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 투명청룡오관(3)
앤더슨의 유명세는 차치하고, 어째서 그가 한국 여론에 거론이 되었을까?
이유는 따로 있지 않았다.
투명청룡오관 참관.
세계를 대표하는 초인이 권왕가의 시험에 응시했다는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초인은 개인이 아닌 국가를 대표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초인의 위상은 나날이 거품이 껴서, 혹 패배라도 했다간 국가의 명성에 해를 끼친다.
앤더슨의 도전은 상당한 파급력을 자아냈다.
투명청룡오관의 통과는 논외였다. 중국, 일본의 각성자도 통과한 관문을 초인이 통과하지 못하겠나.
앤더슨의 도전은 결국 권왕을 향한 경고다. 권왕의 천하제일 공언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초인의 자존심이었다.
기실, 권왕도 초인의 반열에 있기에 서로 간의 우열은 정해지지 않았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각성자로서 공개적인 대결은 분란을 초래해 암묵적으로 제지했었다.
-이제 좀 볼만한 대결이 되겠다.
-초인이 대단하긴 해도 과거의 유물 아닌가. 간간이 던전이나 공략하고, 결투는 하지도 않잖아. 이제는 한물갔다고 봐야지.
-너희들은 한물갈 실력이라도 되냐? 캐나다에서 그런 말 했다간 바로 머리에 구멍 난다.
-미국도 아니고, 캐나다도 총기 허용 국가냐?
-미국 옆에 있는데 아니겠냐? 주먹 좀 쓴다고 거기서도 설치면 총구멍 난다.
-각성의 시대에 웬 화약고에서 삼겹살 구워 먹는 소리들 하고 자빠졌어. 지금 총 무서워하는 인간들이 있기는 하냐? 이젠 애들도 총은 시시해하더라.
-과거를 살아 보지도 않은 애송이들이 아는 척 오지네.
-잡소리 그만하고, 이제 하니까 다들 조용해! 순식간에 끝날 수도 있다고. 제발 라면 익을 시간은 버텨라.
-권왕이라도 이번에는 힘들걸. 전처럼 했다가는 오히려 당할 수도 있어!
-속도 빠른 놈치고, 제대로 된 놈 못 봤다.
-그건 마누라 앞의 너겠지!
-난 당당해!
생방송으로 권왕과 앤더슨이 대치하는 모습이 송출되었다. 호리호리해 보였지만, 권왕에 비해서 앤더슨도 뒤처지지 않는 육체였다. 각성으로 인해 체격이 실력을 대변하진 않지만, 영상을 뚫고 나오는 박력에 압도되었다.
“그랜드캐니언에 갈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웬일로 찾아왔네.”
“허허,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혹, 그랜드캐니언이 본국에 속한 것으로 아는 건 아니겠지?”
“시답지 않은 소린 넘어가고.”
“몰랐군.”
북아메리카로 퉁 치는 건가?
미국과 캐나다를 구분하지 못하다니, 앤더슨의 검미가 꿈틀했다. 차라리 모욕을 주려고 작정했다면 이해라도 하지, 권왕은 진정한 문외한이었다.
기본 상식도 부족한 인간이 천하제일을 논하고 있었다니, 앤더슨은 기가 막혔다. 초인들 간에도 이젠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동방의 소국 주제에 조금 강해졌다고 설치는 꼴이라니.
백인 우월주의자는 아니더라도, 세계 최강은 백인의 자리였다. 세계열강 속에서 황인과 흑인은 식민에 불과했다. 노옌 줄도 모르고 감히 최강이라고 주장하다니, 열등 종족에게 진정한 강자를 알려 줄 의무가 있었다.
“찾아갈 때마다 빼더니 무슨 바람이 분 거지? 지금이라도 돌아가. 꼴사납게 지면 국가적 망신일 텐데.”
“동양에선 나이를 중요하게 따진다고 하더군. 어른에게 함부로 행하는 네놈이야말로 자중해야 할 때가 아닌가?”
“꼭 실력도 없는 것들이 나이로 대접받으려고 하더라.”
“네놈이야말로 대접받으려고 안달이 나 있지 않더냐.”
대화가 생방송으로 송출되었다.
