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사형이 신선이라 그러세요?”
“아니.”
“에, 그게 아니에요?”
“신선과 인간이 얼마나 차이 난다고. 똑같이 두 발로 걷고, 같은 언어를 쓰는데 그런 것을 신경 쓸 필요가 있더냐.”
‘보통은 엄청 신경 쓸걸요.’
목욕하는 사이 옷을 훔치는 도둑놈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범부들은 신적 존재와 인간인 자신의 차이를 부담스러워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도둑은커녕 자신을 갈아 세상을 이롭게 하고 있는 이 스승은 위대하게도 그것을 아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인지, 범부에 불과한 진영은 평생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 이유가 뭐예요?”
“무엇이 말이냐.”
“사형에게 고백하지 않으시는 이유요.”
청난은 눈을 끔벅거렸다.
“티 나느냐?”
“엄청. 이마에 쓰여 있는 격이에요.”
청난은 아무것도 안 쓰여 있다는 것을 앎에도 손등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사형이 남자라서 그런가요?”
“마음이 가는 데에 남녀가 무슨 상관이겠느냐.”
“그럼 나이… 차이?”
“확실히 많이 나긴 하지. 하지만 이젠 누가 더 많은 건지 헷갈리는구나.”
청난은 허허 웃었다. 진영은 스무고개를 하듯 자신의 예상안을 하나하나 던졌고, 청난은 한 번도 피하지 않고 모두 대답해 주었지만, 그 모든 답안은 결국 ‘상관없다’와 상통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냐고.
“그럼… 음… 혹시 제자라서인가요? 음, 이건 아니겠죠? 이젠 인간도 아니시니까…….”
“그게 맞아.”
“에, 사제지간이라서 그렇게 망설이신다고요?”
“절반 정도는.”
진영의 눈썹이 파도처럼 휘었건만, 청난은 그저 슬며시 웃기만 하였다.
이 아이에게 말해 볼까. 자신의 후손에게 받는 연애 상담이라니, 꼴이 퍽 우스울 게 분명했다.
사실 청난은 전생에도 이토록 속앓이해 본 적이 없었다. 걱정 없이 살았던 건 아니다. 그때에는 무슨 걱정이든 고민이든, 모든 것을 제 형인 진주국에게 털어놓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여도 함께 고민해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광 부렸던 것 같았다. 고민인 척하는 어리광. 청난은 그 시간을 꽤나 즐겼었다.
청난은 의아해하는 진영의 표정을 재미나게 바라보았다. 그는 주국을 닮았다. 성격은 전혀 딴판이었지만 자아내는 분위기는 꽤 비슷했다. 생김새가 닮은 건 당연했고.
‘그래도 어린애지.’
벌어졌던 청난의 입이 다시 맞물려 틈새를 메웠다.
“전 사존이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진영은 평소 같은 들뜬 기색 없이 진중하게 말했다.
가벼운 바람 따위에는 끄떡없는 강한 바닷물 같은 목소리였다. 그 바다는 진심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잊었던 오랜 혈육의 목소리를 생각나게 하였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네가 행복해지길 바라.
주국의 목소리가 이런 음성이었던가. 이제는 해답을 찾을 수 없게 된 물음이었다.
“사존?”
청난이 멍해지자 진영이 그를 불렀다. 청난은 추억 속의 주국에서 벗어나 제 눈앞의 어린 후손을 보았다. 그는 어렸고, 그만의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 아이는 결코 주국이 아니었다.
그러나 고민을 나누어도 좋을 거란 생각이 조금은 생겨났다.
하지만 지금은 손이 허전했다. 청난은 고민할 때면 잔을 돌리던 습관이 있어 아무것도 없는 것은 불편했다. 청난은 나중을 기약하며 텅 빈 손을 허공에서 주물렀다.
그러자 그 사이로 부드러운 것이 끼어들어 왔다. 그것은 진영의 손이었다. 진영은 우쭐대었다. 마치 ‘정답이죠?’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청난은 파핫 웃고는 새로 생긴 찻잔을 마음껏 주물럭거렸다.
“그래, 네 생각대로 나는 그를 연모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 그러면 안 되기 때문에.”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아요. 음…….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두 분은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시는 것 같던데요. 그러니까, 사형도 사존을 연모하는 것 같아요.”
“맞아. 매아가 십 년 전에 직접 말해 주었거든.”
“시, 십 년 전이요……?”
청난은 덤덤하게 ‘그래’라고 대답했지만, 진영은 그럴 수 없었다. 삼백 년 전과 겉모습이 다르지 않을 백매와 달리, 인간인 청난은 무럭무럭 자라 지금에 이른 것이기 때문이었다. 진영은 자신의 사형을 오해하고 싶지 않기에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이 쓸데없는 생각을 떠나보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인 거예요?”
“그것이 문제지. 매아가 그런 마음을 품은 건 나뿐이거든.”
“그게 문제라고요?”
그러니까 동정인 게 문제라는 걸까? 아니면 순정남은 취향이 아닌 걸까? 다행히 청난의 말이 바로 이어지며 진영의 또 다른 쓸데없는 생각을 끊어 주었다.
“내가 그를 키운 건 알고 있지?”
“네, 알아요.”
