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 한 손이 열 손을(?)(3)
“……어떻게 이런 전투를!!”
“이년…… 우릴 속였구나!!”
오스카와 잰슨은 이만한 무력이 있는데도, 독을 쓴 무진의 비겁함에 치를 떨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전투를 치렀어도 이기기 힘들었다.
“네놈이 이러고도 무인이더…… 크악!”
“우리 무진이는요, 그런 유치한 도발 따윈 안 통해요.”
무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굳이 상대가 원하는 대로 싸워 줄 이윤 없다. 전투란, 정의의 구현이 아닌 생사를 결정할 뿐. 그 안에서 수단 방법을 가리는 것부터가 글러 먹었다.
물론, 몰라서 그런다고 보진 않았다.
처한 상황이 억울하겠지.
이해는 간다.
마지막 수단으로 무진을 도발해서 달려들기를 바란 것이다. 안타깝게도 뻔한 수작에 넘어갈 만큼 무진은 자애롭지 않았다. 단지, 그런 척을 해 줄 순 있었다.
가는 척, 마는 척.
인상을 구겼던 무진은 손을 쓰려다가 멈칫했다. 마지막 기회를 노렸던 오스카와 잰슨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고, 지수는 놓치지 않고 치명타로 전환했다.
크윽!
털썩!
[속박], [구속], [너프], [합공] 속성과 독 저항 스킬을 개방해 무형지독을 억누르며 권후를 처리하려고 했었다. 속셈을 들키면서 역으로 당하고 말았다. 함정이 통하기는커녕, 허점의 빌미를 제공했으니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터엉!
무진을 잘 보고 배운 지수의 손 속은 완벽했다.
마나를 부수고, 사지 근맥을 자른 후, 구속구를 채웠다. 청출어람으로 무력화 스킬을 펼쳐 만약의 사태까지 대비했다.
혜진, 유정, 4인방, 상원도 주변을 정리하는 수순으로 넘어갔다. 인질로서 가치가 없기에 오공에게 당한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명을 존중하는 편이었으나, 어느덧 인명 경시가 보편화되었다.
쿨럭, 주르르르!
억눌렀던 무형지독이 내부를 휘저었다. 이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녹아내릴 것이다.
오스카와 잰슨은 죽음을 받아들였는지, 기가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살기등등한 기세로 저주를 퍼부었다.
“……네놈이 이긴 줄 알겠지만, 변하는 건 없다!”
“진 주제에 구차하긴. 그래 봤자 너희들은 실패자일 뿐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잘난 척하지 마라!”
“다른 곳도 여기와 다르지 않을걸.”
오스카와 잰슨의 기력 없던 눈꺼풀이 위로 올라갔다. 이번에도 예상을 빗나갔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뻔하지.”
“……안다고 달라지진 않아!”
“너희들로?”
“……독에 당하지 않았으면 허무하게……!”
그들은 뇌리를 스치는 불길함에 죽을 수가 없었다. 이놈은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이상했었다. 습격을 알지 않고서야, 무형지독을 준비할 리 없지 않은가.
“……어…… 으으으……!”
“다른 놈들도 곧 뒤를 따를 테니 서운해하지 말고, 먼저 가서 기다려.”
이 장면만 봐서는 적아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남의 일에 함부로 참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였다. 내막을 알지도 못하면서 방해한다면 참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순수한 선의일지라도.
‘선의도 잘못되면 대가를 치러야지.’
순수한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결과가 의도를 증명한다.
***
파앗!
먹이를 낚아채는 제비처럼 신속한 발차기, 궤도에 걸린 여인의 턱이 맹렬히 꺾인다. 각법에 경력이 온전히 실리며 육체를 끌어당긴다.
퍼퍼퍽!
얼굴을 가격당한 흑인 여성은 핏줄기를 분수처럼 뿜었지만, 각법을 시전한 제인은 멈추지 않았다. 따르듯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한라산무영각(漢拏山無影脚)을 시전했다. 백록담의 정기를 받은 각법이 흑인 여성의 몸에 날인을 찍었다.
커어억!
핏줄기를 세차게 뿜었지만, 어둠과 매치가 안 되어 흐릿하다. 흑인 여성은 급히 허공으로 날았으나, 제인의 발차기는 현재진행형이었다.
타앗!
