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인데 황녀가 되었다 70화
‘회복 마법은 나를 어른으로 만들려고 할 거야. 하지만 내 몸에 걸려 있는 흑마법은 그것에 대항해 회복 마법이 효과를 보는 것을 막을 테지. 그러니, 회복 마법을 내 몸에 걸면 흑마법이 작동을 해서 추적 마법이 그 비슷한 결의 기운을 찾아갈 수 있어.’
나는 두통과 온몸을 강타하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하나 그 와중에도 나는 애써 몸에 있는 마력을 한 톨 짜내, 추적 마법을 계속해서 시전했다.
[현재 회복 마법에 대항하는 힘과 똑같은 기운을 찾아.]
그 순간 내 앞에서 팔랑거리던 나비가 그대로 사라졌다.
나는 계속해서 회복 마법을 발동했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아, 이거 진짜 할 짓이 아니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이 계획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몰랐다.
이 계획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어야 했는데, 하나는 흑마법사가 반드시 ‘현재’ 흑마법을 쓰고 있을 것, 다른 하나는 내게 걸려 있는 흑마법이 계속해서 작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 두 조건을 만족해야만 추적 마법이 성공할 수 있다. 이 둘 중 하나라도 끊어지면 마법은 실패한다.
거기에 굳이 조건을 더 붙이자면 일정한 범위여야 한다는 것. 아무리 추적 마법이 강하다고 하나, 어쨌든 그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다만.
‘진짜 힘들어.’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때, 레르하겐이 한숨을 쉬는 것이 느껴졌다. 그 모습이 마치 내가 무모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괜히 울컥하고 말았다.
“왜 한숨을 쉬고 그래요!”
“정말, 이건 뭐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총명하다고 해야 할지. 본인을 미끼로 쓰는 것과 뭐가 다르지?”
“이건 제가 미끼가 되는 것과 다르잖아요. 그냥 흑마법 기운을 제공하려고 일부러 약간 수단을 썼을…… 윽, 뿐이에요.”
“…….”
“로드님도 저한테 반지를 줄 때 써먹은 방법이면서!”
그러나 레르하겐은 여전히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그는 나를 빤히 보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살짝 손을 뻗었다.
그러나 곧, 그가 다시 손을 거둬들였다.
그때였다.
“아.”
아까까지만 해도 정상적으로 흘러가던 마력의 궤도에 갑자기 이물질이 끼인 듯, 손끝에 찌르르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찾았다.
나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레르하겐을 향해 외쳤다.
“찾았어요. 좌표를 드릴 테니 여기로 바로 워프해 줘요.”
나는 말을 마치며 바로 마력을 거뒀다. 마치 거짓말처럼 두통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내가 좌표를 기록해 레르하겐에게 넘긴 그 순간.
“어?”
순간 발끝부터 스멀스멀 타고 올라오는 감각에 멈칫했다.
그것을 느낀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레르하겐 또한 미간을 좁히고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역추적 마법 같군.”
“역추적 마법이요?”
“추적 마법을 발현한 상대의 위치를 역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비스듬히 우리를 감싸던 햇빛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어둠이 우리를 감쌌다가 사라졌다.
“이게 무슨.”
나는 얼굴을 굳히고 레르하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곳은 텅텅 비어 있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레르하겐은 서늘한 눈빛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광경을 보았다.
흑마법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단연코 상대의 힘을 역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가 건 환각 마법을 그가 지금 되돌려받고 있다는 뜻이다.
‘어느 놈인지는 몰라도 머리는 좋군.’
그의 환각 마법을 완전히 무효화시키는 것은 아무리 흑마법사라고 해도 무리였다. 게다가 인간이라면 더더욱 어렵겠지.
하지만 자신이 겪고 있는 마법을 그대로 상대에게 돌려주는 것은 흑마법사에게 있어 쉬운 일이다.
따라서 숲속에 숨어 있는 그 정체불명의 흑마법사 놈은, 레르하겐 또한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환각 마법에 당해 몸부림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게 뻔했다.
그리고 그사이에 스스로 환각 마법에서 벗어나 도망칠 시간을 벌려고 했겠지.
다만 그놈이 예상하지 못한 게 있다면.
‘내가 건 마법을 내가 무효화시키지 못할 리가 없지. 환각 마법이 무슨 궁극의 기술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한 레르하겐은 무심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곧바로 이곳에서 벗어날 준비를 했다.
