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 기다리지 않는다(1)
이해할 수 없다. 도발이 통할 거라고는. 이토록 치밀하고, 노련한 전략가가 이성을 잃을 리 만무했다. 알면서도 분통이 터져서 포효했을 뿐이거늘.
진짜로 나타났다.
절호의 기회였다.
이놈을 사로잡아 인질로 쓴다면 위기를 벗어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찰나의 희망 고문에 지나지 않았다. 나타난 순간 기대는 항거 불능이 되어 버렸다.
부지불식간이라기엔 놈은 뚜벅뚜벅 걸어왔다. 천천히 손을 뻗자, 목을 내주었다. 허망하다고 하기엔 금제나 봉인처럼 의지를 배반했다.
저항 자체를 무력화하는 절대자의 권능이 아니고서야.
로드?
부르르르르!
불현듯 로드를 떠올린 헨리크는 몸서리를 쳤다. 감히 해서는 안 되는 불경이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분명 그래야 하는데, 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크니스를 대적하기 위한 천적.
불신을 받아들이자, 현실이 보인다. 어째서 다크니스가 번번이 실패했는지 깨달았다. 자신을 일수에 제압한 괴물이 배후에 있었다. 정체를 알고 있었다면 모를까? 무방비로 이런 터무니없는 괴물을 상대했으니 철저히 농락당할 수밖에.
“나오라고 해서 나왔는데, 묵비권을 행사하면 어쩌란 거지?”
“……크윽!”
“아, 목을 너무 세게 잡았구나. 풀어 줄 테니, 허심탄회하게 할 말 있으면 해. 난 관대한 분이시거든.”
“……모두가 속고 있었어! 네놈이 진짜였구나! 세상을 속인 대가를 받게…… 커억!”
이런, 욕먹었더니 아귀에 힘이 강해졌다.
운이 좋았으면 이대로 갈 뻔했다.
“보통은 속은 놈이 병신이라고 하던데, 너희들은 피해자 중심주의구나.”
“……다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라!”
속였다고 하기엔 무진은 딱히 숨기진 않았다. 신분과 주변을 이용했을 뿐, 내막을 자세히 알려 줄 의무는 없다. 적을 경시하고 무시했던 다크니스의 실책이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작은 실수가 쌓여 돌이킬 수 없는 실패가 되기 마련이다.
패가망신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흥망성쇠의 틀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의문도 풀고, 기억도 복제했으니 이만 끝내자. 다른 애들은 알지도 못하고 뒈진 것에 비하면 넌 그래도 호상이야.”
“나한테서 아무것도 얻지…… 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저세상으로 보내 드린단다!
헨리크는 정보를 빌미로 시간을 끌려다 다급해졌다. 게다가 기억을 복제한 게 사실이라면 위험했다. 이대로 끝낼 순 없기에 [포식]을 썼다. [포식]이 뛰어난 속성임은 분명하지만, 상대를 제압하지 않은 상태로 쓰게 된다면 영혼이 공멸할 수 있었다.
헨리크는 [포식]의 부작용을 역으로 이용했다. 이렇게 된 바에 놈과 같이 가기로 마음먹었다. 설령 죽이지 못하더라도, 타격을 입혀야 했다.
“……같이 죽자!”
“괜찮은 속성이야. 잘 먹을게.”
무진의 전능이 헨리크의 속성을 원자 단위로 낱낱이 분해하여 본질을 파헤친다. 일순간 속성의 원리를 이해한 후, 역으로 헨리크를 잠식해 나갔다.
인풋 아웃풋이 빠른 건 둘째 치고, 원래보다 훨씬 강력했다.
찰나의 청출어람에 경악이 서린다.
“……넌 대체 뭐야…… 안 돼!”
무진의 의도를 깨달은 헨리크는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저항했지만, 무의미했다. 역으로 [포식]에 먹히면서 근원 형질이 분해되고 있었다.
부르르르, 크아아아악!
무진은 [포식]을 파리지옥처럼 사용해 헨리크를 천천히 녹여 양분으로 섭취했다. 영혼이 녹는 과정은 육체의 고통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완전한 [포식]이 이루어지면 영혼은 영원한 섭종을 맞이한다. 모르는 게 약인, 내막을 알면 소름 돋을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허!
모두를 힘들게 했던 것치곤 허무했다. 뭘 해 보기는커녕, 시작과 동시에 순삭되었다. 이럴 거면 자신들은 왜 불렀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나오란다고 진짜 나오냐.”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긴 하지.”
