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 나는 인류를 믿는다(?)(5), 에필로그
퍼퍼퍼퍼퍽!
무진은 다크로드의 불신에 다발의 권격을 선사해 주었다. 투로를 예측하듯,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튕겨 내기는커녕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되자, 리온은 깨달았다. 성좌력이 제어되고 있다는 것을.
“……네놈이 어떻게?”
“꽤 참조가 됐어.”
무진은 다크로드의 본부를 봉인한 것에 그치지 않고, 역으로 이용할 방도를 찾아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다크로드의 방도가 자신이 연구했던 방향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무공이 극에 이르면 만류귀종이라고 하듯, 시스템, 성좌의 탑, 차원에 관한 연구가 깊어질수록 같아질 수밖에 없었다.
다크로드의 연구는 성과가 있었다. 성좌력을 통제하는 방법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진은 이를 바탕으로 성좌력을 100% 활용할 방안을 마련하고, 역으로 제어하는 법을 찾아냈다.
“내 성좌력을!!”
“잘 쓸게.”
“네놈도 성좌력을 쓰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가 아니더냐!”
“그렇긴 한데, 세계는 나를 자발적으로 믿고 있거든.”
“헛소리하지 마라!”
통제가 없다면 자발적인 충성은 없다. 리온이 인간에 대해 규정한 원칙이었다. 만약 놈의 말이 맞는다면 자신이 이제까지 추구해 온 원칙이 뿌리째 흔들린다.
“세계 평화를 위해.”
무진은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외쳤다. 세계를 구하는 영광스러운 업적에 동조하라고.
***
휘청, 비틀!
사방에서 사람들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다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처럼 기력이 떨어진다. 죽지는 않을 정도긴 한데. 이상하게 힘이 빠진다. 종말이 올 수도 있기에 마지막을 불태우던 부부는 허탈했다.
“이게 왜?”
“도대체 무슨 일이야?”
“폭군이 도와 달라고 외친 다음부터 이상해!”
“이거 혹시 자발적인 게 아닌 거 아냐?”
“그게 무슨?”
의혹이 생겼지만, 이해는 되지 않았다. 도와 달란다고 기력을 빼 가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 건 들어 보지도 못했다.
일반인이 비틀거릴 정도로 느끼고 있다면 각성자는 어떻겠는가. 스텟의 마나 수치가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너, 마나 수치 어떻게 돼?”
“젠장, 남작급으로 떨어졌잖아. 내가 어떻게 백작급으로 올렸는데!”
“이거 언제까지 빨아먹을 심산이야!”
“저 탑이 문제야!”
“그래서 탑을 부수자고?”
각성자들은 무진탑과 투명청룡오관이 자신들의 기운을 빨아들여 전송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하지만 누구도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잘못 손을 썼다가 폭군이 지기라도 하는 날엔 진짜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 등장했던 것과 달리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다크로드가 타협점을 찾을 것 같지도 않았다.
“씨발, 우릴 사육했구나!”
“젠장, 이 나이에 키잡을 당하다니!”
“우리가 완전히 폭군에게 당한 거라고!”
“빌어먹게도 마나 스텟은 다시 채울 수 있잖아. 나중에 따지지 못하는 걸 노린 게 분명해.”
“아니 무슨, 강제로 돕게 하는 법이 어딨어!”
“솔직히 자발적으로 마나 스텟을 내놓을 사람이 있기는 하냐?”
폭군의 속셈을 간파한 각성자들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게 다였다. 화를 낸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명분은 폭군에게 있었다. 세계를 위해서 싸우는데, 너희들도 한 손 보태라는.
‘절대 척을 지면 안 되는 인간이다!’
‘수틀리면 뭔 짓을 할지 몰라!’
‘영웅은 개뿔, 폭군 그 자체잖아!’
‘와, 3년 동안 공포 조장한다고 욕했더니,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그들은 간절히 소망했다.
빨리 끝내!
이대로 계속 흡수하다가 마나 스텟이 오링 나면 선천진기까지 뺏어 먹을 위인이었다.
한편으로 전 세계의 일반인과 각성자의 기운을 흡수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강해질지 추측이 되지 않았다.
***
커억, 쿨럭!
주르르르!
성좌력이 제한된 이후 리온은 일방적인 폭력으로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참담한 건 자신의 원칙이 무너졌다는 사실이었다.
