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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인데 황녀가 되었다-12화 (12/146)

황제인데 황녀가 되었다 12화

“그럼 스승님이 평범한 보석을 갖고 오겠냐?”

“그 정도면 평범하지 않다의 범주를 넘어섰어. 설마 여기 있는 보석 대부분에 그런 역사가 있는 것은 아니지?”

“정말 놀랍게도 네 발치에서 굴러다니는 그거 보이냐?”

나는 내 발끝에서 반짝거리는 아기 주먹만 한 투명한 다이아몬드,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보이는 보석을 보았다.

“이게 뭐?”

“그거, 주신 겔라의 날개에서 뽑아 만든 깃털을 형상화한 보석이다.”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신전에서 몇백 년 동안 찾느라 혈안이 된 물건이지.”

“…….”

“아, 그리고 저기 저 빨간 건 마왕의 피를 응고해 만든 거고, 저, 뭐지? 저 청색 보석은 아, 저건 평범한 거네.”

“평범……?”

“알렉산드라이트인데, 아마 초대 요정왕의 즉위식에 썼던 왕관에서 긁어낸 거다.”

“요정족에서 뭐라고 안 해?”

“감히 드래곤 로드한테?”

“…….”

“아 그리고 저 눈물 모양은 아마 만 년 전에-.”

“그만해.”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이런 걸로 왕관을 만들면 제국인들 전부 심장 마비로 죽을 수 있어.”

“괜한 구설에 오르지 않으려면 가급적 귀한 걸로 해야 한다고 네 보좌관이 말하던데.”

“이건 가급적이 아니잖아!”

나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레르하겐의 보석 안목에 그만 숨이 막히는 경험을 해야 했다.

역대 황제들 중에서 가장 화려한 내 왕관에 박혀 있는 120캐럿짜리 알렉산드라이트도 이 보석 산 앞에서는 그저 평범하다는 수식이 어울렸다.

이 정도라면 제국의 귀족들은 내 발치에서 빌빌 길 거야. 누가 감히 이런 왕관을 받은 황녀한테 함부로 대하겠나.

심지어 타 종족에서도 구경하러 올지도 몰라.

아니, 생각해 보니 꽤 좋은데? 귀족들도 제압하고, 타 종족들과의 우호적인 교류도 겸사겸사 진행하고?

나는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면서 보석 산을 응시했다.

“그 드래곤, 정말 물욕이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누구보다도 물욕이 넘치잖아?”

“물욕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알아서 주변에서 다 바치는 거지.”

“아, 그건 알 것 같아. 나도 그렇거든. 딱히 위협을 한 적도 없는데 알아서 뇌물을 바쳤어.”

하시스는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거 아냐? 너 은근히 스승님과 닮았어.”

“말도 안 대. 내가 어딜 봐서 그 비정상적인 드래곤이랑 닮았어?”

“내 눈에는 너도 정상은 아니-.”

“글쎄, 어디가 닮았는지 모르겠군. 나도 저리 살지는 않는다.”

하시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 나는 느긋하게 방에 들어서는 레르하겐을 발견했다.

웬만해서는 귀찮아서 대답도 하지 않는 그가 나와 닮았다는 말에 굳이 부정을 하자, 나는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왜 부정하세요?”

“너는 나와 닮았다는 말이 좋으냐?”

“아니요, 그렇지만 부정은 내가 해야죠. 로드님은 나랑 닮았다는 말에 영광이라고 느껴야 하고요.”

내 말에 옆에 서 있던 하시스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래, 그렇게 우기고 싶으면 우기거라.”

그에 내가 득의양양한 얼굴을 하는데, 레르하겐이 보석들을 훑어보더니 입을 뗐다.

“보석은 다 골랐나?”

“아, 그러고 보니. 보석들이 하나같이 너무 진귀해요. 언젠가 사라질 황녀의 왕관 따위에 이런 걸 박을 수는 없어요.”

“진귀하다라. 딱히 모르겠는데.”

“…….”

“그냥 바닥에 굴러다니는 걸 가져온 거라.”

“바닥에 주신께서 하사하신 검에 박혀 있던 보석이 굴러다닌다고요?”

“안 되나?”

“…….”

주신 겔라가 보면 노하지 않을까?

물론 그녀는 영면에 드셨지만, 그래도 노하지 않을까? 나라면 관짝에서뛰어나올 것 같은데.

나는 흐음 고민했다.

마음 같아서는 뜯어말리고 싶지만, 생각해 보니 만약 이 보석들로 왕관을 만들면 훗날 ‘에슈트’가 사라지더라도 이것들은 황실에 귀속될 것이다.

결국, 나는 못 이기는 척 입을 열었다.

“좋아요.”

“얼굴에 욕심이 잔뜩 묻어 있군.”

“크흠.”

괜히 간파당한 것 같았다.

나는 일부러 고개를 돌렸다.

“뭐, 굳이 말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좋은 생각이다. 귀찮게 실랑이하지 말고 그냥 주는 대로 받는 게 좋을 거다.”

그렇게 말하며 레르하겐이 손을 뻗었다. 갑자기 뭐 하나 싶어 고개를 돌리는데, 보석 산 사이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시는 건가요?”

내 물음에 레르하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 집중해 그의 손을 보는데, 갑자기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레르하겐이 무엇인가를 잡았다.

“그건.”

“얼마 전에 그랬지. 네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고.”

“그랬죠.”

“이걸로 시험해 보면 답이 나올 수도 있어.”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겨우 그런 작은 보석으로 답을 알 수 있다고?