‘에슈트는 어디에 있지.’
혹시 환각에 사로잡혀서 울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곤란한데.
그리 생각하며 마법을 시전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 로드님은 왜 언제나 혼자세요?
갑자기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에 레르하겐의 얼굴이 굳었다.
* * *
“황녀 전하, 기침하실 시간입니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천장이 나를 반겼다.
그 사이로 비스듬히 새어 들어오는 햇빛이 왼쪽 눈을 언뜻언뜻 강하게 찔러 댔다. 저도 모르게 손으로 시야를 가리다가, 살짝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시녀장이 서 있었다.
세베르는 나를 옷장에서 발견한 후 감히 자정이 되었음에도 주인을 찾지 않은 시녀와 시종을 엄벌해야 한다고 했고, 아바마마는 놀랍게도 그런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 결과 내 궁에 있던 시녀와 시종은 물론이요 기사들도 단체로 직무 태만으로 벌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그 뒤로 나름대로 깍듯한 태도를 보였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외부인이 볼 수 있는 곳에서지, 그녀의 괴롭힘과 경멸은 더욱더 교묘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폐하께서 조찬을 함께하시자고 합니다. 다른 전하들도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서두르시지요.”
“응, 알겠어.”
“목욕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아니. 괜찮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목욕을 돕겠다는 말에 나는 급히 도리머리를 쳤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돕는 목욕은 너무 아팠다.
그녀는 내 머리를 감아 준다는 명목으로 항상 머리카락을 강하게 잡아당겼고, 거품을 내어 씻긴다는 명목으로 피부를 거칠게 문질렀다.
시녀장은 내 말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서늘하게 나를 응시했다. 그러나 곧, 그녀가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목욕을 돕는 것은 저의 의무, 제가 당연히 도와야지요.”
“…….”
결국 나는 그녀의 뜻대로 목욕을 마쳤다. 피부가 얼얼한 느낌에 슬금슬금 팔을 쓰다듬었다.
곧이어 시녀장이 나를 치장해 주었다.
“오늘은 이 드레스로 하겠습니다.”
“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다른 색은…….”
“다른 색은 이미 다른 전하들이 입고 계실 겁니다. 황녀 전하께는 이 청록색 드레스가 가장 어울리십니다.”
그러나 나는 프릴이 화려하게 달린 옷을 보며 입을 꼭 다물었다.
안 예쁜 건 둘째 치고, 어쩐지 언니들이 광대 같다고 놀릴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치장을 마치고 다이닝 홀에 나타나자, 언니들의 비웃는 얼굴이 보였다.
“어머, 에스트리아. 어쩜, 서커스단에 취직이라도 했니?”
“취향하고는. 엘비어츠 공작가의 핏줄은 대체 어디로 갔기에 저 꼴인 거냐?”
“엘비어츠 공작가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핏줄에 문제가 생긴 거 아냐? 진짜 황실 핏줄인 게 맞아?”
“고귀하신 황후마마께서 보신다면 얼마나 속상하실까. 어휴. 에스트리아, 언니가 옷이라도 좀 빌려주련?”
“아, 아니야.”
“괜찮아. 말만 하렴. 이 언니가 다른 건 몰라도 옷 정도는 내어 줄 수 있단다.”
“필요하다면 이 오라비가 신고 있던 구두도 내어 줄 수 있어. 마침 성장기니 대충 신고 질질 끌고 다닐 수 있겠구나.”
이윽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다이닝 홀에 웃음이 가득 찼다. 그 사이에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들이 왜 나한테 이렇게 구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란-.
“아침부터 활기차구나, 아멜리.”
“아바마마!”
아바마마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아멜리 언니가 활짝 웃었다. 그에 아바마마의 흐뭇한 눈길이 그녀에게 닿았다.
이윽고 우리 형제자매들을 둘러보던 아바마마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가 탐탁잖은 시선으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엘비어츠 공이 보면 대로하겠군.”
“…….”
“그치가 제 가문에서 태자를 배출하겠다고 얼마나 난리를 쳤는데.”
“…….”
“한심한 것.”
나는 입을 꼭 다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입을 다물고 얌전하게 앉아 있는 일밖에 없었다.
여기서 괜히 대꾸를 했다가는 다이닝 홀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마음 깊숙이에서 누군가가 읊조렸다.
‘쫓겨나는 게 뭐 어떻다고.’
응?
‘겨우 그게 뭐라고 이까짓 치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