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인데 황녀가 되었다 45화
“그것 때문에 연락하신 건가요? 걱정 마세요, 폭발한 뒤로 마탑의 마법사들이 밤샘으로 작업을 하며 주변의 차단막을 단단하게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가긴 했다는 거군. 혹시 거기서 뭐 특별한 걸 발견하진 못했나?>
“특별한 거요?”
비올레는 내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어요. 굳이 말하자면, 몇 가지 물건을 발견하긴 했는데, 아시다시피 죽음의 협곡에서 발견되는 물건은 대부분 마족들이 남기고 간 찌꺼기인 데다가 심각하게 오염이 되어서 몇 번이나 정화를 거쳐야 한다고요.”
<그거, 다 정화하고 나한테로 넘겨.>
비올레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눈가로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왜 그렇게 죽음의 협곡에 관심이 많으세요? 혹시, 갑자기 흑마법에 관심이 생기신 건 아니겠죠? 그건 아무리 저라도 덮어 주지 못해요.”
<……너 리건이랑 짰니? 왜 하나같이…… 내가 왜 흑마법에 손을 대?>
그녀의 반응에 나는 머리가 지끈거려와 이마를 짚었다. 그러나 내 부정에도 비올레가 의문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면 왜 갑자기 거기에 관심을 갖는데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입매를 살짝 굳혔다.
아무리 비올레가 내 말이라면 꼬리를 말긴 하나 그렇다고 확실히 순순하게 내가 하라는 대로 따르는 성정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녀도 마법사로서의 프라이드가 있는 자였고, 심지어 황제인 내게도 끝까지 그 영문을 물어볼 만큼 흑마법은 꽤 심각한 일이었다.
‘이 정도 질문이야 예상했지.’
속으로 읊조린 ‘나’는 살짝 턱을 괴었다. 그리고 곧, 입을 열었다.
<아르시스 제국 부근에서 마물이 발견되었다지?>
“……!”
<그것 때문에 지금 바빠 죽는 거고.>
“아니 그걸 어떻게……!”
<나는 아르시스의 황제다. 그런 내가 모르는 정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비올레는 내 대답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녀의 얼굴위로 귀찮게 되었다는 기색이 난무했다.
그도 그럴것이, 아르시스 제국 출신의 마탑주로서, 그녀는 제국의 주변에 이렇게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게 보고를 해야 하는 의무 아닌 의무가 있었다.
그것이 내가 그녀를 마탑으로 들여보낸 이유였고, 동시에 내가 그녀의 적당한 건방짐을 참아주는 이유였다.
비올레는 자신의 머리털을 전부 다 잡아 뜯을 기세로 절망을 하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는 무심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곧, 비올레가 입을 열었다.
“아니 제가 일부러 숨기려고 한건 아니었고요, 확실치 않아서…….”
<일전에 죽음의 협곡이 폭발하고, 이번에는 인간들이 활동하는 곳에서 마물이 발견되었어. 네 생각에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지?>
“아니 그렇다고 꼭 흑마법의 재출현을 짐작할 수는 없단 말이죠.”
<난 흑마법이 재출현했다고 말한 적 없는데.>
“아니. 아니…… 아니…….”
결국 비올레는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눈치챘는지 마구 자신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덕분에 산발이 된 옅은 갈색빛 머리카락이 우수수 그녀의 로브 위로 떨어졌다. 머리를 저렇게 잡는다고 저 정도로 머리카락이 떨어지지는 않을 텐데.
확실히 이 며칠 동안 고생을 하긴 했나 보군,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는데 비올레가 체념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요즘 따라 마탑 쪽으로 마물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오긴 했어요.”
<뭐?>
그 순간 ‘내’가 미간을 팍 찌푸렸다. 이건 몰랐던 사실이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어?
<그런데 왜 각국에 알리지 않았지?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흑마법사의 소행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소행인지, 마물들이 그저 스스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거든요.”
<그래도 알렸어야지. 그래야 경계를 할 거 아니야.>
하나 내 말에 비올레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녀는 진짜로 모르겠냐는 듯이 괜히 원망스러운 얼굴을 하며 내게 물었다.
“그걸 보고하면, 왕실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시는 거예요? 아르시스야 강대한 제국인 데다가 폐하 자체가 다분히 상식적이고 본인이 마법사니 그렇다 쳐도, 다른 국가에서는 아주 마법사들을 잡아먹으려고 하고 있어요.”
<이런.>
“이번에 최근에 마물이 발견된 벨로엠만 해도, 당장 마법사들을 총동원해서 숲을 지키라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데…… 마법사들도 인간이에요. 마물이 나온다고 뾰롱 하고 바로 사라지게 못 한다고요. 안 그래도 최근에 마물을 퇴치하다가 사상자가 얼마나 나왔는데. 벌써 순직한 마법사만 다섯이에요.”