시청자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권왕이 나이로 면박을 당할 줄 누가 알았으랴. 하지만 명백한 사실 앞에서는 권왕이라도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부터 강한 놈이 형이다. 앞으로는 형님으로 깍듯이 모셔라.”
“호기는 여전하군. 하나, 대결이 끝난 후엔 지금처럼 여유를 부릴 수 없을 것이다.”
대결은 시작됐다.
서로 눈을 부라리더니, 섬전이 되었다. 거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속도였다. 초고속 영상 프레임으로도 찍히지 않았다.
퍼퍼퍼펑!
꽈아앙!
스피드 오러와 프레스 임팩트가 특기인 앤더슨의 속도는 경이로웠다. 속도 하나만으로 세계에서 알아주는 초인이 될 만했다. 스피드 오러가 극대화되자, 스피드 스페이스가 펼쳐지며 연무장 전체가 앤더슨의 영역이었다.
투아아아앙!
스피드 오러를 증폭하여 일순간 토해 내는 프레스 임팩트는 지진 해일급이었다. 그를 속도만 아는 사내로 봤다면, 틀렸다. 음속을 견디려면 육체도 속도에 비견되어야 했다.
굳이 초식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도 속도, 육체, 스피드 오러가 결합되면 무적이었다. 제아무리 대단한 각성자도 이 주먹을 감당하진 못했다.
크윽!
다만, 주야장천 주먹을 내지르는 권공에 미친 무인을 만나 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였다. 형을 초월하여 의미를 담은 권공의 극의는 규격 외였다.
경이로운 파워와 속도.
잔상은 실재했다.
장대비처럼 그칠 줄 모르고 파문을 일으켰다.
권이 충돌했을 때 굉음이 울린다. 음향을 최소한으로 했음에도 시청자는 귀를 닫아야 했다.
‘스쳤는데도 이 정도라고?’
마지막에 위험을 감지하고, 직감적으로 주먹을 비틀었다. 스치듯이 충돌했는데도 앤더슨은 타격을 입었다. 제대로 맞붙었다면 주먹이 아니라 팔이 떨어져 나갔다.
권왕이 제법이라며 웃었다.
“피했네.”
“이놈, 잘난 체하지 마라! 아직 끝나지 않았어!”
스치는 듯했던 충돌로 기세가 꺾이자, 앤더슨은 울화가 치밀었다. 권왕이 대단하긴 해도, 빗맞은 일격에 이만한 충격을 받을 줄은 몰랐다. 스피드를 극대화했을 때 생기는 스피드 실드가 무용지물이었다.
‘파워는 인정하마. 그러나 속도는 내가 위다!’
스피드 오러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스피드 증폭 속성, 스킬, 아이템을 동시에 사용했다. s급의 아이템과 장비가 결합하자, 완연히 다른 속도를 추구했다. 이 속도라면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빠르면 뭐 해, 장소가 문젠데.”
권왕은 양의를 사용했다.
빙결과 화염을 결합하여 무극을 이루니 공간을 제어했다. 아무리 빨라도 결국 물리적인 속도에 지나지 않았다. 무극은 그 모든 물리, 무공, 마법을 넘어선다. 제어된 범위를 넓히자, 연무장을 지배한다. 하늘과 땅에 왼손과 오른손을 올리고 내리며, 태극으로 휘젓는다.
아직은 완벽한 무극이 아니라 한계가 있으나, 연무장 정도는 껌이지.
우우우웅!
속도를 한층 끌어올렸던 앤더슨은 휘말리는 자신을 보며 경악했다. 단순한 와류였다면 뚫어 내면 될 일이나, 권왕의 의지가 담겨 권능이 발휘되었다.
좁은 공간에서 몰이를 당하다가 쥐새끼처럼 코너에 몰린 격이다. 앤더슨은 뛰어 봤자 벼룩 신세였다.
“걸렸네.”
“……잠깐!!”
앤더슨은 결국, 권왕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주먹과 얼굴이 마주하는, 얼핏 주먹을 향해 얼굴로 쇄도하는 광경처럼 보일 수 있었다.
앤더슨은 숨겨 놓은 속성 [스피드 플래시, 섬광]을 발동하여 위기를 타파하려고 했다.
