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342화 (343/374)

342. 도와줘요(1)

문화적 가치가 있는 에도성이 화마에 휩싸이고 있었다.

정문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도로마다 사방팔방에 주검들이 나열되었다. 황실의 경호원은 물론 친위대도 있었다.

침입자는 30명이었다. 전원 얼굴까지 가린 전신 슈트를 착용했다. 그들은 살수를 전개함에 망설이지 않았다. 황실의 중심까지 거침없이 치고 들어갔다.

꽈아앙!

쿠다다당!

목표는 확실했다.

정문에서 직선거리로 공주가 거주하는 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황실은 동선을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역량의 차이가 뚜렷했다. 특히 침입한 무리를 이끄는 남녀는 차원이 다른 강함이었다.

다크니스 마스터 직속 넘버.

레스1 빈첸조.

엔비1 디자이어.

마스터의 명으로 공주와 암천회를 끝장내기 위해 황실을 찾았다. 검가연합은 후일을 기약하려고 했지만, 다크니스는 후환을 남겨 둘 생각이 없었다.

그중 공주는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그녀만 아니었다면 환검가가 드러나지도 않았을 테고, 검가연합과 소모전을 벌일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다크니스가 수면 위로 부각하는 바람에 더는 은밀한 작업을 펼칠 수 없게 되었다.

차작!

공주의 거처 앞에 당도했다.

멈춰 선 빈첸조와 디자이어는 공주와 암천회를 비웃었다.

침입 목적을 광고하듯 들이닥쳤다. 숨어서 벌벌 떨고 있거나, 도망쳤어야 했다. 알량한 황족의 자존심으로 인해 애송이들까지 죽게 되었다. 어리다고 봐주리란 기대는 하지 마라, 세상은 인의를 따지지 않는다.

“시간 낭비를 덜었군.”

“용기는 영화에서나 통하지, 현실은 만용의 대가를 치르거든. 어디 얼마나 버틸 수 있나 볼까? 호호호호.”

용기와 목적은 별개였다.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죽일 수 있었다. 더욱이 계획에도 없는 일로 짜증이 난 상태였다. 곱게 죽여 주리란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이로웠다. 수치심을 주고, 갈가리 찢어서 먹여 줄 것이다.

“이놈들, 예가 어디라고 감히 살의를 드러내느냐? 내가 있는 한 절대 네놈들 뜻대로 되지 않는다!”

황실의 대부, 엠페러 나이트 세이토 하나타였다.

황실에 침입자가 들어왔단 소식을 듣자마자 공주를 찾았다. 놈들의 목표가 공주임을 직감한 것이다.

“예의를 중시하는 것치곤 너희 일본도 다른 나라의 황실을 맘대로 들어가서 칼부림하지 않았나.”

서양인에겐 한·중·일은 똑같은 나라처럼 보일 텐데. 의외로 동양 역사에 빠삭한 빈첸조였다.

그는 과거의 전례를 들먹이며, 세이토를 비아냥거렸다. 자기들은 해도 되고 남은 하지 말라니. 내로남불이었다.

“닥쳐랏! 요설 따윈 듣지 않겠다!”

“요설이라고 하기엔 사실이긴 해요. 자고로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도 없다고 했으니까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긴 하네요.”

이년은 대체 누구 편이야?

침입자가 그랬다면 이해하겠지만, 미츠키 공주의 옆에서 들렸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여인이었다.

살얼음판 같은 살벌한 대치 속에서도 방관자처럼 느긋해 보였다. 몰살지경의 극한 상황에서 저딴 태도라니. 평소의 세이토였다면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괴물의 친구만 아니었으면!!’

한국에서 온 소녀들.

지수, 유정, 혜진이었다.

자신들 빼고 혼자서 일본으로 여행 간 무진을 용납하지 않았다. SNS를 통해서 소식이 전달될수록 배가 아팠었다.

지만 입인가?

우리도 장어, 초밥, 라멘, 텐동, 오코노미야끼 좋아한다고.

어쨌든 그녀들도 국·영·수는 못해도 국사는 잘했다.

“악녀라도 우리 손으로 처벌했어야 했죠.”

“맞아요, 일본이 그럴 권리는 없어요.”

“잠깐, 그 당시 우리 손으로 처단할 힘은 있었나?”

그래, 나라 사랑은 좋다 이거야.

하필 이 자리에서 애국심을 고취하며 전장의 사기를 저하시키냐고! 이것들이 도와주려고 온 건지, 방해하려고 온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썩을, 그놈만 아니면!!’

세이토와 암천회가 참는 연유는 바로 무진 때문이었다. 그처럼 강하면 인간사에 초연해야 하는데, 괴물은 뒤끝이 있어서 나중에 무슨 짓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

괴물이 검가연합과 환검가의 전쟁에 참여해서 안심했더니, 다크니스가 공주를 직접적으로 노릴 줄 누가 알았으랴.

