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공개(4)
권왕가주가 제인과 공조하여 비공식 서버를 통해 정보를 풀었다. 무진의 폭탄 발언이 수습되기도 전이라 여론은 정신을 못 차렸다.
-이게 뭐야, 갑자기?
-권왕에게 당한 퀵 패스트가 다크니스 소속이었어?
-프랑스의 초인 노블레스도 다크니스였다고?
-미국은 3명이나 돼?
-초인 중 절반은 다크니스에 포섭됐잖아!
-어쩐지 아무런 대응도 없더라니!
-이거 근거는 있는 거야? 있네.
초인은 물론, 각국을 대표하는 각성자가 다크니스에 포섭이 되었다. 한·중·일은 이미 겪은 일이나, 세계는 자신들 일이 아니라고 뒷전으로 미루었었다.
그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었다. 인과를 따지면 예견된 참사기도 했다. 한·중·일만 특별히 다르다고 하기엔, 다크니스의 목적이 세계 장악이었다.
-이거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냐?
-정보의 출처가 나오지 않아서 문제긴 한데, 증거가 너무 빼박이잖아.
-부정하기에는 타임라인이 지나치게 딱딱 들어맞아.
-다크니스가 남아 있는데, 내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도 없고.
-결과적으로 폭군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는 거네.
-진짜 대놓고 하는데, 심증만 있을 뿐이라. 폭군이 더 흑막 같다.
-폭군과 다크로드가 혹시 동일 인물 아냐?
-폭군의 월권을 규탄해야 마땅해!
-그런다고 폭군이 콧방귀라도 뀔까? 역풍을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고, 국내에 불부터 끄지 않으면 화마에 휩싸일 수도 있어.
자기들끼리 음모론을 내세우며 무진을 호도하는 부류가 생겨났다. 이로 인해 세계는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자국의 초인을 스스로 쳐 내야 하는데, 하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벌써 초인들이 증거인멸 하고, 도망쳤다는 인증 사진이 SNS에 올라오고 있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저러고들 살고 싶나?
-이러면 폭군에게 항의할 수도 없잖아.
-대체 뭐가 부족해서 나라를 파냐고? 명색이 초인이면서 쪽팔리지도 않나!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니, 그걸 변명이라고 하냐! 다, 라인강에 코 박고 뒈져라!
-폭군은 신나겠다. 자기는 이제 완전히 소외됐으니 말이야.
-폭군을 욕하기엔 우리가 똥이잖아!
일주일 후 무진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투명청룡오관을 선보였다. 세계 각국에 설치하기로 한 투명청룡오관은 보류된 상태였다. 각국은 발에 떨어진 불부터 끄기 바빴고, 투명청룡오관에 대한 불신을 해소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한·중·일은 발 빠르게 투명청룡오관을 다시 열었다. 대놓고 공개한 후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다크로드에 대한 불안감이 있지만, 봉인된 상태라 시간이 있었다.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미래를 보고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마땅하나, 인간은 현안에서 눈을 돌리지 못한다. 당장 다크로드가 강림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 강림할지도 몰랐다. 더욱이 사람들은 현재를 살아가는데도 빠듯했다.
바글바글!
의혹과 불신이 팽배했던 것과는 별개로 투명청룡오관은 도전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과도한 수요를 예상해서 기관을 10개나 설치했는데도 전부 받지를 못할 지경이다.
-자율 의지가 중요하다며?
-저건 다 조작이냐?
-결국, 나만 뒤처질 순 없단 거지.
-이러면 폭군을 신뢰한다는 거잖아.
-상황 참 웃기네.
새롭게 만들어진 투명청룡오관의 성능은 이전보다 훨씬 빼어났다. 도전한 날과 도전하지 않은 날의 차이가 확연했다. 이러니 날이 가면 갈수록 도전자가 늘고 있었다.
화룡점정으로 무진탑에 대해서도 알려졌다.
투명청룡오관을 완벽히 통과한 도전자에게만 주어진 혜택이었다. 성능은 투명청룡오관과는 차원이 달랐다.
-무진탑이라니? 이거 작명 센스 레알 소름 돋았네!