무릇 다른 사람의 일생을 논하는 것은 밥상머리 앞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하물며 그 대상이 신이라면, 더구나 자신이 알고 지냈던 사람이라면, 어찌 입을 참을 수 있을까. 선인과 잠시라도 연이 닿았던 이들은 그것을 자랑스레 떠들기 바빴고, 그 탓에 그들의 일생은 꽤나 알려진 편이었다.
물론 손 한번 잡아 본 적 없었으면서 친우였다 허풍을 놓는 이들도 있었고, 그게 아니라도 수백의 입에서 옮겨지면서 변형된 탓에, 민가에 떠도는 이야기는 대체로 허구였다.
하지만 진청난이 고아 화백매를 들여 손수 키워 내었다는 이야기는 증인이 많은 까닭에 백매선의 기원으로서 확고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길거리를 떠돌던 선군을 사존께서 제자로 거두셨다고요.”
“사형.”
“아, 네. 사형을, 거두셨다고요. 하하…….”
청난이 말실수를 바로잡아 주자 진영이 머쓱하게 웃었다. 책사와 공자였을 때는 자상하고 온화하게만 느껴졌는데, 스승으로 모시니 다소 깐깐한 면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스승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였지. 그를 가르칠 만한 사람이 나뿐이었던 거야. 그런데, 음… 난 아이를 좋아해.”
“알아요. 여기까지 오면서도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셨잖아요.”
“응, 예전에도 그랬어. 그리고 매아는 아주 성실한 제자라 내 수발을 도왔지.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대부분 나와 지냈다고 생각하면 된단다.”
“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깊은 감정이 쌓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을 거라고 진영은 생각했다.
“백매는 다른 자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어. 그에게 타인이란 스승인 나와, 그 밖의 사람들로 나뉜 셈이지. 그래서… 음, 그는 다양한 감정을 겪어 보질 못했어. 그러니 자신이 가진 감정을 무어라 부르는지 모르겠지.”
아.
진영은 불길함이 들었다.
“그 아이는 존경심과 연모를 구분하지 못하는데, 내가 고백한다면 그는 앞으로도 구분하지 못하게 되지 않겠느냐.”
그리고 그 불길함은 현실이 되어 찾아왔다.
진영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대체 뭐라 말해야 생각을 바꾸실까. 신선 셋을 앞두고 공방전을 펼쳤던 자는 다른 사람이었나? 어떻게 이렇게 극단적일 수 있지? 어떻게 자기 제자에 대해서는 이리 심각하게 눈치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음……. 사존, 생각보다 부모만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많아요.”
진영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산속 깊은 곳이면 특히 그러죠. 산을 내려가기 전까지 부모 외에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아이들이 애정을 듬뿍 받고 자라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응?”
“금의환향을 꿈꾸며 시험을 치르거나 무관에 들어가요.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하여 반려가 되고 함께 고향에 돌아오죠. 아버지에게… 연정을 품지 않아요.”
진영은 말하기가 민망하였다.
보통의 아이들은 어쩌다 보게 된 미인도를 보며 몽정을 한다. 하지만 아마도 백매선은…….
‘생각하지 말자.’
진영은 또다시 고개를 도리질하였다.
그런 아이들이 부모를 성애하는 게 보편적인 감성이었더라면, 많은 가정은 파탄 났을 것이며, 근친으로 유전병이 창궐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려도 될까요?”
“하렴.”
“타인의 감정을 단정 지어 버리는 건, 그리 바람직하진 않은 것 같아요. 사형과는 이런 대화 안 하셨죠?”
“백매 성격이라면 땅굴을 팠을 테니까.”
‘아닐 것 같은데…….’
그 백매선이 땅굴을 파는 모습은 진영으로선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는 무뚝뚝했다. 자상한 면도 있었지만 대체로 무뚝뚝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는 건 오직 스승 청난 앞에서뿐이었다.
그러니 만인이 모르는 화백매의 모습을 청난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상상이 안 가.’
진영은 꼼꼼히 안마받은 손을 빼내었다.
“한번 대화를 나눠 보세요. 그분은 삼백 년이나 살아오셨잖아요. 그동안 배우신 게 없겠어요?”
진영은 손을 길게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청운 아저씨가 기다리시겠어요. 날도 쌀쌀해졌고요. 이젠 들어가요.”
청난은 마음이 복잡했지만, 진영의 재촉에 발을 움직여야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해류진군 신상을 올려다보았다. 백매도 이 이야기를 듣고 저것처럼 미소 지어 줄까.
◈
그날 이후 사흘이 지나도록 백매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동안 청난은 이 집 저 집에서 방문한 탓에 쉴 틈이 없었다. 그들은 각자가 파는 상품들을 선물이라며 가져왔고, 가는 길에 청운의 입담에 걸려 알 수 없는 이상한 서적들을 사 가지고 돌아갔다.
진영은 해가 뜨면 청난에게로 와서 해가 저물면 돌아갔다. 당연히 마을 주민들을 만날 때에도 진영이 함께 있었다. 진영은 입담이 참 좋았기에 즐거운 대화의 장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다가 몇 번 호칭을 실수한 탓에 주민들에게 의문을 남겨 주었다.
요마의 습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시끌벅적하고 평범한 이런 일상은 참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청난은 마음속이 허하여 마냥 즐길 수 없었다.
‘왜 안 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