스륵!

지수는 주변의 민폐 섞인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맡은 소임을 했다. 꼼꼼한 우리 자기가 오겠다고 했을 때 만류하지 않은 것만 봐도.

“할아버지, 저년은 내가 맡을게.”

“미친 게냐?”

황실의 검을 뭐로 보고.

괴물의 친구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나같이 자기랑 똑같은 것들만 잘도 모아 놨다. 도망치지 않는 용기는 가상하지만, 광년은 매우 곤란했다.

“호호호호, 권왕의 손녀답게 화끈하구나. 이 언니랑 그렇게 놀아 보고 싶었어요.”

“할망구가 뭐라는 거야?”

디자이어가 광기를 번뜩이며 살의를 발출했다. 애송이가 주제를 모르고 자유분방하게 나불거리고 있었다. 젊은 언니로서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게 해 줘야 했다.

“어디부터 찢어 줄까? 선택해.”

“어휴, 늙어서 그러나, 역하네.”

미츠키와 세이토가 미처 만류하기도 전이었다. 촌음에 서로의 간격이 교차한 후 폭발이 일어났다.

꽈아아앙!

부르르르!

그 격렬한 파문에 다들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예상을 벗어난 파괴력이었다. 상대는 황실을 빈집처럼 쳐들어온 무리의 수뇌 중 하나였다. 당연히 지수가 밀릴 줄 알았지만, 웬걸.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처저저적, 주춤!

쐐애액!

타의로 밀려난 디자이어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지수였다. 마치 지금까지의 언행이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란 듯, 공격에선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자, 지수의 내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신화공을 10성까지 끌어 올리고, [광폭화] 3단을 열었다. 자동적으로 [이너피스]가 발동했다.

퍼퍼퍼펑, 화르르르!

다들 놀라는 가운데 혜진과 유정만은 평온했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소임을 충실히 이행해 나갔다.

“역시 미친년은 미친년으로 상대해야 해.”

“이이제이의 근본.”

디자이어의 광기 못지않게 지수의 광기도 위험했다. 시작부터 뒤를 돌아보지 않는 듯 전력을 퍼붓고 있었다. 일순간에 공간을 무시하고 파문이 황실 전체로 번진다.

허어!

MZ의 허세가 아니었다.

돌아이는 맞지만.

세이토는 괴물의 여자 친구도 괴물임을 인정했다.

놀람도 잠시, 안정을 찾았다. 자신이 저놈을 상대하고, 암천회가 보조한다면 막아 낼 수 있었다.

“같잖은 것들이 희망을 논하는군.”

“희망이야말로 현재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아니더냐.”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끊어 주지.”

“할 수 있으면 어디 해 보거라.”

빈첸조는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은 흐름에 인상을 찌푸렸다. 계획이란 실패할 때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림은 최악이었다.

‘권후의 무력이 저렇게나 대단했었다고?’

일개 생도의 무력을 확실히 넘어섰다. 디자이어와 팽팽한 전투를 펼치는 것부터가 상식적이지 않았다. 공주와 암천회를 죽여 황실의 무능을 선전하려고 했는데, 계획 자체가 틀어지게 생겼다.

“공주는 잡고, 나머지는 전부 죽여.”

사태가 귀찮아졌지만, 일단 공주와 날벌레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공주만 생포해도 어그러진 흐름을 되돌릴 수 있었다.

“내가 눈뜬장님도 아니고, 두고 보고 있을 것 같으냐!”

“황실 최고라고 자기들끼리 띄워 주니, 세상이 같잖아 보였나? 주제 파악을 하게 해 주지.”

세이토와 빈첸조가 격돌했다. 그들도 시종일관 격렬한 전투를 펼치는 지수와 디자이어에 못지않았다.

두드드드, 휘이이잉!

미칠 듯한 기파는 섬뜩한 돌풍을 일으켰다. 2 대 2의 결전이 되자, 흐름 자체는 팽팽해졌다.

차자자작!

지수와 엠페러나이트의 선전에도 미츠키와 암천회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침입자는 남아 있고, 자신들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잔혹했다. 그나마 무진과 실전을 겪어 봤기에 긴장하여 실수하진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무진의 도움이 가장 컸다. 고맙다고 해도 부족했다. 그러나 살아남지 못하면 감사 인사든 뭐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침입자가 기계처럼 쇄도했다.

일사불란한 데다가 포위망이 견고하다.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갇힌 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었다.

쐐애애액!

퍼퍼퍼펑!

다행히 전투는 미츠키의 우려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빛살처럼 튀어 나간 혜진과 유정이 포위망의 핵심 축을 간파하고 진형이 갖추어지는 걸 무력화했다.