-너무 노골적이라서 도전하는 것 자체가 꼬봉 확정 아니냐!
-불편해하기에는 실력이 확연하게 오른다던데.
-지금 들어가지 못해서 다들 안달이라고.
-무진탑에 선별된 것 자체가 계급이 되고 있어.
-무진 가라사대! 오르라, 그러면 길이 열리리라.
세계는 자국의 곪은 부위를 치우느라 바쁘고, 국내, 일본, 중국은 무진탑에 오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투명청룡오관을 수료하는 것만으로도 역량의 증대는 보장받는다. 다만, 생도는 여전히 견본품 투명청룡오관에 도전했다. 아직 진(眞)투명청룡오관을 수료하기에는 힘에 부쳤다.
견본 투명청룡오관.
진투명청룡오관.
무진탑.
세 단계로 구성하여, 각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경지를 올릴 수 있었다.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라도 각성자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송 이후로도 무진은 일상을 살고 있었다.
주 1일, 힘겨워도 아카데미에 꼬박꼬박 출석했다.
아카데미에 올 때마다 생도들이 따랐다.
폭군이란 별호에 인류 최강이란 타이틀이 붙었다. 생도들로선 어떻게든 연을 맺어 놓으려고 노력했다.
종말을 단언할 순 없어도, 최강자의 옆에 있고 싶은 건 삶에 대한 당연한 본능이었다.
하나, 누구도 쉽사리 연을 맺진 못했다. 무진을 에워싼 인물들을 뚫고 들어오기엔 레벨 차이가 컸다.
생도들의 열망에 무진은 커트라인을 제시했다.
아무나 만나 주면, 개나 소나 다 찾아온다. 누군 만나 주고, 자긴 안 만나 주면 반감은 당연하다. 없는 자리에서 수군대 봤자 타격감은 없으나, 귀찮음은 사양했다.
“최소한 상원이는 이겨야겠지.”
덕분이 일거리가 많은 상원이었다.
하필이면 나냐고 투덜거릴 만하지만, 상원은 현실을 직시했다. 무진의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혜택이었다. 떨어지는 콩고물을 맛봤더니 벗어날 수가 없다.
‘7계식, 이게 되네.’
황망하게도 상원은 무진탑에서 [플래시]에 이어 히든 피스를 2개나 처먹었다. 무진의 예상을 벗어나는 망조였다. 다른 애들의 성향을 고려해서 인과를 만들었더니, 엉뚱한 놈이 처먹은 것이다.
무진으로선 헛수고였으나, 아쉽지는 않았다.
놀랍게도 상원은 임계점을 넘어 리미트를 해제해 마력양이 단숨에 8계식에 도달했다. 아직 깨달음이 뒷받침되지 않았을 뿐, 유정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수 없으면 상원이와 사귈지도 모른다는 격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싸우다 정이 든다고 하나, 자칫 생사결이 될 수도 있었다.
‘경각심은 좋은 거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지금보다 강해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면 얼마든지 밀어줄 수 있었다.
고로 무진의 주변은 인산인해지만, 친분을 맺을 기회는 거의 없었다. 생도들은 지수를 중심으로 한 무진의 디펜스를 뚫고 들어올 역량이 현격히 부족했다. 최소한의 마지노선인 상원이조차 생도들에겐 거대한 벽이었다.
“폭군은 그렇다고 쳐도, 이런 차이는 반칙 아냐?”
“저 조그만 녀석이 어떻게 이렇게나 강할 수 있는 거야?”
“혹시, 쟤들만 따로 속성이나 버프를 주는 걸지도 몰라!”
“쟤는 우리보다 약했잖아, 이런 건 너무 불공평하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넘지 못할 벽만 체감하자 생도들은 절망했다. 차이가 너무 나서 도전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자기들만 알고 있는 비법이 있는 거 아니냐는 성토가 있었다.
한두 명이 특출 난 건 태생적인 능력이라고 쳐도, 저들 전부가 그렇다면 특별한 비기나 훈련 방법이 있지 않고선 불가능했다. 자기들만 강해지려고 독점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번에도 저번처럼 농성했다.
비법을 공개하라!
공개하라!
