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 한 손이 열 손을(?)(2)
늦은 저녁.
밤이 되긴 이른 시각이었다. 무진은 친구들과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교관과 가문의 허락을 받은 생도는 독자적으로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다.
제한은 있었다.
무위는 생도의 역량을 넘어섰지만, 신분상으로 여전히 생도기에 c급 이하의 던전을 위주로 해야 했다.
지수, 혜진, 유정, 상원, 4인방이 무진의 배후를 따랐다. 예슬 선배와 태수 선배는 무극 길드와 성운 길드를 통해서 움직였다.
오늘따라 던전 오픈이 3배로 늘었다.
인적, 물적 피해를 줄이려고 생도까지 동원해 자잘한 던전은 공략하도록 한 것이다. 위험도가 높고, 규모가 있는 던전은 칠대가문과 대형 길드가 주도했다. 세간의 이목이 매의 눈으로 보고 있어, 예전처럼 선후를 따질 수가 없게 되었다.
-c급 오공 던전
지네 던전으로 땅에서 갑자기 솟구치는 지하 마물의 특성상 전투력과 별개로 까다롭기는 했다. 공략 요령이 없을 때는 예상보다 피해가 컸었다.
무진이 앞장섰다.
지수와 친구들은 동네 마실 나온 듯 평온했다. 다만, 주변에서 풍기는 오공의 악취에 코를 부여잡았다.
쓰레기 매립지로 소풍 온 기분이랄까.
목적지에 도착하자, 무진은 어그로 장인을 불렀다.
가만히 있어도 분란을 일으켜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이든 마물이든 가리지 않았다.
“가라.”
“왜 나만 시켜!”
“탑에서 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군!”
상원은 투덜거리면서도 속도를 높여 방점을 곳곳에 찍었다. 오공은 진동으로 먹이를 찾는 습성이 있고, 그 점을 역으로 이용했다. 땅에서 불쑥 나오기에 공략하기 까다로울 순 있으나, 미끼만 잘 던져 주면 사각을 점하기 수월하다.
오공의 약점은 눈이고, 정확히 찌르면 어렵지 않게 공략할 수 있었다. 지네는 눈이 없다고 하는 곤충 학자의 발언은 무의미하다. 오공은 생김새만 지네와 비슷할 뿐이지, 근원은 마물이었다.
강화 석궁을 꺼냈다.
무진은 친구들에게도 석궁을 나눠 주고, 오공이 찌에 반응해 올 때를 기다렸다.
두드드드!
파아아아!
솟구쳐 오르는 오공들.
괜히 어그로 장인이 아니다.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원이 바닥을 찍을 때마다 오공이 튀어나왔다.
석궁은 오공의 눈을 겨냥했다.
슈웅, 푸아앙!
무진의 시범 이후로 반복 작업의 연속이었다.
상원이는 사방팔방 촐싹맞게 뛰어다니고 친구들은 준비된 사수들부터 발사했다. 석궁은 표적 유도 속성이 부여되어 목표가 확인되면 100%의 확률이었다.
위력은 눈을 파고들어 머리통이 박살 나는 광경으로 대신했다. 일반 석궁과 비슷하다고 해서 위력까지 같은 줄 알고 손가락으로 잡으려다간 몸체가 통째로 날아간다. 실상, 강화 석궁은 공수입백인 같은 겉멋 든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는 데도 효과적이긴 했다.
-오공 던전 공략.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공의 사체가 수북이 쌓였다. 오공은 징그러운 생김새와 달리 노화 방지는 물론, 관절이나 위장병에 효과가 좋아서 인기가 많았다.
사체를 회수하는 것으로 오공 던전 공략은 마쳤다.
사사삭!
공략 후 쉬는 타이밍에 주변을 에워싸는 그림자가 있었다. 입구를 정부 요원이 차단하지 않은 모양이다.
“어이쿠, 깜짝 놀라라. 너희들도 그렇지?”
“나도 까맣게 몰랐어.”
“어떻게 이런 일이?”
“당신들은 대체 누구인가요?”
무진과 친구들의 대화는 국어체보다 딱딱하고 어색했다. 차라리 침묵으로 일관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할 말 없으니까, 대충 때우는 식이라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주변을 포위했던 그림자조차 일순 멈칫했다.
저벅!
언제까지 망부석일 순 없으니 무리에서 두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브라운과 레드 톤의 백인으로 꽤 잘생긴 축에 속했다. 그들을 중심으로 20명의 인원이 길을 막아섰다.