무극에 도달하여 완숙한 경지를 이룬 권왕의 심권은 앤더슨을 타깃한 지 오래다. 벗어나려면 연무장을 떠나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무진의 영역 결계와 강화 마법이 걸려 있었다.
권왕도 제자의 권역에 갇히면 도망조차 불가능했다. 하물며 격 떨어지는 앤더슨 따위가 어찌 벗어날 수 있으랴.
뻐어어억, 쿠아아앙!
주먹을 처맞은 앤더슨은 벽면에 피 칠갑 하며 쓰러져 내렸다. 다만, 다른 도전자와 달리 의식은 있었다. 초인의 짬밥과 오기로 해석하면 된다.
“이대로 끝나지 않…… 흐억!”
“맷집이 좋구나.”
권왕은 틈을 주지 않았다. 냅다 달려들어 다리를 조지고, 잘근잘근 밟았다.
어떤 다리든 일단 조진다.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퍼퍼퍼퍼퍼퍽!
크아아악, 그만~~~!
그만하란다고 그만할 권왕이 아니라는 걸 앤더슨만 빼고 다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작정하고 아랫도리를 밟아 댔다.
애인들의 비명이 앤더슨의 뇌리를 주마등처럼 스쳤다. 안타깝지만 실망하는 애인들이 저 멀리 떠나 간다.
“거긴…… 안 돼……. 아직 나는 배가 고파…… 커억!”
“그 연세에 정력도 좋으셔.”
“……사랑을 해야…… 젊게 살…… 크악!”
앤더슨은 선민의식과 달리 인종을 가리지 않았고, 한국인도 포함이 되었다. 다국적 인류애를 구현했다고 하기엔 욕정의 배출구였다. 딱히 사랑해서가 아닌, 원나잇에 불과했다.
다만, 앤더슨을 마다하는 여인은 드물었다. 어떻게든 자식만 낳으면 신데렐라를 이룰 수 있었다. 그뿐인가, 앤더슨의 정력은 젊음이 부럽지 않았다. 90세의 나이에도 혈기 왕성했다. 겪어 본 여인들이 여전히 갈구하는 연유가 있었다.
“이제 말해 봐.”
“……항복!!”
“아니지.”
“형님?”
“그래. 인생의 낙이 사라지는 게 싫으면 깍듯이 불러 봐라.”
“……권왕 형님!”
별호에도 형을 붙이다니, 캐나다식인가?
권왕과 앤더슨의 대결은 의외로 싱겁게 끝이 났다. 스피드 스타답게 시작과 끝도 섬광이었다.
승패는 상당한 파급력을 가져왔다. 권왕의 강함이 초인을 넘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12대 초인도 빛바랜 과거의 영광이 되고 말았다.
이젠 권왕의 시대다.
다른 초인들은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도전하지 않으면 그만이긴 한데, 권왕이 대놓고 쪽을 주었다.
-겁쟁이의 도전은 필요 없다.
짧지만 아주 강력했다.
단숨에 초인들 전부 겁쟁이로 매도되었다. 도전하면 망신, 외면하면 겁쟁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시청자 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권왕이 강한 줄은 알았지만, 차원이 다르잖아. 이 정도면 세계 제일 맞지 않아?
-거봐, 시대가 바뀌었어. 속도만 빠르다고 다가 아냐. 기술이 있어야지.
-기술도 저 속도를 따를 안목이 있어야 쓰지. 권왕이 통한다고 다 통할 것 같으면 초인으로 부르겠냐!
-퀵 패스트가 약한 건 아냐. 영상이라 다 나오진 않았지만, 권역을 썼다고 하던데.
-권왕은 심권의 완숙한 영역에 도달한 게 분명해. 너희들도 이제 입조심해라. 심권은 거리의 제한이 사라져서, 영상도 뚫고 날아온다.
-진짜?
-쫄기는, 그걸 믿냐?
논리적 오류투성이의 우스갯소리였지만, 함부로 입을 나불거리진 못했다. 퀵 패스트가 심권에 당했다고 알려지자, 경외의 대상이 되어 갔다.
도발은 통했다.
퀵 패스트는 시작일 뿐이다.
이어지는 초인과 무인의 도전에서도 권왕은 한결같이 승리를 챙겼다. 처음과 달리 일방적인 승리는 아니지만, 권왕의 강함을 증명하기에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