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345화 (346/374)

345. 네고(2)

“눈치는 중요하지. 없으면 피곤하거든, 그것도 많이.”

무진은 자존심과 계산을 별개로 놓고 보지만, 감정에 따른 주관은 인정했다. 잘 보이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가점을 주기 마련이다. 가문의 명성과 명예에 함몰되어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다면 그에 합당한 대접을 해 줄 것이다.

‘허튼소리 하지 말라는 거군.’

‘자기는 속물이라 이건가?’

‘한국인답지 않은 성품이구나.’

일본에 대한 열등감을 이용해서 자존심을 건드려 보려고 했거늘.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그딴 어쭙잖은 수법이 통할 상대가 절대로 아니었다. 하물며 반나절 전의 광경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부르르르!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각성자의 기준으로 봐도 초월급마저 초월했다고 봐야 했다. 환검가와의 목숨을 건 혈투도 그에겐 가벼운 여흥일 따름이었다.

능히 반도에서 온 무신이라 할 만했다.

‘그사이에 다크니스의 개입을 차단했을 줄이야.’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오늘 이렇게 모이지도 못했겠지.’

‘결계가 있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어.’

‘다크니스가 황실을 노린 걸 염두에 두었다니.’

천외천의 무위는 둘째 치고, 상대의 수를 파악하고 최적의 전략을 사용했다. 일련의 과정들을 되짚어 볼수록 소름이 돋는 심계였다. 인간이 어찌 그런단 말인가? 신의 경지에 이르러 만물을 꿰뚫어 보지 않고서야.

‘어설픈 개수작은 통하지 않아.’

‘어떻게든 손을 잡아야 한다.’

‘그와 혈연을 맺을 수 있을까?’

‘반감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겠구나.’

가장 최선은 일본으로 귀화시켜 가문의 후예와 혼약을 맺는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일본은 과거에도 누리지 못했던 대제국의 건설이 꿈이 아니었다.

욕심이 나긴 했다. 하나, 한낱 개꿈이 될 수도 있었다. 그간 무진이 해 왔던 일련의 행동을 상기한다면 헛수작 부리다 탈탈 털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우호라도 다져 놓아야 했다. 탈인간의 괴물과 척을 진다고 상상하자, 가문이 아닌 일본의 멸망이 떠올랐다.

다행히 공주님과는 사이가 좋은 편 같으니, 그걸 빌미로 끈을 이어 놓아야 했다. 공주라면 국가를 위한 희생은 당연한 가치였다.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 괴물이 시키는 대로만 잘 따르면 된다.

계획과는 별개로 검가연합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얼마더라?”

헉!

일본과 가문의 미래도 당장의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고서는 파산이었다. 천문학적인 액수에 마지막 원조까지 더하면 눈앞이 깜깜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시일을 뒤로 미루면 야쿠자도 학을 뗄 폭탄 이자가 날아온다. 한 달만 지나도 거의 원금 수준인 것만 봐도 날강도가 따로 없었다.

“제발 사정을 좀 봐주시게. 자네도 봤다시피 우리로선 감당할 수가 없네!”

“가주라는 작자들이 감당할 수도 없으면서 계약을 선뜻 했다는 거구나.”

“무지에서 나온 실수일세. 우린 정말 몰랐었어! 강자로서 넓은 아량을 바라네. 아니, 바랍니다!”

“이자를 유예해 주더라도, 최소한 성의를 보여야 아량을 베풀지.”

“최대한 빨리 10%라도 갚겠습니다!”

“10%?”

“15%입니다!”

무진은 이쯤에서 타협안을 받아 주었다. 공동의 적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쥐어짜다간 뜻하지 않은 변수로 작용할 여지가 있었다. 호구는 되지 말아야 하나, 최소한 벼랑으로 몰지는 말아야 했다.

‘빚은 다크니스를 처리한 후에 받아도 되고.’

계약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적절한 수준에서 지속적인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늘어나는 이자를 위해서라도, 기간을 길게 잡을 생각이었다.

“미츠키를 봐서 넘어가는 거야.”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서열이 완벽히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무진은 이들에 대한 대우를 굳이 상향하진 않았다. 처음 그대로 일관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대신 미츠키를 올려 쳐서 통제의 효용성을 높였다.

‘모르진 않겠지만.’

무진은 가주들과 수뇌부를 계산도 없이 행동하는 멍청한 부류로 보진 않았다. 그들도 자신의 이런 속내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함부로 나서지 않은 이유는 힘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전면에 나서지 않았어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눈으로 봐야 받아들인다.

“소문이 나려나?”

“입단속은 확실히 했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발 빠른 행동, 아주 좋았어. 천검가주는 이자 유예기간을 조금 더 늘려 줄게.”

“저희도 최선을 다해 소문이 나지 않도록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열과 성을 다하겠다는데, 마다하진 않았다. 실상, 소문이 나는 건 저들로서도 탐탁지 않을 일이었다. 자신들의 무능을 만천하에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무진으로선 지금부터 할 얘기가 진짜였다. 계약은 이들에게 누가 갑인지를 확인하는 교조적인 차례에 불과했다.

“다크니스의 목적부터 알아 두는 게 좋겠지.”

“저들의 목적을 알고 있습니까?”

“완벽한 세상, 즉 유토피아를 원하는 모양이야.”

“그런 터무니없는!”