흑인 여성, 마야는 힘을 쥐어짜며 반격을 노렸었다.
제인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국면에서도 방심하지 않았다. 반격하는 그 타이밍에 [칠야]를 펼쳐 공간을 가렸고, [구명의 징검다리]로 사각을 점했다. 과거 자신을 구해 준 [구명의 징검다리]는 공수에서 여전히 효과적이었다.
재차 한라산무영각을 펼쳤다.
퍼퍼퍼퍼퍽!
농염하고 아름다웠던 마야의 외형이 흉측하게 변해 갔다. 그녀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다. 쉐도우 길드의 수장이라고 해 봤자, 음지에서 활동하던 암상에 불과했다.
‘어떻게……?’
마야는 러스트 넘버를 부여받은 특급 요원이었다. 칠대가문의 가주가 와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거늘. 암상의 길드장 따위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현실을 믿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일개 암상의 보스치곤 지나치게 강했다. 이런 강함을 가지고선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도 이상하다. 임무를 받을 때 내어 준 정보는 쓰레기였다.
“……날 죽인다고 끝나지 않아!”
“주변을 보고서나 말해.”
정신없이 처맞기만 해서 그런지 몰라도, 마야의 시야가 좁아졌었다. 주변을 돌아본 마야는 기겁했다. 사방에 널린 시체들 속에서 노괴가 오연히 서 있었다.
“저 노괴는 또 뭐…… 까아아!”
“보란다고 한눈팔면 어떡해?”
제인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마야의 [암혈철벽]을 무력화한 후, 권강을 사용했다. 회심의 일권은 마야의 명치를 일순간에 뚫어 냈다. 초월 재생이 발동하여 관통된 배를 회복하려고 하지만, 제인의 권강은 마야의 머리를 노렸다.
“……잠깐……!”
머리가 터지진 않았다. 권강에 실린 극염이 머리통을 녹여 지르듯이 쏘아졌다.
하아, 하아!
구도 자체는 일방적이지만, 제인은 하얗게 불태웠다. 내일은 없다는 심정으로 전심전력을 다한 결과였다. 작은 빈틈이라도 허용했다간 일방적인 구도는 언제든 깨질 수 있었다.
‘지구력 싸움으로 간다고 해도 질 리는 없겠지만.’
벌써 차오른 기력에 제인은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말로 들을 때는 굉장히 찝찝했지만, 효과는 진짜 확실하다. 먹을 때와 안 먹을 때의 차이가 큰 종합 비타민과는 차원이 다르다. 안 받으면 무조건 손해였다.
‘방심하지 않았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겠지.’
학살의 노괴가 저 앞에 있었다. 날파리를 쫓듯 손을 휘저을 때마다 일대는 핏빛 향연이 펼쳐졌다.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 개세의 무위였다. 진면목을 볼수록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방구석에서 드라마만 보던 분이 맞나?’
가히 천외천의 노괴였다.
그걸 증명하듯, 제인이 전력을 다해 쳐 죽인 흑인 여성과 비슷한 수준의 사내를 일수에 상·하체로 두 동강 내 버렸다.
스윽!
빠르게 일 처리를 끝낸 노인의 눈빛에 강렬한 욕망이 담겨 있었다.
“세계의 모든 드라마를 맘대로 볼 수 있는 건 맞겠지?”
“아무렴요. 나나티비 로열권을 반드시 공수해 드릴게요.”
전 세계 영화, 드라마, 만화, 19금을 가리지 않고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사이트였다. 아무나 받지 않기에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블랙마켓의 수장만이 알고 있는 로열권은 없어서 못 팔았다.
‘나중에 알면 날 가만두지 않을 것 같은데.’
괜한 말을 했나?
***
헐!
태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결사의 각오가 무색해질 허무함이었다. 던전 입구를 가로막은 자들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위협적인 기세만으로 모골이 송연해졌었다.
단, 어르신께서 본색을 드러내기 전의 상황일 뿐.
‘대체 뭐 하시던 분이세요?’
무진의 집에선 두 분이 매일 텔레비전만 붙잡고 채널 경쟁하더니만. 오늘 보니 도살자, 학살자, 인간 병기가 따로 없었다.
자신도 예전과 비교하면 일취월장했지만, 어르신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손짓에 휩쓸리면 갈가리 찢어져서 육편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이쯤 되니 전력만 놓고 보면 과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어르신만 있으면 모를까. 성운 길드의 길드장 투귀 어르신과 무진의 아버님이 있었다.
