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351화 (352/374)

351. 투명청룡오관(1)

-내가 무진의 여자 친구다.

내 남자는 내가 지킨다는, 지수의 도발적인 공개 선언이었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지만, 폭군의 주변엔 미녀가 많았다. 아카데미 미녀 4인방 지수, 유정, 혜진, 예슬이 무진바라기였다.

남생도로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현실이었다. 하나로도 부족해서 일부다처제라니, 외로운 남생도에겐 공분을 사고도 남았다.

지수의 선포는 남생도들에겐 희망을 주었다. 이제는 포기하고,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까 살짝 기대했었다. 헤어져서 위로가 필요할 때 이성적인 공략은 정석이었다.

웬걸!

-무진의 여자 친구는 정해지지 않았어.

유정, 혜진, 예슬이 포기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받아쳤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흐름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네 애인을 뺏고 말겠다는 막장 드라마식 대응이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요즘 같은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복잡한 치정 결투.

처음에는 짜고 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결투장의 살벌함이 궁중 혈투보다 치열했다. 더러운 치정 결투에 엮인 3인은 협공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대일의 구도긴 해도, 회복할 시간을 빼앗았다.

꽈아아앙!

부르르르!

결투장에서 벌어지는 치정 혈투에 생도들은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보기만 했는데도 모골이 송연해지며 전신의 핏줄기가 차갑게 쭈뼛 솟는 기분이었다.

“여자의 시기 질투는 무섭구나!”

“장난이라고 하기엔 검강이 난무하잖아!”

“유정의 최상급 정령이 저리 맥없이 당할 줄이야!”

“서로 친하지들 않았나?”

“남녀 문제에 친구가 어딨냐! 원래 돌아서면 남보다 못해!”

“저러고서 같이 떡볶이 먹으러 가는 건 에바 아닌가?”

“공은 공이고, 사는 사고, 떡볶이는 떡볶이지.”

“로제 소스에 중국 당면은 못 참겠다.”

결투장에서는 죽일 듯이 싸우고, 끝나면 아무렇지 않게 놀러 다니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상한 관계였다. 공과 사를 구별하기엔 애초에 치정 싸움이었다.

결투장을 흡족하게 바라보는 한 인간이 있었다.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자기가 마치 대단한 인간이라도 되는 양 우쭐해하는 거만함이 꼴사나웠다. 배알이 꼴리는 행태가 아닐 수 없었다. 생도라면 실력이 있더라도 겸손해야 마땅하거늘.

“오늘도 지수가 내 여자 친구로군.”

뭔 개소리야?

무진에게 귀 기울였던 생도들은 와락! 인상을 구겼다. 상식적이지 않은 인과였다. 여자 친구를 무위로 결정하는 것부터가 제정신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랑보다 전투력이라니?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했다. 일반인이라면 이상하겠지만, 무진은 무인이었다. 무인의 사고방식을 일반인의 잣대로 잴 순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여기가 무협지 속이냐?’

‘영웅이라고 삼처사첩이 통하는 세상이 아니잖아!’

‘저걸 왜 받아들이고 있는 거냐고!’

일반적으론 통용되지 않겠지만, 무진이라면 일반적인 상리가 통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아카데미 생도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생도는 부러움을, 여생도는 자존감을 위해서라도 무진의 개수작을 막아야 했다. 이대로라면 진정한 의미의 폭군이 될지도 몰랐다.

지성을 갖춘 현대인으로서 폭군의 개수작을 용납해선 안 되었다. 우리나라 도덕과 법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였다. 인도나 아랍이 아닌데, 삼처사첩이라니. 솔로천국, 커플지옥의 정의를 위해서라도 단죄해야 마땅했다.

6학년 생도가 나섰다.

졸업생도 불타올랐다.

현역 헌터도 분노가 치밀었다.

-폭군을 단죄하라!

-폭군은 물러나라!

-폭군은 선택하라!

폭군으로부터 고통을 받는 생도들을 위해서 나섰다. 고학년 생도 중에서도 탑3가 포함이 되었고, 졸업생과 헌역 헌터가 나섰으니 폭군의 제위는 끝나리라.

예로부터 폭군의 말로는 사약 루트였다.

그러나 폭군의 아성은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태수를 중심으로 한 성운맹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군단을 뚫고 들어가서 폭군에게 대결을 청하기도 어려웠다.

“왜 이렇게 강해?”

“쟤들 뭔데, 차원이 다르잖아!”

“뛰어나다고 해도, 이런 차이는 반칙이지!”

“영약을 물처럼 퍼마시지 않고서야!”

“폭군은커녕 따까리조차 이기지 못하다니!”

성운맹에 소속된 생도조차 강했다. 기본 역량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니 압도적이었다. 더욱이 폭군의 최측근들은 레벨 자체가 달랐다. 현역 헌터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너무 강해서 이제껏 뭐 했나, 현타가 올 지경이다.

아카데미 역사상 최강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었다. 폭군도 아니고 전체적으로 역량과 성적이 높았다. 비교군이 된 성운맹의 반대파로선 최악이 되었다. 반성운맹이 음지에서 대응하지만, 점차 이탈하면서 골수분자만 남았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역시나 생도의 부모였다. 역차별을 받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었다. 부모에겐 폭군이 삼처사첩을 사귀든 말든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남의 일이고, 자식의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얘한테 폭군이 뭐야? 방관하거나 외면했던 생폭을 근절한 모범 생도에게 상을 줘도 부족할 판에.

-폭군이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가?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생도들 간의 차이가 이렇게나 크냐고?

-권왕가에서 권후와 폭군에게만 특별 훈련을 시키는 거면 차별이지.

-그런 식이면 차별은 어디나 있지. 혈육과 제자를 아끼는 건 당연한 거잖아.