“주인공은 무슨, 빌런 아니고.”
손을 쓰지 않았으면 제법 곤란할 수도 있었다. 다크니스는 예전보다 일취월장했음에도 버거운 상대였다. 경각심을 가져야 할 세력임을 새삼 실감했다.
멍!
제일 당황스러운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상원이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연유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강해지기는 했어도, 개입하기에는 갭이 지나쳤다.
‘이건 스케일이 너무 크잖아!’
용량 초과로 감당하기 벅찼다. 부모님이 이러고 다니는 걸 알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알고 싶지 않은 내막까지 듣게 되었다. 오늘 일이 외부에 알려지는 즉시, 다크니스의 표적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넌 괜찮다 이거냐?’
다크니스의 수뇌부를 일수에 쳐 죽였다. 나이만 같을 뿐, 동기로 볼 수 없는 규격 외다. 한편으로 무진이 그동안 다크니스와 싸워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생도가 나서서 해결한 것이다. 그 와중에 한·중·일에서 벗어나 세계를 상대로 판을 키웠다.
‘이제는 물릴 수도 없잖아.’
가장 큰 문제는 무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강제는 아니지만, 강제나 다름이 없었다. 탈퇴 즉시 도태는 기정사실이었다. 무엇보다 무진의 옆에 있어야 유명세를 얻고, 유정이도 볼 수 있었다.
‘좋아, 다른 건 안 바란다.’
상원은 유정이만 행복하면 괜찮다고 하는 퐁퐁이들과는 달랐다. 일단 본인이 가장 행복해야 했다. 더욱이 사랑을 쟁취할 기회는 한정적이었다.
상원은 무진에게 대차게 까인 유정이 시련의 상처로 괴로워할 때를 노려 내 여자로 만들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군대 간 여친을 노리는 건 국룰이었다. 치사하단 말은 구질구질한 변명이다. 지조 있는 여자를 사귀었어야지.
‘결혼은 반드시 미녀랑 해야 해!’
얼굴은 나이 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루저들의 핑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젊든, 늙든 외모는 굉장히 중요했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키도 커야 하고.
‘나는 안 돼도, 내 자식은 잼미니에서 탈출시키고 말 테다!’
야수의 심장을 되새기며 상원은 매의 눈으로 유정을 바라보았다. 우리 가문의 영원한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유정은 필요하다.
더욱이 저 얼굴은 늙어서도 예쁠 것 같다. 처음 만나는 미녀 외에는 다른 곳에 눈을 둘 수가 없다.
콕!
크악!
개꿈을 꾸던 상원이 두 눈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유정의 검지와 중지가 불온한 동공을 가만두지 않았다. 어딜 감히 넘보냐는 결연함이었다.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세상이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왜?”
“기분 나빠서.”
쓰벌, 눈치는 존나 빠르네.
인정은 안 한다.
생각은 자유잖아.
“그렇다고 눈을 찔러! 이거 살인미수라고! 네가 평생 날 수발들어야 하는…… 흐억!”
“다리도 부러뜨려 줄까?”
“……너무 폭력적이잖아!”
“넌 매일 처맞을 상이야.”
“헤헤, 매일 본다.”
“죽엇!”
고양이상인 유정과 마우스상인 상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펼쳐졌다. 간발의 타이밍이긴 해도, 상원의 도주 능력은 상당했다. 무진이 숨겨 놓은 히든 피스 중 하나인 [플래시]를 얻은 것이다.
다른 한쪽에선 권왕과 지수가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할아버지, 이번엔 내가 살려 준 거야.”
“시간만 좀 있었으면 역전시킬 수 있었어.”
“그때 되게 위험했었거든요.”
“상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연기였다, 이놈아!”
“이년이거든!”
“잘했다, 이년아!”
또 다른 한쪽에서 투신과 무신이 아옹다옹하고 있었다. 이 안에서 무진을 제외하면 가장 강하다고 볼 수 있는 노괴들. 그런 자들이 무슨 말을 할까, 귀를 기울였던 마제와 천제는 헛바람을 삼켰다.
“그 새끼가 아비라니까?”
“김지운 작가의 장난이라고, 전에도 당하더니 또 속네.”
“이번에는 진짜다.”
“아니면?”
“무신류를 건다.”
“나도 투신류를 걸지!”
심각한 것치곤, 드라마 속 얘기였다. 몰입이 지나쳐 망상이 되었다. 저딴 걸로 왜 이렇게 진지하게 논의하냐고? 뭔지 몰라도, 내기에 건 무공은 범상치가 않았다. 이러다 드라마나 영화의 악역 배우가 위험한 거 아녀.
