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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공녀님 (2)화 (2/166)

2화

Chapter 01. 공작가가 망했다네

원래 세상일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태어나는 것도 그랬는데 죽는 건 오죽할까.

그래도 아쉬움이 남을지언정 후회 없는 인생이라 생각했다.

‘고모가 금방 다녀와서 신발 가게 사 줄게!’

가족에게 신발 가게 수백 개는 살 수 있는 돈을 남겼다.

어머니처럼 핍박받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마법사가 살 수 있는 마탑을 세웠고, 제자도 거두며 열심히 살았다.

마성신을 봉인하고 제국도 구했다.

이 정도면 된 게 아닌가.

물론 내 죽음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긴 한데 일단 생략하자.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 죽었냐가 아니다.

왜 살아 있느냐.

그게 문젠데…….

“나 왜 살아 있지?”

문제는 짚이는 바가 조금도 없다는 거다.

“아니, 그보다 여긴 어디야?”

주변을 둘러보니 한 가지는 분명했다.

어둡고 축축하고 습한 공기.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비석까지.

무덤가였다.

“으응?”

잠깐 상황을 정리해 보자.

‘나는 분명 마성신을 봉인하며 죽었어.’

아마 시신은 온전치 못했을 거다.

마성신의 육체가 폭발하며 생긴 마력 폭풍 때문에 일대가 날아가 버렸을 테니까.

그런데 눈을 떠보니 웬 무덤가에 누워 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열두어 살 정도 된 소녀의 몸에서 깨어났다.

약간 신경 쓰이는 건, 주변에 피로 그려진 마법진이 있다는 건데…….

콕콕!

“감각도 살아 있네…….”

일단 몸은 멀쩡하다. 피부가 말랑말랑했다.

“그럼 진짜 살았단 말이야?”

왜? 어떻게?

죽기 전에 치명상을 입었으니, 살아남을 수는 없었을 텐데…….

‘설마 검은 별 교단이 한 짓인가?’

힐데가르트는 흙을 털고 일어나며 피로 그려진 마법진을 유심히 보았다.

‘영혼을 수집하는 마법…… 이라기엔 마법진 모양이 좀 다른데. 처음 보는 모양이잖아.’

흑마법을 다루는 마법사의 소행인 게 틀림없었다.

그때였다.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힐데가르트! 너 하루 종일 찾았는데 여기 있었냐!”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소년 한 명이 서 있었다.

소년은 열네 살쯤 되어 보였는데, 당나귀 고삐를 쥐고 있었다.

눈에 익은 은발과 굳은 미간.

덥수룩한 앞머리와 화난 얼굴.

‘어라?’

얼굴을 확인한 힐데가르트는 깜짝 놀랐다.

소년과 레온하르트가 겹쳐 보였다.

“……레온 오빠?”

아냐. 레온하르트가 아니다.

본인이라기엔 너무 어리다.

하지만 생판 남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닮은 얼굴이었다.

누가 보아도 혈육이라고 할 정도로.

힐데가르트가 놀라는 사이, 소년은 거침없이 다가왔다.

“겁도 없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얼마나 찾은 줄 알아?”

“……어…….”

“어는 무슨! 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얼른 타! 집에 가자.”

타라니요, 그 당나귀에?

힐데가르트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너 아직도 화가 난 거야?”

그녀가 가만히 있자 소년이 더욱 미간을 구기며 오해했다.

“알겠어. 일단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 곧 날이 저문단 말이야. 대고모님 무덤가에서 이러면 안 돼.”

“응?”

“가출 그만하고 돌아오라고!”

소년이 그녀를 번쩍 안아 들어서 당나귀에 태웠다.

“잠깐! 잠깐만……!”

“일단 집에 가서 이야기해.”

“아니, 화난 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집 가서 이야기해!”

버둥거리는 힐데가르트를 내버려 두고, 소년이 무덤가 쪽으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대고모님, 시끄럽게 굴어서 죄송해요. 얘는 친구가 없거든요. 나중에 형이랑 다시 올게요.”

“악! 짐짝처럼 들지 마! 이거 좀 놓고……!”

