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힐데가르트는 귀를 의심했다.
누가 누구 때문에 뭐를 열 개나 팔았다고?
“대고모님은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랑케르트 가문의 영지에서 실종되었거든. 그곳 땅을 전부 사들이는 대신, 광산 열 개를 넘겼지.”
이어진 미하일의 설명은 직접 듣고 있어도 믿기 어려웠다.
유언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힐데가르트 공녀.
레온하르트 공작이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가문의 재산을 긁어다 썼다는 이야기.
거기까지는 그럭저럭 애틋한 이야기인데…….
‘말도 안 돼! 가진 광산의 절반이잖아!’
재산을 조금만 긁어다 쓴 게 아니라, 왕창 긁어서 썼단 소리다.
“고작해야 시신 하나 찾아오는데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써?!”
“그런 거래였는걸.”
힐데가르트는 어느새 자신이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시신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땅을 사들이겠답시고 그 짓을 벌여?
“제정신이야? 말도 안 돼! 완전 미친 짓이지!!”
“그렇게 말하면 안 돼.”
그때였다. 내내 다정했던 미하일의 눈이 차갑게 굳었다.
“힐데, 그런 생각은 했더라도 말해서는 안 되는 거야.”
“말이 안 된다니? 누가 시신 하나 때문에 그 많은 광산을 팔아! 미치지 않고서야…….”
제정신이라면 그럴 수는 없다.
제정신이라면, 그래서는…….
‘그러니 무사히 돌아와라. 알았지?’
“…….”
어느새 힐데가르트는 입을 다물었다.
시선을 마주한 미하일의 표정은 마치 어른처럼 엄했다.
“힐데, 나도 어릴 적에는 너처럼 생각했어.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라면 나도 할아버지처럼 했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보석 광산을 끌어안고 살게 해줄 테니 너나 레디스나, 엄마 아빠 시신을 아무 땅에나 버려두라고 한다면……. 그렇게는 못 한다는 소리야.”
“…….”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잖아.”
힐데가르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가슴속에 차가운 얼음을 한가득 부어버린 것 같았다.
그녀는 한참 뒤에야 간신히 입을 뗐다.
“남은 광산은…… 어떻게 됐어?”
“철광석을 제외하곤 전부 재산 싸움으로 찢어졌어. 경매에 넘겨지고…….”
“…….”
“다 지난 일이야.”
따뜻한 손이 힐데가르트의 뺨을 쓸었다.
“힐데, 우리는 남을 탓하면서 살지 말자. 그러면 더 불행해지잖아.”
“…….”
이토록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기 위해서, 고작 열여섯밖에 안 된 미하일은 언제부터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힐데가르트는 조카가 너무 이른 나이에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할아버지나 대고모님 탓이 아니야.”
‘하지만 너희 탓도 아닌걸.’
힐데가르트는 조카를 향해 무심코 그렇게 말할 뻔했다.
* * *
그러니까…… 레온 오빠는 나 때문에 광산을 팔아먹은 거구나.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열 개나.
당연히 오빠를 향한 반발이 빗발쳤겠지.
나머지는 뻔하다.
이대로 공작가 재산을 맡겨둘 수 없다는 이들이 나와서 사업권과 재산을 두고 재판도 벌였겠지.
매일매일 재판의 연속이었을 거다.
그걸 모를 사람이 아니었을 텐데…….
‘왜 그랬어.’
그날 밤, 내 꿈에 레온 오빠가 나왔다. 아주 어릴 적 모습으로.
* * *
“힐데가르트.”
잠깐이지만 내가 레온 오빠를 몹시 싫어했던 때가 있었다.
오빠가 우리 집에 오기만 하면 수련을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하지 말라고 혼을 냈기 때문이다.
“힐데, 검 내려놔.”
“나한테 참견하지 마.”
특유의 고압적인 말투며 무작정 목검을 빼앗는 오빠가 그때는 참 미웠다. 그때의 저는 수련에 혈안이었으니까.
그랬던 레온 오빠가 내 가족이 되었던 게 언제였더라?
엄마가 나를 버리고 도망간 해였던가, 그다음 해였던가.
확실한 건, 몹시 춥고 비가 내린 날이었다.
내 키가 지금보다 훨씬 더 작았던 시절.
그날도 레온 오빠가 내 손에서 목검을 빼앗아 들었다.
“수련 그만해. 손이 다 부르텄어.”
“오빠랑은 상관없잖아. 내 목검 돌려줘.”
“하지 말라고 했다.”
“내놔!”