비올레의 말에 나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도 맞았다. 마탑이 아무리 각국에 마법사들을 종종 파견한다고 하나 각국에 배정된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왕실에서 그것에 만족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파견된 마법사가 평민들을 위해 쓰이면 말도 안 해, 아주 그냥 제가 죽을까 봐 딱 옆에 끼고 사는 게…… 시종처럼 부려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서 몇몇은 강제로 왕실을 거치지 않고 마물이 출현하는 곳으로 보내 버렸어요. 그랬더니 또 어떻게 자기 허락 없이 국경에 들어왔냐고.”
<…….>
“마법사들은 뭐 죽어도 되는 존재인가요? 우리의 목적은 마법사 양성과 관리이지 마법사를 파견하는 곳이 아니에요. 그나마 신전에서 신관들을 파견해서 협조하고 있으니 망정이지.”
<그래서, 지금 상황은?>
“일단 보고가 올라온 곳은 이번까지 더해서 총 네 곳이에요. 그중에서 두 번째 알프 왕국의 평야에는 저희가 뒤져 봐도 마물이 발견되지 않았고요. 나머지 세 곳 중에서 두 곳은 이미 완전히 소거를 했고, 벨로엠 지역은 보이는 건 처리를 했고 혹시나 해서 더 수색 중에 있어요.”
<발견된 지역이 어디 어디지?>
“안데른 산맥, 파이스튼 평야, 그리고 이번에는 카르트리에르 숲.”
비올레의 말에 ‘내’가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곧,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북쪽에서 점점 남쪽으로 내려오는 군, 그 다음 지역은 아르시스인가?>
“아, 안 그래도 저희도 의심하긴 했는데, 애초에 마물들도 뇌가 있는 이상 아르시스로 쳐들어갈 일은 없지 않을까요?”
<그건 무슨 자신감이지?>
“아르시스에 현재 폐하도 계시고, 켈리어드 대공 전하도 수도로 귀환하셨다면서요. 무엇보다도 레르하겐 님이 계시잖아요. 마물들이 미쳤다고 그 지역에 들어갈까요?”
확실히 비올레의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작,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이미 나를 아이로 만들었어, 그리고 죽음의 협곡의 폭발을 통해서 일리안을 내게 보냈고, 이번에는 마물들이 아르시스 제국 쪽으로 점점 오고 있는 추세인데,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라고?’
여기서 나마저도 비올레의 생각에 동의를 해 버리면, 그것은 진정으로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굳이 비올레의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대신, ‘내’가 느긋하게 의자에 등을 기댔다.
<글쎄, 방비를 해서 나쁠 건 없지.>
“그래서, 설마 폐하도 마법사를 빌려 달라는 말씀을 하지는 않으시겠죠?”
<아니. 제국에는 이미 충분히 많은 마법사들이 있어. 뭐, 물론 마음 같아서야 너까지 소환해 오고 싶지만.>
“제발 그러지 마세요.”
<그러기에는 내가 양심이 조금 남아 있어서 말이야. 마탑은 마법사가 부족한 지역의 안전이나 살펴. 다만, 왕실에 공개적은 아니더라도, 마물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사실과 흑마법사들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는 알려야 해.>
“하지만.”
<경계를 하지 않고 있다가 혹시라도 진짜로 큰일이 생기면, 그때는 그저 마법사 몇 죽는 문제로 끝나지 않을 거야.>
‘내’ 굳은 얼굴과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비올레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까 말한 죽음의 협곡에서 발견한 물건도 가져와. 마탑에서 그렇게 바빠서 물건 하나 확인하지 못한다는 데, 내가 도와드려야지.>
“알겠어요.”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그 외에도 흑마법에 관련된 정보가 있으면 바로 내게 보고해. 이미 이건 마탑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야, 나는 내 제국에 그딴 게 얽히는 걸 절대 용납하지 못하니까.>
그러기에는 사실 그 누구보다도 심각하게 얽혀 버린 것 같지만, 비올레야 당연히 사정을 모르니 상관없었다.
결국 비올레는 더 있다가는 내게 협박질을 더 당할 것 같은지 갑자기 마력의 파동이 불안정하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면서 스스로 지지직 하는 소리를 내더니 통신 마법을 끊어 버렸다.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어차피 나도 얻을 만한 정보는 다 얻었는지라 굳이 그녀를 더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데.’
차라리 이 모든 것들이 나 혼자만을 노리고 온 것이라면 나을 것 같으나, 현재의 상황을 보니 또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괘씸하게 감히 제국도 모자라서 대륙 전체를 건드려.’
이래서야, 진짜로 세베르한테 제일 처음에 말하려던 상황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세베르는 이 소식을 들었나?’
세베르의 정보력이면 딱히 못 들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려나.
결국 나는 한동안 고민에 빠져 있다가 급히 리건을 불렀다.
갑자기 내게 소환된 그는, 내 옆에 있는 인형을 보고 멈칫하다가 입을 열고 뭔가를 말하려고 했으나 내가 더 먼저 그의 말을 잘랐다.
“비올레에게 듣자 하니, 이번에 마물이 출몰한 것이 첫 번째가 아니래.”
“네?”
“심지어 그 출몰하는 지역이 점점 아르시스와 가까워지고 있어.”
리건은 그제야 내 말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