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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인데 황녀가 되었다-2화 (2/146)

황제인데 황녀가 되었다 2화

나는 거울을 힐끔 보고 경멸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토실토실한 뺨만으로 이미 난 탈락이야.

“그놈들이 반역이라도 마음먹으면, 나는 끝, 이야.”

“아이의 몸이니 암살도 더 쉬울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게다가 대외적으로 제국의 위상이 내려가고.”

하나하나 열거하자 점점 공포가 밀려왔다.

“말도 안 대, 내가 어떻게 지금의 제국을 만들었는데.”

아바마마 때에도 아르시스는 강대국이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의 경배를 받는 나라는 아니었다.

지금의 이 안정과 영광은 모두 내가 즉위한 8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죽어도 그 꼴은 못 봐.”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아니, 내가 죽을 리가 없잖아.”

나는 형제자매들의 비인간적인 괴롭힘 사이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꼭 살아남아서 어른으로 돌아갈 거다. 그러려면 내가 이렇게 된 이유부터 찾아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머리를 굴려 보았다.

일단 지금 상황에서 뭔가를 조사하려면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혹여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면 끝이었다.

게다가 지금 내 모습은 누가 봐도 ‘황제 에스트리아’와 판박이였다.

그럼 내 존재를 합리적으로 숨기거나 해명을 할 방법을…….

잠깐만.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 리건을 응시했다. 갑자기 내 시선을 받게 된 그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왜 그러십니까?”

“너, 아까 들어올 때 모라고 했어?”

“누구십?”

“그 뒤에.”

“폐하!”

“그 앞에!”

“아, 저희 황제 폐하의 따님…….”

“그래! 바로 그거야!”

순간 답을 찾은 것 같았다.

“내가…… 내 딸이라고 하면 되잖아?”

내가 ‘황제 에스트리아’와 닮은 이유는 혈연관계이기 때문이라고 하면 될 일이다.

친척이 이렇게 똑같이 닮는 것도 말이 안 되고, 형제자매는 내가 다 죽였으니.

그러면 유일한 선택지는 딸.

“너, 천재가 맞긴 하구나?”

그러나 리건은 내 말이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얼굴을 했다.

“폐하, 폐하의 아이는 국본과 관계된 문제입니다. 게다가 아이는 혼자 낳을 수 있는 게 아니고요.”

“알아.”

“그걸 아신다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갑자기 하늘에서 뚝 아이가 떨어지면 귀족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 눈앞에 선하지 않습니까?”

“가짜 가족을 임시로 데려와서 방패막이로 쓰면 대자나.”

내가 황궁에서 자유롭게 다니려면 명확한 신분이 있어야 했다. 대충 갑자기 생겼다고 얼버무리면 그 너구리 같은 원로원의 귀족들이 필히 내 뒷조사를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 가급적, 깔끔하게 가족 관계를 만들어 잡음이 흘러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어차피 갑자기 황제의 사생아가 나타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내가 여자라서 상황이 좀 꼬이긴 하지만, 그거야 내가 아이를 낳자마자 버렸다고 하면 될 거 아닌가.

물론 언제 임신을 했고 아이를 낳았는지도 적당하게 꾸며 낼 필요는 있겠지만, 나는 원래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다른 영지로 내려가곤 하니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내 명예에는 흠집이 가겠지만 나는 원래 명예가 없으니 괜찮다.

그러나 리건은 내 말에 그리 동의를 하지 않는 듯했다.

“그 가짜 가족을 어디에서 데려오시겠습니까.”

그야말로 정곡을 찌른 질문이었다.

평민은 귀족들의 등쌀을 견딜 만큼 강하지 못하다. 혹시라도 귀족들에게 납치당해서 고문당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귀족을 상대로 입막음을 한다면?

‘그냥 차라리 내가 황제 에스트리아라고 사방에 외치고 말지.’

그러면 아버지를 모르거나 죽었다고 하면?

‘그럼 고통받는 건 어린 내가 될 거야. 아버지가 분명하지 않으니 어린아이인 내가 만만하다고 생각해 공격할 수도 있어.’

아무리 내가 진짜 황녀가 아니라도 그런 식으로 주변이 시끄러운 건 사절이었다.

게다가 나는 원래대로 돌아가는 방법도 찾아야 했다. 성가신 일을 더 마주하고 싶지 않다.

결국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나를 진지하게 보는 리건을 응시하다 멈칫했다.

그래, 비록 좀 멍청하긴 해도 저 정도면 잘생긴 얼굴이긴 했다.

아니, 잘생겼다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내 정적인 켈리어드 대공과 함께 제국에서 손꼽히는 미남이었다. 게다가 입도 무겁고, 언제나 내 옆에 있었으니 둘러대기도 쉽고.

“너, 내 아버지 할래?”

그러나 내 말이 끝나자마자, 리건의 얼굴이 괴이하게 변하더니 갑자기 비 오는 날 산책을 나온 지렁이처럼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됩니다!”

그저 홧김에 던져 본 말이긴 했다만 이렇게 거부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못내 더러워졌다.

나는 쯧 혀를 찼다.

“됐어. 너 같은 걸 아버지로 두다니, 아무리 가짜 신분이라고 해도 내 수치야. 차라리 애 아빠가 난산으로 죽었다고 하는 게 나을 거야.”

수치라고 불렸음에도 리건은 상당히 안도했다. 심지어 그는 수치로 여겨 줘서 무척 다행이라는 얼굴을 했다.

