 엄숙하게 말했다.

“모레 재판을 할 거야. 백작 부인의 후견인 지위를 정식으로 박탈해 달라고.”

“……야. 진짜 너는…….”

구급상자를 옆구리에 낀 레디스가 심란한 얼굴을 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러는 거야? 너 요즘 진짜 이상해. 사람이 너무 변했잖아. 죽을병 걸렸어?”

동생이 변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애가 아니었는데.

‘겉으로 보기엔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레디스가 입을 삐죽 내민 채 그녀를 살폈다.

“왜? 재판 반대야?”

“누가 그렇대?”

“그럼 찬성인 거지?”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갑자기 재판이라고 해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레디스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음,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 반대할까 봐 그랬지.”

“미리 말 좀 해주면 어디가 덧나냐고.”

한 명이라도 반대한다면 한없이 시간만 잡아먹고 옥신각신하느라 정작 생활은 나아지지 않을 게 뻔했다.

힐데가르트는 의외로 반발하지 않는 레디스를 보며 조그맣게 사과했다.

“미안해. 다음엔 미리 말할게.”

“꼭이다.”

레디스가 투덜댔다.

“그래도 후견인 바꾸는 건 나도 찬성이다. 계획은 뭐야?”

솔베르 백작 부인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건 레디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집안의 장남은 미하일이었고,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입을 다물고만 있어야 했다.

설마 힐데가 들고 일어날 줄은 몰랐지만…….

“설마 계획도 없이 그런 건 아니지?”

“그럴 리가. 근데 도와주려고?”

힐데가르트는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레디스를 응시했다.

레디스는 여동생이 저를 손자 보듯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불퉁한 목소리로 투덜댔다.

“그냥 물어보는 거거든?”

“아무것도 도와줄 필요 없어. 이미 준비는 다 끝났거든.”

“뭐?”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더 채근하려던 때였다.

똑똑똑, 하는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미하일이 방으로 들어왔다.

“미하일 오빠.”

“힐데,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미하일은 부쩍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혼자서 들기엔 버거운 물건을 가득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자를 가지고 온 미하일이 힐데가르트의 앞에 앉았다.

두 사람 모두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상처는 좀 괜찮아?”

“…….”

잠깐이지만 힐데가르트는 목구멍이 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화를 냈으면 미안하지라도 않았을 텐데.

‘애가 너무 순한 것도 문제구나.’

그녀가 속으로 한숨 쉬었다.

“일단 이마 좀 보자.”

미하일이 조심스레 팔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살폈다.

손톱에 긁힌 살이 발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소독약만 발랐구나. 연고는?”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해.”

“그래도 치료는 해야지. 혹시라도 흉터가 남으면…….”

“재판에 증거로 낼 거니까 빨리 나을 필요 없어. 레디스 오빠가 해준다는 거 내가 말린 거야.”

“…….”

미하일이 손을 내렸다.

“힐데, 정말로 네가…… 후견인 지위 박탈 재판을 신청했니?”

“응.”

“왜 오빠한텐 말하지 않았어?”

“말릴 거잖아. 후견인이 없으면 우리 셋 다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고.”

“…….”

“지금도 그거 취소하라고 설득하러 온 거 아냐?”

그랬다.

정곡이 찔린 미하일은 제 여동생의 청보라색 눈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힐데가르트는 언제고 이런 순간이 올 거라는 걸 예상했던 모양이다. 오히려 저보다도 훨씬 차분해 보였다.

미하일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힐데, 마음은 이해하지만…… 당장 이모님이 후견인을 그만두시면 곤란한 일이 많아.”

미하일은 점잖게 그녀를 설득했다.

“내가 혼자서 공작령 업무를 보기도 어렵고, 또…….”

“…….”

힐데가르트가 마냥 조용하자 미하일은 잠시 불안해졌다.

“혹시 오빠랑 같이 사는 게 싫어서 그랬어?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서…….”

“뭐?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놀란 힐데가르트는 곧바로 그의 말을 막았다.

미하일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다행인 게 아니라……. 왜 그런 생각을 해?”

“…….”

미하일은 억지로라도 웃어보려 했으나, 잘 안 되자 힘없이 말했다.

“네가 실망해서……. 내가 가주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걸까 봐.”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런 오해하지 마.”

“응, 고마워.”

이건 좀 계산 못 한 반응인데.

힐데가르트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미하일이 위축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화내는 것도 싫은 거구나.’

가주 실격이라며, 그냥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는 쪽을 선택한다.

“힐데, 재판은 조금만 더 생각해 보지 않을래?”

“오빠.”

“철광석이나 장부에 대한 문제는 오빠가 알아낼게. 가주 인장 반지도 이모님을 설득해서 꼭 돌려받고.”

“미하일 오빠.”

“지금 이대로 이모님이 후견인을 그만두시면 우리는…….”

“오빠, 답답한 마음은 이해해. 그런데 정말 그게 오빠가 원하는 거야?”

“…….”

“오빠 진짜로 그걸 원해?”

미하일은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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