“……대단하군!”
“그러게 평소에 인망을 쌓았어야지.”
“나를 이긴다고 끝나지 않는다. 시스템을 만든 자들이 너를 노릴 거다!”
“그건 걱정하지 마.”
무진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존재감이 다크로드를 압박한다. 그러자 다크로드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휘둥그레졌다.
“성좌력을 쓸 수 있었나?”
“그래.”
“이 말도 안 되는 성좌력은 대체? 허허허허, 어처구니가 없구나!”
“살고 싶냐?”
“살려 달라고 하면 살려 줄 테냐?”
“아니.”
무진은 다크로드의 회개를 믿지 않는다. 인간이란 언제든 마음을 바꿀 수 있고, 다크로드를 살려 두기엔 위험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허망하게…….”
푸스스스스!
허망하게 보일 뿐, 대결의 내막은 허망하지 않았다. 권능의 극에 이르러 성좌력까지 사용한 생사결이었다. 단순해 보이는 건 격이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통상의 각성자는 대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다가오기도 전에 영혼과 육체가 갈라지고 찢겨져 나갈 테니.
헨리크의 [포식]과 소멸력을 발동하여 깨끗하게 지웠다.
가엽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순진한 생각이다.
무진은 적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더욱이 조금이라도 위협이 된다면.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이겼다.
무진은 모두를 향해 말했다.
“곧, 정산 들어가겠습니다.”
세계는 승리를 만끽하기도 전에 앞으로 닥쳐올 험난한 빈곤을 걱정해야 했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는 한국식 농담은 통하지 않았다.
에필로그
다크로드 사후 10년.
세계가 종말을 고할 뻔한 날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사에 흔적을 새겼다. 당시 종말을 막고, 세계를 구한 폭군은 영웅도, 용사도 아닌 애매한 인물로 남았다.
진정으로 용사에 어울리는 업적을 남겼지만, 막대한 사리사욕을 챙겼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었다. 다크로드를 상대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무진탑을 설명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되었다.
그 이중적인 면모에 폭군을 위인으로 추대하진 못했다. 속된 말로 폭군을 본받으라고 할 순 없었다. 대의를 위해서라지만, 세계를 속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도 폭군을 대놓고 욕하진 못했다. 이유는 압도적인 강함도 있지만, 무진탑과 투명청룡오관에 있었다. 속였다면 마땅히 철거해야 하는데, 전 세계 어느 국가도 나서지 않았다. 되레 잘만 활용하고 있었다.
폭군을 욕하려면 탑과 관문부터 철거해야 했다. 그러나 포기하기에는 성장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마치 그날의 일을 회개하듯, 더 많은 과실을 안겨 주었다. 이러니 포기할 수 있는 국가가 나오겠나. 더 많이 지어 달라고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와, 진짜 하나도 안 도와주냐?”
“요리는 내가 하잖아.”
“요리만 하잖아!”
“누가 보면 집안일을 네가 하는 줄 안다. 고티아가 대부분 다 하는데.”
“애들하고 놀아 줄 순 있잖아.”
“바빠.”
무진과 지수는 결혼했다.
벌써 8년 차에 접어들고 3남 1녀를 둔 가장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높여 주고 있는 역군이기도 하다. 다만, 자신처럼 애들도 클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았다.
그게 지수의 불만이었다.
“다들 너처럼 혼자 크진 않아!”
“네가 사랑으로 안아 주면 되잖아.”
“그러는 너는?”
“가장은 돈만 벌면 돼.”
“돈은 나도 많아.”
“알아.”
무진의 시큰둥한 대응에 지수는 머리 뚜껑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한때는 눈만 마주쳐도 불이 붙었지만, 지금은 마주하면 언쟁이 생긴다.
“네가 그러고도 아빠냐!”
“나는 처음부터 말했다. 굉장히 가부장적이라고.”
무진으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다. 결혼하기 전부터 말했고, 일관성을 유지했다. 그렇다고 애들을 험하게 다룬 것도 아니고, 필요할 땐 가르침을 내려 주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성장 속도도 빠르고, 속성도 5개나 되었다. 이만하면 아비로서 굉장히 잘하고 있는 거 아닌가.
따지고 보면 지수도 이상하다.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고티아와 나미코가 있고 집사와 가사도우미까지 4명이나 되었다. 대체 왜 시간이 부족하냐고?
