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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7)화 (7/166)

7화

Chapter 02. 어른의 조건

레디스와 함께 아침 식사 중이었던 힐데가르트는 귀를 의심했다.

“응? 뭐라고?”

“수도 구경시켜 줄 테니까, 가출하지 말라고.”

수도 구경?

힐데가르트가 의아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저번에는 안 된다며? 게다가 지금 집 사정이 이런데 무슨…….”

“그건 네가 신경 쓸 일 아냐.”

힐데가르트는 황당한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언제는 너도 알 건 알아야 한다더니?’

그녀가 진짜 어린아이였다면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힐데가르트는 이 녹색 평원처럼 푸르른 식탁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여동생의 떨떠름한 반응을 못 본 척, 레디스가 으름장을 놓았다.

“앞으론 얌전히 저택에 있어. 알겠지?”

“어?”

“또 가출하지 말라고. 조그만 게 세상 무서운 줄 몰라! 그러다가 납치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힐데가르트는 눈을 깜빡이다가 깨달았다.

“혹시 걱정했어?”

“걱정 같은 소리 하네!!”

레디스는 눈에 띄게 동요하며 소리쳤다.

힐데가르트는 조금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거참, 애들이 이상한 점에서 레온 오빠를 닮았네.’

엄하게 다그치는 척해도 팔이 안으로 굽는 기질은 여전했다.

‘수도 구경이라…….’

사실 수도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기는 했다.

80년이나 흘렀지 않은가.

그래도 일에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건데 이렇게 될 줄이야.

“힐데, 대답!”

“알겠어. 가출 안 할게.”

“좋아.”

레디스는 그제야 씩 웃었다.

힐데가르트는 묘한 얼굴로 레디스를 바라보았다.

비록 집안 풍경은 변했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이들만큼은 여전했다.

그 사실이 묘하게 기분 좋았다.

* * *

힐데가르트는 식사를 마치고 산책에 나섰다.

정원을 걷고 오겠다고 하니 미하일이 그녀를 불러세워선 모자를 씌워주었다.

피부가 타지 않게 꼭꼭 조심해서 놀라는 말도 뒤따랐다.

“그래도 내가 대고모인데. 대놓고 애 취급이라니.”

힐데가르트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서도 모자를 단단히 눌러썼다.

공작가의 하녀 로빈은 그녀를 보고 자신이 달고 있던 해바라기 모양의 브로치도 달아주었다.

“정원도 그렇고 멀쩡한 게 없네.”

흥하기는 어렵지만 망하기는 쉽다더니.

밝은 낮에 보니 엉망진창이 된 저택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산책을 끝낸 그녀는 그늘 가에 주저앉았다.

“이제 어떡한다.”

이놈의 집안,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힐데가르트는 저를 위로하듯 불어오는 바람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생각해 보자.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그녀는 명상에 잠겼다.

그렇게 생각을 비워내던 것도 잠시.

번뜩!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뭐야?”

힐데가르트는 가슴에 손을 올렸다.

뭔가 이상했다.

가슴, 그것도 심장 근처에 단단하게 뭉쳐 있는 이 기운은 분명…….

“마력?”

그것도 조금만 쌓여 있는 게 아니었다.

상당한 마력이 바글바글 뭉쳐 있었다.

“설마?”

힐데가르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더욱 확실하게 전신을 돌아다니는 기운이 느껴졌다.

두근. 두근.

맥박이 뛸수록 조금씩 함께 움직이는 강하고 선명한 기운.

특유의 순도 높은 투명한 결정체.

틀림없었다. 최소 5년은 수련해야 쌓을 수 있는 마력이 심장을 중심으로 뭉쳐져 있었다.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눈을 뜬 힐데가르트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피어올랐다.

“살다 보니 마력을 타고나는 몸으로 환생을 다 하네?”

마력이란 마법사가 마법을 부리기 위한 힘이다.

마력 자체는 후천적인 수련으로도 쌓을 수 있지만, 압도적인 재능은 대부분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마력 친화도에 달려 있었다.

마력이 쇳가루라면, 마력 친화도는 자석.

강하게 타고날수록 마력이 찰떡같이 잘 달라붙었다.

그런 점에서 이 몸의 마력 친화도는 어마어마했다.

“전생의 나보다 낫잖아?”

힐데가르트는 초대 마탑주임에도 불구하고 마력 친화도는 낮은 편이었다.

전생에서 쌓은 마력은 대부분 후천적인 수련의 결과물이었고, 직접 쌓은 마력보다는 대마법사 크레니히에게 물려받은 마력이 더 많았다.

“하지만 이 몸이라면…….”

단순히 더 나은 수준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초대박 수준!

힐데가르트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시험해 보자.’

힐데가르트는 다시 눈을 감고 재빨리 몇 가지 점검을 마쳤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제대로 수련한 적도 없는 몸인데 벌써 마력을 움직일 수 있어……?”

데- 엥! 뎅! 데- 엥!

축복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힐데가르트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울 것만 같았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번 생에서도 마탑주 자리는 내 거다!”