검신류를 9검까지 터득하여 자신만의 길을 완성한 혜진의 검에서 강기가 형성되었다. 또한, 풍야를 최상급 정령까지 끌어 올린 유정은 정령합신을 이루어 정령투법을 사용했다.

이제는 둘 다 완숙한 경지에 도달하여 제 몫을 해 주었다. 다만, 무진의 기대가 워낙 커서 상대적으로 부담은 되었다.

기대치가 저세상이니, 다들 저세상이 그리웠다.

혜진과 유정의 협력은 실로 놀라웠다. 마치 한 몸에서 나온 쌍둥이처럼 유기적으로 맞물렸다. 단순히 합격술만 뛰어나다면 놀라지 않는다. 생도가 강기를 쓰고, 최상급 정령술을 쓰고 있었다.

헐!

불리한 형국을 되돌렸지만, 암천회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같은 생도인데, 차이가 너무 났다. 무진이야 이레귤러로 치더라도, 한국과의 벽을 체감했다. 이대로라면 자신들만 뒤처져서 도태되고 만다는 위기감이 스쳤다.

‘한국은 다 저래?’

‘쟤들이 특별한 거겠지?’

‘그럴 거야!’

‘그래야 하고말고!’

미츠키도 다르지 않은 심정이었다. 어제 갑자기 찾아와서 눌러앉을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너희들, 나 없는 데서 뭐 하려고?

남자 친구를 감시하려고 찾아온 줄 알았더니, 실제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남은 것이다.

솔직히 하야토에겐 미안하지만, 어느 정도는 노린 부분이 있었다. 무진을 일본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다른 어떤 것이라도 희생할 가치가 있으니 말이다.

여자의 감이었다.

무시 못 할.

까딱 잘못했으면 수작 부리다가 황천길로 직행할 뻔했다. 일전 마녀를 처리할 때 지수의 성깔이 상기되었다.

데리고 온 친구들까지 만만치가 않았다. 하나같이 나라를 빛낼 인재들인 데다가 와꾸가 장난 없었다. 암천회의 남자들이 추근대는 이유가 있었다.

‘이젠 빼도 박도 못 하겠네!’

은혜를 입은 건 둘째 치고, 다크니스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누구 손을 잡아야 할지 확실해졌다. 한국과 우호적인 협약을 체결하지 않는다면 본국의 미래를 장담하기 힘들어졌다.

‘이럴 줄 알았던 거였어!’

무진을 떠올릴수록 미츠키는 두려웠다.

하야토와 정이 더 깊지만, 국가적인 차원으로 봐야 했다. 일국의 공주가 개인감정에 치우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누구 때문에 뺑이 치는데, 참 한가하네.”

“공주라서 시중이 필요한 듯.”

치열한 전투 중 유정과 혜진의 대화가 들렸다. 미츠키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암천회와 같이 위기를 벗어나야 했다. 최소한 스스로 지킬 힘이 있음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공주와 암천회의 열등감 못지않게 혜진과 유정도 자괴감을 느꼈다.

“혜진아, 쟤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현재로선 불가능.”

“앞으로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포기하지 않아.”

“망할, 너 때문에 나까지 고생하잖아.”

“포기해, 그럼.”

들었나?

지수가 미친년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 압도적인 광경은 무진을 떠올리게 한다.

유정은 고민했다.

지수도 미친년이지만, 혜진도 검에 미친 년이었다. 쌍으로 미친년이라서 유유상종으로 자신도 미친년 취급을 받고 있었다.

‘대체 언제까지 가랑이 찢어질 짓을 해야 하는 거야?’

경쟁해야 하나, 자괴감이 든다. 승부에서 이긴다고 행복할 것 같지도 않다.

문득 떠오른 상원의 얼굴에.

‘죽엇!’

광분했다.

***

커억!

허공에 핏물을 분수처럼 거칠게 토했다. 환검가주는 믿기 힘든 눈으로 상대를 보고 있었다.

가슴을 대각선으로 가른 검흔이 붉게 물들다 초속 재생으로 회복되지만, 내부는 검경을 해소하지 못했다. sss급 공력 정수로 무제한에 가까웠던 내력도 바닥을 보였다. 위력을 과시했던 장비, 아이템, 스킬도 무가치한 소모가 되었다.

압도적 승리를 자신했기에 환검가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

“어째서 계속 싸울 수 있는 거지?”

“자식을 잃은 어미의 마음이니라.”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머니는 초능력도 발휘한다는, 그딴 허무맹랑한 기적 따윈 환검가주를 납득시키지 못했다.

반로환동하여 과거의 전성기를 넘어섰다곤 해도, 다크니스의 지원을 받아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초월극의에 도달했다.

환검류를 대성하였기에 혈검후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결전이 치열해질수록 혈검후의 명검류가 환검류에 못지않음을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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