버둥거리던 힐데가르트의 시선이 무덤가 비석으로 향했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힐데가르트 아카락시아(412-435)]

가장 존귀한 공녀, 이곳에 잠들다.

“……!”

힐데가르트의 입이 떡 벌어졌다.

‘미친.’

그녀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어려진 게 아니다.

‘미친!’

환생이었다.

* * *

“레디스 공자님, 아가씨는…… 찾으셨군요?”

“응. 도와줘서 고마웠어.”

“고맙긴요. 무사하셔서 다행이네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해 보면 이랬다.

나는 살아 있는 게 아니라 환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이 소년.

레온하르트 오빠와 똑 닮은 아이는 아마도…….

“……레디스 아카락시아?”

“이젠 오빠 이름도 막 부르냐?”

레디스가 화난 족제비처럼 캬악, 화를 냈다.

화를 내는 눈동자가 청보랏빛으로 반짝였다.

그 또한 레온하르트의 눈동자와 똑같았다.

힐데가르트는 일일이 놀랄 기운도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낡은 무덤가 비석.

대고모님.

레온하르트와 똑같이 닮은 소년.

이 모든 게 가리키는 사실은 단 하나였다.

‘진짜 환생한 거야.’

믿기 어렵지만 현실이 그랬다.

‘게다가 날 힐데가르트라고 불렀지?’

젊은 나이에 죽은 선대의 이름을 자식에게 주는 건 흔한 일이었다.

이 경우 ‘죽은 선대’는 날 의미하는 것 같은데.

‘그럼 난 정말 죽었단 건데? 이런 것도 환생이라고 할 수 있나?’

안타깝게도 혼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힐데가르트. 너 속상한 거 알겠는데 미하일 형 앞에선 이렇게 입 딱 다물고 있지 마.”

“……왜?”

“형은 필사까지 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 너도 알잖아.”

레디스가 그녀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우리가 형을 도와야지 속을 더 썩이면 어떡해?”

“필사를 왜 하는데?”

“부수입은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너 여태껏 그것도 몰랐어?”

힐데가르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부수입? 왜 돈이 없어? 광산이 있잖아?”

“광산? 과아앙사아안? 우리 집안에 그런 게 어딨어?!”

“뭐? 왜 없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이유로 복장이 터졌다.

차분하게 여동생을 타이르던 레디스가 또다시 화난 족제비처럼 캭, 울부짖었다.

“야 이 철부지 동생아! 우리 집안에 광산 같은 게 어딨어! 대고모님이 살아 계셨던 80년 전에나 그런 게 있었지!”

“80녀어언?!”

힐데가르트는 하마터면 당나귀에서 떨어질 뻔했다.

차근차근 도레미 옥타브까지 올라갔던 목소리가 기어코 솔을 찍었다.

“오, 오, 오늘이 몇 년이야?!”

“……너 어디 아프냐?”

“몇 년이냐고!!”

레디스는 잠깐이지만 여동생이 땅에 떨어진 거라도 주워 먹었나, 라는 합리적인 의심에 도달했다.

“성력 515년이다. 엊그제 새해를 맞았던 건 기억하지?”

힐데가르트는 얼굴의 핏기가 싹 가시는 걸 느꼈다.

‘80년? 내가 마성신을 봉인하고 벌써 80년이나 지났다고?!’

일단 세상이 안 망한 건 다행이다.

다행이긴 한데…….

‘그럼 레온하르트 오빠는? 메이브 언니는? 미카엘리스는?’

수많은 얼굴이 그녀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80년이라니.

아득한 세월에 손이 떨렸다.

힐데가르트의 침묵을 다르게 받아들였는지, 레디스가 다시 말했다.

“힐데, 인정하기 싫은 건 알겠지만 너도 이젠 열두 살이잖아.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지.”

“뭘?”

“우리가 형을 든든히 받쳐주고, 어떻게든 가문을 다시 세워야 해.”

“다시 세운다니? 서, 설마 공작가가 망한 건…….”

“망한 건 아니지만 이대로는 안 되잖아.”

