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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9)화 (9/166)

9화

최근, 동생이 좀 이상하다.

콕 집어서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뭔가 변했달까?

미하일과 레디스는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변화를 제일 먼저 감지한 사람은 레디스였다.

그날도 레디스는 이른 아침부터 연무장에서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197, 198, 199…… 200!”

송골송골 맺힌 땀이 어느새 턱을 타고 흐를 때였다.

“진짜 열심히 하네.”

“헉, 헉……. 힐데?”

목검을 내리며 숨을 몰아쉬던 레디스는 힐데가르트를 발견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그냥 산책하다가 눈에 보이길래.”

“이 시간에 산책이라고?”

아침잠이 많은 여동생은 늦게까지 자는 날이 많았다.

이렇게 일찍 일어난 것도 이상한데, 웬 산책?

“산책을 밤에 할 수는 없잖아.”

“뭐, 그건 그런데…….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

“오십 셀 때부터?”

꽤 일찍부터 지켜봤단 소리다.

한술 더 떠서, 힐데가르트는 저를 구석구석 뜯어보고 있었다.

“흠흠…….”

“뭐야. 왜 그렇게 봐?”

“아무것도 아냐.”

묘하게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요모조모 뜯어보더니 대뜸 꺼내는 말도 마찬가지로 뜬금없었다.

“레디스 오빠, 목표는 검술 대회 우승이야?”

“어. 왜 당연한 걸 묻고 있어.”

“혹시나 해서.”

“검술 대회 우승은 거쳐 갈 목표일 뿐이야. 진짜 목표는 따로 있지.”

“뭔데?”

“황실이 자랑하는 직속 로열 가드!”

레디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장남인 형은 가주가 될 테니까, 차남인 나는 당연히 그걸 노려야지. 명예를 위해서라도.”

“흐음, 그게 꿈이구나.”

힐데가르트는 양산을 펼쳐 들었다.

로열 가드라니. 꽤 오랜만에 듣는 단어다.

‘귀엽기도 해라.’

힐데가르트는 기특하다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알겠어. 수련 방해해서 미안. 그럼 열심히 해.”

“뭐? 미안? 야, 너 오늘 진짜 이상하다?”

평소라면 오빠 같은 사람이 우승이 가당키나 하겠냐고 빽빽 소리를 질렀을 애인데.

레디스는 진지하게 해가 서쪽에서 떴는지를 의심했지만, 힐데가르트는 희미한 웃음을 남긴 채 유유히 자리를 떴다.

레디스는 황당한 얼굴로 땀을 훔쳤다.

“뭐야……. 저 녀석, 내가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본 거야?”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비슷한 경험을 겪는 건 미하일도 마찬가지였다.

미하일은 오늘도 서재에서 소소한 일거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아카데미 교재에 각주와 해설을 다는 일이었다.

“오빠, 필요한 책은 여기에 놔둘게.”

“응. 고마워.”

힐데가르트는 미하일이 찾던 책 다섯 권을 서가에서 뽑더니 책상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턱. 턱. 턱. 턱. 턱.

책 제목을 흘끗 바라본 미하일은 감탄을 터뜨렸다.

“……완벽하네. 오늘도.”

여동생이 찾아온 서적은 정확했다. 모두 필요한 책이 맞았다.

그래서 더욱 신기했다.

‘레디스도 몇 번은 헤매는데…….’

종종 저를 도와주던 레디스도 책을 꽂았다가 빼기를 반복하며 필요한 책이 무엇인지 헤매곤 했다.

한데 힐데는 달랐다.

그녀는 마치 어느 서가에 어떤 책이 있는지 모두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참, 아마 이 책도 필요할 거야. 이거 개정판인 거 같거든?”

심지어는 그 내용까지도.

“그래? 고마워. 한번 볼게.”

미하일은 차분하게 대답하면서도 의아함을 느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책을 많이 읽었나?’

하지만 서재 겸 집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가장 많은 건 미하일이였다.

그동안 여동생이 저와 마주치지 않고 이 많은 책을 독파하는 건 불가능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

“왜 그래? 뭐 할 말 있어?”

“아, 아무것도 아냐.”

미하일은 시선을 거두었다.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약속했던 마감 날짜가 촉박했다.

‘나중에 물어보면 되겠지.’

우선은 부지런하게 손을 놀릴 때였다.

한편, 힐데가르트는 서재를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설마 설마 했는데, 돈 될 만한 장서까지 팔아 치웠네.’

아무리 그래도 책은 좀 남겨두지.

이대로라면 목돈을 만들긴커녕 조카에게 용돈을 타서 쓰게 생겼다.

힐데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이지. 자식 농사는 안 망쳐서.’

그간 지켜본 결과, 힐데가르트는 공작가에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

레디스는 혼자서 수련하는 것치고는 실력이 뛰어나서, 정말로 검술 대회 우승을 노려볼 만했다.

미하일도 완벽한 필기체와 문장력을 구사하는 걸 보니 가정 교사에게 교육을 잘 받은 모양이다.

돈이 많고 공작가가 잘나간들 후계자가 개떡이라면 답도 없는데 이 정도라면야.

‘그러니까 더더욱 돈이 필요한데.’

힐데가르트는 책장에서 시선을 뗐다.

“미하일 오빠,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응? 뭔데?”

“혹시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재산은 없어?”

미하일의 손이 잠시 멈췄다.

“우리들 나눠 쓰라고 남겨주신 게 조금도 없는 거야? 조금도?”

힐데가르트가 기억하는 레온하르트는 엄하면서도 꼼꼼한 가주였다.

어찌나 꼼꼼했는지, 힐데가르트가 사교계에 데뷔하던 주간에는 30분 단위로 일정을 짜놓아서 그녀를 기겁하게 했을 정도다.