“말 들어. 오늘은 이만하고 돌아가서…….”
“돌려달라고 했잖아. 내 목검 돌려달라고! 바보야? 귀머거리야? 멍청이야? 몇 번을 말해도 못 알아듣는 거야? 내놓으라고!”
나는 화를 내며 레온 오빠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평소 같았으면 그냥 목검을 높이 들어서 내게서 빼앗았을 오빠가 진심으로 화를 냈다.
“그만 좀 해! 너 다쳤단 말이야! 손 좀 보라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나는 더욱 기를 쓰며 오빠의 손에서 목검을 빼앗으려 들었다.
하지만 키 차이가 큰 만큼, 내게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나는 분한 마음에 뚝뚝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돌려줘. 나 수련해야 해. 놀고 있으면 안 돼.”
“힐데가르트!”
“이러면 엄마가 안 돌아올 거야. 아빠도 계속 집에 안 들어올 거란 말이야.”
레온 오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오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런 말을 하려다 만 건 아니었을까.
분명 그랬을 거다. 똑똑한 사람이니까.
내 어머니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유목민으로 태어나 드넓은 초원에서 자라온 마법사였다.
반면 아버지는 답답한 공작가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딱딱하고 고지식한 귀족이었다.
명문가에서 태어난 남자와 초원에서 마법을 익히며 자란 여자.
꼼꼼하고 철저한 아버지.
자유분방한 어머니.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모습에 끌려 순식간에 결혼했고, 나를 낳았다.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는 우리 집도 행복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어머니는 수도 생활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사교계에 녹아들지 못했다.
엘프의 후손이라는 마법사를 은근하게 배척하는 제국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꼼꼼하다 못해 철두철미한 아버지의 성격 또한 어머니를 지치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떠나겠다고?’
‘잠깐이라도 좋아요. 잠시만 수도를 벗어나서 고향 땅에…….’
‘절대 안 돼!’
‘…….’
마침내 너무나 달랐던 두 사람의 사랑이 식고, 아버지의 집착이 점차 의처증으로 변해갈 무렵.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정말로 집을 나가버렸다.
어머니가 사라지자 아버지는 미쳐 날뛰다시피 했다. 그러더니 어머니를 찾아내겠답시고 초원으로 달려가 버렸다.
저택에 나만을 남겨두고서.
‘이번엔…… 언제 돌아오세요?’
풍족한 환경.
하지만 텅 빈 집에 혼자 남겨진 어린 공녀.
‘아빠, 가지 마세요! 아빠!’
‘…….’
‘제가 잘할게요. 뭐든 잘할게요. 제발 저 혼자 남겨두지 마세요.’
돌아오겠다는 기약 없이 떠나버린 부모.
나는 외롭지 않고, 버림받은 게 아니라며 되뇌었다.
하지만 묘지보다 조용한 저택에 가끔이라도 찾아오는 사람은 레온 오빠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때의 나는 레온 오빠가 마냥 귀찮기만 했다.
그래서 목검을 빼앗아 든 오빠를 퍽퍽 때리며 울먹였다.
“엄마가 그랬어. 내가 어른이 되면 다 이해할 거라고……. 왜 떠났는지 알 거라고.”
“…….”
“그러니까 나는 빨리 어른이 될 거야.”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해.
아름답고 강한 공녀가 되어야 해.
누구보다도 반짝이는 사람이 되어야, 그래야 날 버리고 간 사람도 다시 돌아볼 거야.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그러나 꿈속의 레온 오빠는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무섭게 화를 냈다.
“비겁한 말로 너를 외면한 어른을 억지로 이해할 필요 없어. 그런 사람들 때문에 네가 일찍 어른이 될 필요는 없단 말이야!”
생전 처음 보는 레온 오빠의 진짜 화난 모습.
“애들은 애답게 자라야 해. 커다란 비눗방울이나 쫓아다니면서 놀고, 개똥이나 말똥 같은 거 밟으면서 울어! 어른은 그다음에 되어도 늦지 않아!”
결국,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치만…… 그러면 엄마가 안 오잖아…….”
“…….”
“우리 집에 아무도 없잖아. 계속 나 혼자잖아!”
나는 서러움에 얼굴을 구겼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아마 그다음부터였을 거다. 레온 오빠가 매주 찾아오기 시작했던 게.
오빠는 일주일에 한 번뿐인 휴일마다 저택으로 찾아왔다.
후계자 수업 때문에 바쁜 티는 조금도 내지 않으면서.
“자, 비눗방울. 엄청나게 크지?”
