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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5)화 (5/166)

5화

식당으로 내려온 힐데가르트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구겼다.

‘뭐 먹을 게 있어야 식욕이 생기든 말든 하지.’

어제부터 느낀 거지만 식탁이 깜찍하다. 글자 하나만 바꾸면 끔찍할 지경이다.

‘이 나이 먹고 반찬 투정 부리긴 싫지만 이건 심하잖아.’

힐데가르트는 미하일과 레디스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아무 불만 없이 빵과 샐러드를 비우고 있었다.

식사를 시작한 힐데가르트는 곧 포크를 내렸다.

‘설마…….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거야?’

조카들을 바라보는 힐데가르트의 눈동자가 조금씩 젖어 들었다.

그러자 그때까지만 해도 묵묵히 식사하고 있었던 미하일과 레디스는 땀을 흘렸다.

‘왜 저러지?’

‘어제 일로 아직도 우울한가?’

여동생이 갑자기 울먹이자 두 사람의 포크질이 느려졌다.

두 조카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거나 말거나, 깨작깨작 샐러드를 비우는 그녀의 눈빛은 어두웠다.

‘왜일까.’

보통 가문에 재정적 위기가 닥쳐도 이렇게 한 번에 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레온하르트 오빠나 미카엘리스가 재산 배분을 잘못했나?

아니면 크게 사업 실패라도 한 건가? 그것도 아니면…… 재산 사기?

‘설마. 그건 안 돼!’

다른 건 다 참아도 사기를 당해서 애들이 이렇게 지내는 거라면, 그건 용서할 수 없다.

‘사기꾼 자식,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다 토해내게 만들 테다.’

힐데가르트가 눈을 부릅떴다.

“있잖아. 미하일 오빠.”

“으응, 왜 그래?”

“……아니다. 일단 밥 다 먹고 이야기 이야기하자.”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안 그래도 허름한 밥상, 걷어차면 안 되지.

힐데가르트가 금방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여동생의 배려에 미하일은 되레 식은땀이 흘렀다.

“무, 무슨 일인데 그래?”

“물어볼 게 있어서. 이따 밥 먹고 시간 좀 내줄래?”

불행히도 미하일은 ‘오빠, 나 오빠한테 할 말 있어’라는 말을 들으면 하루 종일 자신의 죄를 두루두루 곱씹는 타입이었다.

“……아, 알겠어.”

미하일은 급격한 소화불량에 걸렸다.

핼쑥해진 미하일을 내버려 두고, 힐데가르트는 엄중한 눈빛으로 마저 식사를 계속했다.

* * *

아침 식사를 마치고 정원으로 나온 남매는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곱고 예뻤다.

다만 상태는 영 딴판이었다.

‘체할 것 같아…….’

미하일은 갑작스러운 소화불량에 복통을 느끼고 있었다.

반면 힐데가르트는 투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애들이 비쩍 마른 것보다는 살이 찌는 게 나아!’

이미 힐데가르트의 머릿속에서는 사기꾼을 거꾸로 매단 다음 360도 돌려가며 꼬집은 뒤, 배상 각서를 쓰고 있었다.

“일단 산책 좀 하면서 이야기할까……?”

“응, 그러자.”

동상이몽의 남매가 정원 산책로에 들어섰다.

과연 정원 풍경은 힐데가르트가 알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 잡을 엄두가 안 날 만큼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물뿌리개.

용케 산책로는 무사했지만, 관리를 못 해서 앙상해진 넝쿨 아치는 피해서 돌아가야만 했다.

‘정말 옛 모습을 간직한 게 하나도 없네.’

힐데가르트는 죽은 생선 같은 눈으로 넝쿨 아치를 바라보았다.

“힐데, 뭐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어?”

“아, 그게…… 그보다 잠깐만.”

힐데가르트는 살며시 손가락을 들어서 정원 한쪽을 가리켰다.

“오빠, 저기 저쪽에 분수대가 있었던 거 같은데…….”

같은데, 가 아니라 있었다.

커다란 황금 분수대.

순금으로 만드느라 3년은 넘게 걸렸던 부의 결정체.

광산을 스무 개나 가지고 있었던 아카락시아 가문만이 만들 수 있었던 그 분수대!

야! 봤냐!

이게 바로 우리 가문 능력이다!

이만한 금 캐서 분수대로 만들 수 있는 건 우리 가문뿐이다!

그렇게 가슴 펴고 자랑하게 했던 물건.

“혹시 황금 분수대 말이야?”

“맞아! 그거 어디 갔…….”

“으응, 팔았어.”

“…….”

힐데가르트의 몸이 딱 굳었다.

“팔았어? 누구한테?”

“오래전 일이라 잘은 모르지만, 오브론 대공가에서 사 간 걸로 알고 있어.”

“…….”

오브론 대공가.

하얀 돌을 깎아서 만든 백색 도시를 다스리는 대공 가문.

아카락시아 공작가와는 조용한 라이벌 관계였던 거기.

“그랬구나. 그건 몰랐네……. 하, 하, 하.”

힐데가르트는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드레스 자락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하필이면 오브론 대공가라니.

80년 전 일이지만 아카락시아 가문은 보석을 깎기 위해, 오브론 대공가는 하얀 대리석을 깎기 위해 서로 솜씨 좋은 장인들을 확보하려 경쟁했다.

그런 오브론 대공가에서 황금 분수대를 사 갔다니.