“얌전히 따른다면 고통은 없을 거다.”
“순순히 따른 사람은 있고?”
무진이 되묻자, 적발의 사내가 히죽였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따르란다고 얌전히 따르는 각성자는 여태 보지 못했다.
“대신, 고통이 따랐지.”
“나이가 많다고 어른은 아니지만, 요즘 시대에 생도를 우습게 보다간 망신당하기 일쑤던데.”
무진은 중2병보다 무서운 촉법이들이나 할 법한 소리로 신경을 건드렸다. 애들이 어른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곤 있지만, 각성의 시대가 되면서 많이 줄긴 했다. 이제는 깝죽거리면 진짜로 뒈지거든.
“애들이 어른 흉내 내다가 죽는 일도 빈번하지.”
“그럼, 답 나왔네. 어디 우릴 모범 생도로 만들어 보라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다국적으로 설치더니 간덩이가 부었나 보군. 그 입심만큼 대단하지 않으면 지옥을 봐야 할 거다.”
“지옥을 보여 주고 싶었으면 몸 상태부터 체크했어야지.”
살기 어린 엄포에도 흔들리지 않는 무진의 여유가 거슬렸다. 프라이드4 오스카와 프라이드5 잰슨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애송이가 자기 주제를 모르기에는, 제법 경력이 쌓였다. 그간의 분쟁을 돌이켜 보면 힘만 센 멍청한 부류하고는 거리가 있었다.
더욱이 무진의 배후로 지수, 혜진, 유정, 상원, 4인방도 공포에 질리기는커녕 무덤덤했다.
기세를 발출하진 않았어도, 데리고 온 인원은 무수히 많은 살업을 쌓은 살인 병기였다. 은연중 풍기는 기운만으로도 애송이들은 오줌을 지리곤 했었다.
생도치곤 유명세를 탔다곤 하나, 그것이 진정 본인의 실력인 줄 아는 건가? 그렇다면 어른으로서 현실의 잔혹함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었다. 애송이들은 명성을 얻으면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곤 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놈이군. 후회하게 해 주마.”
“후회는 너희들이 하겠지.”
“시간을 끌어봤자 소용없는 짓이다.”
도발적인 언행과 여유가 거슬렸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모른다고 하기엔 지나치다. 그렇다면 지원을 기다렸다는 판단이 적합했다.
“다크니스의 마스터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네놈 뭐냐?”
“그걸 나한테 물어보는 거면, 기본이 안 돼 있는 건데. 혹시 물어보면 대답해 줄 줄 알았어?”
판단의 착오와 의외성에 오스카와 잰슨의 기세가 바뀌었다. 애송이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자신들까지 나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늘. 보통 다크니스를 특정할 순 있어도, 마스터와 요원을 구분하진 못한다. 조직에 대해서 상세히 알고 있지 않고선.
아는 정보와의 오류, 계획에도 없는 변수. 어디서 정보가 샜나? 그들로선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
흉포함이 공간을 장악한다.
오스카와 잰슨의 눈빛은 인간의 것하고는 다른 무기질적인 어둠으로 물들었다.
흑마안(黑魔眼).
진실을 토로하는 악의 결정.
“얌전히 말하는 편이 이로울 거다.”
“따라오는 걸 눈치챘는데도 내가 아무것도 안 했을 것 같아?”
흑마안이 통하지 않아?
역으로 도발까지 하고 있었다. 이놈이 대체 뭘 믿고 이리 까부는 건지 납득하기 힘들다.
“어디서 개수작을, 너 따위가 뭘 할 수 있단…… 응?”
“사설이 너무 길어.”
사로잡고 시작했어야지.
무진은 추격자를 예상하고 오는 경로에 독을 살포했다. 각성자의 내구성과 저항력은 범인과 차원이 다르긴 해도. 일반 독도 아닌 사천당가에서 공수한 무형지독이었다.
큭!
휘청!
의식을 했기 때문일까?
오스카와 잰슨은 순간 현기증이 났다. 주변을 돌아보니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대원도 있었다.
‘대체 언제?’
독이라면 사전에 감지했어야 했다. 더욱이 독에 대한 내성이 강해, 능히 만독불침에 가까웠다. 부지불식간에 중독이 되자, 불신의 눈으로 무진을 노려보았다.
“당문의 무형지독, 들어는 봤나?”
