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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인데 황녀가 되었다-17화 (17/146)

황제인데 황녀가 되었다 17화

[델 데스트롤리아(마력 실체화).]

시동어가 끝나자마자 내 손끝에서 흩어져 나간 마력이 순식간에 수백 개의 칼날이 되어 그대로 발코니에 흩뿌려졌다.

푹-!

검에 찔린 뱀, 정확히 말하자면 검은 기운이 그대로 흩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검은 기운으로 뒤덮인 발코니에 언뜻 하얀 달빛이 흘러들어 왔다.

그에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감히 나를 습격하려고 하다니, 건방진 것도 유분수지.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짓는데, 하시스의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끝이 아니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발코니의 달빛이 다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깜짝하는 사이.

쉬이익-!

“이게 머야!”

“보면 모르냐. 끝이 없다는 거야.”

나는 다시 한번 테라스를, 정확히 말하자면 창밖을 꽉 채운 검은 기운을 향해 그대로 마력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하시스 또한 검을 휘둘러 공격을 쳐 냈다.

아까 전과 달리 기운들은 그대로 흩어졌다.

하나 그것도 잠시, 다시 한번 눈앞을 채우는 검은 기운에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고 말았다.

“끝이 없어?”

“아무래도 우리 힘으로는 역부족인 것 같군.”

“대체 뭐지? 이런 종류의 공격 마법은 듣고 보도 못 했어. 게다가 대체 어떻게 결계를 뚫고 들어온 거-.”

말을 잇다, 문득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어 그대로 시선을 돌려 내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았다.

반지는 새카만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제야 이 모든 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평소에 웬만해서는 쉽게 잠들지 않는 나를 재우고, 이상한 꿈을 꾸게 하고, 갑자기 내 방을 검은 기운으로 가득 채운 것의 정체.

“흑마법이야!”

“장난하냐? 누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흑마법을 써?”

“공간 왜곡이야. 그게 아니면 따로 방어진을 쳤겠지. 그것도 아니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못 채게 만들었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이 지경이 됐는데 아무도 내 방에 오지 않을 리가 없어.”

아무리 이곳이 내 마력으로 보호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황제의 궁을 지키는 이가 없을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정도 소란이 일어났는데 아직도 리건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는 지금 완전히 외부와 단절된 곳에 있다는 거야.”

하시스가 내 말을 알아들은 듯 얼굴을 찡그렸다.

젠장. 그가 작게 읊조리며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에 검은 기운들이 그대로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끝이 없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어떡하지? 머리를 굴려 보는데 다시 한번 검은 기운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대로 마력을 쏟아 냈다.

아까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천, 아니, 수만 개의 칼날이 허공에 생성되었다.

그리고 내가 손을 까닥이는 순간, 마치 비처럼 쏟아진 칼날이 그대로 바닥에 박히고-.

콰콰쾅!

쩌적-!

바닥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 기운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됐나?”

나는 불안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와 전투를 한다고 해도 이것보다는 쉬울 것이다.

최소한 인간들이 쓰는 마법의 본질은 결이 비슷한 경우가 많았고, 그저 실력의 차이만 있을 뿐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흑마법은 온전히 결이 달랐다.

지금까지 마주해 본 적도 없었고, 애초에 이렇게 부딪친 것만으로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전투에서 마력의 결과 흐름을 읽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마법이라는 것은 가지고 있는 마력을 배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흑마법은 인간의 목숨과 죽음의 기운으로 빚어진 것.

흑마법이라고 이름을 붙여 그렇지, 기실 마법과는 애초에 완전히 다른 종류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을 증명하듯, 내 공격에 조금 잠잠해진 듯한 발코니에서 재차 기척이 들렸다.

결국 실패한 걸까.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

속으로 생각하며 일단 마력을 집중하던 그때, 갑자기 무엇인가가 내 얼굴을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어?”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 눈만 동그랗게 떴다.

급히 손을 들어 얼굴을 쓸자 손바닥에 뜨뜻한 무엇인가가 묻어 나왔다.

검을 들고 있던 하시스가 경악한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내게 다가왔다.

아니, 다가오려고 했다.

갑자기 그를 향해 날아오는 공격이 아니었다면.

마치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뱀처럼 굴던 기운은 이제 가는 실처럼 변해 그대로 우리에게 박혔다.

그에 방어진을 펼쳐 급히 막아 낸 나는, 문득 이 공격이 내 마법과 무척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하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칼날처럼 가늘고 얇게 뭉쳐진 검은 기운이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쉬익-!

탕-!

나는 이를 악물고 그대로 공격을 쳐 냈다.

아까 전보다 확연히 빨라진 공격.

나는 이 기운이 내 공격을 그대로 복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한꺼번에 달려들던 기운은 이제 몇 개로 나뉘어 우리에게 쏟아졌다. 방어막을 펼쳤으나 흑마법은 너무 쉽게 방어막을 뚫었다.