아침에 나가서 들어오지를 않는다. 상원이가 그러길, 카페에서 유정이나, 혜진이와 수다를 떤다고 했다. 그 말 없던 혜진이도 나이를 먹더니 수다쟁이가 되었다.
“나 바쁜 거 알잖아.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다크로드 때처럼 되지 않을 수도 있어.”
“매번 할 말 없으면 그러더라! 지구를 네가 혼자 지켜!”
“이럴 줄 알았으면 순영이랑 할걸.”
“선 넘네!”
“네가 알려 준 거잖아!”
“네 맘대로 읽은 거잖아!”
미래에서 알려 주지 않은 비밀, 순영이와의 결혼이었다. 딱히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어릴 때 잠깐의 인연이었고, 현재는 모르고 지낸다. 아예 연락도 안 되게 확실하게 끊었다. 이만하면 훌륭하지 않나?
“오늘은 안 되겠어. 무간지옥 열어 놔.”
“그만하면 된 거 아닌가?”
“우리가 싸우면 애들한테 얼마나 악영향이 가는 줄 알아!”
“알았으니까, 그만해.”
저 시끄러운 잔소리.
무진은 교장의 말로를 보고도 선택한 걸 후회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더니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다른 건 다 예측했지만, 결혼 생활이 이럴 줄은 몰랐다.
‘나는 다를 줄 알았는데.’
무진도 이 점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미래의 나와는 조금 많이 다른 모양이다.
여하튼 세계를 구한 이후로도 상위 차원에 관한 연구와 훈련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다크로드는 시작점에 불과했다. 탑에 남겨 둔 씨앗을 통해 연결점을 찾아내고, 꾸준히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내부자를 통한 정보 수집으로 신도 등급이 있음을 파악했다.
‘내가 나만 잘 살자고 이러는 게 아니잖아.’
억울하다.
가족과 세계를 위한 헌신이었다. 가장이 이렇게 노력하면 알아줘야 하는데, 애들하고 놀아 주지 않는다고 타박하다니. 내 아내지만, 방생하기엔 양심에 찔리는 존재가 되었다.
“나도 숨은 쉬고 살아야지.”
***
“이 악마 같은 년!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차라리 말이라도 해 달라고!”
“모르면 인생 끝나나.”
거구의 사내.
그로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차라리 원한을 맺었다면 시원하게 말이라도 해 줬으면 하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내는 세계 공적이었던 다크니스의 간부급이었다. 폭군에게 다크니스가 끝장나자 신분을 숨기고 살아왔다. 가정도 생기고, 건실한 가장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납치당했고, 이상한 세계에 떨어졌다. 자신이 알던 장소와는 다르다. 어디를 가도 같은 공간인 데다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간신히 집을 짓고, 살아갈 터전을 만들기만 하면 저 악마 같은 년이 나타나 모조리 때려 부수고, 일방적으로 구타했다.
“권후~~! 대체 뭣 때문에! 차라리 죽이든가, 법정에 세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사내의 이름은 로빈.
전직 다크니스 간부, 헤라클래스다.
비록 다크니스가 무너지긴 했어도, 권후에게 일방적으로 당할 줄은 몰랐다. 그 이후로 매번 손도 못 써 보고 얻어터졌다.
그럴 때마다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원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다크니스의 간부라서 이러는 거면 억울했다.
“……이 씨발 년아!”
“아주 좋아. 크크크크!”
저항할수록 웃음이 짙어지는 변태 같은 년이었다.
로빈은 정말 죽고 싶었다. 그러나 여기선 죽음도 허락되지 않는다. 죽으려고 하면 몸이 경직되며 상상하지 못할 고통에 시달렸다.
“나 오늘 남편한테 짜증 이빠이 났거든. 네가 풀어 줘야겠다.”
“……차라리 죽이라고, 이 악마 같은 년아!”
작가 후기
인류최강 남사친이 완결되었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회귀자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특이점을 소재로 했지만, 되레 주변인이 되고 시점이 분산되면서 글이 산만해졌습니다. 나중에는 이도 저도 아닌 주인공 위주가 되고 만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심적으로 우여곡절도 많아서 집중하지 못했던 건 변명이겠지요.
잘하는 것을 더욱 갈고닦아서 특화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음에는 더 나은 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읽어 주신 독자님들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