‘과하다, 과해!’
투귀 어르신과 강 이사님만 있어도 되는 일이었다. 두 분의 실력은 능히 현역 최강이라 할 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르신까지 투입한 무진이었다. 아버님을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가 가장 안전한 장소였네.’
세상이 무너져도 아버님과 같이 있으면 안전했다. 무진이가 절대 아버님을 위태롭게 할 리 없었다. 지구가 멸망해도 다른 차원으로 가서 잘 살 인간이니 말이다.
슈아앙!
강 이사님의 일권에 습격자 3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광경을 본 투귀가 투덜거렸다.
“벌써 심권을 쓰는 것이냐?”
“좀 됐습니다.”
“차별은 나쁜 거다.”
“그러게 왜 망설이셨습니까?”
“내가 이럴 줄 알았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습니다.”
투귀망신♬ 어절씨구, 얼씨구, 투귀망신♬ 카야, 좋구나♬
때는 이때다 싶은 투신이 히죽이며 투귀망신을 부르짖는다.
투귀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신세를 한탄했다. 산하는 두 분을 적절히 중재하며 남은 잔당을 소탕해 나갔다.
커억!
글러터니3 스테판은 믿기 힘든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최근 들어 세를 무섭게 키우고 있다지만, 성운 길드는 이제 막 탄생한 신생 길드였다.
한데, 저 괴물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알려진 정보를 토대로 한다면 아예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나마 투귀는 정보와 일치하는 편이지만, 요원들을 날파리 잡듯 쳐 죽이는 괴물은 존재 자체가 생소했다. 저만한 자라면 한국을 대표하는 권왕처럼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한다.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 칠대 가주보다 강했다.
이건 위험하다.
어떻게든 알려야 했다.
눈치 빠른 산하가 앞을 가로막았다.
“이만 끝내자.”
“네놈은 또 뭐냐? 어째서 그만한 힘을 가지고서 회사원으로 있는 거지?”
“대기업 회사원을 무시하면 안 되지.”
“닥쳐! 어디서 헛소리를 하는 거야? 죽여 버릴 테다!”
산하와 스테판의 격전은 일방적이었다. 가지고 있는 속성을 양파처럼 하나씩 꺼내면서 효율적인 전투를 벌였다. 피치에 몰린 스테판은 점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체 속성이 몇 개나 되는 거야?”
3개까지는 간혹 있기는 하지만, 산하처럼 많은 속성은 처음이었다. 파도, 파도 계속 나와서 현실성이 결여되었다.
커억!
게다가 심권을 쓴다.
절대경에 다중 속성을 가진 사기캐였다. 이런 괴물이 어째서 회사원이냐고? 세상이 속고 있었다. 이놈이야말로 다크니스를 괴롭힌 흑막일지 모른다.
[공간전이]를 발동했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거기구나.”
“……크윽, 어떻게?”
아들이 생일이라고 준 속성 [신안]이 발동하고 있었다. 스테판의 의도 따위는 능히 꿰뚫고도 남았다. 속내를 숨기려고 해도 [신안]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정면 대결을 포기하고 도망치다 심권에 찔린 스테판은 고장 난 대포동 미사일처럼 추락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추락 지점이 포착되었다.
꽈아아아앙!
크어어어!
바닥에 떨어진 스테판은 피거품을 내며 죽어 갔다. 심권은 육체가 아닌 정신에 대미지를 주기에 초속 재생이 통하지 않는다. 영혼이 죽은 육체는 식물인간에 불과했다.
‘……이럴 순 없어!’
단순히 운이 나쁘다고 하기에는 상대가 지나치게 완벽했다. 도중에 정보가 샜거나, 누군가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지 않고서야.
산하는 최후까지 발악하는 죽음에 입맛이 썼다. 다크니스의 목적과는 별개로 발버둥을 쳐 봤자 아들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따지고 보면 전부 무의미한 희생이었다.
‘내 목숨은 내 것이 아니구나.’
효자는 맞는데, 평범하지 않았다. 아비를 위해서라면 세상 전체를 불태울 것 같아서 함부로 죽을 수도 없다. 지구의 무사 안녕을 위해서라도 만수무강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