‘하여튼 옛말에 틀린 거 하나도 없어.’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온갖 점잖은 척은 다 떨었던 대공가에서 남의 집 분수대는 왜 뽑아가는데? 왜 사 가냐고!

‘판 사람도 문제야. 그게 어떤 건 줄 알고 덥석덥석 팔아? 그것도 하필이면 오브론 대공가에!’

힐데가르트는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힐데? 왜 그래?”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힐데가르트는 눈가를 주무른 다음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래, 팔 수도 있지. 내 조카들이 팔려 가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녀는 애써 자신을 세뇌했다.

“그러면 저쪽에 말이야. 저기 저쪽…….”

힐데가르트의 손가락이 이번에는 북쪽으로 향했다.

“저쪽에 마탑이 있지 않았어?”

미하일은 약간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맞아. 우리 힐데, 공부했구나?”

“당연히 알아야지.”

힐데가르트는 또박또박 말했다.

“마법사의 지식은 하늘에 닿을 만큼 높다는 의미로 천공탑이라고 지었잖아? 마법사들이 살 수 있게 땅도 사놓고…….”

“그것도 옛날 일이야.”

미하일의 씁쓸한 말에 힐데가르트의 입이 또 멈췄다.

“마탑 주변 땅도 다 팔았거든.”

“팔았다고?”

“응.”

“진짜로?”

마법이란 조금만 실수해도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그러니 마법에 휘말려서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마음껏 마법을 연습할 수 있게 그 일대의 땅을 공작가 이름으로 전부 다 사놨는데…….

“그 넓은걸? 다? 죄다 팔았어?!”

“땅이 워낙 넓어서 한 번에 안 팔렸다고 들었어. 나눠서 싼값에 팔았다던가……. 그럴 거야.”

힐데가르트는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 뻔했다.

이건 그건가? 뒤통수에서 매미가 시소를 타는 건가?

그래서 이렇게 찌르르 울리고 쾅쾅거리는 거지? 그런 거지?

‘광산 말고 다른 재산은 활용 못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활용을 못 하기는 무슨.

분수도 팔아먹고, 마탑 부지도 팔아먹고. 아주 알뜰하게 해쳐 먹었네!

“그 정도면 수도에 있는 저택도 팔았겠네…….”

“그건 제일 나중에 팔았을 거야.”

“…….”

용케 사람은 안 팔았다, 사람은!

힐데가르트는 이제 화낼 힘도 없었다.

남은 반찬을 싹싹 긁어먹듯, 돈 될 만한 건 죄다 팔아 치웠다는 소리다.

기둥뿌리라도 남아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거 고맙네요, 참 고마워요!’

힐데가르트는 울분 섞인 눈물을 남몰래 훔쳤다.

“혹시 다른 방계 가문이 도와주진…….”

“…….”

“……내가 괜한 말을 했네.”

미하일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자, 힐데가르트는 아차 싶었다.

하긴. 자신이 살아 있을 적에도 공작가와 피가 조금 이어졌다는 이유로 뜯어먹으려 하던 사람들이다. 도움이 되었을 리가 없지.

‘하…….’

기운이 쭉 빠진 힐데가르트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자 미하일이 여동생의 안색을 살피며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었다.

“힐데, 괜찮아?”

“…….”

“집안 상황 때문에 많이 실망했구나?”

힐데가르트는 우선 끄덕였다.

여러 가지 오해가 겹쳐진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실망한 건 맞았다.

다방면으로 회생할 만한 구석이 없다는 걸 느끼고 나니 절망감마저 생겼달까.

뭐랄까…….

‘기둥뿌리 네 개 중 하나만 팔았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 개를 팔아버린 기분이야.’

심지어 남아 있는 기둥뿌리 하나도 다 삭아버리기 직전이다.

“미안해. 내가 괜한 말을 했나 봐. 미안.”

“……사과하지 마. 오빠가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

“너도 레디스랑 같은 말을 하네. 그것도 미안.”

힐데가르트는 미하일을 바라보았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집안 사정이 안 좋아진 거야?”

“힐데, 그건…….”

“뭔가 계기가 있었을 거 아니야. 가만히 있다가 영지 전체에 날벼락이 떨어진 건 아니었을 텐데.”

사실 날벼락이 떨어졌어도 광산은 멀쩡했을 거다. 스무 개나 있었으니까.

미하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힐데가르트는 이런 말을 듣기 싫어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먼저 나서서 물을 줄이야.

‘몰랐으면 했는데.’

다 망해가는 공작가라고는 하지만, 막내로 태어난 여동생만큼은 아무것도 몰랐으면 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자라게 해주고 싶었어.’

언제까지나 감출 수만은 없다던 레디스의 말이 옳았던 걸까.

미하일이 애써 입을 뗐다.

“힐데, 혹시 네 이름이 어디에서 온 건지 알고 있니?”

“알지. 힐데가르트 대고모잖아.”

힐데가르트는 민망함을 감추고 애써 뻔뻔하게 대답했다.

“맞아. 레온하르트 할아버지는 항상 대고모님이 우리 가문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라고 하셨대. 그분을 많이 아끼셨고.”

미하일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하지만 대고모님은 마성신을 봉인하면서 돌아가셨어. 너도 알다시피.”

“그거랑 이 이야기랑 무슨 상관인데?”

“상관있지. 할아버지가 대고모님의 시신이 묻힌 땅을 사려고 광산 열 개를 팔아버리셨거든.”

예?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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