“맞는 말이야. 사람이 사는 세상에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아. 그렇다면 다크니스에게 우린 불순물일 뿐이겠지.”

“맹목적일 수밖에 없겠군요.”

말은 그럴싸하다. 고통 없이 누구나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데, 찬성하지 않는다면 이상해 보일 것이다. 일례로, 사전적으로 보면 공산주의만큼 공평한 세상도 없었다.

인간은 불완전함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미완성체다. 다크니스가 바라는 통제된 세상 속에서 인간은 기계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 말은 쓸모가 다하거나, 부서진다면 언제든지 새로운 부품으로 갈아 끼우겠다는 뜻이다.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 다크니스다운 행태였다.

“게다가 다크니스를 이끄는 자는 인간만이 아닌 성좌마저 통제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만만치가 않아.”

“그 정도로 대단하다고요?”

“믿고 안 믿고는 당신들의 자유야.”

“……그럴 수가!!”

가주들과 수뇌부는 물론, 얌전히 듣고 있던 혈검후도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들로서는 상상도 못 한 다크니스의 실체였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탑의 성좌까지 균형 안에 두려고 하다니, 상리를 아득히 초월해서 감도 오지 않는다.

후후.

원하는 그림대로였다.

각성자에 있어 성좌는 버프기로 취급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성좌가 변덕을 부린다면 각성자로선 치명타로 다가온다. 다크니스가 성좌마저 통제한다면 인간에 대한 통제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누가 감히 그들의 말을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신과 탑의 시스템은 다음 기회로 넘기고.’

차원 간의 다툼도 미루었다.

스케일이 지나치게 크면 신뢰성이 떨어지는 데다 아예 포기할 수도 있었다. 괜히 겁을 준다고 여기면 곤란했다. 적정선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편이 도움이 된다.

“혹, 탑의 이상 현상도?”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단정은 금물이야.”

이러면 나야 좋지.

본인이 나서서 아등바등 증명하자면 의심하기 딱 좋았다. 의혹의 대상을 다른 곳으로 돌려준다는데, 무진으로선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당연히 넙죽 받지는 않는다. 가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견제를 위해 미끼를 던진 것일 수도 있었다. 얄팍한 수작에 넘어갈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음흉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가주들은 한 번 고개를 숙인 이후로, 나이와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따르는 모양새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호박씨를 깔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민족성을 떠나 인간이라면 당연한 본능이다.

“이만 일어설 테니, 할 말이 있으면 혈검후를 통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무진을 대하는 혈검후의 태도가 가주들에겐 입 안의 가시처럼 껄끄러웠다. 성격을 떠나 혈검후의 외골수적인 성향을 알기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최악이군.’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무서운 자다.’

이토록 무서운 존재가 고작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았다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빌어먹게도, 그런 자가 아군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다. 적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했다.

속국이나 다름이 없는 처지였다.

‘대일본 제국이 어쩌다가?’

***

아수라장 같았던 황궁도 얼추 정리되었다. 완벽히 복구하기까지는 시일이 걸리겠으나, 침입 경로가 한정되어 오래 걸릴 작업은 아니었다.

천검가의 일정을 마친 무진은 황궁에서 내어 준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선객으로 들어차 있었다.

지수, 유정, 혜진은 이해한다 쳐도. 미츠키, 대부, 하야토까지 떡하니 자리를 차지했다.

“주인이라고 손님방에 허락도 없이 함부로 들어와도 되는 거냐?”

“이번 사태에 대해서 의논할 게 있어서 기다렸을 뿐이거든.”

“그 전에 해야 할 말이 있지 않나?”

“……고마워.”

“말로만.”

“그놈의 돈돈돈! 인생에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

미츠키의 항변이 실로 타당하기는 하나, 현실은 옳은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돈 앞에 초연한 이들은 대부분 위선자에 가까웠다. 속물이라고 규탄은 해도, 위선보다는 솔직함이 현명하다. 대중은 한없이 깨끗할수록 추락할 때의 희열을 느끼는 변태적인 성향이 강했다.

삶이 편하려면 속물적인 근성은 기본이다. 그래야 주변에 구애받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귀공품도 받아.”

“장물아비 납셨네!”

“황궁 대전 안 황좌를 중심으로 오른쪽 2m 거리에 이마리 도자기가 있던데.”

“이 미친놈이!!”

힐끗 봤으면서 자세히도 기억하네.

일본 최고의 도조가 바친 도자기로 값을 따지기도 힘들다. 생전 아버지가 아끼는 물건인 데다가 각성하여 번영과 풍요를 내려 주었다.

황실의 상징과도 같은 도자기를 장물로 달라니? 공주라고 해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국보였다. 혹, 야밤에 가지고 가다가 걸리는 날엔 그나마 회복한 명예는 시궁창에 빠지게 된다.

후흡, 후우우~~~~!

울분을 제어하기 위해서 심호흡했다. 미츠키는 자세를 단정히 하고,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본국을 대표해서 정식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다고 깎아 주진 않아.”

그녀는 일국의 공주이자 장차 천황의 자리에 오를 후계자다. 정식으로 예의를 갖추었으면 최소한의 대접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대부와 하야토의 표정이 갈피를 못 잡았다.

홍당무가 된 미츠키가 발작했다.

“한 푼도 깎지 않고 이자까지 쳐서 갚아 줄게, 이러면 됐지?”

“조국을 위하는 그대의 고귀한 마음, 오해하지 않고 정중히 받아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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