기어코 레디스가 폭탄 발언을 던졌다.

“우리 가문은 가난하니까.”

“가나아아안?!”

“너 자꾸 이럴래?!”

레디스는 이번에야말로 당나귀 등에서 떨어질 뻔한 여동생을 붙잡으며 버럭 화를 냈다.

힐데가르트는 어이가 없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카락시아 공작가가 어떤 곳인가!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일곱 색깔 유색 보석 광산을 전부 소유한 가문으로 ‘무지개의 아카락시아’라고 불렸다.

3대의 사돈의 팔촌까지 잘 먹고 잘산다는 부잣집. 그게 아카락시아 가문이었다.

그런데 가난하다니?

우리 집안이?!

‘아카락시아 공작령은 돌아다니는 들개조차 때깔이 다르다고 할 정도였는데?!’

80년 전만 해도 감히 아카락시아 공작 가문과 재력으로 견줄 만한 간 큰 집안은 없었다.

있다 해도 황실쯤?

‘그 황실도 힘들 땐 아카락시아를 의지했단 말이야!’

무릇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고, 부유한 자는 더 부유해지는 게 이 세상의 법칙이다.

그런데 왜 아카락시아 공작가만 그 법칙을 피해갔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힐데가르트는 점차 주변을 바라보며 이성을 되찾았다.

밤이 깊어지자 점점 길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하지만 아카락시아 공작령만은 달랐다.

힐데가르트가 손수 밤길을 밝히기 위해 마석을 깔았기 때문이다.

젊은 여성과 어린아이는 물론, 누구나 밤에도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게 빛나는 마석을 설치했었다.

당연히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도록 조명 마법까지 걸어놨고.

‘그 비싼 걸 제국 각지에서 조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힐데가르트가 벌인 대공사 때문에 한동안 제국의 마석이 씨가 말랐을 정도였다.

그랬는데……!

‘어떤 미친놈이 마석을 죄다 뽑아간 거야?!’

마석뿐만이 아니었다.

80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생활 수준이 떨어져 있었다.

‘낡은 건물이 많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거리.

도로는 척 봐도 정비된 지 오래였고, 삐걱거리는 다리는 수리가 필요해 보였다.

80여 년 전, 그녀와 레온하르트가 함께 영지를 돌봤을 때는 상상도 못 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럴 리가 없어.’

힐데가르트는 무작정 현실을 부정했다.

‘이, 이, 이럴 순 없어. 공작령이 이 지경이 될 리가……!’

그러나 마냥 현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군데군데 익숙한 집터나 길거리는 힐데가르트가 기억하던 그대로였다.

심지어 저택으로 이어지는 경사진 언덕길은 향수마저 불러일으켰다.

“거의 다 왔다. 배고프지?”

꼬르륵!

대답보다도 먼저 배에서 우렁찬 소리가 났다.

“그러니깐 누가 아침도 안 먹고 화내면서 나가래? 어차피 집으로 돌아올 거면서 가출은.”

피식, 웃는 레디스의 얼굴이 레온하르트와 똑같았다.

“…….”

힐데가르트는 그만 주먹을 꽉 쥐고 말았다.

자꾸만 눈앞의 소년이 레온하르트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밥부터 먹자. 나도 너 찾는다고 오늘 아무것도 못 먹었어.”

그렇게 언덕을 다 올랐을 때였다.

‘그래. 일단 집에 가서 생각하자. 천천히 상황을 파악해야…….’

마음을 다스리던 힐데가르트는 곧 환생한 뒤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과 마주했다.

“자, 다 왔다.”

“……다 왔다니?”

까아악! 까아악!

우렁찬 까마귀 울음소리.

녹슬고 부러진 쇠창살.

금이 간 돌담을 감추기 위해 아무렇게나 길러 둔 담쟁이 넝쿨.

끼익, 하고 음산한 소리와 함께 열리는…… 낡은 저택 문.

“……농담하는 거지?”

당장에라도 귀신이 반겨줄 것 같은 이 유령 저택이 공작가라고?

힐데가르트는 슬슬 이 환생이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점점 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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