전생에서도 이렇게 마력 친화도가 높은 몸으로 태어났더라면, 마탑이 아니라 마법 왕국을 세웠으리라.

힐데가르트는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어지는 마음을 꾹 참았다.

대신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드레스가 낡았지만 뭐 어때! 내가 천잰데!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지!”

한참 바닥을 구르던 힐데가르트는 곧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법이란 무엇보다도 조기 교육이 중요한 학문이다.

그리고 학문을 탐구하려면?

“돈이 필요해!”

마법은 원래부터 배우는 데 돈이 많이 드는 학문이다.

교사를 구하고, 교재나 재료를 마련하는 것도 한두 푼 드는 게 아니었다.

마법을 잘못 다뤄서 피해를 주면 배상도 해야 했다.

하지만 힐데가르트가 누구인가.

선생은 필요 없다. 그녀 자신이 필요한 지식을 모두 익히고 있었다. 교재도 마찬가지였다.

“돈…….”

결국, 환생 이후의 문제는 큰 틀에서 놓고 보면 하나로 이어졌다.

“역시 돈부터 해결해야 해. 그게 제일 급해.”

흥분으로 타올랐던 힐데가르트의 눈동자가 냉정하게 빛났다.

가문의 재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몇 없었다.

그럼에도 힐데가르트는 굴하지 않았다.

방법은 있을 거야.

언제나 그랬잖아.

“생각하자. 이 재능……. 이대로 썩히기엔 너무 아까워!”

그녀가 머리카락을 꼭 잡아 쥐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힐데가르트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하나씩 생각을 정리하며 흙모래 위에 글씨를 써 내려갔다.

[방법 1. 가문의 남은 재산을 찾아내서 가계에 보탠다.]

이 방법은 가장 어려워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시도해 볼 만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카락시아야. 응? 제국에서 제일가는 공작가였다고. 찾으면 뭐라도 나올 거야.’

하지만 집안 상황을 보면, 무작정 탐정 놀이를 하듯 재산만 찾을 여유는 없어 보인다.

‘……차라리 애들한테 내가 대고모라는 걸 밝혀볼까?’

여어. 안녕 얘들아. 들어봐.

실은 내가 너희의 대고모야. 다시 태어났단 말이지.

그런데 가만 보니까 이 몸이 마력 친화도가 높아.

그러니까 마법 좀 배우자.

일단 좀 도와주면 내가 나중에 너희들 호강시켜 줄게.

한참 생각하던 힐데가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후. 밝히기는 무슨.”

지이익.

힐데가르트는 글씨에 줄을 그었다.

“넌 나중에 두고 보자.”

기각은 아니고 보류하는 쪽에 가까웠다.

힐데가르트는 다음 방법을 모래 위에 슥슥 써 내려갔다.

[방법 2. 사업을 시작한다.]

이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

아니긴 한데…….

“사업이라.”

힐데가르트는 한 번도 사업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설프게 뛰어들었다간 목돈만 까먹기 딱 좋은데.”

작위를 잇지 못한 귀족들이 장사를 우습게 보고 사업을 하겠다 나선 적은 많다.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대실패.

가문의 돈을 까먹으며 꼬리를 말고 돌아오는 게 대다수였다.

게다가 장사를 시작하려면 모아둔 목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목돈은커녕 쪼끄마한 쌈짓돈도 없는 상황 아닌가.

뭣보다 장사는 혼자 힘으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없으니.”

힐데가르트는 열두 살이었다.

직접 장사를 할 수 없으니 대리인을 세워야 할 텐데, 누굴 세워야 한단 말인가?

또, 가장 큰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었었다.

바로 평판이었다.

“공작가가 생활고 때문에 장사를 시작한다라……. 레온 오빠 같은 고지식한 사람이 들으면 관뚜껑을 발로 차고 일어나지.”

귀족으로 나고 자란 이들은 상인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타고난 선입견이랄까.

날 때부터 귀한 신분을 타고났기에,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고개 숙이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끄응…….”

힐데가르트 본인에게는 그러한 선입견이 없지만, 과연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공작가가 돈을 벌기 위해 장사꾼을 자처한다?

그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 딱 좋았다. 저 대단했던 공작가도 결국 땅에 떨어졌다면서.

“가문의 평판을 깎아 먹는 모습은 안 돼.”

안 그래도 가난해진 가문 꼴, 나락으로 처박을 순 없지.

세련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는 사업 수단이 필요했다.

“오직 아카락시아 가문만이…… 나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라. 곧바로 떠오르는 건 없네.”

힐데가르트는 곰곰이 생각하며 다시금 글씨 위에 줄을 그었다.

지이익.

방법 2도 보류였다.

“그럼 남은 방법은…….”

[방법 3. 제자를 가르친다?]

힐데가르트는 땅에 쓴 마지막 방법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재빨리 흙모래 위에 적힌 글자를 뭉갠 뒤, 다시 적었다.

[방법 3. 돈 많고 부려 먹기 좋은 제자를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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