아주 그냥 개판이었다.
위기감이라곤 일절 찾아볼 수가 없다. 다크니스의 마스터는 이 더러운 광경을 보지 않고 죽어서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면 개죽음이지만, 마음만은 극-호상이었다.
짝!
무진은 박수로 사위를 집중시켰다. 결계를 통해 복사된 내용을 분석하고 정리했다. 위치를 특정하고, 이후의 대처도 사전에 세운 계획대로 진행하면 그만이었다.
“지금 즉시 다크니스의 본부로 갑니다.”
“바로 간다고?”
“시간을 주기보다는 즉각적으로 처리하는 편이 효과적이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니냐?”
“실패는 곧 알려질 거예요. 복수한다고 설친다면 모를까, 작정하고 숨으면 그땐 찾기도 힘들어요.”
쇠뿔도 단 김에 빼라고 했던가.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현실적인 대처였다.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허를 찌르는 편이 효율적이기도 하고.
결심을 내린 마제가 물었다.
“그래서 어딘데?”
“데스벨리예요.”
“휴우우, 백악관이나 펜타곤은 아니구나.”
“절 어떻게 보시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널 아니까 그러지!”
이해할 수 없는 무진의 표정과 달리 다들 마제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더는 숨길 생각도 없는지 대놓고 깽판을 치고 있었다. 일본에서 한 짓을 우리는 잊지 않았다.
근거 없는 오해와 매도에 근본 있는 효자로서 무진은 당당히 항의했다.
“제가 예의 빼면 시체거든요.”
“너만 예의 차린다고 다가 아니잖아.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지. 연락하고 공격하면 예의가 바른 거냐?”
혓바닥이 굉장히 매섭고, 날카로웠다. 마법사답게 허점을 정확하게 찔렀다. 무진은 움찔하며 동요했다.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모처럼 승리한 마제는 쾌재를 불렀다. 마법사로서 이성적인 대화는 언제나 환영했다.
“마제 사부님은 무진탑 출입 금지예요.”
“……아니, 얘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
“제 가호도 회수합니다.”
“이놈이, 애도 아니고 유치하게 뭐 하는 짓이야?”
“올해로 스무 살 됐습니다.”
이제 막 성인이긴 하나, 실제로는 애나 다름이 없다. 독립은커녕 집에서 싸고돌 나이였다. 무진이 워낙 말도 안 되는 짓을 해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자네라도 말려야 하는 것 아닌가?”
“저는 아들 편입니다.”
산하는 마제의 물귀신 작전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은 가족사에 중요하지 않았다. 팔이 안으로 굽는 진리를 외면하면 곤란하다. 나는 욕해도 되지만, 남이 욕하는 건 참지 않는다.
스윽!
휙!
마제가 쳐다보자 다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혹여, 마주쳐도 뻔뻔하게 나가야 했다. 괜히 같이 엮이면 무진탑에 오르지 못하고 가호도 뺏긴다. 오른 날과 안 오른 날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당연한 처사였다.
마제는 다급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자신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좌표만 말하거라, 어디든지 데려가 주마. 펜타곤, 우습지!! 나는 그저 네 강단을 시험해 봤을 뿐이다.”
“정말이죠?”
“당연하지!”
“이제야 사부님다우시네요.”
어디가?
줏대 없이 이랬다저랬다 했는데, 왜 인정을 하고 지랄인 게냐? 이러면 내 품위와 자존심은 어쩌라고.
이제 모두는 알았다.
무진 앞에서 입바른 소리를 해 봤자 본전도 못 뽑는다는 걸. 입 닥치고 그냥 하라는 대로 해야 했다. 더욱이 따질 수도 없는 문제였다. 자기가 만든 탑에 출입하고 말고는, 주인장 맘대로였다.
줬다가 뺏는 짓이 치사하나.
‘더럽다고 피할 수도 없잖아.’
***
동이 트는 시각.
어둠을 꿰뚫는 직선의 빛이 모래에 부딪혀 금빛 물결을 자아낸다. 이 일대는 날카로운 바위 지형이고, 야생 동식물 보호구역으로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균열처럼 갈라진 계곡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갔다. 천연의 자연이 만들어 낸 그림과 같은 장관이었다. 사진으로 소장하고 싶은 균열 사이로 빛이 어그러지면서 흩어진다.
좁은 계곡 속 전혀 다른 공간이 자리했다. 공터라고 하기에는 광활하고, 세련된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국가 대외비에 해당하는 구역처럼 보안이 철저했다.