권왕가에서 특별 대우를 했다고 질타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어느 가문이나 길드든 당연히 해 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걸 가지고 따진다면 자식에게 상속도 하지 말아야지.

폭군과 그 주변의 비약적인 성장은 생도와 그 부모에겐 부담이 되었다. 현세대는 한번 도태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었다. 성장기에 최대한 따라잡아야 차후 현실에서 낙오되지 않는다.

여자 친구의 치정극이 치명타가 되기는커녕 폭군의 위엄이 더욱 견고하게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비법을 알고 싶은 부모와 생도의 성화가 빗발쳤다. 강해질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기세였다.

교관에게 인정받은 이후, 무진은 아카데미를 일주일에 1번만 나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무진이 나오는 날 생도들이 가로막아 섰다.

“가르침을 받고 싶어.”

“귀찮아.”

“부탁이야, 하라는 건 뭐든지 할게. 삼고구배를 원해? 내가 인조의 화신이라 얼마든지 가능해!”

“가르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거 알잖아.”

무진은 아카데미에 올 때마다 생도들의 열렬한 구애를 받았다. 그들도 이렇게까지 사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 아빠가 하라는데 어쩌랴? 돈 대 주는 물주가 사정하지 않으면 자금을 끊는다니 자존심을 숙였다.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은 생도들의 바람과 달리 무진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따로 비법이 있지 않다고.

무진의 대답에도 생도들이 길을 물리지 않았다. 임전무퇴 화랑정신으로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알려 주지 않으면 절대 물러서지 않으리라.

“가르침을 내려 줘도 받아먹을 재능이 있어야지. 아무나 되는 일이 아니야.”

“매정한 놈, 자기들만 잘되려고 감추는 거 다 알고 있어! 혹, 비밀 던전이라도 도는 거…… 큭!”

“적당히 해라.”

결투장이 아닌 곳에서 폭력을 쓰면 안 되지만, 생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진은 가만히 있었다. 속성이나 스킬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숨도 쉬기 어려웠다. 같이 온 생도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세.

고수의 기운.

무진이 생도의 역량을 벗어났다고는 했지만, 최정상급 고수에 필적하는 줄은 몰랐었다. 차원이 다른 강함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지금까지 빈약한 마력으로 인해 고생했다는 것조차 거짓말처럼 들렸다.

정체를 숨겼다?

그리 말하기엔 폭군의 행보는 관종 그 자체였다. 자기를 숨긴 적이 없다고 볼 수 있었다.

작금의 기세는 그마저도 위장처럼 느껴진다. 절대고수를 대적해 본 적 없지만, 아무것도 모를 정도로 문외한은 아니다. 그들도 자기 동네에서는 잘난 맛에 살던 재능충이었다.

‘이 정도면 아예 다른 사람이잖아!’

‘권후보다 강한 거 아냐?’

‘이제는 그럴지도 모르겠어.’

‘대기만성이라고 하기엔 지나쳐!’

폭군의 악명은 아카데미를 떠나 일본에서도 이어졌었다. 공주에게 이용당했다는 설도 있었지만, 어딜 가나 일관성은 있었다. 상대가 강하다고 하여 쫄지 않는 배짱과 난장을 까는 과감성이 돋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현역 최고 수준의 무인과 견주진 않았다. 생도의 기준 내에서 최고치에 불과했다. 자신들이 그동안 얼마나 폭군을 과소평가했는지 깨달았다.

폭군은 불가해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비교조차 안 되는 주제에 폭군을 비웃었다니, 얼마나 부끄럽고 초라한 일이던가. 얼굴을 들 수 없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런 수치심과 별개로 이제는 더더욱 알아야 했다.

저 말도 안 되는 강함에 대해서.

폭군만이 아니다.

권후에 이어 유정, 혜진, 태수, 예슬, 4인방까지.

그중에서도 상원의 비약적인 성장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최악이었다. 잼미니는 잼미니일 뿐이어야 했다. 어째서 기본적인 상식마저 넘어서냐고.

잼미니마저 강해졌다면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릴 색다른 방도가 있을 것이다. 알아내기만 한다면 자신들도 지금보다는 강해질 수 있었다. 폭군에게 보기 흉하게 매달리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못했다.

“우리가 주제도 모르고 너를 비웃고, 모함했어. 정말 미안해!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그간 우리가 잘못했다! 제발 방도를 알려 줘!”

“우리도 너희들처럼 강해지고 싶어!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아!”

엘리트 생도, 고학년이라는 자부심도 버렸다. 강해질 수 있다면 그깟 자존심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폭군을 통해서 배웠다. 변하지 않는 뚝심으로, 지금의 경지에 도달했으니 말이다. 사방에서 비난과 힐난을 하는데도 굽히기는커녕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었다.

대단하다.

나이를 떠나 존경할 만했다.

하아.

지성이면 감천이듯, 무진도 마지못해 답을 내어 주었다. 우리만 알고 있으려는 뉘앙스였다.

너희들이 이겼다는 표정을 지으며.

“투명청룡오관 알지?”

“권왕님에게 도전하기 위한 관문이잖아.”

“꼭 그렇지만은 않을걸.”

“무슨 뜻이야?”

“지금까지 도전한 자들이 어째서 아무런 조언이나 경고도 하지 않았을까?”

돌이켜 보니 이상하긴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투명청룡오관을 경험했다면 후기가 올라와야 마땅하다. 후기는커녕, 도전자들 대부분 칩거했다. 권왕에게 당한 망신 때문이 아니라면, 심득을 체득하기 위한 시간이란 건데.

“혹시 성장을 위한 관문이었단 거야?”

“쉿, 너희들만 알고 있어. 이거 밝혀지면 사부님이 날 가만두지 않으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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