“됐어. 저리 가.”
“그럼…… 자, 개똥.”
“필요 없어!”
“그럼 굳은 똥.”
“그런 걸 어디서 구해오는 거야? 더럽잖아!”
그런 날들은 짧게나마 계속됐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끝났다.
아버지를 피해 달아나던 어머니가 사고로 죽고, 아버지도 그 뒤를 따라서 목숨을 버렸다는 신문 속 스캔들 때문이었다.
나는 끝내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었다.
“힐데, 작은아버지의 저택을 정리하고 우리 집으로 올래?”
“…….”
“아버지가 너를 입양하고 싶다고 하셨어. 나도 그랬으면 하고.”
“…….”
“내가 오빠가 되는 건 싫어?”
목석처럼 굳어 있던 나는 그 말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장례식이 끝난 뒤, 나는 정식으로 큰아버지의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
입양아가 된 셈이다.
갑작스럽게 형제가 생기고 부모가 생기고, 사는 곳까지 옮겨야 했지만, 혼란은 있을지언정 방황은 없었다.
나를 어린이로 남을 수 있게 해준 레온 오빠가 있었으니까.
“힐데, 너무 빨리 어른이 되려고 할 필요는 없어.”
딱딱하고 엄하지만, 다정한 사람.
나를 정말 많이 아껴준 사람.
“너는 아름답고 강한 공녀가 될 거야.”
기꺼이 나를 위해 가진 것을 내놓을 오빠를 위해서라도 무사히 돌아왔어야 했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동생이니까.”
오빠.
미안해, 오빠.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그러니 무사히 돌아와라. 알았지?’
나도 돌아오고 싶었어.
그랬었는데…….
* * *
새벽 내내 추적추적 비가 내린 하늘은 물 빠진 남색 커튼을 펼쳐둔 것 같았다.
한밤중에 깬 힐데가르트의 걸음이 멈춘 곳은 2층 복도.
초상화를 걸어둔 곳이었다.
그곳에는 역대 공작들의 개인 초상화와 가족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생전의 제 모습도 거기서 찾을 수 있었다.
“엄청 어렸을 때네.”
‘입양된 공녀’ 힐데가르트는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액자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온하르트의 개인 초상화도 있었다.
13대 공작 레온하르트는 지팡이에 손을 얹은 채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참……. 이 미간의 주름은 죽을 때까지 못 폈구나.”
광산 열 개를 넘기기로 했을 때도, 공작가가 몰락하기 시작했을 때도 저런 표정이었을까?
“……왜 그랬어. 바보같이.”
힐데가르트는 레온하르트의 초상화로 손을 뻗었다. 그러곤 주름진 미간을 꾹 눌렀다.
“열 개는 너무 많았잖아. 응? 공작님이 그러면 안 되지…….”
가슴이 아렸다.
찬물 한 잔으로는 잠재울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울렁거렸다.
‘보석 광산을 끌어안고 살게 해줄 테니 너나 레디스나, 엄마 아빠 시신을 아무 땅에나 버려두라고 한다면……. 그렇게는 못 한다는 소리야.’
미하일의 말이 옳다.
힐데가르트는 착잡한 얼굴로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이제 와서 광산을 다시 찾고 가문을 세운다 한들,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행복이 대단한 게 아니듯, 불행 또한 마찬가지다.
힐데가르트는 아이가 아이답게 지낼 수 없다면, 그것이 불행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일찍이 어린 날의 그녀가 겪으며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을 잡았던 불행은 레온하르트가 쫓아내 주었다. 하지만 미하일과 레디스의 불행은 누가 쫓아내 줄까?
힐데가르트는 제 환생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오늘 이 순간까지는.
“오빠.”
힐데가르트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지켜준 사람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오빠. 내가 어떻게든 할게.”
힐데가르트는 맹세했다.
미하일과 레디스에게 드리워진 어른의 그림자를 쫓아내기로.
두 사람을 보란 듯이 키워내고, 전부 예전으로 되돌릴 것이다.
가문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다.
“누구 마음대로 가문이 망해. 내가 있는 한 어림도 없어!”
힐데가르트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띤 채 초상화를 응시했다.
“지켜봐 줘, 오빠. 나 한 입으로 두말 안 하는 거 알지?”
거센 비바람이 몰아친 뒤에는 반드시 무지개가 뜨는 법.
어느새 빗줄기는 점차 약해지며, 눈부신 무지개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나만 믿어. 우리 가문은 내가 지킬 거야.”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
동시에 초상화 속 오빠에게 바치는 맹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