그런 오빠가 아무 생각 없이 광산을 팔았을까?

‘뭔가 대비를 세워 놨을 거야.’

힐데가르트는 희망에 찬 눈으로 미하일을 바라보았다.

“음, 없지는 않아.”

“정말?! 역시 그럴 줄 알았…….”

“그런데 우리는 쓸 수 없어.”

“왜?

“재산 관리는 다른 사람이 하고 있거든.”

“뭐?”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다른 사람이라니…….”

미하일이 난처한 얼굴로 깃펜을 쥐지 않은 손을 들어 보였다.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힐데가르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어?’

매끄럽고 고운 손가락에는 있어야 하는 게 없었다.

‘가주 인장 반지가…… 없어?’

그것도 아주 중요한 게.

* * *

가주 인장 반지.

그것은 공작가의 모든 권리를 다룰 수 있는 반지로, 오직 공작만이 낄 수 있다.

인장 반지로 도장을 찍어서 보내면 ‘절대복종해야 하는 가주의 명령’이라는 뜻이 생긴다.

즉, 가주 인장 반지란 가문에서는 왕의 인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공작가의 자금을 운용할 때도 대부분 인장 반지가 필요했다.

그런 물건을 다른 집안의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반지는 이모님이 보관하고 계셔. 내가 아직 미성년자니까…….’

‘빼앗긴 거야?!’

‘아마 내년엔 돌려주실 거야.’

“퍽이나 돌려주겠다. 그걸!”

미하일의 힘없는 미소를 떠올린 순간, 힐데가르트는 유리 온실의 테이블을 내려쳤다.

쾅!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어. 그깟 땅이랑 광산 좀 없어졌다고 집까지 이런 꼴이 되다니!”

가주 인장 반지의 효력은 황실이 보증한다.

인장 모양이 황실의 귀족 도록에 찍혀 있으므로 다른 물건으로 대체할 수도 없었다.

‘무조건 돌려받아야 해!’

미하일의 허전한 손가락을 봤을 때부터 힐데가르트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아, 아가씨?”

“……로빈.”

힐데가르트는 발갛게 부어오르는 주먹을 감췄다.

“차를 가져왔어요.”

“응.”

로빈은 공작가에 남은 마지막 사용인답게, 눈치 빠르게 막내 공녀의 상태를 파악했다.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온 로빈은 트레이를 내려놓았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가요?”

“그게, 고민이랄까…….”

뭐 한두 개만 망했으면 거기부터 시작하면 될 텐데, 사랑하던 자리마다 폐허 꼴이 나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나던 참이다.

힐데가르트는 남색 머리의 동글동글한 얼굴의 하녀를 바라보았다.

“로빈, 좀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무슨 일이세요?”

침착하자.

우선은 반지를 보관하고 있다는 ‘이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게 먼저다.

힐데가르트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홍차가 담긴 찻잔을 손에 쥐었다.

“우리 후견인이라는 ‘이모님’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

“아, 솔베르 백작 부인이요?”

로빈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감사하신 분이죠.”

“말끝을 흐리네.”

게다가 묘하게 유체이탈 화법인 게 마음에 걸린다.

로빈이 애써 웃었다.

“계속 말해봐. 뭐든 좋아.”

“뭐든지요? 으음…….”

이어진 설명은 간단했다.

솔베르 백작 부인이 공작가로 찾아온 건 5년 전.

선대 공작 부부가 죽고 아이들만 남겨졌을 때였다.

선대 공작 부인의 먼 친척 출신인 그녀는 귀족 법정에서 절차를 밟아 정식으로 후견인이 되었다.

공작가의 후견인이란 겉으로야 실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약이 많다.

경매나 사업을 금지당하고 세금 감사도 철저히 따라붙는다.

특히 공작가쯤 되는 집안의 후견인이라면 황실에서도 감시를 심어 놓게 마련이다.

이렇다 보니 제아무리 대단한 귀족이라 해도 선뜻 나서기 어려웠다.

“그때 나서신 게 백작 부인이셨어요. 먼 친척이지만 자격은 충족하셨으니 미하일 도련님이 받아들이셨죠.”

“유언장으로 지정한 후견인이 아니었어?”

“네. 선대 공작 부부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제대로 유언장이나 후견인 같은 승계를 준비하실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도 너무 덥석 맡긴 거 아냐?”

로빈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후견인을 찾지 못했다면 힐데 아가씨와 레디스 도련님은 다른 공작가로 보내져서 얼굴도 모르고 자라셨을 거예요.”

“……그건 몰랐어.”

“도련님으로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5년 전이면 미하일이 열한 살이었을 때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잘해줘도 믿고 의지했을 나이였다.

‘게다가 동생이랑 생이별할 뻔했을 때 만났으니까…….’

후견인이 없어 세 명 모두 뿔뿔이 흩어질 상황이었다면, 나라도 믿고 의지했겠네.

‘어쩐지 이모님, 이모님 하면서 냉큼 따른다 싶었지.’

힐데가르트가 이마를 짚었다.

“그래도 솔직한 마음으로는 백작 부인을 좋게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응?”

“아가씨도 아시잖아요. 작년에 예산 문제로 기사단을 해체하고 사용인을 해고한 것도 그분이신 거.”

“……뭐?”

힐데가르트는 감전된 것처럼 찌르르 몸을 떨었다.

예산 문제라니, 설마…….

“혹시 지금 공작가의 재정, 그러니까 공작령의 세금 수입을 관리하는 사람이…….”

“네, 솔베르 백작 부인이세요.”

쨍그랑!

힐데가르트의 손에서 찻잔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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