‘망할!’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챙-! 이번에는 내 손끝에서 흘러 나간 채찍이 그대로 공격을 막아 냈다.

촤륵- 허공에 감기는 채찍에 그것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겨우겨우 마지막 공격까지 막아 내고 잠깐 숨을 돌렸다.

그때였다.

“에슈트!”

어디서 왔는지 모를 검은 칼날이 그대로 내 몸을 관통할 듯이 날아왔다. 나는 다시 침착하게 방어막을 펼쳤다.

그러나 칼날은 그대로 방어막을 뚫었고, 그에 내가 채찍을 휘두르려는데.

‘어?’

칼날의 모양을 확인하자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저건.’

비록 검은색으로 뭉쳐져 있었지만 나는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우아하게 빛나는 검신, 그 아래 십자로 수놓인 금색의 검 자루, 일곱 개의 다이아몬드, 그것은 다름 아닌…….

- 아바마마께서 그리도 아끼는 자식들의 피가 여기에 묻어 있습니다.

내가 형제들을 죽일 때 썼던 그 검이었다.

‘분명 처리했는데?’

당연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치부였으니까.

그런 검을 내가 굳이 간직하고 있을 이유가 있는가. 그러나 그 검이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동요하고 말았다.

그리고 동요는 가장 훌륭한 틈.

나는 나를 향해 덮쳐 오는 검을 바라보았다.

내 형제자매들이 저 검에 관통당해 죽는 그 모든 장면이 검은 기운과 섞여 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나를 향해 쏟아지던 저주, 욕설, 그리고 비명.

그 사이에 그대로 서 있던 나.

마치 뇌가 마비된 듯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대체 왜일까. 이 순간, 마치 내가 죽는 것이 인과응보의 끝 같아서 결국 나는 그대로 눈을-.

“눈 떠라.”

그때였다.

천천히 눈을 감던 나는 갑자기 내 귀에 꽂히는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고개를 드는데, 펄럭거리는 뭔가가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나는 눈가를 살짝 찡그리며 시야를 가로막는 정체불명의 천을 그대로 잡아당겼다.

‘코트?’

왠지 모르게 익숙한 코트에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내 앞에 서 있는 커다란 인영을 발견하고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로드님?”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레르하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커다란 체격은 그림자를 만들어 나를 가리고 있었고, 깨진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밤바람에 은발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비스듬히 서 있는 그의 옆모습으로 달빛이 쏟아지는 것을 보는데, 무심한 얼굴로 서 있던 레르하겐이 나를 힐긋 보았다.

그 눈빛에 내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로드님이 어떻-.”

“쓰고 있어.”

“네?”

“시원해질 거다.”

그의 말에 나는 내 품에 안겨진 그의 코트를 보았다.

솔직히 겨우 코트 하나로 뭔가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급히 커다란 코트를 머리 위에 썼다.

‘어?’

그 순간 거짓말같이 머릿속이 맑아져서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진짜로 이 코트 덕에 흑마법의 영향을 적게 받는 건가?

그렇게 생각할 때, 검집에 검을 꽂아 넣으며 하시스가 레르하겐의 옆으로 다가갔다.

“스승님.”

“에슈트를 지켜라.”

말을 마친 레르하겐이 그대로 몸을 돌렸다.

하시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를 보호하듯 그가 비스듬히 내 옆에 섰다.

평소라면 네가 왜 나를 보호하냐고 말했을 나는, 그저 묵묵히 레르하겐의 뒷모습을 보다가 입을 뗐다.

“괜찮을까? 로드님 혼자 해결이 가능해?”

그런 내 물음에 하시스가 힐끔 나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 미묘한 미소가 걸렸다. 마치 두고 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쉬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기운이 그대로 레르하겐을 덮쳐 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앞으로 한 걸음 나갔다.

찰나, 나는 내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말도 안 돼.’

아까까지만 해도 우리를 그대로 잡아 삼킬 듯하던 검은 기운이 마치 분해되듯 빛이 되어 허공에 흩뿌려졌다.

나와 하시스의 것과 차원이 다른 깔끔한 공격.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욱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레르하겐의 모습이었다.

그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서 있기만 했다.

모든 이의 위에 군림하듯, 고고하고 무심하게.

아무런 시동어도 없이, 어떤 주문도 없이, 그 흔한 마법진도, 그 어떤 조치도 없이 그저 서 있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승을 부리던 모든 기운이 그의 발치에서 분쇄되었다.

그것이 마치 그에게 복종하는 듯하여 나는 홀린 듯이 보았다.

지금까지 많은 마법사를 보았으나, 그중에 그 어떤 이들도 저리 굴지 못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시동어는 있어야 하고, 그게 아니면 마법진을 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레르하겐은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소름 끼칠 정도로 오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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