레르하겐은 손을 내밀라는 듯이 고개를 까닥였다.

나는 미간을 미미하게 찌푸리고 손을 뻗었다. 레르하겐은 살짝 몸을 낮추고 내 손에 무엇인가를 쥐여 주었다.

손바닥을 펴 보자 조금 특이한 모양의 반지가 보였다. 산처럼 쌓인 보석 중 유일하게 제대로 가공된 액세서리에, 나는 신기한 얼굴을 했다.

“이건 뭐죠?”

“알레그나 레 프리시드티-.”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을 해 주세요.”

“소유한 자의 힘을 측정할 수 있는 마력석의 일종이다. 네게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예를 들자면…… 손에 끼고 있어.”

나는 얌전히 레르하겐의 말을 따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방금까지만 해도 투명하게 빛나던 보석에 갑자기 황금빛이 넘실거렸다.

“이건…….”

“마나를 감지한 것이다. 보통 인간들이 쓰는 마력은 황금빛을 띠지.”

“드래곤이나 정령들은 다른가요?”

“드래곤도 황금빛이다. 인간이 쓰는 마법과 드래곤의 힘은 같은 계열이니.”

“그렇군요.”

“정령들은 녹색을 띤다. 자연의 색깔이지. 보통 신관들은 하얀색의 빛이고.”

“하지만 이런 걸로 제가 어린아이가 된 원인을 어떻게 알아본다는 거죠?”

내가 끼고 있는 한 계속 황금빛이 돌지 않을까?

그러나 레르하겐은 더 설명하지 않고, 완전히 몸을 낮췄다.

순간 그의 긴 코트가 바닥에 끌렸다.

어마어마한 키 차이 때문에 그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드래곤의 눈동자는 인간들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파란 줄 알았던 그의 눈동자에 은은하게 황금빛이 넘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갑자기 레르하겐이 내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턱 하고 얹어진 무게에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얼굴을 찡그리려는데, 레르하겐이 낮게 읊조렸다.

뭔지는 몰랐지만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 순간 어마어마하게 강한 힘이 나를 짓눌렀다.

그와 동시에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띵해졌다.

“지금 뭐 하는 거-.”

나도 모르게 마법을 펼쳐 그의 마력을 막고자 했다. 그러자 레르하겐의 힘이 더 거세졌다.

“윽.”

“스, 스승님.”

나는 얼굴을 완전히 일그러뜨렸다. 언뜻 하시스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젖 먹던 힘까지 써서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지르려는데, 갑자기 레르하겐이 손을 뗐고 거짓말같이 모든 구속이 사라졌다.

그 여파에 나는 속을 게워 내듯 기침을 했다. 어느새 내 옆에 온 하시스가 몸을 낮추고 내 등을 토닥였다.

“야, 너 괜찮냐?”

“안, 쿨럭. 안 괜찮아.”

“스승님, 이게 어떻게-.”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고통이 거의 사라질 때쯤 간신히 레르하겐을 향해 외쳤다.

그 순간, 레르하겐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봐.”

나는 내 손을 보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반지가 어느새 새까매진 것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심지어 내 옆에 있던 하시스마저도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이게…… 왜 이렇죠?”

“너를 아이로 만든 힘의 본질이다. 평소엔 알 수 없으나, 너를 억지로 어른으로 만들려고 온갖 힘을 퍼붓자 모습을 드러냈지.”

“검은색이라니, 그건 뭔가요?”

왠지 모르게 보기만 해도 불길해서 절로 미간을 좁혔다.

레르하겐은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흑마법.”

“…….”

“마족들이 쓰던 힘이다.”

예상치도 못한 존재에 멈칫했다.

“흑마법이요?”

“그래. 저주, 주술 아니면 부활술 중 하나다. 아니면 셋 다 동시에 적용했을 수도 있고.”

레르하겐은 더없이 태평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듣고 있는 나는 너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말도 안 돼요.”

“왜 말이 안 되지?”

“흑마법이라니, 그건 신화서에만 나오는 것 아니었나요?”

나는 헛웃음을 쳤다.

“흑마법은 마족들의 전유물이잖아요. 그리고 마족들은 거의 몇천 년 전에 완전히 이 차원에서 사라졌고요. 흑마법이고 마족이고, 나타나지 않은 지가 얼마인데.”

“나도 안다. 내가 쫓아냈으니.”

이 드래곤, 얼마나 오래 산 거지.

아니, 얼마나 강한 거지?

신화서에 의하면 마족은 그야말로 잔악무도하여 인간과 타 종족을 짓밟는 데에 일말의 자비도 남기지 않는다고 들었다.

심지어 그들은 신의 권위에 도전하고자 죽은 이를 살리는 부활술을 이용하여 되살아난 자를 부하로 써먹기도 했는데, 그 외에도 각종 저주나 주술을 만들어 재앙을 불러들였다.

게다가 흑마법이라는 것은 언제나 타인의 생명력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 마족이 활개를 칠 때마다 인간들이 죽어 나갔다.

하나 언제부턴가 사라지기 시작한 마족은 결국 어느 한순간을 기점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동시에 그들이 신봉하던 흑마법 또한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그것을 행한 것이 이 드래곤이라고.

아니, 그것보다 일단 나한테 흑마법이 걸려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이없었다.

“몇천 년 전 사라진 마족이 갑자기 나타나 저를 아이로 만들었다는 말씀이신가요?”

“인간이 행한 것일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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