까딱하다간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를 판이다. 다 같이 형편없으면 받아들일 수 있으나, 소수만 잘나가면 가만둘 수 없지.
스윽!
움찔, 부르르르!
불평불만을 단숨에 제압하는 무진의 눈빛이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는데도, 일대는 말문이 막힌 채 전율했다. 영상을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인류 최강이 피부로 와닿진 않았었다.
지금까지는.
‘뭔 놈의 눈깔이!’
‘영혼이 꿰뚫리는 것 같아!’
‘마주 보지도 못하겠어!’
‘이게 인류 최강?’
그래 봤자 같은 생도인 줄 알았다. 자신들에게도 기연이나 기회만 있으면 얼마든지 폭군처럼 강해질 수 있으리란 기대를 했었다. 그것이 얼마나 같잖은 망상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쪽팔리고, 부끄럽다.
차라리 마나, 속성, 스킬을 썼다면 이해라도 하지, 특수 능력은 발휘하지 않았다. 존재감으로도 일대를 장악하고 지배했다. 무진을 자신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욕이자, 어불성설이었다.
지금, 이 순간 모두는 반감조차 들지 않았다. 절로 무릎이 굽혀지며 경외할 수밖에 없었다. 숨겨진 질시와 반감이 낱낱이 파헤쳐지며 부끄러운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선이 꽂힐 때마다 의도를 숨기지 못했다.
쿨함으로 포장해 봤자 결국 초라한 자신만 남았다.
완전한 거울치료였다.
눈빛으로 사위를 압도하여 기세를 죽인 무진은 차분히 의중을 밝혔다.
“내 사람을 챙겼을 뿐이야. 혹, 친분도 없는 너희들까지 챙기길 바란 건 아니겠지? 알다시피 난 그렇게 호인도 호구도 아냐. 강해지고 싶다면 고개를 숙이고, 관문을 통과해.”
“……네가 우리의 주인이라도 되겠단 거야?”
“그게 싫으면 여기서 징징거리지 말고, 훈련이나 열심히 해라.”
“……그렇게 다 가져야 속이 시원하냐!”
“강단은 마음에 들지만, 내 것을 탐하면서 고개 빳빳이 드는 걸 나는 용납하지 않아.”
자존심을 지키고 싶으면 관문에 도전하지 않으면 된다. 본인은 한 줌의 손해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강해지고 싶은 열망 하나로 자존심을 꺾은 도전자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자존을 비난하진 않아. 끝까지 너희만의 길을 간다면 나도 응원은 해 주마.”
무진이 친구들과 식당으로 떠나고 나서야 일대는 숨을 토할 수 있었다. 그 전까지 호흡조차 맘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압도되었다. 마지막에 불평불만을 쏟아 냈던 생도는 힘을 다 썼는지 땅바닥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그 짧은 순간, 탈진 상태가 되었다. 다들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전력은커녕,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다. 만약, 폭군이 다른 마음을 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인류 최강은 확실히 노는 세계가 다르구나.”
“건방진데, 이제는 어울려.”
“따라잡으려는 생각 자체가 욕심이자 망상이었어!”
“쟤는 아카데미에 왜 온 거야?”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 정말 강해!”
“혼또니 쯔요이!”
“이 대머리가 뭐래!!”
“……민머리거든!!”
다 벗겨졌거나, 조금 벗겨졌거나 일반인에겐 큰 차이 없다. 여하튼 무진만이 아닌, 주변의 강함도 인정해야 했다.
왜 인맥이 중요한지를 여실히 깨닫게 해 준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실력보다 친분과 인맥이었다.
“나도 친해지고 싶다!”
“폭군과 인증샷을 원한다고!”
“투명청룡오관을 확충해 달라고 하자!”
“차라리 무진탑을 세워 달라고 하면 안 되나?”
“견본 투명청룡오관도 통과하려면 똥을 싸는데, 되겠냐?”
“진투명청룡오관까진 가능해!”
가까이하기엔 환장하고, 멀리하기엔 도태되는 폭군의 위엄에 다들 한숨을 쉬었다. 오늘이 흑역사가 안 되려면 어떻게든 강해져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