결국 나는 계속해서 생각에 잠겼다.

“귀족들의 등쌀을 견딜 만큼 강하고, 권력관계에서 벗어나 있고, 입이 무겁고…… 뭐야, 이런 인간이 과연 존재해?”

“그 정도면 거의 인간이 아닌데요. 애초에 이 대륙에 아르시스 제국의 영향력 밖에 있는 인간이 있습니까?”

충격이 셌는지 리건은 이제 아예 자기만 아니면 된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엇인가가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맞아, 굳이 인간 사이에서 찾을 필요는 없어.”

“폐하, 깐족거리느라 던진 말인데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리건이 기겁한 얼굴을 했다.

“황제의 사생아만으로도 문제가 복잡해지는데, 심지어 타 종족과의 혼혈이라면 더 복잡해진다고요.”

“복잡해질 게 머가 있어? 서류 처리는 네가 알아서 하면 대자나.”

“그러니까 복잡하다고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네가 복잡해지는데?”

리건은 당당한 내 말에 이마를 짚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결정을 번복한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이 곧 해탈한 얼굴을 했다.

“그래요. 그런데 대체 어떻게 구하실 겁니까? 설마 모집 공고라도 내실 건 아니시겠죠.”

“센스하고는. 마법사가 아닌 것들은 상상력이 부족하다니까.”

리건은 무척 억울한 얼굴을 했지만 나는 가차 없었다. 곧 내가 그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리건은 이제 익숙해진 듯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편하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도록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췄다.

나는 그런 그의 어깨를 턱 짚고 차분하게 말했다.

“너, 일단 나가서 어데, 어젯밤 내 궁에 침입자가 있었는지 아라 바. 물론 내가 눈치 모 챌 리가 없지만, 만에 하나.”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내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고 시녀를 구해.”

“하지만 폐하의 궁에는 시녀가 있지 않습니까.”

“그건 황제를 모시는 시녀지, 황녀의 시녀는 아니잖아.”

만약 내 존재를 황제의 딸, 황녀로 위장한다면 반드시 황제가 사라졌음을 들키지 말아야 했다.

그러자면 일단 황제와 황녀, 두 사람의 고용인들부터 분리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방도 따로 분리해야겠지만.

“인형술로 가짜 황제 에스트리아를 만들어서 속일 거야. 물론 시녀들에게 절대 비밀이고.”

꽤 거세게 반응하던 것과 별개로 리건은 아주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흡족한 얼굴을 했다.

“깔끔하고 조용하게 잘 처리해. 만약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나는 생긋 웃으면서 손을 들어 그의 뺨을 톡톡 건드렸다. 그리고 더없이 상냥하고 자애롭게 말을 이었다.

“널 아빠라고 부르면서 쫓아다닐 거니까 알아서 해.”

그 순간 리건의 얼굴에 금이 쩌저적 갔다.

나는 손을 내렸다. 리건은 마치 적진에 홀로 뛰어드는 장수 같은 비장한 얼굴을 한 채, 말을 이었다.

“목숨을 걸고 해결하겠습니다.”

나와 스캔들이 나는 게 죽는 것보다 더 싫은가.

리건은 방을 빠져나갔다. 비록 맨날 구박하긴 해도 일 처리 실력만큼은 믿을 만했다.

나는 순식간에 닫힌 문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 * *

리건이 나간 뒤 나는 생각에 잠겼다.

비록 리건에게 단호하게 말했지만 나라고 이 계획의 위험성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종족들은 하나같이 제멋대로라.’

그것은 그들이 인간들, 정확히는 귀족들의 권력 놀음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내 말을 듣지 않고 어떤 돌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 지금 상황에서 내가 가장 견제해야 하는 것은 귀족들이야. 어쩌면, 나를 이렇게 만든 것도 정적일 확률이 높고.’

권력관계에 얽히지 않은 이종족들은 내 마법으로 제압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귀족들은 다르다.

그들은 너구리 같은 치들이었고, 단순히 힘에 의해 정복하고 정복당하는 타 종족들과 달리 음험하게 구는 이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이렇게 된 데에 누군가의 음모가 얽혔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형제자매를 베고 황위에 앉은 자다. 그런 내게 적이 많은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생각을 끝낸 뒤 나는 침대와 조금 떨어진, 카펫이 깔린 곳으로 갔다.

리건이 나가자마자 걸리적거리는 잠옷을 찢어 버린 뒤 내 몸에 맞게 대충 재단하자 조금 편하게 설 수 있었다.

‘그럼, 일단 소환진부터.’

내 계획은 간단했다. 마법진으로 ‘조건’에 맞는 이를 소환하는 것.

그리고 내 조건은 딱 다섯 가지.

첫째, 강할 것.

둘째, 아르시스 제국 내 귀족들과 아무런 이익 관계가 없을 것.

셋째, 어려진 황제 에스트리아의 아버지로서 이름을 빌려주고 신분을 속이는 데 협조함과 동시에 그 의무를 행할 것.

넷째, 제멋대로 굴지 않을 것.

다섯째, 대가는 황제 에스트리아의 던전 금고에서 원하는 것을 전부 가져가는 것.

이 소환진은 내 조건에 들어맞는 이들 앞에만 나타날 것이고, 내가 내건 대가가 마음에 들면 소환에 응하면 되었다.

그리고 만약 소환을 거절하면 누군가가 자신을 소환했다는 사실부터, 조건, 대가 등등 모든 것을 다 잊고 아무런 일도 없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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