오스카와 잰슨은 이를 갈았다. 일반 독도 아닌, 독에 미친 종자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완성한 멸절독의 극의 무형지독이었다. 하지만 당문에서도 극소량만 있었다. 외부로 반출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들의 불신처럼 당문이 미치지 않고서야 순순히 내줬을 리 만무하나. 일전 구대문파와의 대결에서 패배하면서 당문은 과거의 영광을 잃었다.
무진은 장위에게 시켜 가져오도록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장위가 시키는 일은 잘하는 편이었다. 와룡이란 간판을 달아 주기를 잘한 것 같다.
장위는 와룡이 되어 중국의 신성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차기 주석에 오르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무형지독의 특징이 잘 섞인다는 점이야. 너희들은 오공의 독인 줄 알았겠지.”
“네놈, 성히 죽을 생각은 버려라!”
오공의 독은 각성자에게 타격을 줄 만큼 대단하진 않다. 그랬다면 생도의 신분으론 공략을 허락받지도 못한다. 자체 해독이 가능한 줄 알고 내버려 뒀으니 무형지독이 자리 잡도록 방치한 꼴이었다.
피식!
살기등등한 놈들의 언행에 무진은 웃음이 나왔다.
쐐액!
꽈아앙!
그딴 협박은 제압하고 나서 해야지.
선공은 지수, 혜진, 유정, 4인방이었다. 독에 비실대며 신경이 분산될 때 거리를 좁혔었다. 감각이 무뎌지는 틈을 노려 전력을 퍼붓는다.
특성을 살린 상원은 어그로를 끌며 시선을 분산시켰다. 거리를 좁힐 때 상원의 부산스러움이 저들의 신경을 어지럽힌 것이다.
독과 상원의 조합.
완벽한 어그로다.
온전한 상태였다면 신경 쓰지 않았겠으나, 무형지독에 당했으니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손쉽게 거리를 점한 후, 절기를 발출한 결과는 보다시피 상당했다.
보통 선빵은 간을 보는 경향이 강하나, 무진과 수련한 친구들은 전력을 쓰는 편이다.
20명 중 8명이 즉사했고, 남은 인원도 정상적인 상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빠드득!
계획과는 확연히 다른 결과물에 오스카와 잰슨은 이를 갈았다. 터무니없는 광경의 연속이었다. 제법 실력이 있다고는 해도 생도에 불과했다. 고르고 골라 키운 최정예 블랙컴뱃이 생도에게 오합지졸처럼 허무하게 당하다니 믿기 힘들었다.
그뿐인가?
권후 따위가 자신들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다. 명성에 취해 오만을 부린다고 하기엔 밀렸다. 반격의 기회가 좀처럼 찾아오지를 않는다. 독에 당해 선수를 빼앗긴 현실이 뼈아팠다.
권후의 무위도 비현실적이었다. 생도가 아닌 현역 최정상의 무인과 견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네놈이 감히!”
“이 찢어 죽일 놈이!”
정작 제일 죽이고 싶은 대상은 따로 있었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원흉의 여유로운 민낯을 보자니, 치미는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지수야, 저분들 여유가 넘치신단다.”
이쪽을 노려 볼 시간이 있다는 무진의 핀잔에 지수의 눈깔이 광기에 휩싸였다.
“이것들이 날 무시해!”
“이 시건방진 년이 정녕 천지 분간을 못 하고 날뛰는구나!”
“네년의 사지를 찢어서 저놈의 입에 처박아 주마!”
오스카와 잰슨의 흉포한 살기는 심혼을 끊어 내고 남을 힘을 내포했다. 하지만 흉포한 살의도 노처녀의 광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괜히 화를 더 키우고 말았다.
파파파팟!
타앗, 크어어억!
극강의 전투술 블랙 코만도를 완성한 오스카와 잰슨은 전투가 가열될수록 경악을 금치 못했다. 권후의 기반이 권각술이라 해도, 실전력이 떨어져야 마땅하거늘. 공수에서 이보다 완벽할 수가 없다. 찰나의 빈틈은 약점이 되었고, 완벽한 합격은 유리잔처럼 연약했다.
퍼억, 푸악!
견고했던 합공이 무너지자, 공수는 일방적으로 변했다. 내지른 족족 치명타가 되어 오스카와 잰슨의 오러로드를 붕괴시켰다.
정보와는 천양지차를 보이는 권후의 압도적인 전투력이었다. 특히, 생사를 가르는 전투가 너무나 익숙했다. 권후에 대한 평가가 과하다고 봤는데, 명백한 과소평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