탑처럼 솟아오른 건물의 최고층에서 창문 아래로 탁 트인 광경을 내려다보는 인물이 있었다.
빛을 보지 않은 새하얀 피부와 눈 밑의 다크서클이 오묘한 매력을 풍기는 퇴폐적인 미남이었다. 그는 빛과 결계가 만들어 낸 지하의 광경에도 졸린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피곤하군.”
부지런함이나 적극성과는 거리가 먼, 번아웃에 시달리는 인간 군상처럼 지루함이 서렸다.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그는 반쯤 감기는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늦는데.”
지금쯤이면 연락이 와야 했다. 이 시간까지 잠도 못 자고 기다리고 있자니,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 셋이 다른 꿍꿍이가 있지 않고서야, 이때까지 연락이 없을 리 만무했다. 당연하게도 실패 따윈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깟 일은 혼자서도 충분했다.
“나 빼고 지금 놀고 있는 건 아니지? 난 그런 꼴 못 본다.”
로드께서 언제 강림할지 모르는 시점이었다. 최소한 로드를 배알할 사람이 남아 있어야 했다.
평소에도 활력 없는 얼굴이지만, 노는 데는 최선을 다하는 편이었다. 인근 라스베이거스는 그에게 있어 환락의 중심지였다.
“경치는 좋네. 오늘따라 빛이 더 강렬한…… 응?”
햇살이라고 하기엔 결계를 녹여 버리며 쏘아진다. 이상함을 감지하고 반응했을 땐, 결계를 관통한 빛이 지면에 도착한 이후였다.
“설마!!”
어느 빌어먹을 나라의 속담처럼 말이 씨가 되었다.
꽈아아아앙!
***
“여기라고?”
“경치가 좋네요. 사막치곤 미세먼지도 없고.”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이국적인 광경이었다. 사막임에도 모래만 있지 않고, 바위와 식물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었다. 한 번쯤은 구경하고 싶은 경관이었다.
물론, 여기서 살라고 하면 비추천이다. 사람은 인프라가 잘 구성된 도시에 살아야 했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과 멀어지면 고생이기도 하고.
후우우!
짠 듯이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각성의 시대가 되면서 강대국의 서열이 바뀌긴 했어도, 미국은 여전히 초강대국이다. 백악관이나 펜타곤이 아니더라도, 주도나 유명지였다면 외교적 마찰은 불을 보듯 자명했다. 세계 경찰의 지위를 내려놓긴 했어도, 미국의 소비와 자원은 무시할 수 없었다.
“외교적 마찰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단 침입을 했는데도 주인이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더냐?”
무진이 손짓하자 공간이 열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국과 일본의 각성자들이 걸어 나왔다. 선두에는 장위, 철양 진인, 미츠키, 혈검후가 있었다. 각국을 대표하는 문파와 검가의 정예였다.
중국은 구대문파와 팔대세가를 개편했고, 일본은 십대검가 중 일부가 통합되어 육대검가가 되었다.
헐!
무진을 잘 안다고 했던 권왕과 지수조차도 헛바람을 삼켰으니 다른 사람들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외교적 마찰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려나 했더니, 물귀신 작전이었다. 한·중·일을 전부 끌어들인 이상, 미국으로서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는 했다.
“한·중·일이 모처럼 일치단결이 돼서 뿌듯하네요.”
“앓느니 죽지.”
일본과 중국으로서도 부정하기에는 공주와 주석의 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양국의 주요 수뇌부가 나섰는데, 아니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세계 공적인 다크니스를 처리하기 위해서란 명분은 있으나. 자국의 일에 타국의 개입을 미국이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이런 식의 협조면 안 했지?’
‘강 대형, 나 섭섭해!’
‘그래, 모르면 돼.’
‘빨리 끝내고 튀자.’
미츠키와 장위는 최대한 은밀하게 처리하기를 바랐다. 무진의 호출이 있을 때까지 대기 타고 있다가 공간이 열리자 바로 나왔었다. 그런데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 그것도 미국일 줄 누가 알았나? 사전에 알려는 줬어야지.
경치가 죽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죽게 생겼다.
-원수 갚게 해 줄게.
국가의 권력 구도를 손에 쥐려던 다크니스로 인해 중국과 일본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내부 문제를 풀고, 국민적 공분을 해소하려면 다크니스 정벌은 필요악이었다.
만약, 복수의 대상이 버젓이 있는데도 두려워서 물러섰다면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